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의 눈으로 다시 읽는 익숙한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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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자연스럽다는 말
자연에는 답이 없다
2006년 노르웨이. 곤충학자이자 오슬로 대학교 자연사 박물관 전시 책임자이기도 한 게이르 쇨리Geir Søli는 동시대의 논쟁적인 이슈에 응하는 전시를 기획하라는 지침 앞에서 고심하고 있다. 전시 주제는 이미 정해졌고 재정 당국의 승인까지 받은 상태이지만, 이 전시가 공공 예산을 악용한다며 몇몇 교회 단체가 반대하고 나선 데다 전시 기획자들을 “지옥에나 가라.”라고 비난하는 일부 여론 때문이다.
우려와 관심 속에서 시작된 이 전시는, 동성同性 사이에서 성적 행동을 보이는 동물 50여 종의 사례를 선보이며 1년 동안 이어졌다. 많은 관람객이 전시를 찾았고, 이후 다른 여러 나라에서도 비슷한 전시가 이루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파리를 연구하는 쇨리 박사에게 수컷 초파리끼리의 교미 행동처럼 오래전부터 학계에서 잘 알려진 현상은 낯선 사실이 아니었을 터다. 동성 간의 다양한 성적 행동은 생물학자들의 체계적인 관찰과 실험, 또 여러 일화를 통해 1,000여 종이 넘는 동물에서 보고되어 왔으니 말이다.
하지만 학문계에서 한 발짝만 벗어나면 동성애는 사회적 논쟁의 중심에 있다. 저마다 지지냐, 반대냐의 입장을 표명하는 정치적 이슈다. 이때 동성애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빈번하게 드는 이유가 있는데 바로 동성애가 ‘자연스럽지 않다.’라는 것이다.
바로 그 ‘자연’으로 사람들을 초대하는 것이 쇨리 박사의 목적이었다. 다른 수컷 기린의 엉덩이에 올라타는 수컷 기린. 반가움의 표시로 서로의 성기를 비비며 뒹구는 암컷 보노보Panpaniscus들. 짝짓기할 때의 전형적인 자세로 상대 수컷에게 날개를 활짝 펴 보이는 수컷 백조. 버려진 알, 혹은 훔쳐온(!) 알을 가져다가 함께 품어 부화된 새끼를 키우는 수컷 펭귄 부부……. 과연 이 동물들은 쇨리 박사가 기획한 전시 제목 “Against Nature?”라는 말마따나, 자연에 반反하고 있던 것일까?
자연스러움의 어떤 경계
우리는 ‘자연’과 ‘좋음’을 연관 짓는 데 익숙하다. 자연스러운 풍경이 아름답다고 하고, 자연산 재료가 몸에 더 좋다고 생각하며, 타고난 몸을 성형하더라도 ‘자연스럽게’ 하고 싶어 하고, 자연은 좋은 것이니 보호해야 한다고 말한다. 여기에는 자연과 비非자연, 자연스러운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구별되는 어떤 경계에 관한 생각이 담겨 있다. 그 경계를 넘어 자연스러움을 벗어나는 것은 ‘좋지 않다.’라는 가치 판단까지.
