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루스트 책방
쿼런틴, 나는 이 단어가 마음에 든다. 나 같은 부류의 인간은 종일 책을 읽고 영화만 보아도 평생이 짧게 느껴질지 모르겠다. 초등학교 시절 수업 시간에 내가 했던 일은 알고 보니 명상이거나 멍 때림이었다. 하긴 멍 때림 대회가 생긴 지도 오래되었다. 세상은 한 치 앞도 알 수 없다. 초등학교 시절, 다른 아이들도 다 나 같으려니 생각했다. 그 지루하고 밑도 끝도 없는 선생님의 강의 내용을 진짜로 경청하는 아이들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수업을 전혀 듣지 않으니 시험공부 하는 데 늘 시간이 걸렸다. 교과서와 참고서를 들여다보면 다 처음 보는 내용이었으니까. 성적이 나쁘지 않았던 걸 보면 집중력이 없는 편도 아니었다. 나는 요새 같은 쿼런틴 시대에 맞는 유형의 인간으로 태어났다. 엄마 뱃속이야말로 최초의 쿼런틴이 아니던가? 자가 격리와 은둔의 시대, 드디어 내가 바라마지않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나는 이 쿼런틴 시대가 끝나지 않기를 속으로 은근히 희망했다.
역사상 방에서 나오지 않고 자기만의 세계 속에서 산 사람들 중 훌륭한 사람들이 많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중에서도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쓴 마르셀 프루스트는 대표적인 쿼런틴 인간형이다. 은둔형 외톨이가 소수가 아니라 다수가 되어 정상이 되는, 최초의 자가 격리 인류가 드디어 시작되는 것은 아닐까? 소수 성애자의 숫자가 늘어 어느날 소수 성애자라는 말 자체가 없어질지도 모른다. ‘셀프 쿼런틴’ 인류는 네안데르탈인이나 그 비슷한 이름의 인종보다 멋지게 들린다.
오랜 세월 신문밖에 모르는 기자였던 우리 아버지는 신문사를 그만둔 뒤 지금의 서촌에 헌책방을 차리셨다. 그 주변의 누상동, 누하동, 체부동, 내자동, 사직동, 효자동, 통의동, 옥인동, 필운동 등은 어릴 적 내 친구들의 집이 있던 정겨운 이름의 동네들이다. 책방 한구석에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꽂혀 있었고, 어린 내 마음속에 그 제목이 아로새겨졌다. 어른이 되어서도 끝까지 읽은 사람이 몇 명이나 될지 모를 그 책이 왜 내 머릿속에 남아 있는지 늘 궁금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너무 길고 방대해서 다 읽지는 못할지라도 그 제목에 우리의 생이 다 녹아있기 때문이라는 걸. 평생의 직업인 신문기자를 그만두고 헌책방을 차린 아버지는 생의 남은 시간들을 책 속에서 살다 가셨다. 아버지는 자신이 원하던 시간들을 잠시나마 되찾았던 것일까? 하지만 누군들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을 수 있단 말인가?
시인이 되고 싶던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중소기업에 취직했다. 내가 그 동네 헌책방을 이어받으리라고는 생각 못 했다. 아버지 옆에서 늘 책이 팔리고 새로 들어오고 하는 걸 돕던 여동생이 한국문학을 공부하러 온 독일인과 결혼해 떠났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지병으로 쓰러지시자 할 수 없이 내가 그 책방을 물려받았다. 아버지가 늘 앉아계시던 책방을 차마 닫을 수가 없었다. 아버지의 책방은 제목이 없었다. 그냥 책방이었다. 지금 생각하니 미니멀한 좋은 제목인 것 같다. 내가 그 책방을 ‘시간 서점’으로 바꾼 것도 어린 시절 헌책방 구석에 늘 놓여있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잔상 때문일 것이다. 멍 때리며 헌책방에 앉아 생각에 빠지거나 아무 생각 안하거나 시를 끄적거리거나 하는 책방 속의 시간은 마치 초등학교 시절의 수업 시간처럼 나만의 쾌적한 쿼런틴 세상이다. 책방 운영은 현실적으로는 그리 수지가 맞지는 않지만 신선하고 맛있는 커피를 팔기도 해서, 오래된 단골부터 동네 책방이 정겨워 커피를 마시러 온 젊은 손님들로 조용히 북적인다.
‘프루스트 책방’이라고 이름 붙이고 싶었지만 금호동 어딘가에 ‘프루스트의 서재’라는 독립 서점이 이미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독립서점, 독립출판, 독립영화 등등 독립이라는 말이 독립운동에서 유래한 것일까? 어쨌든 그곳에서 프루스트 낭독회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내가 한 발 늦었다. 그곳에 꼭 가보고 싶다. 그 낭독회에 가면 아름답고 낮은 목소리로 영원히 다 읽지는 못할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는 내 첫사랑이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다. 이 세상엔 같은 생각, 같은 꿈을 꾸는 사람들이 반드시 있다. 우리들이 연대한다면 참 아름다운 세상이 열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코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모두가 평등한 진정한 공산주의가 존재하기 어렵듯. 사이비 공산주의도 사이비 사회주의도 사양하겠다. 그냥 따로따로 잘 살면 될 일이다.
