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7-11

제25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수상작

저자소개

저자 · 최현진
경상남도 창원에서 태어나 유년 시절을 보내고 경기도 안양에서 글을 쓰는 중이다. 「두근두근 두드러기」로 2017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동화부문)에 당선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나비도감』으로 제25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을, 『스파클』로 제18회 창비청소년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림 · 모루토리
그림 작가로 활동하며 일러스트와 애니메이션 일을 하고 있다. 그린 책으로 『6교시에 너를 기다려』와 『볼록 풍선껌』이 있다.

뉴스에 이런 기사가 났다.


여름방학을 맞아 친구와 워터파크에 갔던 초등학교 6학년 A양이 26미터 높이의 워터슬라이드가 붕괴되면서 추락해 숨졌습니다.


혼자 학교 가기


문이 잘 잠겼는지 확인한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린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에 도착한다.

빌라 밖으로 나간다. 코너를 돌아 벽에 붙어서 걷는다.

튀어나온 보도블록에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땅을 보며 걷는다.

걷다 보면 횡단보도가 나온다. 가슴이 떨려 온다.

초록불이 들어오면 속으로 삼 초를 센 후, 왼편을 쳐다본다.

자동차가 오지 않는 걸 확인하고 횡단보도를 건넌다.

다 건너면 주머니에 손을 넣고 걸어도 된다.

담벼락이 있는 언덕을 오른다.

교문이 보인다.


누나?


꿈에서 누나를 부르다 잠이 깼다. 나 혼자 학교에 가는 꿈이었다. 어젯밤 엄마가 “내일부터는 학교에 가야 해.”라고 말해서 꾼 것 같았다. 열한 살이면 학교는 혼자서 갈 수 있지 않냐고 생각하겠지만 나에겐 꽤 어려운 일이다. 나는 한 번도 혼자 학교에 가본 적이 없다.


방문을 열고 나갔다. 집 안이 조용했다. 식탁 위에 작은 박스와 과일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휴대폰을 켜서 엄마에게서 온 문자를 확인했다.


― 산아. 오늘 엄마가 어디 좀 가야 해서 일찍 나왔어. 미안해. 과일 골고루 먹고 학교 가. 수업 끝나면 정민 이모가 데리러 갈 거야.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연락해.


나는 과일이 담겨 있는 접시를 내려다보았다. 사과, 바나나, 껍질을 벗긴 오렌지가 랩으로 씌워져 있었다. 나는 랩을 벗기고 오렌지 한 조각을 집어 들었다. 새콤달콤한 향이 코 끝에 감돌았다. 오렌지 향을 맡으니까 갑자기 왼쪽 귀가 간질거렸다. 마치 나비가 내 귓속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나는 오렌지를 그대로 내려놓고 작은 박스를 열어 보았다. 박스 안에는 깨끗하게 소독된 보청기가 놓여 있었다. 엄마가 얼마나 꼼꼼하게 닦았는지 새것처럼 반질반질했다. 나는 왼쪽 귀에 보청기를 끼웠다. 귀 안이 꽉 차면서 소리들이 선명하게 들렸다. 공기청정기 돌아가는 소리, 앞집 현관문이 열리고 사람이 나오는 소리……. 


내 왼쪽 귀는 소리를 잘 못 듣는다. 일곱 살 때 태권도 학원에서 수영장으로 놀러 갔던 날, 울보라고 나를 놀리던 애들은 깜짝 놀라게 해 주려고 수심이 깊은 곳에 들어갔다가 왼쪽 귀를 먹었다. 치료를 받으면 청력이 돌아올 줄 알았지만 왼쪽 귀는 여전히 물속에 있는 것처럼 먹먹했다. 의사 선생님은 ‘일측성 소아 난청’이라고 말했다.


엄마는 수영장을 같이 갔었던 누나를 나무랐다. 가뜩이나 몸이 약한 동생을 잘 돌보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누나는 얼굴이 빨개졌고 나한테 미안하다고 그랬다.


