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8-21

인종주의라는 이름의 오래된 미래


격동하는 세계 속에서 한국은 마치 인종주의의 무풍지대처럼 보인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염운옥 교수님은 아직 국내에서 인종주의의 개념이 명확하지 않던 2000년대 초반부터 이 문제에 대해 깊게 연구해 오신 분이다. 그런 점에서 교수님의 책 『낙인찍힌 몸』돌베개, 2019은 지금 특히나 더 살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 우리가 알지 못했던, 또는 애써 감춰두었던 인종주의의 진실에 대해 저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살펴보았다.


서울대학교에서 2025학년도 1학기에 개설된 차익종 교수님의 ‘글쓰기 세미나’ 수업에서, 염운옥 작가님이 집필한 『낙인찍힌 몸』을 탐독하고 이를 바탕으로 작가님과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이 글은 당시 진행된 인터뷰를 바탕으로 재구성하였다.


인터뷰어 소개


배현민 | 정치외교학부 25

정치란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사람이고 싶다. 정치는 세상의 불의를 무시하지도, 부정의에 대한 해결을 체념하지도 않아야 한다고, 끊임없이 현실 개선에 매진해야 한다고들 한다. 그러나 몇 가지를 더하고 싶다. 정치는 나 하나가 노력한다고 세상이 바뀌지 않음과, 간절한 호소가 헛된 외침에 그칠 수 있음을 아는 것이다. 그럼에도 정치는 그 헛된 외침의 크기를 조금이라도 올리기 위해 목이 쉬도록 부르짖는 것이다. 바람직한 사회라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청사진에 점 하나라도 찍기 위해 투쟁하고 몸부림치는 것이다. 이번 책을 통해 소수자의 역사를 슬기롭게 반추할 수 있는 지혜가, 진정한 ‘정치’에 힘쓸 수 있는 용기가 내게, 우리 모두에게 함께 하기를 축원한다.


김현서 | 간호대학 25

간호학, 또는 다른 학문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사랑을 건네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하지만 요즘 스스로 인식하지도 못한 내면의 고정관념에 흘러가는 사랑이 가로막힘을 부쩍 느낀다. 개인이, 또 집단이 어째서 출처 없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히는가에 대해 의심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고민에 대해 본격적으로 생각해 보도록 해준 책이었다.


양승우 | 인문계열 24

어지러울 정도로 복잡하고 빠르게 변화하는 세계 속에서, 세계를 흐림 없는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다. 여러 가지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세상을 설명하는 각기 다른 시각에 매력을 느낀다. 적당히 시원한 날 잔디밭에 누워서 생각하기를 좋아한다.


김주영 | 전기정보공학부 23

공학뿐만 아니라 인문학, 사회학에도 관심이 많은 학생이다. 요즘 진로에 있어 고민이 많으며, 넓은 세상에서 생활하며 내면의 성장 과정에 있어 미래에의 진보와 과거의 유산 보수 사이에서 갈등을 느끼고 있다. 그런 와중에 『낙인찍힌 몸』을 읽으며 더 넓은 세계를 경험하며 타인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인종주의, 평면적 시선을 넘어서


『낙인찍힌 몸』은 인종주의의 과거와 현재에 대해 매우 깊이 있는 시야를 제공해 준다. 목차는 크게 6개로, 1장에서 인종주의의 역사 및 개요를 요약하고 2장부터 6장까지 인종주의와 관련된 사례를 서술하고 있는 구조이다. 1장에서는 린네의 분류학, 방켈만의 미학 등 당시 인종을 설명하기 위한 개념이 사회적인 배경을 토대로 진행되었음을 서술한다. 즉 인종주의가 과학적인 개념이 아닌 사회적인 개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2장에서는 흑인, 3장에서는 여성, 4장에서는 유대인, 5장에서는 무슬림이 인종주의를 바탕으로 어떤 차별을 받았는지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6장에서는 한국에서의 다문화주의를 설명하며, 인종주의가 단순히 과거에 한정된 개념이 아님을 보여준다.


