2025-11-10

비르지니 테팡트, 나이 탓일까 ─ 독기가 빠졌다

저자소개

임옥희
여성문화이론연구소


이란 영화 「그저 사고였을 뿐」을 보려고 노원아트시네마로 나갔다. 영화가 끝났음에도 의족보행의 특이한 발자국 소리가 계속 귓가에 맴돌았다. 가슴이 답답했다. 마음이 힘든 영화는 이제 그만 보고 싶었다. 이게 다 나이 탓이야, 라고 혼자 중얼거리면서 같은 공간에 있는 북카페로 갔다. 북카페 진열대에 놓여 있는 비르지르 데팡트의 『친애하는 개자식에게』를 보고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 말랑말랑한 책들 사이에 놓여 있는 데팡트의 책 제목에 답답한 속이 후련해졌다. 책은 한껏 차려입고 모두가 미모를 뽐내는 무도회장에서도 벽에 붙어 있는 못생긴 여자처럼 생뚱맞아 보였다. 프롤레타리아 페미니스트 선언문 같은 그녀의 작품 『베즈 무아Fuck Me』, 『가로질러 물어뜯기』, 『킹콩걸』 등의 도발적이면서도 통렬한 내용을 떠올린다면, 이 정도 제목쯤이야 싶었다.      


‘나는 케이트 모스보다는 킹콩에 가깝다’로 시작하는 『킹콩걸King Kong Theorie』은 프랑스 페미니즘 하면 난삽하고 고급한 아카데미 페미니즘이 전부인 줄 알았던 사람들에게는 경악스럽고 ‘저급한’ 글쓰기일 수도 있다. 데팡트는 ‘못난’ 여자들, 사납게 늙은 여자들, ‘썩은 이뿌리를 드러내는’ 약쟁이 노숙자들, 뚱뚱한 매춘부들, 뻔뻔한 포르노 배우들, 수염을 매달고 활보하는 여자들, ‘유혹’할 수 있는 매력 자본도 없는 하층 노동계급 여성들을 킹콩으로 일컬었다. 킹콩들은 성별, 인간/비인간 동물의 경계를 넘어서 있고, 가진 것 없어 소유로부터 자유로운 무산계급을 의미했다. 그들의 절박한 분노와 거침없는 폭력은 가부장제를 위협하는 공포스런 힘들이었다. 데팡트는 킹콩들의 목소리로 전해주는 자전적인 이야기를 킹콩 이론이라고 선언했다. 보편성을 추구하는 엘리트 부르주아 이론들이여 엿 먹으라는 것처럼. 


열일곱 살 때 『베즈 무아』에서의 나딘과 마누처럼 데팡트는 친구랑 둘이서 떠돌이 여행을 떠났다. 히치하이크를 하다가 집단 강간을 당했다. 생계를 유지하려고 매춘을 하고 포르노 잡지 프리랜서 기자로 일하기도 했다. 극단적인 자기파괴 서사에서 술, 마약, 섹스, 폭력 등은 그녀에게 빠질 수 없는 삶의 생생한 경험이자 자기해방적 요소였다. ‘킹콩걸’의 자기이론에 따르면 강간은 ‘그저 사고였을 뿐’이 아니라, 남성 권력이 여성을 통제하고 억압하는 사회 시스템의 일부다. 강간 피해 여성을 수치로 만드는 후안무치한 남성중심 문화야말로 수치가 무엇인지 제대로 배워야 한다고 신랄하게 비판한다. 성적 이미지로 넘쳐나는 사회에서도 여성의 성적 자율성을 단속하고 치욕스럽게 만드는 사회적인 기제들을 고발하고 폭파시키고자 한다. 『킹콩걸』은 극단적인 자기파괴를 통해서라도 여성들에게 가부장제의 애완견이 되지 말고 자유로운 자기 삶의 주체가 되라고 선전 선동한다. 


『킹콩걸』2006과 『친애하는 개자식에게』 사이에는 20년의 간극이 있고 그사이 계급 탈주자가 된 데팡트가 이번에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친애하는 개자식에게』는 마치 연극 대사처럼 세 인물이 번갈아 가면서 발언한다. 그들은 오스카 제이야크, 레베카 라테, 조에 카타나이다. 조에 카타나는 미투를 고발한 갈등의 중심인물임에도 말 많고 탈 많은 두 인물에 비해 대사 분량은 극히 적다. 쏟아지는 혐오 발언에 재갈이 물린 것처럼.    


