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시가 길게 읽힐 때가 있다. 독자를 놓아주지 않고 시를 이어가도록 하는 시가 있다. 라이너 쿤체의 시가 꼭 그렇다.
첫 연부터 나를 사로잡았다. 뒤로 물러나는 일도 쉽지 않은데 물러나 ‘있기’라니. 돌아보니, 나는 뒤로 물러나기보다 뒤로 밀리고, 또 떠밀려 있는 적이 더 많았다.
“땅에 몸을 대고”에서는 생각이 사방으로 번졌다. 우선, 내 몸이 땅과 접촉한 기억이 가물가물하다는 사실이 떠오른 것이다. 두 발은커녕 맨손으로 땅을 만져 본 것도 한참 전이다.
“땅에 몸을 대”려면 땅에 눕거나 엎드려야 하는데 그런 경험 또한 거의 없다. 땅에 눕는다면, 즉 자기 자신을 낮춘다면 그림자가 생겨나지 않을 것이다. 몸집이 큰 사람, 서 있는 사람이 그림자를 드리운다.
마지막 연에서는 숨이 멈췄다. “남들의 그림자 속에서 빛나기”라니. 뒤로 물러나기도 쉽지 않고, 남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는 일은 더더구나 어렵다. 그런데 타인의 그늘 속에서 자기 존재의 의미를 밝히겠다고 다짐하다니.
내게 이 시는 기도처럼 다가온다. 그래서 이렇게 바꿔 읽는다. ‘하느님, 저로 하여금 뒤로 물러서 있게 하여 주옵소서. 땅에 엎드려 저 스스로 낮아지게 하소서….’
좋은 시와 기도는 혈연이다. ‘남들의 그림자 안에서 제가 빛나게 하여 주소서.’ 이 기도를 놓치지 않는다면 다음과 같은 간구로 이어질지 모른다. ‘제 그림자 안에서도 그가 빛나게 하소서.’
★ 이 글은 농민신문에 연재된 칼럼으로, 필자의 동의하에 게재됨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