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군가 필요했다. 외롭다는 느낌이 이런 거였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이건 외로움이기보다는 적막감 같은 거였다. 마음속에 검은 비가 내렸다. 매니저 일을 하며 꽤 많은 월급을 받으며 나는 박사학위를 받는 일에 흥미를 잃기 시작했고, 시간 날 때마다 소설 쓰는 일에 몰두했다. 이제야 사랑에 관한 소설을 쓰고 싶었다. 『위대한 개츠비』가 사랑에 관한 소설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건 내게 사랑이라기보다는 낯선 야생의 여왕벌 이야기처럼 이해 불가하고 잔인한 약육강식 이야기였다. 그 속에는 친구들 사이에서 개츠비로 불리는 우리 아버지도 무책임한 여왕벌을 연상케 하는 어머니도, 이야기의 상황을 설명하는 화자인 나도 있었다.
때로는 이름이 같은 두 사람이 동시에 떠올랐다 그 중 한 사람은 아버지와 함께 와인을 기울이고 있을지 몰랐다. 그리고 어느 비 오는 오후 또 다른 크리스틴 혜경이 내가 일하는 식당의 구석 테이블에 앉아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기다리던 꿈같은 장면이었다. 그녀는 가늘고 긴 눈을 놀란 듯 크게 뜨고 서비스로 백김치 한 접시를 손에 들고 있는 내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그녀는 머뭇거리며 내 손에 들려진 백김치를 받아 들며 영어로 말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어디서 뵌 분인 것 같은데요.”
“네, 책 사인회에서 뵈었습니다. 다시 뵈어서 정말 반가워요.”
그녀와 주고받은 짧은 영어는 형식적이었지만, 나는 그녀의 손을 덥석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오래 기다리던 사람을 만난 것처럼 가슴이 뛰었다. 그녀의 책을 한 세 번은 읽은 터라 그녀라는 한 권의 책이 낯설지 않았다. 놀랍게도 그녀는 어눌하긴 하지만 한국어를 정확히 구사했다. 한국어로 이야기하는 기분은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는 기분이 들었다. 음식점을 쉬는 날 또 만날 수 있냐고 내가 물었고 그녀는 오래된 지인을 만난 듯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와 나는 내가 쉬는 수요일 저녁 맨해튼의 페닌슐라 호텔 옥상 바에서 만났다. 자넷을 만나기 전 아니 만난 뒤에도 한참을 자주 가던 곳이었다. 긴 의자에 누워 지는 해를 바라보며 칵테일 한잔을 하는 게 낙이던 나는 오랜만에 누군가와 그곳에서 술한잔을 기울이고 싶었다. 그 시절 자주 마시던 보드카와 토마토 주스, 셀러리, 검은 후추, 여러 가지 향료 들을 넣어 만든 마치 내 인생의 제목 같던 매콤한 블러디 메리 두 잔을 시켜 함께 마시며 나는 정말 오랜만에 행복이라는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은 기분이었다. 혼자서도 행복하다는 건 행복의 프로파겐다이다. 둘이서 행복하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행복은 그러니까 어느 정도는 사실과 다른 프로파겐다이다. 전체주의 국가에서 아무 걱정 없는 표정을 한 행복한 사람들을 그린 그림들처럼. 혹은 ‘행복이란 자신이 이미 갖고 있는 것을 열망하는 상태’라는 누군가의 정의도 내게는 다 선전 문구로 느껴진다. 태어났으니 그저 행복해야 한다는 명령문같이 느껴진다.
자넷과 블러디 메리를 마시던 기억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녀는 블러디 메리를 좋아하지 않았다. 맛도 제목도 좋아하지 않았다. 내 마음 안에서 그녀를 실종시킨 이후 한참 동안 나는 그녀를 지워버렸다. 어머니를 그랬던 것처럼. 그러나 그럼에도 그녀가 전혀 그립지 않았다는 건 거짓말이다. 조금은 무심해질 때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잠시라도 사랑했다고 생각한 사람을 완전히 마음속에서 몰아내는 게 가능하단 말인가? 하지만 사람에 따라선 그럴 수도 있는 일이다. 실연을 당해 상대를 죽이는 사람도 있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도 있으며 심지어는 자기 자식을 내다 버리는 사람도 있으니까 말이다. 생각을 그치고 눈앞의 크리스틴 혜경과 마주하니 참으로 꿈같았다. 오랜 세월 그녀를 그리워했다는 사실도 꿈만 같았다. 도대체 내 앞의 그녀는 누구란 말인가? 어떤 경로로 그녀가 내 앞에 와 앉아 있는 것일까?
그녀는 어릴 적 같은 집에 입양되어 한 이년을 가족으로 살다가 헤어진 오빠를 오랫동안 찾아 헤매고 있었다. 그녀가 글을 쓰는 이유도 오빠를 찾기 위해서라고 했다. 같은 집에 입양되어 거리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떠돌이 음악가 부부를 따라 모자를 들고 구경꾼들이 던져주는 동전과 일 달러 지폐들을 걷는 앵벌이 노릇을 같이 하던 오빠, 술만 먹으면 폭력적으로 변하는 양아버지로부터 도망쳐 집과 멀리 떨어진 낯선 거리에서 오빠는 바이올린 연주를 하고 어린 동생은 모자를 들고 돈을 걷던 남매의 풍경을 마치 다른 사람의 기억처럼 잔잔하게 이야기했다. 앵벌이용으로 양부가 음악에 자질이 있던 오빠 존에게 바이올린을 가르친 덕으로 슈베르트의 바이올린 소나타를 제멋대로 듣기 좋은 음률로 연주하던 어린 바이올린 연주자, 동시에 그녀의 유일한 보호자였던 그녀가 오빠라 부르던 피 한 방울 안 섞인 한국인 소년의 안부를 그녀는 여전히 애타게 그리고 있었다. 책에서 읽은 것처럼 그들은 한동안 거리에서 살았고, 맨해튼 업타운의 커다란 건물들에서 따스한 겨울을 만나기도 했다는, 그녀의 가장 행복했던 때를 상상하며 나는 이 설명할 수 없는 초현실적인 인연이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너무 말짱하다가도 술에 취하면 다른 사람이 되기 일쑤였던 양부가 괴력으로 온 집안의 기물을 부술 때면 못 들은 척 피아노를 치던 양모의 피아노 소리를 이상하게도 그녀는 잊을 수가 없었다.
