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이 지났는데도 이렇게 인사할 때가 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월에는 상대방이 웃으며 넘어가지만 3월만 돼도 무시하는 것 아니냐며 눈꼬리가 올라갈 때가 있다. 그러면 나는 되묻는다. “그럼 지금이 새해가 아니고 ‘헌 해’인가요?” 지금 여기 모든 시간은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옮겨 적은 시는 최근에 나온 이순자 시인1953∼2021의 유고 시집 『꿈이 다시 나를 찾아와 불러줄 때까지』휴머니스트에 실린 것이다. 시인은 문단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무명이었다. 시인이 널리 알려진 것은 시인이 세상을 떠난 직후였다. 한 신문사의 논픽션 공모에 당선된 시인의 ‘실버 취준생 분투기’란 글이 입소문을 타고 번진 것이다.
취업 전선에 나선 초로의 경험과 생각을 생생하게 그려낸 위 논픽션을 비롯해 에세이와 소설이 담긴 『예순 살, 나는 또 깨꽃이 되어』도 시집과 함께 출간됐다. 산문집도 그렇지만 시집을 일독하면 고인의 생애가 고스란히 떠오른다. 유복자, 청각 장애, 종갓집 맏며느리, 호스피스 봉사 활동, 만학도, 뒤늦은 등단, 쌍둥이 손녀의 할머니, 요양보호사, 독거노인….
삶이 난폭해질 때마다 시인으로 하여금 더 높은 곳을 바라보게 한 원동력은 연민과 헌신이었다. 인간의 존엄성에 바탕한 분노였다. 작고 여리고 아픈 것에 대한 사랑이었다. 이처럼 ‘시의 마음’이 빚어내는 시는 한없이 기도에 가까워진다. “나를 어제처럼 살게 하지 마시고 어제와 함께 살게 하소서.” 그리하여 “다가오는 것들을 가만히 받아 안게 하소서.” 그렇다. 11월도 엄연한 신년의 가을이고, 오늘 우리의 이 아침도 가슴 설레는 새 아침이 아닐 수 없다.
★ 이 글은 농민신문에 연재된 칼럼으로, 필자의 동의하에 게재됨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