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 환자들에게 그림을 가르치던 시절 친했던 간호사 아가씨, 그녀의 얼굴이 또렷이 떠오릅니다. 화장기 없는 환한 얼굴에 늘 밝은 웃음을 짓던 그녀. 나는 내게 없다고 생각되던 그 밝음이 참 좋았답니다. 캔버스에 밑칠을 해 놓은 순도 높은 노란 색을 바라보며 그녀가 이렇게 말하던 기억이 나네요. “선생님 그림은 환해서 좋아요. 한겨울 웅크리고 있다가 환한 봄날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기분이어요. 개나리랑 진달래, 목련이 확 피어있는 봄날은 환해서 더 슬퍼요.” 그 시절 그녀는 제 환한 그림 속의 슬픔을 읽어내는 유일한 사람이었답니다.
‘환한 그림’ 하면 오래전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처음 본 마티스의 대형 색종이 그림이 떠올라요. 건강이 안 좋아져 붓으로 그림을 그리지 못하게 되자, 마티스는 늦은 나이 팔십에 가위로 오린 원색의 색종이들로 이제껏 존재하는 그림들 중 가장 환한 세상을 만들어냈습니다. 내 청춘을 압도하던 그 커다란 원색의 화면이 아직도 눈에 선하네요. “가위는 연필보다 한층 감각적이다.”라고 말한 노년의 마티스의 완전히 변화된 세계를 ‘그림 혁명’이라 부르고 싶어요. “나는 내 노력을 드러내려 하지 않았고 내 그림들이 봄날의 밝은 즐거움을 담고 있었으면 한다. 내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아무도 모르게 말이다. -앙리 마티스”
어둠을 어둠으로 그려내는 것보다, 이 고단한 삶을 활짝 순도 높은 색채의 밝음으로 그려내는 일은 쉽지 않죠. 어쩌면 가장 어려운 일인지도 몰라요. 눈앞에 어른거리는 건 마티스의 밝은 그림인데 “시간은 흘러가는 강물일 뿐이며 삶은 산산이 조각난 계획”에 다름 아니라고 어느 영화에선가 보고는 적어둔 우울한 글귀가 하루 종일 머릿속을 맴돌고 있네요. 왜 노래 한 소절이 이유도 없이 하루 종일 떠오르는 그런 날을 당신도 아시지요? 누구나 다 결국은 죽는다는 사실이 누구나 다 저마다의 슬픔과 고독을 지고 간다는 사실이 위로가 되지 않을 때가 있어요. 어쩌면 인간이 가장 이기적이 되는 순간인지도 모르죠. 라스베이거스에서 총기 난사 사건을 목격한 뒤 미국이라는 나라가 정이 떨어지더군요. 자살폭탄 테러도 아니고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는 전직 회계사의 총기 난사라니, 하긴 어딘들 안전하겠어요? 카불에서는 어제도 폭탄 테러가 일어나 많은 사람이 죽었다는 기사가 났더군요. 이제는 당신이 그 속에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아요. 폭력이 일상이 된 공간 속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영혼의 방탄조끼를 입고 날아다니는 당신의 환영을 봅니다. 총기 난사사건이 벌어진 이후 세상의 소음이란 소음은 다 들리는 언니와 함께 꼼짝 않고 귀마개를 한 채 며칠을 지냈어요. 제 귀에도 총성이 들려오기 시작했으니까요. 절단한 지 오랜 팔다리에 없는 통증을 느끼는, 실체는 없지만 고통을 느끼는 ‘환상통’처럼 있지도 않은 수많은 소리들이 들려오는 병이 마치 전염이 된 것 같았답니다. 귀마개를 빼면 웅성거리는 소리들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요. 언니와 나는 사람들의 이상한 눈초리를 느끼면서 식당에 가서 밥을 먹고 아이쇼핑을 하고 근사한 호텔 카페에서 차를 마셨어요. 어떤 날은 식당에 밥을 먹으러 갔는데, 사람도 별로 없는 식당에서 나이프와 포크들이 서로 부딪치는 소리가 너무 크게 들려왔어요. 그곳에서 마치 칼부림이라도 하는 듯 점점 커지는 소리를 듣는 건 언니와 나 둘뿐이었어요. 그 모든 소리들이 자신의 귀에만 들려오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안 다음부터 비쩍 마른 언니의 얼굴엔 조금씩 살이 붙어갔어요.
우리는 같은 증후군을 앓으며 결코 고독하지 않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답니다. 절대 고독하지 않은 상황에서 고독하다 느끼는 감정은 어쩌면 고독의 기억이 되살아나는 때문인지 몰라요. 매년 그때만 되면 난산을 했던 분만의 고통이 몸속에 되살아나는 여자들의 몸의 기억처럼, 봄날이 되면 쓸데없이 고독을 느끼는 나는 문득 젊은 날의 고독의 기억이 스며드는 탓이라고 자신을 토닥거렸어요. 당신이 곁에서 본 전쟁터의 기억은 또 어찌하고요. 제2차 세계대전 시 유태인 포로수용소에서 보낸 사람들의 기억, 정신대에 끌려가 성노예의 삶을 살았던 불운한 여인들의 기억, 이런 상처들을 평생 동안 되살리며 살아온 삶은 얼마나 고통스러울까요?
지금 현재의 여건들이 아무리 행복하다 해도 ‘환상통’을 느낄 거예요. 하지만 “지금 누워있는 나의 침대조차 아름답다고 말하고 싶다.”라고 말한, 110세에 세상을 떠난 홀로코스트 마지막 생존자 중 한 분은 “삶은 배울 것, 즐길 것 가득한 선물”이라는 말을 남겼답니다.
