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한겨레」에 이 칼럼을 쓰기 시작한 지 이제 꼭 10년, ‘2013년에 만나는 빅 브러더’로 운을 뗀 이 글쓰기는 예순편을 넘기며 재미있는 세상을 재미없는 글로 개칠하며 사람과 삶, 세계와 세상의 움직임들에 말거리를 이어왔다. 덕분에 그 칼럼들을 묶어 이편의 한계를 벗어나 ‘저편’의 의식을 열어보려는 두권의 책으로 엮기도 하면서 나날이 새롭게 변모하는 세상을 낡은 사유의 열린 보수로 내다보려고 했다. 내 글쓰기는 신도시 공원 옆에서 다름없이 조용히 진행됐지만 두어 차례 정권이 바뀌며 대통령 관저가 청와대에서 용산으로 옮겨 가고 코로나19가 온 세상을 강타한 가운데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침략을 당하는 동안 우리나라는 세계 10위권 선진이 됐다. 내 한가로움은 세상의 바쁨을 이렇게 외면하며 엇갈렸다.
내 여전한 신상처럼 조용한 듯, 그러나 근래의 내게 벼락처럼 느껴지는 변혁을 느낄 일은 있었다. 신문에 회자하기 시작한 ‘인공지능’이었다. 새삼스런 용어도 아니고 때아닌 발명도 아니어서, 지구 기온 상승, 국지적인 분쟁들, 중국의 부상, 한국의 선진국 공인 등 굵직한 사태와 함께 컴퓨터도 개발된 지 반세기가 안 된 세계시민들의 새삼스런 의식으로 보급된 것이다. 그럼에도 그것은 무서운 속도로 발전하여 물질의 인간 세상을 손으로 만질 수 없는 시간의 세계로 변화시키며 속도 그 자체를 연구 개발의 대상으로 구체화하는 혁신을 이루었다. 그것은 시간의 성격을 넘고 개념을 변화시켜 인간 정서와 존재 자체, 물질의 본질과 세계의 성격을 바꾸기 시작했다. 내 빈약한 역사의식으로는 15세기의 인쇄혁명도 이 사태에 비견하지 못할 것이었다.
우리나라가 더 먼저 개발했지만 그것을 산업에 연계시켜 지적 사회를 책으로 재편성한 구텐베르크의 인쇄기는 맨 처음 찍은 것이 성경이었지만 반세기 만에 종교개혁을 불러올 정도로 인간의 지적 심성을 바꿔놓았다. 무지한 서민이 문자를 알게 되면서 문자 해독률이 급증하고 표기법이 바뀌며 표준어가 제정되고 문체를 개성화하는 등 보편 교육의 성과를 빠르게 확산시켰다. 그것이 르네상스를 불러왔고 과학혁명을 일궜으며 그 파급효과가 정치적 민주화와 사회적 정의의 길을 열었다. 독일의 한 촌락 도시에서 이뤄진 인쇄기술의 개발이 중세에서 근대로 시대를 비약시켰고 대양과 대륙을 넘어 지구 전체로 세계를 확대했으며 오늘날 우리가 보는 현란한 과학의 문물세계로 변모시켰다. 진보는 그렇게 하찮게 보이는 구석에서 소리 없이 일어나 ‘경천동지’의 결과로 열어간다.