그때 우리 누나는 아홉 살이었는데 키가 형, 누나 들보다 커서 별명이 ‘자이언트 베이비’였다. 그에 반해 나는 마르고, 키도 작고, 잘 울었다. 엄마 말로는, 누나가 뱃속에 있을 때는 엄마가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자고 아무 걱정 없이 행복해서 누나가 튼튼하게 태어난 것 같다고 했다. 내가 뱃속에 있을 때는 그러지 못했다며 엄마는 미안해했다. 그래서 누나한테는 안 사 주는 팽이를 나에게만 사 주고 누나는 갈 수 없었던 자연 캠프도 나는 보내 주었다.


하지만 나는 노래도 부르고 수영장에도 맘껏 갈 수 있는 누나가 부러웠다.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나비처럼 춤을 추는 누나를 보고 있으면, 팽이랑 자연 캠프 따위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았다.


*


학교 갈 준비를 마치고 현관을 나섰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자 불이 들어왔다. 1, 2…… 숫자가 올라올수록 엘리베이터에서 나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3…… 쇠로 된 네모난 박스가 공중에 매달려 오는 게 상상됐다. 저런 곳에 혼자 타야 한다고? 숫자가 5에 가까워지자 참을 수 없이 소변이 마려웠다.


띵.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 소리와 동시에 나는 다시 집으로 들어갔다.


오줌을 누고 나와서 결국 계단으로 내려갔다. 건물 밖으로 나와 코너를 돌아서 벽 쪽에 붙어 걸었다. 너무 바짝 붙어서 오른쪽 팔꿈치가 벽에 닿았다.


“나 왼쪽으로 좀 가도 돼?”


옆에 대고 혼잣말처럼 물어보았다. 대답 대신 책가방이 오른쪽 벽에 닿아 쓸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벽에서 떨어져 왼쪽으로 한 걸음 움직였다. 원래는 두 사람이 나란히 걸어가다 마주 오는 사람이 있으면 한 사람은 비켜서야 하는 좁은 길인데, 오늘은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도 충분했다.


나는 머릿속에 있는 공책을 열었다.


1번부터 3번까지 잘한 일에는 동그라미를, 못한 일에는 엑스표를 쳤다.


학교 갈 때 할 일


1. 문이 잠겼는지 확인하기 (○)

2. 엘리베이터 타기 (×)

3. 튀어나온 보도블록에 걸려 넘어지지 않기 (○)


난 머릿속에 공책을 가지고 다닌다. 이 공책에는 아무거나 적었다가 지우고 그럴 수 없다. 한번 적으면 각인이 돼 버리니까. 그래서 머릿속 공책에 뭔가를 적어야 할 때는 신중해야 한다.


머릿속 공책을 덮고 가방끈을 세게 쥐었다.


드디어 횡단보도가 나왔다. 가만히 흰 선을 바라보았다. 내가 엘리베이터보다 싫어하는 횡단보도. 그 이유는 초록불이 들어와도 우회전하는 차가 불쑥 등장하기 때문이다. 보청기를 껴도 소리가 완벽하게 잘 들리는 건 아니다. 그래서 누가 알려주지 않으면 왼쪽에서 차가 오는 걸 모를 때도 많다.


“왼쪽을 봐. 왼쪽을 봐.”


나는 누군가 나에게 일러 주는 것처럼 스스로에게 말하면서 횡단보도의 흰 선을 밟았다. 학교에 갈 때면, 흰 선만 밟으면서 횡단보도를 건너는 놀이를 했다. 오늘 나 혼자 이 놀이를 하며 횡단보도를 건널 수 있을까? 누나랑 등교할 때는 흰 선만 밟으며 건너가는 일이 아무것도 아니었는데. 누나가 항상 내 왼쪽을 지켜주고 있었으니까.


‘까불지 말고 왼쪽을 잘 보라고.’


누나가 하던 말이 생각났다. 왼쪽 귀 안에서 나비가 꿈틀거리는 것 같았다. 나는 보청기에 손끝을 갖다 대 보았다. 동시에 뚜우뚜우― 하고 신호등에서 빨리 건너가라는 알림음이 나왔다. 흰 선을 밟고 폴짝폴짝 건넜다.


“아가! 장난치지 말고 빨리빨리 건너야지!”


차창을 열고 소리를 지르는 아저씨 때문에 놀라서 넘어지고 말았다. 도로 경계석에 무릎이 쓸렸다. 아가라고 불린 것도, 넘어진 것도, 누가 나에게 소리를 지른 것도 속상했다. 누나였다면 자동차 뒤통수를 째려보았을 거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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