며칠 전엔 텔레비전에서, 결혼한 지 일주일 만에 한국 전쟁이 일어나 의용군으로 끌려간 남편이 세상 떠난 줄만 알고 평생을 유복자였던 아들 하나 기르며 살아온 할머니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았습니다. 세월이 흘러 남편이 납북되어 북한에 살고 있다는 걸 알게 된 할머니와 남편과 아들의 이산가족 상봉은 너무 담담해서 오히려 더 슬펐어요. 북한에서 결혼해 자식을 넷이나 두었다며 사진을 보여주는 할아버지의 마음은 홀로 아들 하나 키우며 살아온 할머니의 적적한 생애를 깊이 생각해볼 겨를이 있었을까요? 인생은 물처럼 흘러가고 타인을 배려하기엔 자신의 삶이 다들 너무 벅찬 것인지도 모르죠. 모든 지난한 세월이 얼굴에 훈장으로 각인된 할머니의 담담한 표정은 그 자체가 보살이었어요. ‘보살’이라는 말을, ‘사리’라는 단어를 당신이 아실는지요. 사리는 큰 스님에게서만 나오는 것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오늘은 어느 노교수의 ‘백세 일기’를 읽으며 이런 구절에 마음이 뭉클해져요. “여자 친구가 있었으면 하는 마음을 지닌 채 십 년이 흘렀다. 이젠 너무 늦었다.”
사랑하고 싶은 마음은 몸이 늙어가는 것과는 무관하게 이 생명 다할 때까지 남아있을 생명의 연료겠죠. 스마트폰을 새로 바꾸며 문득 영화 『그녀her』의, 인공지능 애인과 사랑에 빠진 남자주인공이 떠오릅니다. 남의 편지를 대신 써주는 일을 하는 대필 작가인 주인공은 정작 아내와 별거 중이며, 그 누구와도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상대가 없는 무척 외로운 사람이죠. 그런 그가 자신의 말에 귀 기울여주고 이해해주는 인공지능 여자친구로 인해 행복을 느끼고, 사랑에 빠져가는 과정을 그린 결코 웃을 수 없었던 슬픈 영화랍니다. 스마트폰을 새로 살 때마다 쓰던 핸드폰을 초기화해서 남을 주거나 핸드폰 가게에 반납하거나 하는 약간의 쓸쓸한 기분이 영화 속 주인공의 기분과 조금쯤 비슷할까요? 애지중지하던 낡은 핸드폰 속의 내용이 새것 속으로 옮겨지면서 폐기되는 과정을 겪을 때마다 나는 이별에 대한 슬픔도 같이 연습하는 기분이 든답니다. 인공지능 목소리와 사랑에 빠진 남자가, 업그레이드되면서 초기화되어 사라져가는 목소리에 실연의 아픔을 느끼는 장면이 잊히지 않아요. 눈만 뜨면 가장 먼저 찾는 스마트폰의 존재야말로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우리들의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연인이겠죠. 당신과 나도 가상의 공간 ‘바그다드 카페’에서 이 편지를 주고받고 있으니까요.
오늘은 104세의 호주 생태학자가 안락사를 허락하는 스위스로 떠나 생을 마감했다는 뉴스를 보았답니다. 그가 남긴 유언은 장례식을 치르지 말 것, 누구도 자신의 죽음을 애도하지 말 것, 시신은 해부용으로 쓸 것 등등이었어요. 이런 말들을 들을 때마다 인류의 자손인 게 자랑스러워져요. 닮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건 살아야 할 이유이기도 하니까요. 큰 병을 앓고 있었던 것도 아닌데, 90세가 넘으면서부터는 사는 즐거움을 느낄 수 없었다는 그의 말은 의미심장하게 들려요. 살아있다는 걸 느끼게 해줄 그 어떤 것의 결핍, 그게 사랑이거나 애착이거나 연인이거나 뭐 그런 이름들은 아니었을까요? 그는 베토벤의 9번 교향곡 ‘합창’을 마지막으로 들으며 세상을 떠났답니다. 아무리 그래도 자신이 보람을 느끼는 일에 온 생을 보내다가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자신의 죽음을 선택할 수 있다는 건 참 부러운 일이겠지요.
친구, 여자친구, 여자사람친구, 애인, 연인, 인공지능 여자친구 등등 사랑하는 사람에 관한 단어가 많기도 하지만, 남자와 여자가 이렇게 불화하기 시작한 건 지금이 첫 시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앞으로의 세상은 인공지능과 연애하거나 동성끼리의 사랑이 대세인 세상이 오진 않을까요? 어느 날 갑자기 내 곁을 떠나 동성의 연인에게 가버린 전 남편도 이해가 가는 순간입니다. ‘약한 자여, 너의 이름은 여자’라고 누가 말했을까요? ‘강한 자여, 그대의 이름은 어머니’라는 말도 터무니없이 무겁게만 들리네요. 우리가 백 살이 되어도 갖고 싶은 게 남아있을까요? 그 시대가 되면 백세에도 이성 친구를 사귀는 게 흔한 일일지도 모르죠. 백 살에도 당신의 편지를 받는다면 행복할 거예요. 만일 우리가 그때까지도 이렇게 마음의 편지를 주고받을 수 있다면 ─ 아름다운 나의 친구여.
부디 살아계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