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와 자식 사이의 단절이 곳곳에서 확인된다. 그중 하나가 자연에 대한 반응이다. 나나오 사카키의 시에 나오는 미국 소녀와 일본 어린이는 낯설지 않다. 나나오 사카키는 불교와 생태론에 바탕한 시적 상상력으로 널리 알려진 시인이다. 그는 일본 국적이지만 군국주의와 자본주의 바깥에서 ‘무소유의 풍요’와 ‘방랑의 자유’를 만끽했다. ‘길 위의 시인’이었다. 1923년에 태어나 2008년 작고했다.
2차 대전 이후 문명의 이름으로 파괴되는 일본의 자연을 보호하기 위해 원시림에 공동체를 만들었는가 하면 산호초 보호 운동도 전개했다. 1960년대 게리 스나이더, 앨런 긴즈버그 같은 영어권 시인들과 교류하면서 미국을 방문했고 1980년대에는 호주를 여행했다.
10여년 전 나나오 사카키의 시집이 국내에 번역될 때 내가 시집 뒤에 짧은 해설을 덧붙였다. 그 글의 제목이 「하이쿠의 현대화, 현대시의 지구화」였다. 일본 전통문학의 맥을 잇되 자국을 벗어나 인류를 대상으로 시를 썼다. 그렇다. 시의 진정한 주어는 ‘인류’다.
시 「미래는 알고 있다」는 기성세대와 미래세대 사이의 단절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이 시는 1979년 미국 콜로라도에서 쓴 것인데, 그로부터 40여 년이 흘렀다. 그 사이에 인간과 천지자연은 무서운 속도로 멀어졌고, 인류와 도시기계는 무서운 속도로 가까워졌다.
소설 『더 로드』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미래는 인간에 대해 관심이 없다.” 그렇다, 그래서 우리가 미래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 미래는 우리를 알지 못하지만 우리는 미래를 알 수 있다. 미래를 아는 가장 확실한 방법 중 하나가 아이들이 어떻게 자라나는지 살펴보는 일일 것이다.
★ 이 글은 농민신문에 연재된 칼럼으로, 필자의 동의하에 게재됨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