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남모를 눈물에 젖을 때가 있다. 나도 그런 사람의 하나다.
“저 건너 순이넨 불을 못 켜서/ 밤이면 바느질도 못 한다더라/ 애들아 오너라 달을 따다가/ 순이 엄마 방에다가 달아드리자.” 이 노래가 어디선가 들려오면 나는 꼼짝을 못한다. 온몸이 오실오실, 줄줄 운다.
그런 노래가 나에겐 또 하나 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이다. 그 노랫말은 내가 지은 것이라고 하는 이가 있다. 하지만 아니다. 나는 단 한번도 내 노랫말이라고 해본 적이 없다. 그것은 싸우는 현장에서 빚어진 민중의 노래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다만 내 옥중 비나리(시)에 비슷한 낱말들이 짜깁기처럼 낑겨 있긴 있다. 그래서 날더러 한마디 하라고 하는데 모를 일이다. 왜 이리 눈물이 앞을 가리는 걸까. 나는 박근혜 정권의 앞날을 뻔히 보고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도 원고지가 안 보여 겨우 적는다.
나는 한때 군사 양아치들한테 거듭 당해 온몸이 시커먼 숯덩이였다. 손톱을 빼고 넓적다리에선 살점이 떨어져나가고 허리 다리는 꺾이고 배알이 튕겨져 나가 물 한 모금도 게우고 온몸이 들쑤셔 감옥 안에서 꺼져가고 있었다. 이때 밥은 못하고 맹물만 끓이며 웅얼대시던 어머니가 떠올랐다.
“엄마, 뭘 웅얼대.” “비나리지.” “비나리가 뭐야.” “응, 주림 따위엔 꿇지 말자는 달구질이요, 네 애비한테 일이 잘 안 돼도 기죽지 말라는 을러대기, 그 한 묶음이 비나리지.” 그게 떠오르자 죽어라고 감옥 안 천장에다 입으로 비나리를 새겨 넣으며 주절댔다.(그땐 붓과 종이를 못 쓰게 했다.)
“벗이여, 딱 한발 뛰기에 목숨을 걸어라// 민중의 배짱에 불을 지르고” 어쩌고 한 덕으로 오늘의 내가 있는 것이니, ‘임을 위한 행진곡’은 나에게 무엇일까. 첫마디만 들어도 소름이 끼치면서 그냥 눈물이 쭈르르.
그런데 얼마 앞서 광주 어느 방송국에서 그 노래를 못 부르게 한다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그건 또 하나 민중학살을 자행하겠다는 선전포고다. 대뜸 집어치우라고 했다. 왜 그랬을까. 박근혜 정권은 똑똑히 알아야 한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행사장에서나 부르는 노래가 아니다. 우리네 삶과 역사와 함께 나아가는 예술이다.
“혁명이 늪에 빠지면 예술이 앞장선다”는 말이 있듯이 그 노래는 새뚝이란 말이다. 무슨 말일까. 침묵까지 삼키는 썩은 늪이라 하더라도 솔방울 하나로 ‘퐁당’하고 그 미적 질곡을 깨트리는 것이 새뚝이다. 그 노래는 질곡에 빠진 오늘의 모든 변혁, 모든 진보의 거짓과 부패를 깨트리는 예술, 새뚝이다.
때문에 박 정권은 ‘임을 위한 행진곡’을 못 부르게 할 자격도 권한도 없다. 그 음모를 당장 집어치워야 한다. 제 아무리 흉악한 도둑이라 하더라도 아낙이 찌꿍찌꿍, 베를 짜고 있으면 그 소리에 티가 낄까봐 발자국 소리를 죽여 가며 내뺀다고 했다.
박 정권에 묻노니, 권력을 쥐었다고 민중의 피눈물로 지은 예술을 행사용 썩물(남까지 썩히는 병균)로 죽일 능력이 있다고 보는가. 그건 반역이다. 권력자의 만용은 민중을 적으로 돌릴 수는 있으나 미적 질곡을 깨트리는 예술의 창조성에는 못 당한다는 걸 알아야 한다.
그렇다. ‘임을 위한 행진곡’이 어째서 예술일까. 노래 맨 끝에 “산자여 따르라”고 했다. 그것은 짓밟힐수록 불티가 되는 참목숨, ‘서돌’도 주저앉으면 아주 죽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들도 지난날의 민중의 싸움을 기리기만 해 굴비로 만들어선 안 된다. 이어 발전시켜야 한다는 깨우침을 주는 것이 ‘임을 위한 행진곡’의 수난의 본질. 박 정권은 낡은 칼을 빼들었다. 우리는 “산자여 따르라”를 부르자. 예술과 반문명의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 본 기고글은 경향신문에 연재된 칼럼으로서, 필자의 동의 아래 게재함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