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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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게 만드는 책’이라는 표현을 싫어한다. 들을 때마다 위화감이 든다. 애초에 눈물이란 울어야지 해서 흘리는 게 아니다. 감동하거나 슬플 때 무심코 흘러내린다. 울 생각이 전혀 없더라도 사람은 어느새 울고 만다. 그런데 ‘울게 만드는’은 뭐란 말인가. 책 한 권에 돈과 시간을 투자한 이상 ‘울든 웃든’ 무언가 대가가 없으면 수지가 맞지 않는다는 인색함마저 느껴진다. 처음부터 대가를 바라고 책을 읽다니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내가 싫어하는 ‘추억 만들기’라는 말에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추억이란 무언가를 한 후 자연히 남는 것이지 미리 만들고자 해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추억 만들기 여행이나 놀이는 본말이 전도됐다. 다시 말해 손쉬운 보상을 추구할 뿐이다.
인생은 그렇게 쉽게 대가를 얻지 못한다. 그것을 알려주는 게 책이다. 읽을 가치가 있는 책은 작품에 몰입하기까지 다소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고전은 가볍게 읽을 수 없는 책이 많다. 샅바를 잡고 정면으로 작품과 마주하려면 우선 다리와 허리를 단련해야 한다. 처음 50페이지까지는 어쨌든 힘껏 버티며 읽어나갈 체력이 필수다. 이런 이야기를 중고생에게 하면 “대체 무엇 때문에 그렇게 고생하며 책을 읽어야 하냐?”며 의아해한다. 그들은 처음부터 쉽게 이야기 세계로 꾀어내 다음 장 또 바로 그다음 장 책장을 넘기게 만드는 책을 원한다. 그건 그것대로 괜찮다. 하지만 가볍게 읽히는 책에서는 가벼운 대가만 얻는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는데 놀랍게도 그들은 그런 책을 읽고 “진심으로 감동했다”고 하는 게 아닌가. 어쩌면 효율적으로 감동받도록 진화했는지도 모르겠다. 현재 중고생에게 인기인 것은 ‘5분 후 이런 감동을 맛보게 됩니다’라고 읽기 전부터 당분을 보증해주는 책이다. 그중에는 ‘세계 문학 명작을 줄거리로 알려주는 책’까지 있다. 문학 요약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최근에는 문학 작품 자체가 만화로 변신 중이다.
오래전부터 중고등학교 도서관에서는 라이트노벨이 유행이다. 사서로서는 고전문학 작품을 의식적으로 구비해놓지만, 빌리는 학생이 있으면 ‘우와!’하며 놀란다. 『카라마조프 형제들』이 대출됐을 때는 빌려 간 학생이 연장하러 올적마다 어디까지 읽었는지 궁금해서 가름끈 위치를 몰래 확인했다. 부디 포기하지 않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책을 건넸다.(71~73쪽)
(중략)
중고등학생들이 좀 더 많이 고전을 읽으면 좋겠다. 그렇게 바라면서도 나는 학생들 요구에 응해야 하는 사서이기도 하다. 학생한테 “울게 만드는 책이 있나요?”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웃는 얼굴로 “있어요”라고 답하고 “어떤 식으로 울고 싶은데?”라며 상대방 요구에 맞춰 바로 네다섯 권쯤 울리는 책을 추천할 수 있어야 좋은 사서다.(77쪽)
─ 무카이 가즈미, 『다정한 나의 30년 친구, 독서회』, 한정림 옮김, 정은문고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