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둘이 헤어살롱을 차린 건, 같은 미용실에서 일하다가 눈과 마음이 맞아서였다. 하긴 눈이나 마음이나 그게 그 소리다. 그는 나보다 경험 있는 미용사였고, 미용실 사장언니의 애인이었다. 잡지꽂이에 누군가 꽂아놓고 간 두꺼운 책의 저자 이름이 기억에 남아 ‘프루스트 헤어’라고 이름 붙였다. 그 책 제목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였다. 미용실에서의 시간은 더디게 간다. 굳이 잃어버린 시간을 찾으려면 머리를 자르거나 파마를 할 일이다.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고 싶은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불행한 사람은 지나간 시간을 돌아보지 않는다. 나는 행복한 사람일까? 불행한 사람일까? 당신은 또 어떨까? 그런 생각조차 사치일 만큼 나는 하루 종일 바쁘다. 우리 동네는 부촌은 아니지만 술집 아가씨들이 사는 원룸이 많아서 손님이 끊이질 않았다. 요즘 코로나라는 역병이 돌아 손님은 반으로 줄었지만 그것도 그리 나쁘지 않다.
나는 조금쯤 한가해진 미용실의 거울을 닦으며 오랜만에 내 얼굴을 들여다본다. “거울아, 거울아, 누가 더 예쁘니?” 어디선가 그런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나는 아주 어릴 적 내 곁을 떠난 어머니 얼굴을 기억하지 못한다. 오랜 세월 의붓어머니와 배다른 동생 둘과 아버지와 함께 살았던 나는 늘 행복하지 않았다. 그래서 행복이 뭔지 모르듯 불행이 뭔지도 잘 몰랐다. 지금 남편을 만난 이후 나는 어쩌면 이제껏 살아온 시간들 중에서 가장 덜 불행하다. 나는 자라면서 나 자신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본 적이 없다. 예쁘다는 말을 자주 들었지만 그 말에 귀 기울여본 적도 없다. 남편과 함께 미용실을 차린 이후 매일 아침 손님이 오기 전 거울을 닦으면서 “거울아, 거울아, 누가 더 예쁘니?” 하고 묻는다. 그 상대가 누구인지는 아무 상관 없이.
문득 거울에 텔레비전에서 본 「동물의 왕국」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아니 장면은 흐릿하고 더빙이 된 설명하는 목소리가 귀에 더 선연하다. “세상에 같은 수컷은 한 마리도 없다. 알 수 없는 암컷의 마음, 열 마리 중에 오직 한 마리만 수컷과 교미한다.” 이 동물이 사자였는지 거미였는지도 확실치 않다. 바른 기억인지는 모르지만 “암컷을 제때 올라타지 못하면 수컷은 암컷에게 잡아먹힌다.”, 이 지점에서 텔레비전을 껐던 기억이 난다. 도대체 우리의 기억이란 얼마나 부정확한 것일까?
그런 엉뚱한 생각 속에 떠돌 때, 마스크를 쓴 첫 번째 손님이 문을 열고 들어온다. 남편이 마스크를 쓰고 손님을 맞는다. 머리를 자르고 염색을 하러 온 남편의 단골손님은 화가다. 무슨 그림을 그리는지 잘 모르지만 여러 가지 물감 색깔을 그대로 묻힌 작업복을 입은 채로 거리를 활보하는 그와 우연히 마주친 적도 있다. 그런 그가 멋져 보였다. 그는 의자에 앉자마자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 글쎄 K감독이 죽었지 뭡니까? 그 사람 알죠? 외국에서 수상도 많이 한 유명감독이죠. 나는 그의 많지 않은 친구 중의 하나였어요. 그를 처음 만난 게 파리 몽마르트르 언덕에서였답니다. 한눈에 한국 사람처럼 느껴져 어느 금발 여자의 초상화를 그리고 있는 모습을 한참 지켜보았죠. 곧잘 그리더군요. 그때 그가 문득 나를 돌아보며 “형씨도 하나 그릴래요?” 하고 묻더군요. 깜짝 놀란 내게 그는 씩 웃으며 담배 있으면 한 대 달라고 하대요. 그때만 해도 담배를 피우던 때라 나는 얼결에 갑 채로 담배를 그에게 넘겨줬어요. 금발 여자가 만족한 얼굴로 그림을 들고 떠나자 얼결에 나도 그 자리에 앉아 그림의 주인공이 되었답니다.
그날 저녁 나는 그 친구와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그 친구 어지간히 고생 많이 했더군요. 초등학교도 몇 년 안 다니고 공장에서 일하던 이야기를 들려줬어요. 공장에서 일하던 시절 열 살은 더 많은 누나들이 귀엽다고 그를 안아주기도 하고 슬쩍 귓불을 꼬집으며 지나가기도 하고 일부러 치마를 여미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며, 대체 여자란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고 했어요. 그 말을 들어서인지 몇 년 전 텔레비전에서 배우 성폭행 사건으로 떠들썩한 걸 보면서 참 아쉬운 생각이 들더군요.
