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남성은 왜 뒤처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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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말
걱정하는 아빠에서 걱정하는 전문가로
나는 25년에 걸쳐 소년과 남자들을 걱정해 왔다. 이젠 모두 성인이 된 세 아들을 키우다 보면 늘 있는 일이다. 조지George, 브라이스Bryce, 캐머런Cameron, 너희를 향한 내 사랑은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다. 그래서 심지어 지금도 가끔 너희가 걱정된단다. 그런데 나의 이런 불안은 업무에까지 넘쳐흘러 들어갔다. 나는 브루킹스 연구소Brookings Institute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는데, 주로 기회의 평등이 아니면 기회의 부재를 다룬다. 지금까지는 사회계층과 인종의 구분에 가장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하지만 이젠 성별 격차에 대한 걱정이 점점 커지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아마도 여러분이 예상하는 식은 아닐 것이다. 나에게는 학교, 직장, 가정에서 어려움을 겪는 소년과 남자가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는 사실이 또렷하게 다가온다. 예전에는 남자아이 셋에 대해서만 노심초사했지만, 지금은 수백만 명을 걱정하고 있다.
그런데도 나는 이 책을 쓰는 것이 탐탁지 않았다. 쓰지 말라고 충고한 사람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른다. 작금의 정치적 분위기에 소년과 남자들의 문제를 들추어내는 것은 위험한 일로 여겨진다. 신문 칼럼니스트인 한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난 할 수만 있다면 이런 주제 근처에도 안 갈 거야. 고통만 있을 뿐이거든.” 소녀와 여자들이 아직도 맞닥뜨리는 난제들로부터 관심을 흩뜨리는 짓이라는 주장도 더러 있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해도 틀려먹은 선택이다. 나는 성평등을 옹호하는 사람으로, 성별 임금격차를 어떻게 줄일지에 관해 많이 생각한다. (남자들의 100달러를 벌 때 여자들은 82달러를 번다.) 앞으로 보게 되겠지만, 나는 양육 부담을 공평하게 나누고 어머니와 아버지 모두를 관대한 유급휴가로 도와주는 것이 해결책에 포함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런 것과 꼭 마찬가지로 대학 학위 취득률 격차도 나의 걱정거리다. 그건 교육 분야에서 갈수록 커지는 성별 격차의 한 증상에 지나지 않는다. (여자들이 학사 학위 100개를 취득할 때 남자들은 겨우 74개를 따낸다.) 여기서 나는 간단하면서도 급진적인 개혁을 제안한다. 남자아이들을 여자아이들보다 1년 늦게 입학시키면 될 것 아닌가?
다시 말해 일자리는 여자에게 더 공평하도록 재설계하고 학교는 소년에게 더 공평하도록 개혁하자는 것이다.
우리는 두 가지 생각을 동시에 머릿속에 담을 수 있다. 여성의 권리에 열정을 품으면서 ‘동시에’ 취약한 소년과 남자들에게 공감할 수도 있지 않은가?
물론 내가 소년과 남자들에 관해 처음으로 글을 쓴 사람은 아니다. 『남자의 종말The End of Men』의 해나 로진Hanna Rosin, 『밀려난 남자Man Out』의 앤드루 얘로Andrew Yarrow, 『남자답게 행동하기Manning Up』의 케이 하이모위츠Kay Hymowitz, 『길을 잃은 남자Man, Interrupted』의 필립 짐바르도Philip Zimbardo와 니키타 쿨롱베Nikita Coulombe, 『소년 위기The Boy Crisis』의 워런 패럴Warren Farrell과 존 그레이John Gray 등이 남긴 발자국을 따라갈 뿐이다. 그렇다면 이 책을 왜 지금 펴내는 걸까? 단순한 동기가 딱 하나만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마는, 여섯 가지 큼직한 이유가 있다.
첫 번째, 내 생각보다 상황이 더 나빠서다. 교실과 캠퍼스에서 고군분투하는 소년들, 노동시장에서 설 자리를 잃어 가는 남자들, 자녀들과 연락이 끊기는 아버지들에 관한 헤드라인을 나는 더러 알고 있었다. 그중 얼마쯤은 과장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볼수록, 사태는 더 암울했다. 오늘날 대학 학위 취득률의 성별 격차는 1970년대 초반보다 더 크다. 물론 반대 방향으로다. 남성의 임금은 대부분 1979년보다 줄어든 반면, 여성의 임금은 전반적으로 올랐다. 아빠 다섯 명 중 한 명은 자기 아이들과 살고 있지 않다. 자살이든 약물 복용이든 ‘절망사’ 네 건 가운데 셋 정도는 남성 몫이다.
