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 행크스가 주연인 영화 『터미널』은 공항난민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주인공은 뉴욕 JFK 국제공항에 산다. 고국에 쿠데타가 일어나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었기 때문이다. 영화 포스터에는 “도착한지… 9개월짼데 조금 더 기다릴까요?”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에는 루렌도 가족이 9개월째 살고 있다. 부부와 어린 네 명의 자녀는 사람들이 잠시 스쳐가는 공항터미널에서 ‘살고’ 있다. 이들은 지난해 연말 앙골라에서 한국으로 왔는데, 공항 입국심사에서 입국을 거부당했다. 입국 목적이 불분명하여 체류자격이 맞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루렌도 가족은 바로 난민신청을 하였다. 앙골라에서 콩고 출신에 대한 집단적 차별과 혐오가 심각하고, 구금 후 탈출한 등의 사정이 있어 앙골라로 돌아간다면 박해를 받을 위험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출입국청은 열흘 만에 ‘난민인정심사에 회부하지 않기로 하는 결정’을 내렸다. 이들의 난민신청이 ‘명백히 이유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박해의 위험이 있는 본국으로 돌아갈 상황에 처한 이들은 “난민심사를 받을 기회를 달라”며 소송을 제기하였다.
난민법은 ‘대한민국 안에 있는 외국인’이 하는 난민신청과 아직 입국 전인 ‘출입국항’에서 하는 난민신청을 구분하고 있다. 전자는 난민인정 여부 결정이 확정될 때까지 대한민국 안에서 체류할 자격을 얻게 되지만, 후자는 7일의 범위 안에서만 출입국항에서 머무를 수 있다. 법무부장관은 7일 이내에 난민인정 심사에 회부할 것인지 결정하여야 한다. 명백하게 난민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면서 난민신청을 악용하는 사람들을 배제하기 위한 것이다. 이런 공항난민의 숫자는 적지 않다. 대한변호사협회의 실태조사에 의하면 2019년 1월 현재 인천공항에 머무르는 송환대기자는 루렌도 가족을 포함해 모두 74명이라고 한다. 송환대기실에 31명, 탑승동에 37명, 여객동에 6명이 있다. 송환대기실은 사실상 구금시설로 매우 열악하다.
항소심을 앞두고 담당변호사들은 마음을 졸였다. 1심에서 루렌도 가족이 패소하였기 때문이다. 지난 9월 27일 서울고등법원은 루렌도 가족의 청구를 받아들였다. “난민사유에 대한 구체적인 판단이 필요한 경우에는 난민신청자를 난민인정심사에 회부해 난민법의 절차적 보호 하에 그 지위를 신중히 심사받도록 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것이었다. 난민협약 등을 근거로 “난민심사 불회부 사유에 관한 입증책임이 처분청에 있다”는 중요한 판단도 함께 했다.
항소심에서 승소했지만 루렌도 가족은 아직 공항에 있다. 법무부가 상고를 포기하거나 이들 가족의 입국을 허가하여야 비로소 공항생활을 마무리하고 난민심사를 받을 수 있다. 9개월이 넘는 공항 생활은 도무지 상상하기 어렵다. 면세점과 화려한 시설로 가득한 공항은 여행으로 들떠 있거나 집으로 돌아온다는 안도감으로 늘 기분 좋은 장소이다. 사람들은 모두 웃고 있다. 이곳에 루렌도 가족은 천 소파 여섯 개를 붙여 간이침대를 만들어 갇혀 있다. 5살부터 9살까지 네 명의 어린아이들이 있다. 법무부가 판결에 따라 이들을 입국시켜 난민심사를 받을 수 있도록 조치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 본 기고글은 법률신문에 연재된 칼럼으로, 필자의 동의 아래 게재함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