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패러독스, 분리했지만 결국 태워지는 쓰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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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쓰레기는 누구의 책임인가?
“이 정도면 잘한 거지.”
아침, 부엌 한쪽에 투명 페트병이 쌓인다. 라벨은 떼고 뚜껑은 분리한다. 비닐은 털어 말리고 종이는 묶는다. 번거로워도 우리는 해낸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누가 보지 않아도. 그런 날엔 뿌듯하다. 그런데 문득 든 생각. ‘이 많은 쓰레기는 결국 어디로 가는 걸까?’
뉴스에 따르면, 우리가 분리해 배출한 포장재 10개 중 6~7개는 결국 소각된다고 한다. 선별장을 통과하지 못하거나 ‘재활용’ 표시가 있어도 시멘트 소성로와 소각시설로 향한다. 정부는 재활용률이 86%에 이른다고 하지만, 이는 실제로 재활용된 양이 아니라 선별장에 반입된 양을 기준으로 한 수치일 뿐이다. 실제로 다시 쓰인 양은 그보다 훨씬 적다. 숫자는 성과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의 현실을 가린다. ‘재활용 모범국’이라는 말 뒤에는, 정작 새로운 제품이 되지 못한 채 사라지는 자원의 흐름이 있다. 더 깊은 문제는 비용과 책임의 불균형에 있다. 시민은 종량제 봉투를 사고, 음식물 쓰레기 무게만큼 RFID음식물류 폐기물 종량기 기반으로 수수료를 내며, 관리비에 ‘재활용 비용’을 추가 부담한다. 그러나 제품을 만든 기업은 끝까지 책임지지 않는다. 포장재를 회수하고 처리하는 일은, 결국 시민의 돈으로 메워진다. 정부와 지자체가 말하는 ‘생산자 책임 원칙’은 제도 안에 존재하지만, 현실에서는 책임이 사라지고 비용만 남았다. 문제는 분리배출의 정확성이 아니라, 뒤를 책임지지 않는 구조이다.
우리가 분리배출을 아무리 꼼꼼히 해도, 그 이후의 흐름은 시장 논리와 비용 계산에 맡겨진다. 쓰레기는 분리했지만, 정책과 시장, 책임과 감시는 연결되지 않았다. 흐름의 끝은 재활용 공장이 아니라 시멘트 소성로와 소각시설이었다. 분리수거를 잘하는 것만으로는 자원이 제대로 순환되도록 할 수 없다.
이 책은 정답을 단정하지는 않는다. 다만 구조의 단절을 하나하나 짚어본다. 법과 제도가 무엇을 강조하면서 무엇을 외면했는지, 기업이 어떤 방식으로 책임을 피했는지, 그리고 우리의 실천이 왜 허망하게 끝나는지를 들여다본다.
다시 쓰이게 만들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바꿔야 하는가? 이 책은 개인의 도덕적 실천을 넘어, 시스템을 바꾸는 질문을 바탕에 두고 있다. 쓰레기통에 버려진 우리의 선의가 진짜 변화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찾아가는 여정이기도 하다.
열심히 분리해 배출했다. 비용도 냈다.
그런데 지금의 상황은 누구의 책임인가?
1장
분리배출했는데,
왜 모두 태우나요?
분리수거한 쓰레기의 진짜 여정과 실적 사회의 허상
재활용과 분리수거:
우리 일상은 어떻게 바뀌었나?
“이거 재활용되죠?” 누군가 폐플라스틱 더미를 가리키며 묻는다. 재활용이라는 말은 이제 우리 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다. 장을 볼 때나 배달 음식을 주문할 때, 재활용이란 말을 피해 갈 수 없다. 포장지에 적힌 ‘재생 플라스틱 사용’, ‘재활용이 쉬운 포장재’, ‘친환경 소재 적용’ 같은 글에도 익숙해졌다.
재활용이라는 말이 익숙해진 것처럼, 분리배출도 어느새 일상이 되었다. 아침이 오면 분리배출이 시작된다. 부엌에는 플라스틱 컵과 투명 페트병, 우유를 헹궈 말린 팩이 한쪽에 놓여 있다. 가족들은 분주히 하루의 시작을 준비하면서도 분리수거를 봉투를 무심히 챙긴다. 아이는 학교에서 받은 ‘분리배출표’를 냉장고에 붙이고, 라벨을 떼야 한다며 부모에게 잔소리한다. 아파트 관리실에서는 방송하고 안내문을 배포해, 주기적으로 분리수거 요일을 공지한다. 그리고 분리수거 실적을 안내하고, 실적이 좋은 단지는 ‘우수 단지’로 선정한다. 관리비 인센티브 소식을 입주민에게 주기적으로 전달한다. 관리실은 실적이 떨어지면 경고장이 붙이고, 규정을 어긴 집에는 안내문을 따로 전달된다. 이처럼 모두가 정해진 이러한 규칙을 익숙하게 따른다.
