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8-28

멸종, 공존 그리고 자연의 질서에 관한 이야기

저자소개

저자 · 임정은
보전생물학자. 국내에서 유일하게 현장에서 활동하는 호랑이 연구자로, 국내 야생동물 보전 사업에 관한 평가 기준을 가장 먼저 적용한 사람 중 한 명이다. 국립생태원 멸종위기종복원센터 복원평가연구팀 선임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한국과학기술원에서 생명과학을 전공하며 암을 연구하는 과학자가 되기를 꿈꾸었으나, 대학 재학시절 동물원에서 우연히 표범을 마주한 이후 이를 지키는 보전생물학자의 삶을 살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영국 임페리얼칼리지 환경공학 석사과정, 미국 위스콘신주립대학교 넬슨환경연구소 박사과정을 밟았다. 인도네시아, 벨리즈, 중국, 라오스 등에서 멸종위기종 보전 활동을 펼치며 동물과 인간의 공존 방안을 연구했다. 현재는 북·중·러 접경지대의 표범 보전을 위해 힘쓰고 있으며, 호랑이와 표범 외에도 산양과 삵을 비롯한 포유류 보전 연구를 한다. 보전생물학자로서 이루고 싶은 마지막 꿈은 아무르호랑이와 아무르표범이 멸종의 위협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보전생물학이라는 아직 길이 닦이지 않은 학문을 연구해 온 사람으로서,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려는 이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전하고자 이 책을 썼다.

1장

도시의 보전생물학자

사라진 존재의 흔적을 쫓다


그곳에 동물이 있었다


최근 몇 년간 나는 비슷한 방식으로 아침을 시작한다. 굽이진 냇가를 따라 난 시골길을 30여 분쯤 운전해 국립생태원 멸종위기종복원센터로 출근한다. 이따금 꽃비를 맞으며 황홀감에 젖기도 하고, 산의 짙푸른 녹음이나 울긋불긋 물든 숲의 색채에 감탄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내가 유달리 감성이 풍부하다거나 주위를 세심하게 살피는 성격은 아니다. 도서 지역을 제외하면 인구가 가장 적은 지역에 살다 보니, 아름다운 풍경을 찬미함으로써 도시 생활의 편리함을 포기한 스스로를 위로하고 싶은 건지도 모른다. 어쨌든 자연이 주는 감동을 느끼는 이 과정은 일종의 ‘긍정 사고 훈련’으로 몸에 배었다.


물론 이런 평화가 오래 지속되지는 않는다. 업무 시간이 가까워지면 ‘문의’라는 이름을 달고 걸려 오는 독촉과 요청, 항의성 전화가 쉴 새 없이 이어진다. 그러다 문득, 다 식어버린 찻잔이나 한 물방울 담지 못한 빈 텀블러를 발견할 때면 허탈한 웃음을 짓는다. ‘내일은 꼭 우아하게 차 한 잔으로 하루를 시작해야지.’ 지키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똑같은 다짐을 반복하는 일까지가 나의 오전 일과다.


화마가 덮친 마을


2025년 3월 25일, 그날 역시 그런 평범한 날 중 하루일 줄 알았다. 동료들과 의성에서 시작된 대형 산불을 우려하는 이야기를 나누며 아침을 시작했지만, 우리가 그 영향권에 있다는 생각은 누구도 하지 못했던 것 같다. 오전이 지나갈 무렵, 산불이 안동으로 옮겨붙었고 다시 영양 쪽으로 번지고 있다는 소식이 들렸다. 나는 각 팀에 산불 발생 시 우리가 보호 중인 멸종위기 야생생물들을 대피시킬 계획을 점검해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그 계획을 실제로 행하게 될 거라고는 믿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만일의 상황을 위한 대비책, 공공기관에서 해야 할 최소한의 준비쯤으로 여겼다.