이 경계는 보는 이에 따라, 또 사안에 따라 그 선명함이 달라진다. 해와 달이 뜨고 지고, 사과는 땅으로 떨어지며, 살아 있는 것은 언젠가 죽듯 자연에는 일정한 질서가 존재한다. 이를 조직하는 물리학, 화학, 생물학적인 원리로부터 인간 또한 벗어나 살아갈 수 없다. 예컨대 우리 몸이 대기 중에서 땅으로 떨어지는 것은 자연스럽다. 하지만 자연스러움의 의미는 고정되어 있지 않다. 자연 원리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개발된 기술이 더해진다면, 사람 몸이 땅으로 떨어지는 대신 하늘을 나는 것 또한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인간 행동의 준거를 자연에서 찾고자 할 때 자연스러움의 경계는 더욱 희미해진다. 즉 우리 행동을 이해하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자연에서 구할 때 말이다. 가령 태어난 생명이 언젠가 죽는 것은 엄연한 자연 현상이다. 하지만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이 곧 죽음을 좋아하고 추구해야 한다는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우리의 하루하루는 죽지 않기 위한 크고 작은 노력으로 채워져 있다. 길을 건널 때는 오고 가는 차를 살피고, 때가 되면 끼니를 챙기며 휴식을 취하는 등, 살아남기 위해, 나아가 서로에게 의미 있는 삶을 살기 위해 애쓰는 것 또한 자연스러운 게 아니냐고 누군가는 말할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병들지도 죽지도 않는 삶이 있다면 이 또한 자연스럽지 않다고 누군가는 반문할 것이다. 이처럼 누구나 동의하는 ‘자연스러움’의 경계를 긋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다. 자연스럽다는 말 속에는 좋음과 나쁨에 대한 서로 다른 가치 판단이 담겨 전달되기 때문이다.
“동물들도 하니까.”
2020년 1월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이스라엘 교육 장관에 취임한 랍비 라파엘 페레츠Rafael Peretz, 1956년~는 동성애자들의 성적 지향을 이성애로 전환하는 요법을 지지한다고 밝히면서, 본인의 자녀들이 동성애자가 아니고 ‘자연스럽게’ 자란 데에 신께 감사한다 말했다고 한다. 동성애를 자연의 이치에서 벗어나는 현상으로 보고 비판하거나 반대하는 이런 취지의 발언은 우리 주위에서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다.
여기에 대응하는 한 가지 방식이 바로 오슬로 대학교 자연사 박물관 전시처럼 동물들의 다양한 동성 행동을 반례로 드는 것이다. 즉 동성애를 사람이 아닌 다른 동물도 한다는 점에서 자연에도 존재하는 동성애를 “자연스럽지 않다.”라고 말할 근거는 없다고 주장하는 식이다.
동성인 개체 사이의 성적 행동은 실제로 지금까지 1,000여종이 넘는 무척추 및 척추동물에서 관찰되어 왔다. 여기서 ‘성적 행동’은 성적 유희에서 짝짓기 때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행동들예컨대 뽐내기, 함께 다니기 등은 물론이고, 이를 통해 친밀함을 나누고 때로는 함께 자식을 키우는 것까지 그 폭이 넓고 또 다양하다. 같은 집단에 이성異性 개체가 있어도, 집단에 따라서는 이성 개체와의 성적 행동보다도 빈번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많은 종에서 동성 간 성적 행동, 줄여서 동성 행동homosexual behavior은 일상 행동의 레퍼토리 중 하나라는 것이 학계의 일반적인 견해다.
이처럼 동성 행동이 동물계에 만연하다는 사실은, 동성애가 자연스러운 행동이고 따라서 정당하다고 주장할 근거를 제공하는 듯하다. 그러나 잠시, 이 주장을 앞서 소개한 랍비가 했을 법한 주장과 비교해 보자.
주장 1: “동성애는 자연스럽지 않아, 자연의 이치에 어긋난다고. 동성 행동은 용납할 수 없어.”
주장 2: “웬걸 랍비 선생, 동물들도 동성 행동을 한다는데? 자연을 신께서 창조하셨다면, 그 자연 속에 동성애도 포함된다는 말이야. 사람의 동성 행동도 정당하다고 봐야 해.”
얼핏 상반된 주장을 하는 이 둘은 어떤 닮았다. 동성 행동이 자연스러운지 아닌지를 근거로 동성애의 정당함을 따지고 있다는 점이 그렇다. “X는 자연스럽다, 고로 X는 정당하다/좋다.”라는 논리를 공유한 들은 서로 거울상을 이룰 뿐이다.
