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남편은 프랑스인이고 화가다. 남편은 하루 꼬박 여덟 시간 그림을 그린다. 나는 하루에 한두 시간 프랑스 소설을 한국어로 번역하는 일을 한다. 번역은 감각과 언어력과 지성이라 불리는 모든 것들을 다 합쳐서 이름 모를 적과 싸우는 일이다. 원작의 운명이 걸린 중요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극소수의 사람들만 알아주는 지극히 고독한 작업이다. 사실 나의 꿈은 프루스트의 방대한 책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지금껏 없었던 지극히 주관적인 나만의 언어로 번역하는 일이었다. 그 일에 평생이 걸린다 해도 꼭 해내고 싶었는데 시작만 수만 번 했다. 언젠가는 끝내고 말리라. 하긴 그 책을 끝까지 읽은 사람이 몇이나 될까? 끝까지 읽지도 않으면서 그렇게 팬이 많다는 것도 신기하고 부러운 일이다. 평생의 병약함과 고독과 끈기, 어쩌면 그것이 그의 원대한 꿈을 이룬 자양분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니, 원대한 꿈이라니. 참 허망한 말이다. 프루스트의 영원한 유명세는 모차르트나 베토벤이나 반 고흐처럼, 이를테면 그 자신을 넘어서는 초특급 브랜드이다. 그러니까 영원히 위대한 사람으로 남는 일은 자기 자신이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들을 위한 최고의 명품 브랜드 선물인 것이다. 그런 생각에 이르면 우리가 보통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도 행복한 일일지 모른다.
어쨌든 프루스트 덕분에 나는 평생의 행복한 일을 찾은 셈이다. 나는 하루에 한두 시간 남편의 조수 역할도 한다. 쏠쏠히 건물들에 큰 그림이 걸리기도 하는 전업 작가인 남편이 지시하는 그대로 캔버스에 밑칠을 한다. 여기는 빨간색으로 저기는 회색으로. 벽에 페인트를 칠하듯 굉장히 단순한 반복 작업이다. 미술이라면 고등학교 졸업 이후로 남편과 결혼해 붓을 만진 게 처음이다. 하긴 나는 늘 그림을 좋아했다. 커다란 붓으로 대형 캔버스에 칠을 하는 일은 처음에는 손이 떨리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익숙해져, 번역을 하면서 쌓이는 스트레스를 칠하는 일로 다 날려 버리기도 한다. 메리포핀스의 마술 빗자루를 타고 낯선 곳으로 날아가는 기분이다. 신기하게도 남편의 이름은 마르셀 프루스트이고, 내 이름은 지나 프루스트이다. 그는 나를 지나로 부르지만 다른 이들은 모두 ‘마담 프루스트’라고 부른다.
대학시절 내 전공은 불문학이었다. 그중에서도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의 후각의 현상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파리로 유학을 와서 남편을 만났다. 그가 자기 이름을 말했을 때 나는 거짓말인 줄 알았다. 그를 좋아하기 시작한 건 그 이름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홍차에 적신 과자 마들렌의 냄새를 맡고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장면은 내게 마치 나 자신의 일처럼 각인되었다. 과거에 맡았던 특정한 냄새에 자극받아 기억하는 일을 ‘프루스트 현상’이라 부른다. 내게 프루스트 현상은 일종의 기억술, 혹은 살아있다는 걸 문득 깨닫게 하는 삶의 연금술이었다. 내게 가장 먼저 각인된 냄새의 기억은 무엇일까? 그리고 그 냄새가 환기시킨 것은 또 무엇일까? 골목 안에 감돌던 비의 냄새, 동네 어귀에서 풍겨오던 도넛의 냄새, 봄날의 라일락 냄새, 그리고 어른이 된 언젠가 처음 느낀 사랑하는 사람의 숨 냄새…….
남편을 처음 만난 건 어느 해 크리스마스 오후 극장에서였다. 단짝 친구가 방학이라 서울로 가버린 탓에 나는 혼자 극장에 갔다. 기억하건대 그때 본 영화는 「시네마 파라디소」와 「말레나」로 널리 알려진 주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의 「피아니스트의 전설」이었다. 영화 속의 주인공은 호화 유람선에서 출생하여 버려진 채 배 안에서 자라 신분증도 여권도 아무것도 없이 배 안을 한 번도 떠나보지 않은 채 생을 마감하는 고독한 영혼의 소유자다. 그 신기 어린 피아노 연주를 한번이라도 보고 들은 사람은 영원히 잊을 수 없다는 한 피아니스트의 실존에 관한 이야기였다. 곧 다이너마이트 폭파가 시작되는 낡은 배 안에 끝까지 남아있는 그를 구하러 들어간, 생애 단 한 사람의 친구 앞에서 주인공의 마지막 말은 내 가슴 속에 하나의 슬픔, 하나의 눈물의 불씨로 남았다. 모두가 다른 별로 이사를 간, 텅 빈 폐허의 지구를 떠나지 않으려는 최후의 지구인 같았다고나 할까? 그때 피아니스트, 그가 했던 말들이 지금도 내 기억 속에 생생히 살아있다.
“내가 두려운 건 보이지 않는 세상의 끝이다. 피아노 건반은 시작과 끝이 있다. 88개의 유한한 건반을 가지고 우리는 무한한 음악을 연주한다. 이걸로 내 인생은 충분하다. 배 밖의 세상은 끝없는 건반, 무한한 건반이다. 그건 내가 연주할 수 없는 신이 연주하는 음악이다. 그건 내겐 너무 아름다운 여인, 너무 긴 여행, 너무 강한 향수, 내가 연주할 수 없는 음악이다. 나는 이 배에서 내릴 수 없다. 꼭 필요하다면 차라리 내 삶에서 내리겠다.”
