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결혼식에 다녀왔습니다. 국립대학교에서 공학도를 길러내시는 교수님께서 따님이 결혼하는데 주례를 맡아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공학자이면서도 인문학에 남다른 관심을 갖고 계셔서 시 쓰는 저를 몇차례 불러 특강 자리를 마련해주셨습니다.
그간 여러번 예식장 단상에 올라봤지만 매번 부담스럽습니다. 주례를 맡으면 제 결혼생활부터 돌아봐야 하기 때문입니다.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부끄럽지 않았는지 ‘중간 평가’하는 시간이 버겁기만 합니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하는 후회가 앞섭니다.
누가 ‘좋은 선생의 요건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저는 이렇게 답합니다. 집에서 자기 아이들한테 하는 이야기를 학생들에게 그대로 전하는 선생. 쉽지 않은 일입니다. 저를 포함해 많은 선생님이 집과 교실에서 서로 다른 말을 하리라 생각합니다. 주례도 마찬가지겠지요.
옥수수 알갱이가 수염 숫자만큼 영근다는 사실을 이 시를 통해 처음 알았습니다. ‘나’라는 존재에게 수염은 무엇일까요. 부모 또는 선배들이겠지요. 마지막 연이 의미심장합니다. ‘하나 없이는 하나가 올 수 없다는 사실’. 지난 토요일에 저도 강조했습니다. 하나와 하나가 만나 더 큰 하나, 둘을 넘어서는 새로운 하나가 탄생하는 창조적 과정이라고요.
이병률 시인이 오늘12월 10일 박재삼문학상을 수상합니다. 저희 후배 시인들에게 박재삼의 시는 ‘옥수수수염’과 같습니다. 그의 시가 없었다면 우리 시는 조금 덜 풍요로웠을 겁니다. 이병률 시인의 시도 누군가에게 ‘수염’ 역할을 하겠지요. 신랑·신부가 새로운 하나를 불러오듯이 말입니다.
★ 이 글은 농민신문에 연재된 칼럼으로, 필자의 동의하에 게재됨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