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에서 계몽으로, 계몽에서 민주로
![]()
중세적 질서 안에서 한글은 한문이 닿을 수 없는 영역을 보충하는 역할을 하였다. 한글에는 조연의 역할만이 허용되었던 것. 그러나 한글은 상하 계층이 공유할 수 있는 문자로 사용자가 가장 많았기에, 조선 사회의 체제 유지를 위한 도구로 적극 활용되었다. 한문을 교육하는 데도, 과학 기술의 성과를 보급하고 교육하는 데도 한글은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문자였다.
이처럼 한글이 중세 봉건 사회의 유지를 위한 도구로 활용된 시간은 한글이 근대 사회를 여는 주인공으로 등극하기 위한 준비이기도 했다. 중세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도구로 널리 보급된 한글은, 근대화의 압력이 거세지는 시기, 근대 사회를 여는 강력한 도구로 새롭게 등장했다. 백성에게 삼강오륜을 교육하는 과정에서 백성의 문자로 깊이 뿌리 내린 한글이 삼강오륜으로 상징되는 중세적 질서를 해체하고 근대적 질서를 구축하기 위한 공론장의 주류 문자가 되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전근대 시기 한글 보급의 연대기는 근대 이후 한글 발전의 연대기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1443년
한글을 창제하다
이 달에 임금께서 친히 언문諺文 28자를 지었는데, 그 글자가 옛 전자篆字를 모방하고, 초성·중성·종성으로 나누어 합한 뒤에야 글자를 이루었다. 무릇 문자에 관한 것과 이어俚語에 관한 것을 모두 쓸 수 있고, 글자는 비록 간단하고 긴요하지만 전환하는 것이 무궁하니, 이것을 훈민정음訓民正音이라고 하였다. ─ 『세종실록』, 1443.12.30.
1443년 12월 30일자 『세종실록』 기사의 한 대목이다. 세종이 친히 한글을 창제했다는 사실과 함께 한글의 기원과 사용 원리와 특성을 간결하게 서술하고 있다. ‘문자’에 관한 것과 ‘이어’항간에 떠도는 속된 말에 관한 것을 모두 쓸 수 있는, 즉 한자의 음과 우리말을 모두 기록할 수 있는 글자, 간단한 28자를 전환하여 모든 소리를 기록할 수 있는 글자, 한글의 특성에 대한 서술은 곧 한글의 힘에 대한 첫 평가였다. 한글의 힘을 폭넓게 쓰일 수 있는 글자라는 데서, 그리고 간단하면서도 기능이 우수한 글자라는 데서 찾았던 것이다.
중화 문명권의 보편 문자인 한자의 음을 기록하면서도 우리말을 기록할 수 있는 글자로서 폭넓게 쓰일 수 있으니, 독자적으로 국가를 운영하며 소중화小中華를 꿈꾸는 조선 사회에서 한글이 중요한 역할을 하리라 기대하는 것은 자연스러웠다. 국왕 이 스스로 글자를 만들어 백성에게 인간의 도리를 가르치고자 했으니, 성리학적 이상 사회를 건설하고자 했던 조선 사회에서 한글이 그러한 목적을 이루는 데 기여하리라 기대하는 것 또한 자연스러웠다. 한글 창제의 목적을 밝힌 세종의 말에서 그러한 기대를 읽는 건 어렵지 않다.
나랏말이 중국과 달라 문자한자와는 서로 통하지 아니하므로, 우매한 백성들이 말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마침내 제 뜻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내 이를 딱하게 여겨 새로 28자를 만들었으니, 사람들로 하여금 쉬 익혀 날마다 쓰는 데 편하게 할 뿐이다. ─ 어제 서문, 『훈민정음』, 1446.
세종은 창제자로서 한글 창제의 목적을 밝히며, 쉽고 간편한 한글의 장점을 절실히 표현하고 있다. 그 장점이 한글이 갖는 힘의 핵심이었음은 이후의 역사에서 확인할 수 있다. 집현전 학사 정인지鄭麟趾, 1396~1478는 신문자 해설서, 즉 해례본解例本 『훈민정음』에서 한글의 장점이자 힘을 실감 나게 표현한다.
28자로 전환이 무궁하며, 간단하지만 요긴하고, 정밀하지만 소통이 쉽다. 그러므로 똑똑한 자는 반나절이면 깨우칠 수 있고, 우둔한 자라도 열흘이면 배울 수 있다. ─ 정인지 서문, 『훈민정음』, 1446.
똑똑한 사람은 반나절이면 깨우칠 수 있고 우둔한 사람도 열흘이면 배울 수 있는 글자. 정인지의 이러한 평가에 세종은 모든 백성이 한글로 읽고 쓰며 인간의 도리를 깨우치는 세상을 흐뭇한 마음으로 상상하지 않았을까? 세종은 한글을 창제한 후 “내가 만일 언문으로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를 번역하여 민간에 반포하면 어리석은 남녀가 모두 쉽게 깨달아서 충신·효자·열녀가 반드시 무리로 나올 것이다”라고 하면서 한글 창제의 의미를 강조하였다. 세종은 교육을 통해 성리학적 이상 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고 믿었고, 그 교육에 한글이 큰 힘을 발휘하리라 믿었던 것이다.
