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시간 편의점 맞은편, 오래된 교회 주차장 한구석. 컨테이너가 하나 놓였다. 여섯평짜리 농막만 한 크기다. ‘공유 냉장고.’ 공유 냉장고? 몇번 발음해봐도 입에 설다.
밤새 불이 켜 있는 편의점처럼 공유 냉장고 앞에도 밤새 불이 켜 있다. 진홍색 컨테이너 이마에는 ‘이웃과 자연을 살리는’이라는 글씨가 박혀 있다. 출입구 옆에는 ‘착한 이용자, 선한 기부자’라고 적혀 있다.
공유 냉장고 안에 라면·김치·달걀·생수 같은 음식물만 있는 건 아니다. 옷가지·신발·휴지·마스크에 부채까지 있다. 말 그대로 없는 거 빼고 다 있다.
나태주 시인의 「선물」을 읽다가 번쩍 떠오른 게 몇달 전 생긴 우리 동네 공유 냉장고다. 고마워서 혹은 미안해서 건네는 선물하고, 종교단체가 마련한 공유 냉장고하고는 거리가 멀 수 있다. 자칫 ‘세련된 방식’의 전도라고 오해하는 눈길이 있을 수도 있다.
아는 사람들 사이에 오가는 선물은 많을수록 좋다. 인용한 시에서처럼 주고받는 마음이 서로 크고 작아진다면, 그래서 그 마음들이 후끈하다면 더더욱 그렇다. 세상에 선물을 골라본 적이 없거나, 선물을 받아본 기억이 몇 안되는 사람처럼 쓸쓸할 때가 또 어디 있으랴.
가끔 백일몽을 꾼다. 국가가 국민에게 미안하고 고마워서 선물처럼 건네는 정책이나 제도는 없을까. 그러면 감사한 마음으로 제 발로 세금을 갖다 바치는 사람도 생기지 않을까. 그러면 나이 드신 어른들이 어린 사람들에게 남기는, 이른바 ‘사회적 상속’ 같은 것도 생겨나지 않을까.
그러면 대낮에도 하늘에 총총한 별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 이 글은 농민신문에 연재된 칼럼으로, 필자의 동의하에 게재됨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