그들은 때로는 너무 좋은 사람이었고 때로는 너무 나쁜 사람들이었다. 어른이 되어서도 그녀는 누군가를 좋은 사람이라거나 나쁜 사람이라는 구분을 하지 않았다. 누군가 누군가에 관해 물으면 그저 모른다고 대답하곤 했다. 그녀가 확실하게 좋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그녀가 오빠라 부르던 거리의 소년 바이올린 연주자 ‘존’ 뿐이었다. 그것도 그 시절에 관한 판단일 뿐 지금은 모를 일이었다. 양부모 집에서 살던 세월 동안 슈베르트는 그녀의 구원이자 열정, 휴식이었고 반대로 고독과 불안, 절망이었다고, 그녀는 내가 밑줄을 쳐놓은 책 속의 구절을 그대로 다시 말해주었다. 글로 읽는 것과 실제로 듣는 구절의 울림은 묘하게 달랐다. 그렇게 슈베르트 특유의 이름답고 섬세하고 비극적인 서정은 그녀 안의 서정으로 깊이 자리 잡았다.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도 그녀는 늘 슈베르트를 들었다. 14명의 형제 중 넷째로 태어나 31세의 짧은 생애를 마친 슈베르트는 그녀 마음의 고향이었고, 잃어버린 오빠를 이어주는 아름다운 연대기였다. 그리고 어쩌면 오빠는 슈베르트의 환생이었다.
언젠가의 추운 겨울 맨해튼의 이곳저곳을 전전하다 업타운의 거리 한구석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던 오빠와 그녀는 그들을 찾아다니던 양부에게 잡혀 다시 그 집으로 돌아갔다. 생각보다 부부는 그들을 전보다 잘 대해주었고 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머지않아 판명이 낫다. 얼마 뒤 양부는 소년의 바이올린 연주를 눈여겨보던 호텔 바의 매니저에게 존을 팔아넘겼다. 그리고 거기가 어디인지 양부모는 그녀에게 알려주지 않았고 오빠에게서는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양부가 술을 먹고 길을 건너다 차에 쳐 즉사했고, 양모도 얼마 뒤 병으로 죽었다. 그 뒤 양모의 친구가 그녀를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갔고 그녀가 다시 엄마라 부르게 된 그분은 참 좋은 사람이었다고 그녀는 확실하게 말했다. 적어도 둘이나 좋은 사람의 기억을 지닌 자기는 행복한 사람이라는 표정이었다. 이혼하고 혼자 살던 두 번째 양모에게는 자식이 없었고 생계형으로 아이를 입양하는 사람도 아니었고, 그녀를 친 딸처럼 사랑해 주었다. 그녀는 처음으로 제대로 학교에 다니게 되었고, 대학에 들어가서도 늘 오빠를 찾아 세상의 거리 구석구석, 혹은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곳들과 한국음식점들을 찾아다녔다. 어디에도 오빠는 없었고, 오빠를 영원히 기억하는 일은 그에 관해 쓰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두 번째 칵테일 잔을 들어 올리는 그녀의 회화적인 손놀림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글을 쓰는 손이라기보다는 피아노를 치는 손이었다. 하긴 그 두 손이 뭐가 다를 것인가? 글을 쓰는 일은 컴퓨터 모니터 자판기 위에서 피아노를 치는 일이다. 문득 지휘자가 되고 싶었던 나의 오랜 꿈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왔다. 대체 무언가가 되고 싶었으나 이루지 못한 사람들의 회한은 어쩌면 행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범함이란 얼마나 좋은 것인가?
남들이 나 대신 다 해주는 것이다. 그저 음악을 들으며 아무 생각 없이 어디론가 우리를 데려다주는 그 무한한 공간 속에 머무르면 좋은 것이다. 때는 전쟁이 아니라 평화이고 더 이상의 행복은 없을 터이다. 나는 그녀의 글 속에서 잊을 수 없던 한 구절이 다시 한번 떠올랐다.
“생존의 비결은 군인처럼 생각하는 거야. 먹을 수 있을 때 먹고 쉴 수 있을 때 쉬는 거지.”
그리고 엉뚱하게도 그녀가 찾아다니는 바이올린 켜는 소년과 같은 흔한 이름 ‘존’이라는 이름을 가진 낡은 군복 속에 반짝이는 무거운 훈장들을 지니고 다니던 퇴역 중령 ‘존’을 떠올렸다. 그들이 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같은 이름을 지닌 두 사람의 크리스틴 혜경이 같은 사람이 아니듯이.
우리는 세잔 째 블러디 메리 잔을 부딪쳤다.
그녀는
처음 먹어본다는
블러디 메리 칵테일을 좋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