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전 세계의 집값은 유독 21세기에 더 폭등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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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이후로 부동산은
그 어떤 투자보다 수익률이 좋았다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약속
지금 주목할 만한 변화가 선진화된 자본주의 경제에서 일어나고 있다. 주택을 보유하는 것과 주거 문제가 상당수 사람들에게 점점 더 돈이 많이 드는, 즉 감당할 수 없는unaffordable 수준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2000년대 초반 이후 거의 모든 선진국에서 소득 대비 주택 가격의 비율은 장기적인 평균치보다 현저히 높아지고 있다〈도표 1-1〉 참조. 2007-2008년에 글로벌 금융 위기를 겪으면서 그 비율이 다소 낮아지긴 했지만 2013년 이후 급격히 다시 상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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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서구의 앵글로-색슨계 국가들은 뿌리 깊이 박힌 주택 보유home ownership 문화 탓에 더 심각한 영향을 받았다. 런던, 맨체스터, 시드니, 멜버른, 오클랜드, 밴쿠버, 토론토, 로스앤젤레스, 샌프란시스코 등과 같은 대도시들에서 중위 주택 가격median house prices은 중위 소득median incomes보다 무려 7배 이상까지 치솟았다. 보통은 3배 정도까지가 감당할 수 있는affordable 수준으로 여겨진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심각한 타격을 입은 것은 젊은 성인층인 밀레니얼 세대였다. 예를 들면, 영국의 경우 1996년에는 25세에서 35세 사이의 중간 소득층middle incomes 중 3분의 2가 자기 집을 소유했다. 하지만 2016년에는 그 비율이 4분의 1로 급감했다. 미국에서는 2004년에 같은 연령대의 거의 45퍼센트가 주택을 소유했지만 그 수치는 2016년에 들어서면서 35퍼센트로 떨어졌다. 오스트레일리아의 경우도 40세 이하의 주택 보유율은 2001년에는 36퍼센트였지만 2015년에는 25퍼센트로 감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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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일하면 우리도 내 집을 가질 수 있다”라는 자유주의 자본주의 경제의 기본적인 약속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도표 1-2〉에 나타난 것처럼 21세기로 접어들면서 모든 주요 영어권 국가들에서 주택 보유율은 크게 하락했다.
만약 주택 임대료가 보다 안정적이라면 주택 가격 상승은 그리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가계 소득에서 주택 임대료가 차지하는 비중은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영국의 경우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세입자들은 소득의 약 10퍼센트를 주거비로 지출했지만 2016년에는 그 수치가 36퍼센트까지 치솟았다. 직장을 쉽게 구할 수 있는 미국 대도시들에서도 최근 수십 년 동안 임대료가 크게 상승했다. 뉴욕과 샌프란시스코의 경우 주택 임대료는 2000년에는 중위 소득의 약 25퍼센트 정도였는데 2016년에는 각각 42퍼센트, 46퍼센트까지 상승했다. 또한 미국에서 가장 큰 아홉 개 대도시권에 거주하는 세입자 가구의 51퍼센트는 소득의 30퍼센트 ‘이상’을 주거비에 지출하고 있다. 여기서 30퍼센트는 소득 대비 주거 비용의 감당 가능한 최대 비율이다. 이 같은 환경에서는 내 집 마련을 위해 저축을 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부의 축적이
‘부동산의 양도소득’으로 채워지는 세상
이러한 주택 구매력 위기housing affordability crisis, ‘주거비 부담 위기’라고도 한다가 초래하는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결과는 매우 심각하다. 도시는 간호사, 교사, 경찰 같은 핵심 인력들은 물론 젊은 사회 초년생들에게도 점점 더 감당할 수 없는 곳이 되어가고 있다. 또한 도심 지역에서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이 만연해 저소득층 근로자들과 수십 년간 그 지역에 거주해온 사람들이 자신들의 터전을 떠나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데 이는 지역 사회 기반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
주거 비용의 상승은 사회에 새로운 공간적 및 인구통계학적 분열 또한 조성하고 있다. 영어권 국가들에서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운 좋게 내 집을 장만했던 사람들은 그들의 순자산부채를 제외한 총자산이 실질 임금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증가하는 것을 경험했다. 또한 2000년대 초에 영국에서는 주택 가격 상승률이 워낙 높아서 노동 연령대 성인의 17퍼센트가 자신의 직업을 통해 수년간 벌어들인 소득보다 주택 가격 상승으로 얻은 수익이 훨씬 더 컸다. 반면 이와는 대조적으로 1980년대와 1990년대에 태어난 사람들은 자신들의 자산이 정체되는 상황을 경험했다. 오히려 그들은 홉슨의 선택Hobson’s choice에 직면해 있다. 종종 안전하지도 않고 시설도 형편없는 집을 평생 임대하거나, 연간 소득보다 몇 배나 많은 엄청난 주택담보대출mortgage을 받아 평생 갚아나가야 할 빚더미에 오르거나. 2016년에 실시한 오스트레일리아의 대도시 두 곳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시드니에서는 매달 평균 가처분소득의 42퍼센트가 중위 가격의 주택에 대한 대출 상환금으로 빠져나갔고 멜버른의 경우는 그 수치가 37.1퍼센트에 달했다. 점점 더 ‘부모 은행’Bank of Mum and Dad, 부모에게 경제적 도움을 받는 것의 도움을 받지 않고는 주거 사다리에 올라타기가 불가능해지면서 사회적 이동성과 기회의 균등에 대한 우려 또한 커지고 있다.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1950년대 이후로 부동산 투자 수익이 주식을 비롯한 다른 형태의 금융 투자 수익을 능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1970년대 이후 많은 자본주의의 국가에서 부의 축적은 재화와 서비스의 생산을 통한 이윤의 증가보다는 주로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인한 자본 이득양도소득을 통해 이루어졌다. 자본주의 경제에서 소득 대비 부의 비율이 과거 영국 빅토리아 시대1837-1901년까지 빅토리아 여왕이 통치한 시기 수준으로 급격히 상승했다는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의 유명한 연구 이면에 내재한 원동력이 바로 이것이다. 이는 ‘불로소득 자본주의rentier-capitalism, ‘지대 자본주의’라고도 한다’의 일종으로 그와 같은 사회에서 삶의 기회는 성실한 노력이나 혁신, 기업가적 시도가 아닌 그저 운 좋게 그 나라의 적정한 지역에 쓸 만한 토지를 보유하고 있는지의 여부에 의해 결정된다.