염운옥 | 작가, 경희대 연구교수

여러분 만나서 반갑습니다.


배현민

먼 길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염운옥

아닙니다. 여러분들과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생각에 즐거운 마음으로 왔네요. 다들 책은 재미있게 보셨을까요?


배현민

네, 교수님. 저는 평소에 인종 문제에 대해 관심이 있어서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어요. 특히 우리가 흑인 노예를 바라볼 때 이들을 피해자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주체적인 저항의 대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주장이 인상 깊었습니다. 비슷하게 또한 유대 민족에 대한 차별을 다루는 부분에서도 유대인이 겪은 피해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이스라엘 내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또 다른 차별에 대해서도 짚어주신 것이 최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전쟁과도 연결되는 지점이 있었던 것 같아서 더 의미 있고 유익했던 것 같습니다.


염운옥

배현민 학생은 정치외교학과답게 특징을 잘 집어주셨네요. 피해자를 계속 피해자로만 보는 시선은 우리가 인종주의 문제를 다룰 때 쉽게 간과하는 지점입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해서도 유대 민족 같은 경우에 사실 홀로코스트의 피해자인데 막상 팔레스타인에 정착하고 나서부터는 이른바 ‘나크바’아랍어로 ‘재앙’·팔레스타인인 강제 이주를 의미 ─ 편집자 주라고 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에 대한 학살의 가해자가 되고 말았죠. 이러한 피해와 가해의 악순환이 참 가슴이 아픈 것 같아요.


『낙인찍힌 몸』이 다루고 있는 인종으로서 유대인 정체성의 형성 문제는 인종이 역사 속에서 어떻게 창조되는지, 인종 내에서는 어떤 분열과 갈등이 일어나는지를 보여준다. 4장에서 다루는 유대 민족의 인종 문제는 대중서적에서는 보기 힘든 정도의 깊이를 자랑한다.


김현서

저는 인종주의의 틀을 형성하는 서구 문명의 시선에 대한 문제를 흥미롭게 읽었어요. 특히 무슬림 여성들이 쓰는 히잡에 대해서 서구의 시선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느라 오히려 히잡을 실제로 쓰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묻힐 수 있다는 점이 기억에 많이 남았어요.


염운옥

맞습니다. 이 히잡이라고 하는 게 사실만 놓고 보면 그냥 중동 지방의 옷이죠. 이것을 “내가 입고 싶은 옷을 입겠다는데 왜 못 입게 하냐.”라고 말할 수도 있는 것이고 반대로 “히잡을 쓰는 것은 사람들이 교육을 받지 못해서 그렇다.”라고 말하면 서구의 시각이 되는 것인데 이 사이에서 실제로 히잡을 쓰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잘 안 들리게 되는 거예요. 사우디아라비아나 이란에서는 현재에도 히잡을 쓰도록 강요하는 종교경찰이 있는 게 사실이고요. 이처럼 현대의 인종주의 문제라는 것은 특히나 여러 입장들을 고려해야 하는 복잡한 문제라는 것을 우리가 인지하고 있어야 합니다.




인종주의는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일까?


책의 상당 부분은 인종주의의 허구성과 그 기원을 다루고 있다. 인종을 과학적으로 정의하려는 시도가 얼마나 얄팍한 편견에 기반하고 있는지가 책 초반부의 주요 관심사이다. 


양승우

저는 책을 읽으면서 이 인종주의라는 것이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역사적, 사회·문화적 갈등의 산물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되었습니다. 흑인과 백인을 딱 잘라 구분할 수 있다는 생각은 피부색의 다양함을 생각해본다면 말이 안 되는 주장이라는 것을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유대인의 특성, 아랍인의 특성이 사실은 인종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문화적 특성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도 새롭게 알게 된 사실입니다.