내가 영화를 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던 건 그 시절 나 자신이 배 안에 갇힌 것처럼 그렇게 외로웠기 때문이었다. 영화 속 피아니스트의 절대고독이 내게 감정이입 되어, 이후로도 가끔 영화 속의 바다 냄새를 맡으며 기억 속으로 침잠하기도 했다. 그래. 내게도 세상은 너무 아름다운 여인, 너무 긴 여행, 너무 강한 향수 같아서 만질 수도 떠날 수도 돌아올 수도 없는, 맡으면 진한 향수처럼 현기증이 나는 낯선 곳이었다. 그즈음 하나뿐인 아군이었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셨는데, 그것은 병이나 사고로 인한 것이 아니라 높은 건물에 올라가 투신자살을 하셨기 때문이었다. 아버지가 유일한 혈육인 내게 남긴 유서는 꼭 네가 좋아하는 마르셀 프루스트의 문학에 관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전문가가 되라는 것과 내게 물려줄 쩍하면 물이 새는 낡고 작은 아파트 한 채에 관한 편지였다. 청렴한 공무원이었던 아버지가 정치적인 일에 연루되어 괴로워하다가 세상의 끝에서 뛰어내렸다. 그런 어디서나 있을법한 이야기의 주인공이 나의 아버지라니, 게다가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딸을 두고 세상 끝에서 떨어졌다니 믿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아버지가 내게 남긴 편지는 “내가 만일 죽더라도 너는 굳건히 살아남아라, 사랑하는 내 딸아.” 그런 내용이었는데 피치 못할 무언가가 있는 것처럼 보였고, 어쩌면 누군가에게 살해당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을 떨칠 수가 없었다. 건반 88개의 배 안의 세상에서 무한한 건반이 펼쳐지는 배 밖으로 떨어진 외로운 지구인. 게다가 이 고독한 파리라니, 그렇게 나는 계속 훌쩍거리며 울었던 것 같다.
영화가 끝나고도 한참을 일어서지 못하고 앉아 있는데, 혼자 영화를 보러 와 하필 우는 여자 곁에 앉게 된 모르는 프랑스 남자가 울어서 엉망이 된 내게 손수건을 내밀었다. 마른 몸매에 웃는 건지 웃지 않는 건지 애매한 표정을 지닌 그가 내미는 손수건은 영화가 끝나서 갑자기 현실로 돌아온 밝음과 어둠 사이의 조명 아래서 바다 빛깔의 작은 깃발처럼 보였다. 내가 괜찮다고 손사래를 치자 그는 웃으며 손수건을 내 무릎에 얹고, 실례한다며 앉아있는 내 앞을 스쳐 지나 먼저 밖으로 나갔다. 거울을 보니 마스카라가 번져 얼굴이 피에로처럼 보였다. 문득 손수건을 건네며 살포시 웃던 그 사람의 얼굴이 영화 속의 피아니스트랑 닮았다는 생각이 얼핏 스쳐 지나갔다. 그렇게 스쳐 지난 뒤 나는 그림을 전공하는 절친의 학교 실기실에 갔다가 그를 우연히 다시 만났다. 첫눈에 나를 알아보고는 수줍은 듯 손을 내밀던 그가 자신의 이름을 말했을 때, 나는 그가 장난을 치는 줄 알았다. 친구는 시간강사인 그를 마르셀이라고 부르며 나를 소개했다. 이 친구가 마르셀 프루스트 전공이라며 호들갑을 떨자 그가 눈을 찡긋거리며 아마도 대단한 신의 가호라고 맞받아 호들갑을 떨었다. 그렇게 우리 셋은, 아니, 친구의 남자친구인 같은 미술학도 한 사람과 넷이 우리는 가끔 만났다. 우리가 급속도로 가까워지면서 결혼을 약속했을 때, 어렴풋이 내게 떠오르는 기억은 모든 것이 다 사라지고 폐허가 된 배 안에 남아 피아노도 없이 허공에 피아노 건반을 치는 고독한 피아니스트의 이미지였다. 피아노 건반 대신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는 나의 연인 마르셀 프루스트는 고독하고 섬약한 예술가였고, 그에게 내가 없는 이 세상은 우리가 우연히 같이 봤던 영화 「피아니스트의 전설」 속 주인공의 말처럼, 너무 긴 여행, 너무 강한 향수였고, 당신이 너무 아름다워서 현기증이 나는 그런 여자가 아니라서 더욱 사랑한다는 그 말이 되는지 안 되는지 나는 몽롱한 사랑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나는 내 인생을 몽땅 사로잡고도 남을 그 이름 ‘마르셀 프루스트’의 아내가 되었고, 커다란 흰 공백의 캔버스에 겁도 없이 색칠을 해도 좋은 화가의 조수가 되었다. 햇빛이 환하게 들어오는 작업실에 앉아 눈을 감으면 비 냄새, 라일락 냄새, 바다 냄새, 내가 태어나 처음으로 맡았던 향수 ‘화이트 린넨’의 향기, 홍차에 적신 마들렌의 냄새가 떠오르며, 나는 88개의 피아노 건반이 88,000개의 냄새가 되어 내 몸속을 구름처럼 떠다니는 것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