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하고 해석하며 다시 생각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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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이 책에서 나는 문학 읽기가 깊은 통찰을 가능하게 하는 초점 행위가 될 수 있다고 말하고자 한다. 정원을 돌보는 정원사처럼, 통찰 얻기에 관심 있는 독자는 자신이 읽고 있는 작품에 온전히 몰입하는 태도를 길러야 한다. 그리고 즉각적인 결과물이 반드시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깊이 읽는 행위는, 정성을 들여 가꾸고 돌보는 정원사의 일처럼, 그 자체를 넘어 지식을 생성하는 힘을 지닌다.
이 책의 제목 ‘왜 학교에서 문학을 읽어야 하는가?: 상상하고 해석하며 다시 생각하기’는 두 가지 중요한 아이디어를 담고 있다. 첫째, 문학적 참여가 사고를 위한 흥미로운 장을 열어줄 수 있음을 제시한다. 둘째, 공교육이라는 기획은 여전히 중요한 사회적 과업임을 보여준다. 학교는 ‘표상하고, 상상하며, 해석하는’ 지식 활동을 중심으로 세대 간 관계를 명시적으로 발전시켜 나가기 때문에, 인간 경험에 대한 통찰을 만들어 내는 중요한 공간으로 계속 기능한다. 학교는 문학적 참여를 통해 해석을 공유하는 교육 구조를 만들어 냄으로써 세계에 대한 진리 인식의 경계를 계속해서 확장할 수 있다.
이 책의 주제는 매우 단순하면서 동시에 매우 복잡하다. 문학적 참여 및 해석 행위는 개인의 자기 정체성을 유지하는 데뿐만 아니라 상상력의 세계를 확장하는 데에도 유용하다. 이 책에서는 문학적 참여의 가치에 대한 이론적 논의를 제시하는 한편, 학교 맥락에서 문학 텍스트를 새롭게 바라보고자 하는 교사에게 실질적인 조언을 제공하고자 한다.
이 책에 담긴 생각들은 여러 해에 걸친 탐구의 결과물이다. 나는 원고의 최종본을 읽으며 누구나 엄청난 양의 정보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이 시대에 왜 자세히 읽기와 깊이 있는 해석 행위를 계속 장려해야 하는가 생각하는지 자문해 보았다. 몇 개의 ‘키워드’를 검색 엔진에 입력하기만 하면 어떤 주제에 대해서든 정보를 얻어낼 수 있다. 그러나 내가 이 책에서 주장하는 바와 같이, 정보에 대한 접근이 반드시 이해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며, 또한 깊은 통찰을 위한 조건을 창출하는 것도 아니다. 이는 해석을 필요로 하며, 해석은 학습된 활동을 통해 형성된다. 학교에서 문학을 읽는 것은 여전히 중요하다. 왜냐하면 문학 읽기는 학생들에게 해석 활동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는 문학 해석 활동에 참여하는 모든 학생들이 이후의 삶 전반에서 이러한 활동을 지속할 것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최소한 학생들은 자신의 경험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기를 수 있는 하나의 구조를 배우고, 자신의 경험이 역사와 현재의 맥락에 의해 어떻게 영향을 받는지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앤 마이클스가 소설 『흩어지는 조각들』(1996: 82)에서 제안한 바와 같이, 통찰력을 기르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
어떤 풍경을 잘 알면, 다른 풍경들도 모두 다르게 볼 수 있다. 어떤 장소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면, 다른 장소를 사랑하는 법도 배울 수 있다.
이 책에서 나는 문학 경험이 하나의 장소라고 주장할 것이다. 그 장소의 세세한 내용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을 배움으로써 독자는 자신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다.