그런데 한글은 세종이 기대했던 성리학적 이상 사회를 건설하는 힘으로만 작용하지는 않았다. 세종은 음양오행이라는 성리학적 원리에 따라 한글을 만들었지만, 한글이란 문자에 담겨진 전해진 것은 성리학이 아니라 과학적 원리였다. 세종은 성리학적 원리에 따라 만들어진 쉽고 간편한 한글이 삼강오륜의 이치를 빠르게 전파할 수 있는 도구가 되리라 기대했겠지만, 한글은 삼강오륜의 이치에 반하는 지식과 사상조차 빠르게 전파할 수 있는 쉽고 간편한 글자였다. 이처럼 어떤 지식과 사상이라도 빠르게 전파할 수 있는 한글이었기에, 한글이 담는 지식과 사상의 범위는 갈수록 넓어질 수밖에 없었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한글의 진정한 힘을 목도할 수 있었다.
한글의 힘에 대한 기대가 시대적 상황에 따라 달라졌기 때문일까? 한글은 그 기대의 방향에 따라 다른 이름으로 불렸다.
세종은 자신이 창제한 문자에 ‘훈민정음’訓民正音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러나 세종을 포함하여 당시 사람들은 진서眞書 혹은 문자文字로 불렸던 한문과 한자에 대비하여, 훈민정음을 ‘언문’諺文이라고도 불렀다. ‘언문’이란 이름은 한문과 한자가 주류인 세상에서 한글의 쓰임은 비주류 영역에 국한됨을 말해 준다.
근대 시기에 오면서 언문은 ‘국문’國文이 되었다. 민족과 국가의 의미가 새로워지면서 우리의 말과 문자도 새롭게 인식되었고, ‘속되다’는 함의할 수밖에 없었던 ‘언문’을 더 이상 용납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러나 ‘언문’을 버리고 ‘국문’이라는 말을 새롭게 쓴 시절은 아이러니하게도 국가의 존립이 위태로운 시절이었다. 결국 국가는 일본에 병합되었고, 국문과 국어는 일본과 일본어를 쫓아내는 이름이 되었다. 우리말과 글이 주류 영역을 벗어나면서 조선인들은 ‘국문’을 대신할 이름‘한글’을 찾았고, 이에 ‘한글’이 탄생했다.
‘한글’이라는 말은 대한제국의 글 또는 문자라는 뜻으로 사용되던 ‘한문韓文’을 풀어쓴 것이었다. ‘국문’에 대비된 비주류 문자의 이름이었지만, 나라를 빼앗긴 사람들에게 ‘한글’은 독립의 의지를 일깨우는 이름이기도 했고 민족의 얼울 상징하는 이름이기도 했다. ‘대한제국의 문자’라는 의미는 새롭게 다가올 수밖에 없었고, 상처 입은 민족적 자존심을 치유하기 위해 ‘한글’에는 ‘큰’, ‘위대한’ 또는 ‘유일한’이라는 의미가 덧붙었다.
1449년
한글을 배운 백성이 공론의 장으로 들어오다
1443년 한글이 창제되고 1446년 한글의 제자制字 원리를 밝힌 해례본 『훈민정음』이 간행되었다. 한글 해설서까지 완성되었으니, 애초 뜻한 대로 백성을 상대로 한 한글 교육은 차근차근 이루어졌을 것이고, 백성에게 삼강오륜을 가르칠 한글 교화서의 발간도 준비되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런데 한글은 백성을 가르칠 글자이면서 백성이 자신의 뜻을 펴는 글자이기도 했다. 한글을 배운 백성은 자신의 뜻을 펴는 데 한글을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한글을 창제한 후 6년이 지난 시점에, 한글은 공론의 장에 등장했다. 정승 하연河演을 비난하는 한글 벽보가 붙은 것이다.
하연은 까다롭게 살피고 또 노쇠하여 행사에 착오가 많았으므로, 어떤 사람이 언문으로 벽에다 쓰기를, ‘하 정승아, 또 공사公事를 망령되게 하지 말라'고 하였다. ─ 『세종실록』, 1449.10.5.
어떤 일을 널리 알리기 위하여 사람들이 다니는 길거리나 많이 모이는 곳에 방榜을 써 붙이는 일은 관청의 일이었고, 그 방의 내용을 알기 위해서는 한문을 아는 사람의 해설이 필요한 시절, 한글 벽보는 누구나 자신의 생각을 공론화할 수 있음을 보여 준 사건이었다.
공론화를 위해 한글 벽보를 붙인 것을 보면, 그 벽보를 쓴 사람은 한글 벽보가 가진 파급력을 계산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양에서 한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 상당수였음을 짐작할 수 있는데, 그 시기가 한글 창제 후 6년 만이었다는 건 한글의 보급이 그만큼 빠르게 이루어졌음을 말해 준다.
이런 상황에 한글 벽보뿐만 아니라 한글 투서도 횡행했던 것으로 보인다. 한글이 창제된 지 40여 년이 흐른 후인 1485년 『성종실록』의 기록은 한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많아졌고, 그들이 자신의 생각을 적극적으로 써서 알리고자 했음을 보여 준다.
(본문 중 일부)
★ 저작권법에 의해 한국 내에서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