책을 사러 가끔 오는 한 여자의 인상이 첫사랑 그녀와 닮아 데이트를 시작했고, 나를 무척 좋아하는 그녀가 결혼을 원해서 ― 좀 비겁한 이유이긴 하지만 사실이다. ― 목련이 뚝뚝 떨어지던 늦봄 어느 날에 결혼했다. 기대하지 않았던 결혼이라 결혼생활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나쁘지 않다는 건 그녀가 나의 쿼런틴 생활에 전혀 방해가 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우리는 서로의 쿼런틴을 방해하지 않을 뿐 아니라 격려하고 이해하고, 서로 상처 주지 않는다는 규칙에 사인을 했다. 아내도 나도 손님이 없는 날에는 조용히 하루 종일 책을 읽는다. 날씨 좋은 날에는 폴란드 작가 올가 토카르추크의 소설 『방랑자들』이 생각난다. 어느 페이진가에 있던 “태양이여 책을 읽어라.”라는 구절이 하루 종일 떠오른다. 아마 그 구절은 홍수에 책이 다 젖어버린 도서관의 이야기였던 것 같다. 태양이 책을 읽어야 젖은 책들이 마를 테니까. 내게 가장 영향을 미치는 존재도 아마 태양일 것이다. 날씨 좋은 날에는 한없이 행복하고 날씨가 나쁜 날에는 한없이 불행한 유형, 쿼런틴 인간, 하지만 앞으로 나는 날씨에 그렇게 영향을 받지 않는 인간이 되고 싶다, 우리 모두는 시간의 뗏목을 붙들고 떠내려간다. 어느새 뗏목도 사라지고 마냥 떠내려간다. 우울증이란 자신에게, 아니 누구에게나 주어진 사형선고를 잊지 못하는 병이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그 제목을 떠올리면 피겨 스케이팅 선수였던 나의 첫사랑이 떠오른다. 나는 늘 그녀와 함께 춤추는 남자 피겨 스케이팅 선수가 되고 싶었다. 부모님께 이야기를 꺼내면 늘 야단을 맞았고, 나는 상상 속에서 내게는 불가능한 세계인 얼음 위에서 영원히 미끄러지고 싶었다. 그녀는 백조의 호수에서 마법이 걸려 백조로 변한 공주였고, 안데르센의 인어공주였으며 겨울왕국의 주인공이었고, 내 영원한 사랑이었다. 나는 그녀와 함께 빙판을 미끄러지는 대신 시를 썼다. 나의 얼음공주여, 그녀는 내 기억 속에서 영원하다. 나이 들어 결혼해서 아내와 사랑을 나누는 동안에도 나는 그녀가 빙판 위에서 미끄러지는 장면을 떠올렸다. 그녀는 새처럼 빙판 위에서 날았다. 나는 늘 그녀의 하얀 어깨 위에 키스하고 싶었다.
나는 늘 그녀를 바라보는 뭇 사내아이들의 시선에 질투를 느꼈다. 그녀는 난다. 그녀는 새보다 빠르고 새보다 우아하다. 다음 순간 그녀는 빙판 위에서 넘어지고 영원히 열여덟에 머물렀다. 내 사랑, “내가 빙판 위에서 날기 시작하면 네가 꼭 바라봐 줘야 해.” 그렇게 말하는 것만 같던 너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지 오래건만 나는 아직도 너를 잊지 못한다. 네가 얼음 위를 한 발자국 지쳐 나갈 때마다 느끼던 그 하나가 된 느낌은 어른이 된 내게 다시 찾아오지 않았다. 오래전 그 유명한 피겨스케이팅 선수를 텔레비전에서 처음 보았을 때, 순간 나는 그녀를 질투했다. 네가 살아서 계속 얼음 위를 미끄러졌다면 그녀처럼 될 수도 있었을 테니까.
강렬한 빨간 드레스를 입고 빙판 위에서 미끄러져 나가는 그녀의 환생을 본 건 동생의 초대로 한 달간 머물렀던 베를린 시내 실외 스케이트장에서였다. 허공에서 뱅글뱅글 돌고 또 돌다 날아오르던 그녀의 기억. 그 순간 나는 오래전에 본 빔 벤더스의 영화 「멀고도 가까운」Faraway, So Close!속의 대사가 떠올랐다.
“네가 영웅이면 네 시간도 영웅이다.
네가 창녀면 너의 시간은 속임수다.
네가 예술가면 너의 시간은 창조주다.
아직도 지금이다.
좋은 생각은 늘 너무 늦게 떠오른다.”
― 빔 벤더스, 「멀고도 가까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