염운옥

맞아요. 인종주의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를 보면 16세기 근대의 어느 시점에서 만들어진 것이 계속해서 재생산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어요. 이때 실제로 과학적 기준에 따라 인종을 구분한 것이 아니라 내가 속한 집단과 타 집단을 구분하려는 목적이 먼저 있었고, 그에 따라 각 민족들이 가지고 있다고 여겨지던 신체적 특징들이 마치 인종을 구분하는 특징인 것처럼 포장되었던 것입니다. 노예제도가 있었을 때는 노예주들이 흑인들은 노예 일을 하기에 최적화된 신체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거든요. 채찍을 맞아도 아프지 않은 몸을 가지고 있다고. 이런 잘못된 믿음을 타파해 오면서 인류는 인종주의의 문제를 점차 극복해 나갔던 것이죠.


양승우

여러 우려가 많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인류의 역사는 인종주의 극복의 역사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동시에 인종주의라는, 타 집단을 인종이라는 틀로 구분 짓는 행위 자체가 인간의 본성은 아닐까 하는 의문도 듭니다.


염운옥

장기적으로 봤을 때 우리 사회가 인종 문제에 대해 놀라울 정도로 진보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에요. 이제 적어도 공적인 자리에서 당당하게 인종차별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잖아요? 내가 선택할 수 없는 사항에 대해 인종적으로 차별을 두는 것이 부당하다는 정도의 합의는 전 세계 사람들이 희미하게나마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문제는 그것이 어디까지나 공적인 자아가 작동할 때에 한해서라는 거예요. 공적인 자아의 가면을 벗었을 때는 여전히 인종차별의 심리가 작용하는 것을 많이 목격할 수 있어요. 이것이 저의 문제의식이죠.



염운옥

말씀하셨던 것처럼 북토크를 진행하다 보면 항상 나오는 질문이 인종차별이란 게 진짜 없어질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한 것인데요, 이게 어려운 문제입니다. 원래 인간은 안전을 위해 나와 다른 더러운 것을 원초적으로 피하려는 본능을 가지고 있어요. 바퀴벌레라든가 바이러스, 코로나19와 같은 것을요.


그런데 위와 같은 원초적 혐오를 다른 집단에 ‘투사’하는 순간 인종차별이 발생하는 거예요. “너희는 바퀴벌레 같은 인간이야.”처럼. 이런 생물학적 혐오를 넘어서는 사회적 혐오까지를 인간의 본성으로 인정하는 순간 인종주의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이 무의미해지는 측면이 있어요. 우리는 인류가 지금까지 쌓아온 역사의 힘을 믿어야 해요. 인간 사이에 집단을 나누는 것이 개인의 안전을 위한 본능에서 기인했을 수 있겠으나, 이게 본성이니까 인종차별은 어쩔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역사는 인종주의가 잘못된 믿음에 근거하고 있다는 것을 밝히고 그것을 해결해 나간 과정이기도 하니까요.




한국에서 인종주의를 연구한다는 것


염운옥 교수님은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자 연구자로 스스로를 소개하셨다. 우생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으셨는데 우생학 ― 현재의 유전학에 해당하는 이 주제는 근대의 과학사 연구와 관련한 넓은 범위를 포괄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동물과 인간의 경계 문제와 노화와 돌봄 문제에도 관심을 가지고 연구 중에 있다고 하셨다.



김주영

교수님께서 책을 쓰시게 된 과정도 궁금합니다. 책이 이만큼 주목받을 걸 예상하셨나요?


염운옥

이 책이 2019년에 나온 책이니까 제가 집필을 시작한 것은 2010년대 초반이에요. 그때까지만 해도 “인종차별 다 해결된 거, 더 쓸 게 뭐가 있나.” 이런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흘러간 역사가 아니냐는(웃음). 그러나 상황이 변하면서 한국사회도 이제 인종이라는 키워드로 설명해야만 하는 현상이 많아졌습니다. 때문에 책을 7번이나 다시 찍을 수 있었던 것 같고요. 인문책은 재쇄를 찍기도 어렵거든요.


김주영

그러면 책을 찾는 사람이 많아졌을 때 기분이 좋으셨겠어요.