나는 독자들이 이 책을 해석을 위한 ‘공통 공간’으로 생각해 주기를 바라며 ‘메모’를 위한 여백을 많이 남겨두었다. 나는 독자들이 여백에 메모하면서 이 책에서 제시하고 있는 논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기를 바란다. 개인 장서에서처럼 이 책에 대해 끼적인 흔적들은 흥미진진한 해석의 공통 공간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이러한 흔적들은 여러 독자가 만들어 낼수록 더욱 흥미로워진다. 나는 이 책의 독자들이 자신들의 주석이 달린 책을 다른 독자에게 기꺼이 전달하기를 바란다. 그렇게 함으로써 텍스트는 저자 생각의 흔적뿐 아니라 그에 대한 다양한 독자들의 참여 기록까지를 담은 역사적 문서로서 명시적으로 기능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문학적 참여의 복잡한 측면을 표현하기 위해 나는 두 가지 글쓰기 스타일을 사용해 이 책을 썼다. 5개의 장은 일반적인 설명문 형식으로 전개된다(1, 2, 4, 6, 8장). 나머지 장들은 경험 기술적 형식을 따랐다(3, 5, 7장). 경험 기술적으로 쓰인 장들에서는 언어와 언어의 문자적 표현이 어떻게 인간의 정체성을 상상하고 창조하고 해석하기 위한 구조를 만들어 내는가에 집중했다. 독자는 텍스트의 일부 내용과 자신을 동일시하고, 이러한 동일시와 독서 맥락 사이의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는데, 그 결과 복잡한 연관망이 형성된다. 나는 경험 기술적 장들을 통해 이러한 연관망의 복잡성을 드러내고, 책 전반에 걸쳐 제시된 논의를 발전시키고자 했다. 이러한 경험 기술적 글들이 문학적 픽션의 형식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와 같은 효과를 의도하기는 했다.
1장에서는 간략한 문학 경험의 자서전이 제시되는데, 이는 2장에서 언급할 아이디어와 연결된다. 나는 문학적 참여로부터 생겨나는 통찰력이 지리적 변화를 닮았음을 표현하기 위해 ‘점진적 순간’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늘 명백하게 드러나는 것은 아니지만 자연 세계의 거대한 변화들이 그렇듯이, 사고에 있어서의 큰 변화는 작은 변화들의 복잡한 안무 뒤에 일어난다. 이는 깊은 통찰을 얻으려면 긴 시간 동안 텍스트와 지속적이고 긴밀한 관계를 맺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2장에서는 문학 텍스트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기르기 위한 전략으로 ‘커먼플레이스 북’의 활용법을 소개한다. 이는 마이클 온다치의 소설 『잉글리시 페이션트』를 읽은 교사들과 함께 수행한 연구 및 로이스 로리의 『기억 전달자』를 읽은 5,6학년 학생들과 함께 수행한 연구를 기반으로 한다. 이 장에서는 문학적 참여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가능하게 하는 텍스트를 검토하고, 인간의 학습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문학을 통한 관계 맺기’를 이해하기 위한 개념 틀을 제공한다.
3장에서는 첫 번째 경험 기술적 텍스트를 제시한다. 이 장에서는 문학 텍스트 및 독서 맥락과 독자의 해석이 맺는 관계가 얼마나 복잡한가를 드러낸다. 문학적 참여가 필연적으로 문학적 공통 감각이나 일상의 관행을 중지시킬 수밖에 없음을 밝힌다. 나는 이 글에 “문제를 일으키는 몸들”이라는 제목을 붙이고, 이를 통해 생물학적인 몸들, 문학적이고 이론적인 지식의 몸들, 문학적이고 집단적인 몸들이 어떤 방식으로 계속 서로 교차하는가를 보여주고자 한다. 이러한 몸들은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데, 이때 문제를 일으킨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다음 장에서 자세히 논하겠지만, 인간이 일상에서 의식하지 못했던 세부 사항들을 알아차리기 위해서는 기존의 인식이 중단될 필요가 있다.
4장에서는 주체를 고정된 것 혹은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으로 생각하는 정체성 형성과 관련한 상식적인 견해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진화 생물학, 신경과학, 생태학 연구로 뒷받침되는 정체성에 관한 복잡한 관점을 제시한다. 이 장에서는 멤 폭스의 그림책인 『할머니의 기억은 어디로 갔을까?』의 읽기 사례를 활용해 기억, 문화적 사물들, 읽기와 해석 행위를 포함한 서사 행위들 사이의 복잡한 관계를 해석한다.
5장에서는 어떻게 문학적 참여가 인문과학 연구의 한 형태로서 개념화될 수 있는지 살펴본다. 이 글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사건을 중심으로 내 부모님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조상과의 역사적 관계를 해석하고, 앤 마이클스의 소설 『흩어지는 조각들』을 읽고 문학 인류학적 연구 방법을 적용한 사례를 제시한다. 문학적 참여는 역사, 기억, 문화, 지리, 언어, 정체성 간의 관계를 분석한 역사적·철학적·이론적 문헌을 활용해 문학을 해석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텍스트 들 외에도 개인 물품들을 조사해서 어떻게 인간의 정체성이 문화적 유산에 의해 형성되는지, 이러한 것들이 문화적 지식과 연결되어 이해될 때 어떻게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되는지를 보여주고자 한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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