오스카 제이야크는 40대 남성 작가다. 성추행 가해자이면서도 미투 운동의 피해자로 행세한다. 그는 매춘부에게 잘못 걸려들어 작가로서 커리어가 완전히 망가졌다고 억하심정을 토로한다. 지금은 알코올과 마약에 찌들어 날개도 없이 추락하는 중이다. 레베카 라테는 인기 절정이었던 젊은 시절, 소년들의 책받침 여신이었다. 영화계에서 보여준 그녀의 위상과 존재 자체만으로도 젊은 페미니스트의 아이콘이었다. 하지만 50대로 접어든 지금 ‘나이의 역사에는 어떤 정의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나잇살이 늘어나게 되면서 여배우로서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진다. 20대인 조에 카타나는 오스카의 출판사 홍보 담당 직원이었다. 성추행을 고발하는 글을 자신의 페미니스트 블로그에 올린 탓에 직장마저 잃는다. 조에는 미투 운동의 대가로 엄청난 혐오의 댓글과 전쟁을 치르면서 심신이 피폐해진다.   

     

2017년 무렵 페미니스트 정치의 최전선이었던 ‘미투’ 논쟁으로 인해 세 사람은 얽히고설키게 된다. 이 사건을 둘러싸고 문학판, 영화판, SNS, 술, 마약, 중독, NANarcotic Anonymous,  마약 중독자 회복 모임, 코로나 비상사태와 같은 소재들이 다채롭고 다층적으로 전개된다. 오스카는 어릴 적 자신의 우상이었던 레베카를 우연히 마주치고 실망한 사연을 자신의 인스타 계정에 올린다. 소년의 마음을 훔쳤던 여배우가 살찌고 추레해졌다면서 참담한 심경을 토로한다. 그것을 읽은 레베카가 주목받고 싶어 환장한 ‘친애하는 개새끼에게’ 저주와 악담을 퍼붓는 메일을 보낸다. 소심하고 지질한 오스카는 레베카의 관심을 끌려고 신랄한 글을 올렸다면서 사과의 메일을 보낸다. 자신이 레베카의 어릴 적 친구인 코린의 남동생이고 지금은 이름이 조금 알려진 작가다. 사랑의 감정으로 애정을 표현했는데 그로 인해 어린 출판사 여직원에게 미투 고발을 당하고 진흙탕 싸움이 진행되고 있다고 하소연한다. 처음엔 서로 혐오를 주고받았지만, 두 사람은 점점 속내를 털어놓으면서 긴 메일을 주고받게 된다.   


세 사람은 서로가 처한 상황에 따라 이합집산한다. 오스카는 속내를 나누는 사이가 된 레베카가 조에의 편에 선 것에 심한 배신감을 느낀다. 노동계급 남성에게 부르주아 페미니스트들이 연대하여 자신을 파멸시키려 한다고 분노한다. 레베카는 조에의 밸러리 솔라나스식 페미니즘에는 무관심하다. 조에는 부르주아 페미니스트 레베카에게 실망한다. 여성들의 빈곤, 불안정 노동, 소수자 차별과 같은 사회구조적인 젠더 불평등은 보지 못하면서 자신의 개인적 성공을 일반화하는 레베카의 얄팍한 인식에 비판적인 입장이다. 페미니스트 사이의 다양한 스펙트럼에도 불구하고 조에는 오스카의 누나이자 레즈비언인 코린과 레베카의 지지와 연대로부터 힘을 얻기도 한다. 특히 코린은 남동생을 감싸고 도는 것이 아니라 단호한 응징이 필요하다면서 확실하게 조에 편에 선다.   


『친애하는 개자식에게』에 이르면 분노하는 여전사 비르지르 데팡트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여기선 ‘우리’가 어떻게 함께 살아갈 수 있을까’라는 힘든 주제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분노의 파괴력보다는 공감과 연대라는 페미니스트 전략으로 선회하고 있기 때문이다. 레베카는 소위 좌파 남성 작가로 알려진 오스카에게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직설적으로 말해 준다. 레베카, 누나 코린, 어린 딸 클레망틴과 같은 주변의 여자들 덕분에 오스카는 자신이 조에의 삶을 어떻게 지옥으로 만들고 파괴했는지 깨닫고 사과한다. 알고 보면 그 또한 문학판에서 노동계급 남성 작가에게 기대하는 일탈적이고 자기 파괴적인 마초 남성성의 이미지로 소모되고 있었다. 주인의 사슬에 묶여 있으면서도 프로메테우스처럼 풀려날 수 없는 남자들 역시 구출의 대상임을 조에 또한 수긍한다. 오스카는 소위 알파 메일들의 세계에서 인정받고 싶은 인정 욕망이야말로 어떤 마약보다도 하드코어 마약임을 인정하게 되고, 술, 마약과 단약하기 위한 NA 모임에 나가게 된다. 