그가 독학으로 유명 영화감독이 되었다는 걸 처음 알고서도 많이 놀랐던 생각이 나네요. 오래전 파리에서 만난 그는 화가가 되고 싶었던 사람이었으니까요. 술이 한잔 들어가면 그는 솔직하기 짝이 없었어요. “공장 시절 누나들이 치마를 살랑거리며 내 앞을 스칠 때마다 확 눕히고 끌어안고 싶었다니까. 여자들은 하고 싶으면 시치미 딱 떼고는 슬쩍 보여주곤 하거든.” 나이가 비슷한지라 우리는 만나자마자 말을 텄어요. 소심한 나는 그의 솔직함과 패기가 부러웠답니다. 아, 이거 죄송합니다. 사모님도 계시는데.
나는 아무 소리도 안 들리는 척 미용실 바닥을 닦았다. 화가 손님이 말을 이었다.
그런 그가 성폭행으로 기소되어 그가 이룬 영화적 업적을 한 방에 날려버렸지 뭡니까? 피카소가 요즘 세상에 태어났다면 한방에 갔을지도 몰라요. 얼마 전 그는 도피행으로 발틱3국으로 가서 그 이름도 낯선 라트비아라는 나라에서 코로나로 죽었다는 겁니다. 믿어지지가 않네요. 그 친구 아주 여린 데도 있어서 성폭행을 했다는 것도 믿기지도 않았거든요. 거기 도착해서 얼마 뒤 내게 전화를 한 통 했었어요. 독감이 걸린 것 같은데 이상하게 낫지 않는다며 육개장이 먹고 싶다 하더라고요. 불쌍한 사람, 내 마음이 참 슬프네요. 머리 확 잘라주소.
나도 그 감독을 안다. 영화도 몇 개 보았다. 오래전 언젠가 남편의 애인이던 사장언니 미용실에 사표를 내고 꿈에 그리던 발틱3국을 가본 적이 있다. 쿨하기 짝이 없던 사장언니는 우리 둘이 사귀게 되어 미용실을 그만둔다 하니, “저놈이 그만 둬야지, 왜 네가 그만둬?” 했다. 파리도 동경도 안 가본 내가 처음 가본 곳이 발틱3국이다. “발틱3국이 도대체 어디야? 하필 거긴 왜 가고 싶은 건데? 돈 좀 더 모아서 나랑 같이 이탈리아나 가지.”
텔레비전 다큐프로그램에서 본 이래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나는 오래도록 그 나라들을 꿈꾸었다. 고흐의 그림 속 하늘을 그대로 재현한 발틱의 밤하늘은 온통 신비로운 발틱 블루다. 동화의 나라 같은 에스토니아의 탈린 거리에는 땅콩이 유명한 먹거리다. 땅콩을 파는 소녀가 내가 한국에서 왔다 하니 바로 그 K감독을 너무 사랑하고 존경한다고 했다. 영화가 너무 좋아 꼭 만나고 싶다고, 그곳 사람들은 그 감독의 영화를 안 본 사람이 없다고도 했다. 서울로 돌아온 뒤 나는 그의 영화를 몇 개쯤 보았고, 왠지 세상에서 제일 슬픈 영화들이라는 생각을 했다. 화가 손님이 거울에 자른 머리를 비추며 만족한 듯한 얼굴로 일어섰다. “한없이 가엾지만 한편으로 무에서 유를 이루었던 존경스러운 영혼을 오늘 내 마음 밭에 묻어주렵니다. 정말 슬픈 날이어요.”
그가 문을 닫고 미용실 문을 나서자 남편과 나는 말없이 한동안 앉아 있었다. 도대체 야생동물들은 인간으로부터 그들이 다니던 길과 서식지를 다 빼앗긴 이래 오늘까지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나는 낯선 곳에서 생을 마감한 그 감독이 한마리 고독한 야생 동물이었다는 생각을 한다. 오늘따라 손님이 들어오지 않는다. 다행이다.
하늘 길이 꽉 막힌 오늘 문득 발틱 블루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싶다. 누가 코로나에 걸렸는지 구분이 안 되는 무증상 감염자라는 개념은 마치 드라큘라의 존재를 닮은 것 같다. 이빨을 드러내기 전에는 전혀 알아볼 수 없는 현대의 드라큘라. 아무 힘도 기운도 없는 자신이 드라큘라인지도 모르는 무증상감염자. 코로나라는 이 역병은 어쩌면 우연히 탄생한 게 아니지도 모른다. 아인슈타인이 말하길 우연이란 신이 익명을 유지하는 기술이다. 어느 시대에나 일정 수의 사람을 죽이는 신의 기술 같은 건 아닐까? 소극적 전쟁 같은 거 말이다.
발틱 블루 속으로 걸어 들어간, 너무 애쓰다 죽은 영혼을 달래주려는 듯, 창밖에 조용히 비가 내린다. 문득 언젠가 너무 좋아서 수첩에 적어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들은 구절이 생각난다. “우리에겐 죽음이 필요하다. 내게도 필요하고 네게도 필요하다. 우리가 너무 오래 머물면 여긴 쓰레기로 꽉 찬다.” “인생은 때로 근사할 수 있지만, 그것은 종종 우리 하기 나름이다.” “대다수 인간들의 죽음은 짝퉁이다. 죽을 게 남아있어야 말이지.”
이 글을 쓴 작가 찰스 부코스키Henry Charles Bukowski의 묘비명이 생각난다.
Don’t try. 애쓰지 마.
그래, 너무 애쓰지 말 일이다. 오늘은 일찍 문을 닫고 푹 쉬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