그날 점심, 고속도로가 폐쇄되어 출장을 가지 못하고 발길을 돌린 동료들을 만났다. 그들에게서 내가 사는 동네 역시 연기가 자욱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실시간 중계에 따르면 영양은 아직 불길에서 15킬로미터 이상 떨어져 있었는데, 산불이 강풍을 타고 시간당 8.2킬로미터의 속도로 이동 중인 것까지는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후가 되자 사무실 바깥 공기는 누런 필터를 씌운 것처럼 갈색으로 물들었다. 탄 냄새가 진동했고, 재가 바람을 타고 흩날렸다. 주택 3400여 채를 전소시키고 75명의 사상자를 내는 등 영남 지역을 휩쓴 역대 최악의 산불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었다. 


더 이상 불길한 느낌을 외면할 수 없었고, 한 시간 먼저 퇴근을 요청했다. 아무 일도 없을 거라 믿었지만, 혹시 몰라 노트북과 연구 자료, 그리고 이 책의 초고가 담긴 외장하드를 챙겨야겠다고 되뇌었다. 차오르는 연기와 빠르게 어두워지는 시야 탓에 매일 오가는 길이 스산하게만 느껴졌다. 반쯤 갔을 무렵, 핸드폰에 정신없이 울려댔다. 내가 사는 마을까지 산불이 번졌으니 즉시 대피하라는 알림이었다. 하지만 정작 문자엔 대피 장소가 적혀 있지 않았다. 


마을 어귀에 이르렀을 때는 이미 암흑이었다. 해가 지기 전이었지만 사방은 밤처럼 깜깜했고, 또 붉었다. 까만 재가 흩날리고, 우박처럼 딱딱한 것들이 하늘에서 떨어졌다. 차에서 내린 순간, 봄이 오긴 하는 거냐며 내뱉었던 어젯밤 푸념이 무색하게 초여름처럼 공기가 후끈했다. 바람은 몸이 휘청일 만큼 거셌다.


강풍을 뚫고 허겁지겁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 와중에 재난 상황에서는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면 안 된다는 경고가 떠올라 계단을 두 칸씩 뛰어올랐다. 갈아입을 옷 몇 벌, 노트북과 외장하드, 휴대용 배터리 그리고 상비약을 부랴부랴 챙기는 와중에 정전이 됐다. 떨리는 손으로 헤드랜턴을 찾아 불을 켜고, 집안의 전기 코드를 하나씩 뽑기 시작했다. 동요하는 마음을 다잡으며 “괜찮아, 침착해”를 소리 내어 되뇌었다. 그 사이, 집에서 500미터쯤 떨어진 산에서 어른거리던 불길은 순식간에 산 전체를 집어삼켰다. 믿기 어려울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급한 마음과 달리 떨리는 손은 더디기만 했다.


내가 다급하게 짐을 챙기고 있을 때, 산불은 영양 방향으로 무지막지하게 뻗어갔다. 그리고 오후 6시 4분, 센터 내 멸종위기 야생생물의 피난이 결정되었다. 부랴부랴 집을 나서던 순간에도 핸드폰에서는 산불 알림과 생태원 내 동식물의 대피 상황이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고 있었지만, 확인할 틈이 없었다. 그 사이 더 거세어진 바람에 간신히 문을 열고 차에 탔을 때, 한쪽 도로는 이미 대피하려는 차량으로 꽉 막혀 있었다. 다행히 센터로 향하는 길은 비교적 한산해 빠르게 빠져나왔다. 어느 정도 시야가 확보된 뒤 알림을 확인해 보니, 관리하는 동물의 수가 많은 팀은 다른 팀에 지원을 요청하고 있었다18시 33분. 아무것도 도울 수 없다는 사실이 그저 미안하고, 또 미안했다.


‘산불 알림을 듣자마자 바로 차를 돌렸어야 했나?’ 