레베카는 조에 카타나의 미투 고발에 대해 과거와는 달라진 자신의 시각을 오스카에게 들려준다. 5년 전만 해도 그녀는 조에처럼 분노하는 어린 페미니스트들의 목소리를 무시했다고. 영페미니스트들의 미투 운동이 한창이었을 때, 카트린 드뇌브, 브리지트 라에가 등이 ‘유혹의 권리’를 주장하면서 반페미니스트 입장에 섰던 것과는 다르다 할지라도, 레베카 또한 젊은 여자들이 약자 피해자 행세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영화판의 속성상 노출이 심하고 시선의 대상화는 직업적으로 당연한데, 그런 것에 적대적인 그들을 순진하다 못해 고루하다고 생각했다. 2017년 영화 제작자 하비 와인스틴의 성범죄 스캔들이 폭로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미투’ 운동이 촉발했을 때도 레베카는 그런 제작자에게 몸을 대주고 배역을 따내려고 줄 서 있었던 어린 여자애들을 떠올린다. 자신은 단정한 처신으로 영화계에서 존중받았다면서 그녀야말로 순진한 환상을 털어놓는다. 나이들고 과거와 같은 매력자본이 감퇴되고 나서야 비로소 그녀는 조에의 목소리가 들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었다고 인정한다. 터무니없이 억울한 상황에서는 그 사실을 공개적으로 말해야 한다. 그것은 약자의 칭얼거림이 아니라 ‘#나도 그랬어,’ 라는 공감과 응원을 이끌어낼 수 있는 힘이 된다. 조에의 폭로가 약자의 코스프레가 아니라 자존과 생존을 위한 연대이자 ‘깨시민’ 운동임을 오스카에게 일깨운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 법이니까. 


여기에 SNS 특성상 어떤 문제든 개입하는 익명씨들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가장 효율적인 방식으로 오스카, 조에 가리지 않고 혐오를 쏟아붓는다. 가짜 뉴스가 일파만파로 퍼져나가면서 미투 운동의 진위와는 상관없이 무엇 때문에 이전투구하고 있는지 모를 정도로 혼돈 그 자체가 초래된다. 혐오 폭력에 시달리다 못해 조에는 정신이 망가진다. 하지만 도무지 해결의 기미조차 기대할 수 없었던 문제들이 단숨에 제거되는 엉뚱한 사태가 벌어진다. 연극 무대에서의 엑스 마키나처럼 코로나 비상사태는 일순간 모든 문제를 쓰나미처럼 휩쓸어간다. 자가격리로 인해 파리는 봉쇄되고 사람들은 각자의 방에 외롭게 수감된다. 격리와 봉쇄 기간 동안 각자의 외로움은 아이러니하게도 서로 공감하고 연대하는 힘으로 나가게 해준다. 코로나 시기 줌Zoom을 통한 NA 모임은 타자의 상황을 판단하지 않고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준다. 오스카는 술과 마약 중독으로 혼미한 정신을 수습할 수 있었던 것은 아무런 이해 타산없이 서로를 지지해주는 NA 모임 덕분이었다고 고백한다. NA 모임은 마약을 끊으면 삶의 의미도 사라질 것으로 보았던 레베카의 마음도 움직이게 만든다. 코로나 비상사태로 오스카는 자신과 철저하게 대면하고 반성할 시간도 갖게 된다. 그는 힘겹게 중독에서 벗어나고 딸 클레망틴의 신뢰를 회복하고자 노력한다.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갔던 절망적인 재앙이 오히려 사회적 연대를 가능하게 해주었다는 점은 역설적이었다.  


『친애하는 개자식에게』에 이르러 비르지르 데팡트는 오래 눌러두었던 분노를 폭발시키는 대신  힘겹더라도 상호이해와 상호의존을 통한 공감으로 함께 하면서 뭔가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을 찾고자 한다. 그녀에게서 분기탱천하던 여전사의 독기가 빠졌다. 아마도 그건 연륜이 주는 연민과 삶의 여유가 주는 타협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