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스러운 개방감. 축구장이나 야구장에 갈 때마다 몸으로 느낀다. 내 눈과 건너편 관중석 사이에 아무것도 없다는 단순한 사실이 얼마나 새삼스러운지. 도시에서 산다는 것은 ‘탁 트인 시야’를 포기한다는 것이다. 전망 좋은 집에 살지 않는 한, 100m 전방에 아무것도 없는 경우를 만나기란 쉽지 않다.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케이블 채널을 기웃거리는데 그때마다 마주치는 화면이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프로그램이다. 분초를 다투는 도시 생활을 뒤로하고 깊은 산속에서 홀로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다. 열에 아홉은 중년 이상의 남자들이다.
내게 「나는 자연인이다」는 요리 또는 건축 프로그램이다. 그들이 손수 키워 조리하는 음식과 그들이 사는 집에 눈이 간다. 특히 집. 자연인이 사는 집은 대부분 직접 설계해 지은 것이다. 그런데 이보다 더 중요한 공통점이 있으니 다름 아닌 전망이 빼어나다는 것이다.
송순의 시조에 나오는 초려초가삼간은 작은 집이다. 조선시대의 일반적인 주거 형태였으리라. 달과 바람을 식구로 들이겠다는 선비의 마음이 훤칠하다. 종장은 더 나아간다. ‘강산은 들일 데 없으니 둘러두고 보리라.’ 초가삼간은 작은 집이지만 사방이 트여 있어 천지자연이 드나든다면 그보다 큰 집이 또 어디 있으랴.
조선시대 초가삼간은 요즘으로 치면 농막이나 협소주택일 것이다. 60대로 접어들면서 내가 살고 싶은 작은 집을 상상하곤 한다. 그런데 해결하기 힘든 난제가 있다. 규모나 내부 구성보다 환경이 우선인데, 글쎄, 지금 이 강산 어디에 송순이 더불어 살던 ‘청풍’과 ‘강산’이 온전히 남아 있으랴. 집보다 주위 환경, 사람보다 천지자연. 난제 중의 난제다.
★ 이 글은 농민신문에 연재된 칼럼으로, 필자의 동의하에 게재됨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