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렌 켈러는 시청각장애인deafblind이었다. 듣지도 보지도 못하는 중복장애다. 하늘과 꽃을 보지 못하고, 바람 소리나 음악을 들을 수 없는 삶은 어떤 것일까? 그런 헬렌 켈러가 5개 언어를 구사한 것은 기적이다. 그 때는 장애인을 위한 교육시스템도, 의사소통을 돕는 보조기기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어떻게 언어를 익히고 말구화을 할 수 있었을까? 헬렌 켈러는 손바닥에 글을 쓰거나 수화를 전하는 방법으로촉수화 언어를 익히고 소통했다. 상대방의 목젖이나 입술을 만지며 소리를 구분하고 발성하는 법도 배웠다.
얼마 전 하벤 길마Haben Girma의 강연을 인터넷으로 접했다. 하버드 법대 최초의 시청각장애인졸업생. 아프리카 난민의 딸. 그녀는 지금 장애인 인권변호사다. 그녀는 디지털 세상과 여러 보조기기가 장애인의 교육과 정보접근성을 높이고 있다고 말한다. 인터넷으로 식당의 메뉴를 미리 확인하면 점자메뉴가 없어도 주문이 가능하다. 스마트폰은 소통의 지평을 넓혀 준다. 그녀는 장애를 고려한 적정기술의 발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작년에 청각장애인 마이클 슈와츠 변호사를 초청해 국제세미나를 열었다. 슈와츠 변호사가 미국수화수어로 말하면 그의 아내가 영어로 통역했다. 동시통역실에서 다시 한국어로 통역하면 한국수화수어 통역사가 한국수화로 청중에게 전달해주었다. 미국수화, 영어, 한국어, 한국수화로 이어지는 다단계 통역이 매끄럽고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농인청년들이 실시간으로 그의 발표에 공감하는 장면 자체가 감동이었다. 이처럼 통역서비스는 언어의 차이와 장애를 잊게 했다.
장애인의 언어, 정보, 교육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져야 장애인 법률가가 나올 수 있다. 우리나라는 시각장애를 가진 법률가는 여럿 있지만, 아직 청각장애 법률가는 없다.미국엔 청각장애 변호사가 250명이 넘고, 일본도 여러 명이다 시청각장애를 가진 법률가는 더욱 요원하다. 한국의 맹학교는 안마시술을 주된 진로로 강요하고, 농학교는 바리스타 교육에 몰두한다. 점자교재는 태부족이고 리더기나 수화통역서비스도 제한적이다. 이런 환경에서는 장애인 법률가가 나오기 어렵다. 그나마 반가운 것은 연세대학교에 처음으로 시청각장애인이 입학했고, 어느 로스쿨에는 청각장애인이 다니고 있다는 소식이다. 우리나라에도 청각장애 또는 시청각장애를 가진 법률가가 곧 나오면 좋겠다.
보지 못하는 당신에게 사흘만 볼 수 있는 기적이 일어난다면 무엇을 보겠는가? 헬렌 켈러는 '사흘만 볼 수 있다면'이라는 자서전에서 이렇게 답했다. “첫째 날에는 친절과 겸손과 우정으로 내 삶을 가치있게 해 준 사람들을 보고 싶습니다. 둘째 날, 나는 새벽같이 일어나 밤이 낮으로 바뀌는 그 전율어린 기적을 보겠습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새로운 기쁨을 발견하고 싶은 마음에 들떠 또다시 새벽을 맞이할 것입니다. 나는 앞을 볼 수 있는 사람들에겐 매일매일 밝아오는 새벽이 영원히 반복되는 아름다움의 계시일 거라고 확신합니다.” 교육과 기술로 장애를 무의미하게 하는 세상을 보고 싶다.
★ 본 기고글은 법률신문에 연재된 칼럼으로, 필자의 동의 아래 게재함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