두 번째, 특히 계급과 인종 같은 또 다른 불평등의 끝에 내몰린 소년과 남자들이 가장 아등바등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가장 걱정하는 소년과 남자들은 경제적·사회적 사다리의 저 아래에 있는 이들이다. 대다수 남자는 엘리트 축에 끼지 못하며, 그런 자리를 차지할 운명의 소년은 더더욱 적다. 1979년에 전형적인 미국 고졸 남성의 주간 수입은 현재 가치로 환산해 1017달러였다. 그런데 지금 그 수입은 14퍼센트 낮은 881달러에 지나지 않는다. 잡지 《이코노미스트》의 어떤 기사는 이런 식으로 표현했다. “최상위 계층을 온통 남자들이 장악하고 있다는 사실이 저 밑바닥에 있는 남자들에게 무슨 위안이 되겠는가?” 정상에 있는 남자들은 여전히 훨훨 날지만, 보통 남자들은 그렇지 않다. 흑인 남자들이라면 더구나 그렇다. 내 동료 카미유 뷔제트Camille Busette의 말을 들어 보자. “남성이면서 가난하고 흑인이라는 것은…… 날이면 날마다 사회의 모든 기구에 깊게 뿌리내린 인종차별에 직면하는 것이다. 다른 그 어떤 집단도 그처럼 끈덕지게 그처럼 오랫동안 남루한 삶을 살지는 않았다.” 흑인 남성들은 제도적 인종차별은 물론이거니와, 노동시장이나 형사 사법제도 내 차별을 포함한 ‘성 기반’의 인종차별과도 맞닥뜨려 있다.
세 번째, 소년과 남자들 문제의 본질은 개인에 관한 것이 아니라 ‘구조적’이라는 사실이, 그런데도 그런 관점에서 다루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는 사실이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남성들과 ‘관련된’ 문제는 어김없이 남성들이 ‘가진’ 문제로 틀이 짜인다. 소년이든 남자든 한 번에 한 명씩 고쳐져야 한다는 식이다. 이런 개인주의적 접근은 잘못되었다. 소년들이 중고등학교와 대학에서 뒤처지는 것은 교육 체제가 그들에게 불리하도록 구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남자들이 노동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는 것은 전통적인 남성 일자리와 멀어지는 경제 변화 때문이다. 그리고 아버지들이 일자리를 잃는 것은 가족을 살리던 문화적 역할이 공동화되었기 때문이다. 남성들이 느끼는 불안은 대규모 심리적 붕괴의 결과가 아니라 깊은 구조적 난제의 결과다.
페미니스트 작가 수전 팔루디Susan Faludi는 1999년에 낸 저서 『스티프드Stiffed』에 이렇게 적었다. “공적 영역에서 쓸모 있는 역할, 품위 있고 안정한 생계를 꾸리는 방법, 가정에서 받는 인정, 문화적으로 받는 존중 등 남성들이 잃어버린 것을 생각할수록 20세기 후반의 남성들은 20세기 중반의 여성들과 비슷한 지위로 떨어진 것처럼 보인다.”
네 번째, 정부가 벌이는 사업들을 위해 여러 사회정책이 소년과 남자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깜짝 놀랐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눈길을 끈 것은 미시간주 캘러머주 Kalamazoo에 있는 대학 등록금 무료 프로그램이었다. 이 프로그램의 평가단에 따르면 “대학 졸업이라는 면에서 여성들은 (졸업자 수가 50퍼센트 가까이 증가해) 매우 큰 진전을 보였지만, 남성들은 아무런 혜택도 못 누리는 것 같다. 참으로 놀라운 결과가 아닌가! 대학 교육을 완전히 무료로 만들었지만, 남성들에게는 영향을 전혀 미치지 못했다니! 텍사스주 포트워스Fort Worth의 학생 멘토링mentoring 프로그램, 노스캐롤라이나주 샬럿Charlotte의 학교 선택 프로그램, 뉴욕시의 저소득층에 대한 보조 등 소녀와 여자들에게 혜택을 주는 프로그램은 수십 가지여도, 소년과 남자들을 위한 것은 없다. 소년과 남자들을 위한 이러한 정책 개입의 두드러진 실패는 소녀나 여자들에게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평균적’ 결과에 가려지기 일쑤다. 따로 떼 놓고 보면 이런 성별 격차는 특정 계획의 유별난 특이점으로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건 반복되는 패턴이다. 따라서 많은 소년과 남자는 어려움을 겪을 뿐만 아니라 이런저런 정책의 도움을 받기도 어렵다.
