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의 쓰임새는 다양했다. 외출 준비를 최종 점검하고 귀가를 마무리하는 곳이었다. 마중과 배웅이 이뤄지는 장소였으며 아이들 놀이터이자 알곡을 터는 일터였다. 혼인과 장례가 치러지는 예식장이기도 했다.
마당이 없는 집을 좋은 집이라고 말하기 어렵듯이 평상 없는 마당 또한 마당답다고 보기 어렵다. 그뿐이랴, 백살이 넘는 느티나무가 동구에 서 있더라도 그 아래 평상이 없다면 마을에 뭔가 문제가 있어 보인다.
평상은 마당을 살짝 들어 올린 ‘작은 마당’이다. 밥상과 달리 평상에는 사람이 올라간다. 바둑판과 장기판도 올라가고 노래 잘하는 아이도 올라간다. 물론 밥상·술상도 올라간다.
우리 집에는 평상이 없었다. 아버지는 손재주가 남달라 삼태기며 소쿠리·망태기·멍석까지 손수 만들었는데 평상은 예외였다. 우리 집에서는 돗자리가 평상을 대신했다.
여름철 저녁이면 마당에 펼친 돗자리에 밥상이 차려졌다. 우리 집은 울타리가 없는 데다 마을 초입이어서 오가는 이웃이 많았다. 아버지는 지나는 사람을 다 불러 앉혔다. 황해도 피란민이 많은 동네였다.
저녁상을 물리면 돗자리는 타임머신으로 변했다. 울음을 터뜨린 젖먹이 입을 막아 살아난 피란길로, ‘왜정시대 때’의 고향 마을로, 두고 온 피붙이 곁으로 돌아가곤 했다. 어린 나는 무릎베개에 누워 그 많은 이야기를 다 들었다. 밤하늘에 촘촘히 박힌 별들을 바라보면서.
마당과 평상은 하늘이 보이는 곳, 노천露天이다. 노천이 사라지자 이웃과 마을이 사라졌다. 아무래도 ‘마땅’한 것보다 ‘못마땅한’ 것이 더 많아져서 그런 것 같다.
★ 이 글은 농민신문에 연재된 칼럼으로, 필자의 동의하에 게재됨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