이러한 변화는 금융 안정성 측면에도 매우 우려스러운 영향을 끼치고 있다. 사람들이 부동산을 구매하기 위해 예산을 무리하게 사용하면서 많은 선진국에서 소득 대비 가계 부채 비율이 사상 최고치까지 상승하고 있다. 그런 국가들은 경제적 충격과 집값 하락에 더욱 취약할 수밖에 없는데, 특히 주택담보 대출이 고정 금리가 아닐 경우 중앙은행들은 유연하게 금리를 조정하기도 어렵다.
주택 문제는
현대 자본주의 위기의 ‘진원지’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쩌다 이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을까? 아마도 이 문제에 대한 원인으로 언론과 정치인들이 가장 많이 내놓는 답변은 ‘주택 공급이 충분치 않기 때문’이라는 말일 것이다. 주택 공급 부족의 주된 원인으로 서방 국가들에서는 대체로 도시개발 계획 및 건설 부문에서의 문제 혹은 과도한 이민자 유입이 지목된다. 물론 이러한 것들도 여러 국가에서 명백히 그 원인에 해당되지만 〈도표 1-1〉과 〈도표 1-2〉에 나타난 것처럼 지난 20-30년 동안의 주택 구매력 위기를 설명하는 데는 그리 도움이 되지 않는다. 21세기로 접어들면서 갑자기 도시 개발에 대한 규제가 더욱 강화되었거나 건설사들의 독점이 더 심해진 것은 아니다. 게다가 주택 가격은 심지어 인구가 안정적인 도시들에서도 꾸준히 상승해 왔다.
오늘날의 주택 위기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단순히 주택 공급만 살펴보는 차원을 넘어 ‘주택 수요’, 특히 ‘금융 자산으로서의 주택’과 ‘담보로서의 토지’에 대한 수요를 살펴봐야 한다. 주택과, 그 밑에서 주거용 건축물을 지탱하고 있는 토지의 수요를 살펴보면 현대 자본주의 경제의 사회적, 경제적 구조에 관한 훨씬 더 큰 문제들을 파악할 수 있다.
특히 정치경제 전반에 걸친 광범위한 변화와 함께 다른 형태의 거주 방식보다 ‘자가주택 소유’에 대한 정치적 선호도가 강해지면서 주택 시장과 토지 시장에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중대한 변화를 초래하게 되었다.
첫째, 부동산에 부과되는 세금도 줄어들고 저렴한 가격의 공공 주택 공급 또한 감소한 탓에 경제가 성장해 가면서 토지 소유주에게 자연스럽게 돌아가는 횡재이익windfall gains이 증가하는 것을 방치했다.
둘째, 지난 20년 동안의 주택 가격 상승을 설명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금융 시스템에 대한 전 세계적인 규제 완화로 인해 금융과 주택 가격 사이에 긍정적인 순환 구조positive feedback cycle, 주택 가격과 금융 활동이 서로를 증폭시키는 순환 구조가 형성되었다는 점이다. (여기서 positive는 일상에서 사용하는 글자 그대로의 ‘긍정적인’이라는 뜻이 아니라, 경제학에서 사용하는 기술적 용어로 어떤 변화가 일어나면 그 변화가 더 큰 변화로 이어지게 되는 ‘자기 증폭’ 혹은 ‘증폭 효과’를 의미한다.) 즉 금융 기관이 주택담보 대출을 늘리면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고 그로 인해 주택을 구매하려는 자들은 더 많은 대출을 받게 되면서 또 다시 주택 가격이 상승하는 구조가 반복되는 것을 말한다. 많은 자본주의 국가에서 사람들이 자기 집을 소유하기를 바라게 되자 금융은 부동산에 ‘중독’되었다. 이 같은 상황은 경제 이론과 정책 측면에서 은행과 토지의 역할을 제대로 이해하고 반영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주택 위기는 단순한 주택 시장 그 이상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현대 자본주의의 위기의 ‘진원지’라 할 수 있다. 이 문제를 종식시키려면 주택 시장과 금융 시스템 규제를 포함한 경제 및 공공 정책 전반에 걸친 과감하고 근본적인 구조 개혁이 필요하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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