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아이와 노인의 가장 큰 차이는 ‘처음’의 많고 적음일 테다. 고정관념이나 선입견, 이른바 프레임이 거의 없는 아이에게 세상은 온통 ‘처음 천지’다.
돌아보니, 태어나 성장하고 나이 들어 노후를 맞이하는 생애의 전 과정이 ‘처음’과 연관되는 것 같다. 노년으로 접어들면 지나온 처음들이 애틋해지는 한편 예고 없이 문을 두드리는 처음이 낯설고 심지어 두려울 때가 있다.
지나가 버려 소매를 잡을 수 없는 처음들, 그리고 언제 다가올지 모르는 낯선 처음들. 이 둘 사이가 우리 삶의 구체적 거처일 것이다. 그렇다면 처음의 질과 양이 삶의 좋고 나쁨을 결정할 것이다.
첫 기억, 첫 칭찬, 첫 꾸중, 첫 선물, 첫 만남, 첫 절망, 첫 희망, 첫 등교, 첫 선생님, 첫 졸업, 첫사랑, 첫 이별, 첫 여행, 첫 음식, 첫 사고, 첫 월급, 첫 아이, 첫 이사, 첫 수술, 첫 문상, 첫 장례, 첫 용서, 첫 복수, 첫 재기….
인생은 이토록 처음의 연속이다‘마지막’의 목록은 또 얼마나 많으랴. 그중에서도 “가슴에 꽃씨”를 심게 하는 ‘처음’이 있으니, 이런 처음은 ‘나’를 이전과 이후로 나누는 사건이 아닐 수 없다.
“그대를 만나고 처음이 많아진” 가슴 벅찬 사태가 나를 ‘어제와 다른 나’로 태어나게 한다. 내가 거듭나면 나를 둘러싼 세상도 두근두근 새로워진다. 그렇다. 우리는 소월의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를 비롯한 모든 좋은 시에서 이같은 각성과 변화를 경험해왔다.
다시 돌아보자. 우리가 수많은 ‘그대’ 덕에 예까지 왔다면 그 이름들을 뼈에 새기면서 스스로 물어봐야 한다. 나는 누구에게 처음이었는가. 누구를 꽃으로 피어나게 했는가.
★ 이 글은 농민신문에 연재된 칼럼으로, 필자의 동의하에 게재됨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