꼭 나만 살겠다고 도망친 것 같았다. 내가 정말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이 맞는지 자괴감까지 들었다. 무거운 마음으로 센터 근처에 다다랐을 때 우리가 사랑으로 돌보던 새와 물고기, 곤충의 대피가 완료되었다19시 6분.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람들과 컴퓨터가 센터를 빠져나왔다.


그리고 우리의 일이 시작되었다


며칠 뒤 소방대원들과 공무원들의 진압 노력에 하늘이 조금의 비를 보탰고, 불길은 점차 약해졌다. 긴박했던 탈출 작전이 무색하게 산불은 센터 3킬로미터 앞에서 멈춰 섰다. 이후 사람들과 동식물이 차례차례 복귀했다.


산불이 지나갔으니 본격적으로 일이 시작될 참이었다. 피해 면적만 3만 헥타르가 넘었었다. 그중 멸종위기 야생생물이 한 번이라도 출현했던 지역을 추려보니, 전체 282종 중 52종이 산불의 영향권하에 있었다.


이번 산불에서는 이례적으로 동물 피해가 언론의 주목을 크게 받았다. 급히 대피하는 과정에서 보호자들이 목줄을 풀지 못한 채 떠나야 했고, 그 결과 일부 동물들이 불에 타거나 굶어 죽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다. 하지만 산불이 남긴 상처는 단지 눈에 보이는 피해에만 그치지 않는다. 토양, 수질, 미생물, 곤충, 식물에 이르기까지 생태계 전반이 산불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어떤 종이 얼마나 큰 피해를 입었고, 서식지는 얼마나 소실되었는지 등을 조사하는 일이 우리 과학자들의 몫이다.


피해가 확인되면 회복 전략을 취해야 한다. 하늘다람쥐를 위해 불에 탄 보금자리 대신 인공 둥지를 설치하거나, 먹이원이 소실된 지역에 먹이 급여대를 마련하는 식이다. 만약 서식지는 남아 있는데 개체수가 지나치게 줄어든 경우에는, 보호하고 있던 개체를 야생에 공급하는 ‘개체군 강화’ 활동도 벌인다.


문제는 역시나 예산이었다. 올해 우리 실에 배정된 예산안을 몇 번이나 들여다보았지만 답이 나오지 않았다. 결국 허리띠를 졸라맬 수밖에 없었다. 봄과 여름에 한 번씩 산불 조사를 할 수 있도록 각 팀에 배정된 예산의 일부를 사용해 달라고 협조를 요청했다. 계획된 프로젝트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었으나, 모두가 산불 조사의 중요성에 공감하며 흔쾌히 응해주었다.


추가 예산을 확보하기 위한 작업도 동시에 진행되었다. 두 주 넘게 고치고 또 고치며, 20개가 넘는 계획안을 완성해 냈다. 그러는 동안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순간이 몇 번 찾아왔다. 예산이 확보될 가능성이 너무 희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제는 될 만한 사업에만 도전했던가. 대피를 돕지 못했으니 후속 작업에 더 최선을 다해야 했다.


결국 산불 조사 비용은 정부의 1차 추경안에 담기지 못했다. 하지만 여러 사람의 배려와 기업과 단체의 후원 덕분에 긴급한 지역만이라도 살필 방안이 마련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산불 지역 멸종위기종 조사단’이 출범한 것이다. 그리고 희망과 안타까움을 반복하는 산불 조사는 현재 진행형이다.


매캐한 탄내는 서서히 희미해졌지만, 그날 펼쳐졌던 산불의 광경은 여전히 눈앞에 생생하다. 가끔은 그 모든 일이 실제로 벌어졌던 게 맞는지, 꿈처럼 아득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온 나라를 불안에 떨게 한 그 산불 속에서 위협받은 건 사람뿐만이 아니었다. 멀리 떨어진 가족을 걱정하는 사람들의 마음처럼 우리는 멸종위기 야생생물을 지키고 싶었다. 지금 우리가 쏟은 노력은 아마도 몇 년 혹은 수십 년이 지나고 나서야 세상의 빛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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