염운옥

책을 찾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은, 제가 쓴 책이 독자들에게 수용된다는 점에서 물론 기쁘지만, 한편으로는 인종에 관심이 많아진다는 사실은 곧 그만큼 한국사회에 인종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는 걸 보여주기 때문에 굉장히 양가적인 감정을 갖게 돼요.


배현민

그렇다면 사람들이 어떤 이유로 인종에 관심이 많아졌을까요?


염운옥

가장 간단하게 말하자면 한국사회에 이주민이 많아졌기 때문이겠죠. 서울에서는 느끼기 힘들겠지만 지방으로 내려가 보면 현재 다문화가 보다 일반적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여러 트러블이 생기기 시작하고 있는데, 차별이나 불법노동자에 대한 임금체불이나 이주민에 대한 성추행 등등의 여러 문제가 불거지면서 인종이라고 하는 게 한국과는 연관이 없는 줄 알았지만 사실 그렇지 않았구나, 하는 인식이 생기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배현민

인종주의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앞으로도 계속된다고 봐야 하겠군요. 관련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도 많아지겠어요.


염운옥

그래요. 현재 출입국을 통해서 추산한 외국인 비율이 전체 인구의 5%인데요, 아마 점점 더 많아질 겁니다. 한국사회가 멀티에스닉multi-ethnic사회로 진입하면서 다른 인종,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과 어떻게 평화롭게 살 것인가의 문제가 우리가 해결해야 할 과제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당장 할 수 있는 일도 많이 있어요. 가령 잘못 쓰이는 용어의 교정도 상당히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불법체류자’라는 용어를 ‘undocumented’로 대체한다든지. 왜냐하면 불법체류라는 게 단순히 비자 기간을 넘긴 것이 대부분인데, 이것을 마치 범죄를 저지른 것이라고 보기는 어려우니까요. 실제로 미국에서 진행되는 캠페인 중 하나입니다.




정치적 쟁점으로서의 인종주의


교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역사의 한 페이지에 불과했던 인종주의를 부활시킨 것은 오늘날의 정치적 갈등이었다. 인터뷰가 끝난 지난 6월 초,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불법체류자를 단속한다는 명목으로 캘리포니아에 주 방위군을 투입하는 초유의 선택을 했다. 확실한 것은 인종주의 이슈는 최근 정치를 이해하는 열쇠라는 사실이다.


김주영

요즘 보면 유럽과 미국에서 인종 문제를 정치에 이용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이런 현상이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염운옥

현재 유럽 내 민족주의 포퓰리즘도 그렇고 미국의 트럼피즘도 그렇고 전 세계적으로 정치의 우경화 내지는 극우화의 경향이 되게 뚜렷하죠. 이 문제의 중심에는 인종주의가 있고요. 한국도 마찬가지예요. 그리고 이런 현상은 전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특히 생각해 봐야 할 점은 “인종차별이 정치적으로 다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한가?”가 중요한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인종주의가 정치적 쟁점으로 부상한 이유 그 자체가 더 중요해요.



극우와 극좌는 원래 주류 정치의 판에 들어오지 않는 게 맞습니다. 그런데 극우파 정당이 정치의 주류 무대에 들어와서 그냥 하나의 ‘정상적인’ 우파정당인 것처럼 작동을 하고 있는 거예요. 이 노골적인 인종차별 정당들이 하는 얘기는 노골적인 백인 우월주의, 그리고 이민자들이 다 나가야 한다는 등의 실현 불가능한 이야기들입니다. 그러나 백인 주류 노동자들은 이러한 발언들을 좋아하니까 이러한 혐오 선동을 하는 거예요. 그리고 사람들이 이런 주장에 끌리는 이유는 주류 정치가 실패했기 때문에, 한마디로 대안이 없기 때문이겠죠.


그리고 이 사람들이 복잡한 사회문제를 단번에 해결할 수 있는 해결책이 있다고 이야기를 하거든요. 사실 그런 건 존재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요. 사회문제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만병통치약은 없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어야 해요.


