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차권을 예매할 때마다 궁금해진다. 기차 이름은 누가 정한 것일까. 새마을호·무궁화호. 20여년 전 사라진 비둘기호도 있다. KTX·SRT·ITX 같은 고속열차는 뜻도 모른 채 입에 뱄다. 완행열차란 말은 이제 ‘대전발 0시 50분’처럼 흘러간 옛 노래를 흥얼거릴 때만 살아난다.
비둘기호는 1967년에 생겨나 2000년에 퇴출됐다. 새마을호는 1974년에 출현했고, KTX는 2004년 첫 기적을 울렸다. 기차 이름은 많은 것을 함축한다. 이농향도離農向都는 완행열차를 타고 급격하게 진행됐다. 비둘기호를 타고 시골 청장년들이 도시로, 공단으로, 항구로 몰려들었다. 제국주의는 말할 것도 없고 ‘조국 근대화’는 철로 위에서 ‘세계의 10년을 우리의 1년’으로 만들었다.
말 그대로 고속 성장, 압축 발전이었다. 모든 역마다 정차하던 비둘기호가 2000년에 운행을 멈췄다는 것은 적지 않은 의미를 지닌다. ‘완행’, 즉 느림이 추방당한 것이다. 새마을호가 새마을운동과 무관하지 않듯이, 초고속 열차는 21세기 정보 시대와 맞물릴 것이다. 그사이 ‘더 빨리, 더 많이, 더 높이’란 슬로건이 우리 내면을 장악했다. 느리게, 적게, 낮게는 반시대적 구호로 전락했다.
속도가 느린 것은 사회악 취급을 받는다. 변홍철 시인은 “거슬러 갈 수는 없어도 천천히나 흐르자”고 속엣말을 한다. 흐르는 강물 중에 거슬러 올라가는 물줄기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흐르는 강물보다 천천히 흐르는 것도 거의 ‘반역’에 가깝다. 잠깐 멈춰 서서 둘러보자, 기차가 연착해도 부아가 나지 않는 사람, 애기똥풀꽃을 보고 해찰하는 사람 어디 있으면 다가가 통성명이라도 하자.
★ 이 글은 농민신문에 연재된 칼럼으로, 필자의 동의하에 게재됨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