다섯 번째, 섹스와 젠더의 문제에 관한 정치적 교착 상태 때문이다. 양측은 진정한 변화를 가로막는 이념의 입장으로 파고들었다. 진보파는 중요한 성 불평등이 양방향으로 달릴 수 있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남성 문제를 재빨리 ‘유해한 남성성toxic masculinity’의 증상으로 치부한다. 보수파는 소년과 남자들의 어려움에 민감해 보이기도, 시간을 되돌려 전통적인 남녀 역할을 회복하기 위한 명분으로만 사용한다. 좌파가 남성들에게 “좀 더 여동생처럼 되시오.”라고 말하면, 우파는 “좀 더 아버지처럼 되시오.”라고 말한다. 어느 쪽의 주문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필요한 것은 양성평등과 양립할 수 있는 남성성에 대한 긍정적 비전이다. 문화 전쟁의 양심적 병역거부자로서, 이 책이 소년과 남자들의 상황에 대해 폭넓은 지지를 끌어낼 수 있는 평가를 제공하기를 바란다.
여섯 번째, 나는 정책을 연구하는 전문가로서, 이 문제들을 그저 애통해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해결할 수 있는 몇 가지 긍정적 아이디어를 갖추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쩔 줄 몰라 두 손만 비비는 일은 이제 그만하자. 나는 교육, 일, 가정의 세 영역에서 고군분투 중인 소년과 남자들에게 도움이 될 몇 가지 실질적이고 증거에 기반을 둔 해결책을 제시한다. (남성의 95퍼센트를 차지하는 시스젠더cis 이성애자들이 직면한 도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미리 밝혀 두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다.)
제1부에서는 남성들이 느끼는 불안에 대한 증거를 제시하면서 학교와 대학제1장, 노동시장제2장, 가정생활제3장에서 소년과 남자들이 얼마나 어려움을 겪는지 보여 준다. 제2부는 성차별로 고통받는 흑인 소년과 흑인 남자들제4장이, 경제 사다리의 맨 아래에 있는 소년과 남자들제5장이 맞닥뜨린 이중의 불이익을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또한 나는 소년과 남자들에게 잘 작동하지 않는 정책 개입이 얼마나 많은지 그 증거도 제시한다제6장. 제3부에서는 본성과 양육이 ‘모두’ 중요함을 주장하며 성별 차이 문제를 건드린다제7장.
제4부에서 나는 우리 정치의 교착 상태를 설명하고, 정치인들이 이 난제에 대처하기는커녕 어떻게 문제를 악화시키는지 드러낸다. 진보 좌파는 소년과 남자들에 대한 정당한 우려를 일축하고 남성성을 질병으로 취급하고 있다제8장. 인기에 영합하는 우파는 남성의 혼란을 무기로 삼으면서 틀려먹은 약속만 내놓는다제9장. 특정 정당의 지지자들은 여성 또는 남성들과 싸우는 것에만 골몰한다. 마지막 제5부에서 나는 몇 가지 해결책을 제시한다. 구체적으로 제안하는 것은 가령 남성 친화적 교육 시스템제10장이라든지, 덩치를 키우고 있는 분야인 건강health, 교육education, 행정administration, 문해력literacy 같은 이른바 HEAL 분야로 남자들이 진출하도록 돕는 방법제11장이라든지, 독립된 사회 체제로서의 부성 강화제12장 등이다.
“남성 작가는 남성들의 유별난 상황에 관해 책을 쓸 엄두를 절대 못 낼 것이다.”라고 시몬 드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는 적었다. 하지만 그때는 1949년이었다. 이제 우리는 남성들의 그 유별난 상황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우리는 남성들에게 남성이기를 멈추라고 요구하지 않으면서도 최근 몇십 년간 일어난 극적 변화에 그들이 적응하도록 도와야 한다. 우리는 포스트페미니스트 세계를 위해 친사회적 남성성이 필요하다. 그것도 아주 다급하게.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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