자연에 호소하는 오류
이 점을 더 명확히 하기 위해 이렇게 질문해 보도록 하자. 만약 동성 행동이 동물들에서 한 번도 관찰되지 않았다면, 동성애를 ‘반대’하는 이들을 반박할 근거가 그만큼 약해질까? 어떤 행동이 자연 상태에서 관찰된다는 사실로 그 행동의 정당성, 나아가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을까? 이를 논리학에서는 ‘자연주의의 오류naturalistic fallacy’ 또는 ‘자연에 호소하는 오류’라고 한다. 오류인 까닭은 무엇일까?
첫째, 무언가의 존재what is는 그것의 가치what ought to be와 별개의 문제다. 예컨대 공격성은 많은 동물에서 빈번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즉 공격성은 자연 현상으로서 존재한다. 하지만 이로부터 공격성이 존재할 만한 가치가 있는 현상인지 입증할 수는 없다. 공격성이 가져오는 부정적인 결과가 정당화되지도 않는다.
둘째, 우리는 자연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지 못한다. 자기가 옹호하는 것, 옳다고 생각하는 것, 가치 있다고 여기는 것에 부합하는 사례에만 선택적으로 주의를 기울이는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 때문이다. 그래서 자연에서 얻었다는 ‘답’이 그저 우리가 확인하고 싶었던 어떤 사실일 가능성이 크다. 예컨대 공격성이 인간, 특히 남성의 본성이라 여기는 일반적 시선에 갇히면 정작 공격 행동을 보이지 않는 동물이나 점박이하이에나Crocuta crocuta처럼 암컷이 더 공격적인 사례는 간과되기 쉽다. 점박이하이에나는 암컷이 수컷보다 몸집도 크다. 흥미롭게도, 똑같은 예들을 이용해 ‘공격성은 남성의 본성이다.’에 반하는 주장을 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본성에 대한 각자의 믿음에 입각해 자연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정작 자연은 공격성의 양상과 정도가 저마다 다른 수많은 종으로 이루어져 있음에도 말이다.
인간이 본래 악하다고 보는 성악설性惡說은 우리가 자연에 투사하는 대표적인 믿음이다. 한국에도 잘 알려진 소설 『파리대왕Lord of the Flies』은 무인도에 표류한 남자 아이들이 경쟁과 폭력으로 파국을 맞는 과정을 보여 준다. 1954년 출판된 이 소설이 전 세계 30여 개 언어로 번역되고 1983년 저자 윌리엄 골딩William Goldin, 1911~1993년이 노벨 문학상을 받는 사이, 1965년 남태평양 통가에서는 실제로 남자 아이 6명이 무인도에 표류한 일이 있었다. 『파리 대왕』과는 달리 이 아이들은 나름의 규칙을 만들어 공동체를 꾸리고, 불씨가 꺼지지 않게 잘 지키며 야생에서 각종 먹거리를 조달한 끝에 15개월 만에 구조될 때까지 건강하게 살아남았다. 다리가 부러진 동료는 뼈가 붙을 수 있도록 나뭇가지로 부목副木을 만들어 잘 돌봐 주었고, 언쟁 후엔 각자 섬 반대편에 가서 몇 시간 보낸 뒤 돌아와 사과하는 것을 규칙으로 삼았다고도 한다. 흥미롭게도 『파리 대왕』은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고 여겨지는 반면, 통가에서 전해 오는 진짜 실화는 그만큼 알려지지 않았다. 인간의 ‘자연 상태’가 악하다고 믿고 싶은 마음이 커서일까? 믿고 싶은 마음에 집중하는 대신, 정작 그 믿음이 어디서 왔으며, 자연 상태의 인간성을 따지는 것의 애초에 의미 있는 질문인 것일까?
결국 자연주의의 오류는 어떤 자연 현상이 좋고 나쁨의 성질을 얻는 과정에 ‘무엇이 좋은가?’에 대한 인간 자신의 가치 판단이 선행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그런데 마치 자연이 먼저 존재하고 그로부터 가치가 도출되는 양 생각하는 것이 오류라는 것이다.
따라서 자연에서 답을 구하기 이전에 자연에 투사되고 있는 나의 가치 체계가 무엇인지 먼저 물어야 할 과제가 주어진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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