내 50대에 처음 컴퓨터를 열고 문자질을 시작한 지 30년이 돼서도 여전히 컴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그 무력감 때문인지, 컴 혁명이 인류사를 새로운 단계로 비약하고 있음에 나는 더 크게 놀라고 있다. 종이에 잉크로 사연을 써서 우표를 붙여 전하던 편지질은 자판 몇번 두드리는 것으로 빠르게 전달되는 세상이 되고 신문과 라디오, 텔레비전으로 뉴스의 현장을 보던 정보 세계가 이제 손바닥만 한 스마트폰으로 그 폭과 깊이가 더욱 넓고 깊고 빨라졌으며, 그 정보 세계에 나 자신을 틈입시켜 쌍방향으로 교류할 수 있게 되었다. 식민과 분단, 전쟁과 혁명, 빈곤과 혼란의 가장 후진적인 시대를 겪어온 나도 그 첨단의 문명을 손끝으로나마 즐길 행운을 누리게 된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 드디어 컴퓨터가 말을 하고 사람과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다니! 나는 뉴스로만 알고 실제 경험은 못 한 채 이 멋진(!) 세상을 떠나겠지만, 모스부호로 전자 소통이 이루어진 지 한세기 반 만에, 기계가 스스로 사람과 말을 하게 됐다는 사실, 석판·목판에 이은 인쇄된 책자로 읽던 문자가 화면의 영상으로 기록 전달 보관되는, 생활사의 새로운 비약을 치렀다. 호모가 말을 만들어 ‘사피엔스’가 된 것이 인류사의 첫 비약이라면, 5천년 전 문자를 만들어 기록하고 전달하는 ‘호모 리테라투스’의 변혁이 두번째 비약이 될 것이다. 이 문자생활은 책과 도서관, 기록과 연구의 근대문명에 기반한 정치권력과 민족국가를 구성했다. 그런데 80년 전 튜링의 ‘생각하는 기계’가 개발된 후 언어-문자에 이은 세번째 인류사적 비약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짧은 생애 동안임에도 세계는 연필과 타자기를 거쳐, 이제 기계가 문자를 쓰고 말을 만들고 대화를 하며 그림을 그리고 작품을 창작하는 챗지피티로 인류문화사의 세번째 비약을 하는 중이고 ‘기계의 인간어’란 새로운 문화적 충격 사태에 부닥치고 있는 중이다.
내 빈약한 상상력 때문에 우리가 새로운 인간적 기계언어를 어떻게 범용할 수 있을지 짐작도 못 하는 대신, 이처럼 거대한 획기에 대한 대응들이 얼마나 치열했는지 돌이켜보고 싶긴 하다. 알렉산드리아에 도서관이 설립됐다는 소식을 듣고 소크라테스는 이제 지혜의 말을 들을 수 없게 됐다고 탄식했는데, 구텐베르크가 인쇄술을 발명했을 때는 그보다 훨씬 혹독한 비난을 당했다. 무지한 민중이 책을 읽다니, 그래서 하느님 말씀이 구겨지고 세상은 더 어지러워지게 됐다는 걱정이 엄청 컸던 것이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했을 때 최만리가 백성들이 문자를 익히는 것에 항의한 것도 그런 이유였다. 하잘것없는 서민들이 글을 알아 세상일에 집적거린다는 것은 진지한 식자로서 무척 언짢은 일이었다. 다행히 개명한 우리 시대의 컴퓨터와 그것을 이용한 글쓰기는 그런 저항을 덜 받았다. 그럼에도 저자의 개념, 창작의 성격, 소득배분 방법으로부터 글자의 형태, 책의 모양과 역할, 지식의 전달과 교육체계, 문화의 양식 등 ‘존재의 집’으로서 문자세계는 의외의 방향으로 그 형태와 의미가 증폭되고 있다.
컴퓨터로 겨우 잡문이나 쓰는 내 한가 속에 문자 전달 방식의 변화를 지난 10년의 가장 큰 사태로 잡은 것은 그 때문이다. 만물의 영장이 타고난 능력은 기계로 구현되는 인공지능으로 기왕의 예상 수준을 훌쩍 뛰어넘어 의식과 사유, 예술과 창작, 연구 방법과 개념을 변혁할 것이다. 이 변화, 저 변모, 미처 떠올릴 수 없는 변혁들 앞에 서면 차라리 절망이 닥쳐온다. 그 절망 속에서, 그럼에도 정직하게 말해, 나는 이 시대 변화가 반갑다. 미래를 저어하면서도 거기에 기대를 거는 것, 암담을 예감하면서 낙관의 구실을 찾고 비관에서 소망을 일구고 두려움에서 요행을 얻어온 것이 인류사의 과정 아니던가. 정신없이 바쁜 세상에 낀 작은 틈에서 인간들은 얼핏 여유를 즐겨왔다. 나는, 지난 10년 동안, 거대한 문명사적 움직임에서 이 글쓰기로 내 조용한 틈을 찾는 것이다.
★ 이 글은 한겨레신문에 연재된 칼럼으로, 필자의 동의하에 게재됨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