김현서

그렇다면 인종주의를 정쟁의 수단으로 삼는 정치는 퇴출될 수 있을까요?


염운옥

극우나 극좌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사회에서 쫓아낼 수는 없겠지만, 그들이 차마 당당하게 목소리를 못 내는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하지만 인종주의를 다루는 극우파 정당들의 득세는 기존 정치의 실패를 보여주는 것이니만큼 제대로 사람들을 대변할 수 있는 대안적인 정치 세력이 크지 않으면 극우를 주변화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한국의 인종주의를 바라보며: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


양승우

인종주의가 정치의 도구가 되는 일이 한국에서도 발생할 수 있을까요?


염운옥

한국에서도 그런 흐름은 이미 시작되었다고 봅니다. 소수 정당들은 인종주의를 적극적으로 정치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려고 하고 있죠. 국민의힘과 같은 주류 정당은 사람들에게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암울한 이야기지만 이대로 가면 5년 후 있을 다음 대선에서는 그러한 세력들이 더 이상 무시 못 할 만큼 주목을 받게 될 것이라고 봅니다.


어쩌다 보니 불길한 이야기만 자꾸 하게 되네요.


모두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배현민 

인종주의 갈등은 한국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로 실현될 수 있을지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


염운옥

한국의 인종주의는 ‘인종 없는 인종주의’의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어요. 특징적인 점은, 한국에서는 인종과 민족이 구분 없이 항시 결합된 형태로 쓰인다는 점입니다. 아마 민족과 인종을 구분할 필요가 없었던 한국의 역사와 관련이 있을 거예요. 한국에서 일어나는 대표적인 민족 차별이 뭐가 있을까요?


김주영

중국인 차별이네요.


염운옥

그래요. 혐중, 이른바 중국에 대한 혐오 현상을 가장 대표적인 인종주의의 사례로 제시할 수 있겠어요. 이 문제가 사실 심각해요. 조선족이라는 용어도 굉장히 차별적인 용어인 게, 조선족은 누구입니까? ‘ethnic korean’, 우리 민족이에요. 사실 재일교포나 재미교포와 같은 건데 재중교포가 아니라 조선족이라고 부른다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죠.


김주영

한국 사람들이 중국인을 싫어하는 것은 중국의 독재 체제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는데요.


염운옥

중국의 정치는 문제가 많지만 인종주의에 있어서 그 문제는 본질이 아니에요. 중국인이라고 해서 다 권위적이고 독재에 찬성하는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잖아요. 한국도 군사정권 시대에 다 친정부적인 사람들만 있던 것이 아닌 것처럼. 


양승우

그러면 혐중은 우리가 중국 사람들을 잘 몰라서 그런 걸까요, 아니면 자주 마주쳐서 생기는 문제일까요?


염운옥

모두 해당이 돼요. 갈등이 생기는 이유는 접촉이 많아졌기 때문이에요. 다른 이민자들은 주로 농업, 어업, 축산업 같은 분야에 종사하니까 만날 일이 없는데 조선족 분들은 서비스업에 종사할 수 있으니까 접점이 생기고, 낯섦에서 혐오가 발생하기 쉬워지는 거죠. 하지만 동시에 대부분 중국 사람들과 인간 대 인간의 관계를 가지지는 않으니까요. 이 문제를 방치했다가는 이민자 전반에 대한 혐오로 이어질 수 있어요.


특별히 주의해야 할 것은, 주류의 입장에서는 현재 존재하는 차별을 먼저 인지하려는 노력 없이는 그것을 자연스럽게 알아채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계속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우리는 인종적 차별에 대해 더 예민해질 필요가 있다는 거예요. 인종적 차이가 차별로 이어지는 매커니즘은 언제나 작동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김현서

이제 마무리를 해야 할 시간인 것 같아요. 깊이 있는 인사이트를 제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염운옥

초대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제 책을 읽어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 마지막으로 드리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