정부는 ‘친환경 인증 확대’, ‘ESG 성과’, ‘순환경제 정책’을 적극적으로 발표한다. 기업들도 ‘재생 플라스틱 사용 확대’, ‘플라스틱 감축’ 등의 성과를 내세운다. ‘A사, 연간 수천 톤의 재생 플라스틱 사용’, ‘플라스틱 프리 도시 조성’, ‘지자체, 분리배출 우수 아파트 인센티브 확대’ 등 매주 새로운 실적과 캠페인이 소개된다. 이처럼 분리수거는 오늘날 누구에게나 익숙한 상식이자 사회적 의무로 여겨지고 있다.
재활용과 분리수거는 이제 자연스러운 일상의 언어가 되었지만, 불과 30여 년 전만 해도 이런 모습은 낯선 풍경이었다. 1960년대만 해도 쓰레기는 마을 뒷산이나 개울가에 몰래 버리는 일이 흔했다. 도시가 팽창하고 인구가 늘면서 골목마다, 하천마다, 도심 외곽마다 쓰레기 더미가 쌓였다. 그 시절 쓰레기 처리는 행정의 뒷전으로 밀려나 있었고, 주민들은 그저 불편한 일로 여겼다.
그러나 1970~80년대에 접어들며 모든 게 달라졌다. 도시화가 가속화되고 대형 아파트 단지가 생겨나면서, 소비재가 대중화되고 생활 쓰레기가 급변했다. 도시 곳곳이 생활 쓰레기로 넘쳐나면서, ‘쓰레기 대란’이라는 말이 언론과 정책에 반복해 등장하기 시작했다. 매립지는 한계에 다다르고, 불법 투기와 민원이 끊이지 않게 되었다.
쓰레기 정책의 분기점은 1988년 서울올림픽이다. 깨끗한 도시 만들기라는 국가적 목표가 세워지며, 쓰레기 문제는 사회 전체의 이슈로 부상했다. 정부는 대대적인 환경정비와 함께 쓰레기 처리의 원칙을 바꾸기 시작했다. 1993년 ‘폐기물처분부담금제’가 도입되어 쓰레기를 많이 버릴수록 더 많은 돈을 내야 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1995년 전국적으로 시행된 ‘쓰레기 종량제’는 쓰레기를 버릴 때마다 정해진 봉투에 담고, 그 비용을 부담하게 했다. 이 변화로 사람들은 쉽게 쓰레기를 버릴 수 없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쓰레기를 줄여야 하고, 분리수거를 해야 한다’라는 인식이 사회에 뿌리내리기 시작했다. 재활용 정책은 곧 ‘분리수거’ 체계로 진화했다. 플라스틱, 캔, 유리, 종이 등은 따로 모아야 했고, 각 지자체와 아파트 단지는 분리배출 규칙을 점점 더 세밀하게 만들었다. 관리실과 주민센터는 안내문을 붙이거나 방송하여 분리수거 요일과 품목을 알리기 시작했고, 학교와 회사도 재활용과 자원절약 교육을 앞다투어 시행했다. 기업과 생산자에게도 포장재 처리의 책임을 묻는 제도가 확산된다. EPRExtended Producer Responsibility,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 자원순환기본법 등 정책과 법이 생활 구석구석에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2000년대 들어 플라스틱과 일회용품 사용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배달 음식과 커피를 즐기는 문화에 택배 시스템 확산까지 더해지면서 쓰레기는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났다. 정부와 지자체는 기존의 감량 정책만으로는 한계가 있음을 인식하고, 자원 순환과 순환경제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도입했다. 이러한 역사적 흐름에서, 분리수거는 더 이상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모두가 참여하는 시스템이자 사회적 약속이 되었다.
한국 쓰레기 정책의 역사는 한 세대 동안 ‘처리 중심’에서 ‘감량’, 다시 ‘순환’과 ‘실적 정책’으로 이어졌다. 이 변화의 시간 속에 정책은 개발과 환경 사이에서 조정됐고, 사회는 점점 더 세밀한 구조를 만들어 왔다. 실천의 역사가 쌓인 만큼,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피로, ‘우리 사회가 바뀌고 있다’라는 신뢰, ‘정말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가?’라는 질문이 겹쳐 있는 상황이다.
그러므로 분리수거의 역사는 단순한 배출과 처리를 넘어, 정책과 구조, 시민의 실천, 사회적 신뢰와 피로의 흐름까지 함께 아우르는 사회적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 우리가 반복하는 분리수거의 손끝에는 지난 반세기의 정책 변화와 사회적 합의, 실적 중심 행정과 현실의 괴리가 모두 녹아 있는 셈이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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