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편지를 읽으며 새로 온 한국인 간호사를 생각합니다. 그녀는 누가 남자친구를 카불에서 보았다는 소식을 듣고 정신없이 달려가더군요. “사랑, 그것은 믿는 것이다.” 그녀의 얼굴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믿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어떤 실수나 잘못을 해도 결국은 내 편이 되어줄 거라는 관용의 의미를 내포하는 것이겠지요.
어제는 아프간 동부에서 미군이 탈레반 대원들을 상대로 실시한 공습으로 일가족 열세 명이 사망하고 열다섯 명이 부상을 당하는 일이 일어났어요. 물론 숨어있던 탈레반 대원들도 수십 명 사망했고요. 서로 죽이고 죽는 이 작은 전쟁들에서 민간인들은 오늘도 하릴없이 죽어갑니다. 문득 요즘 뉴스마다 떠들썩한 당신의 나라를 떠올려요. 그곳에 당신이 살고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조마조마해지네요. 바그다드에서 맨체스터에서 런던에서 파리에서 브뤼셀에서 자살폭탄 테러 소식이 끊이질 않고, 지구 한 편에서는 폭우와 지진 같은 자연재해로 수 없는 사람들이 죽어갑니다. 당신이 이곳을 생각하면 너무도 위험하듯이 여기서도 당신의 작은 나라는 너무 위험해 보이네요. 내 친구 박경아, 삶이 선물이라면, 살아남는 것은 그 선물에 대한 보답입니다. 오늘은 아픈 동생을 업고 병원에 온 열 살 소년에게 무엇이 되고 싶냐 물으니 순교자로 살고 싶다 하더군요. 지뢰를 밟아서 다리 하나를 못 쓰는 소년은 주저하지 않고 말했어요. 사는 건 좋은 건데 왜 그렇게 위험하게 살려고 하나 물으니 그래도 순교자가 되고 싶다는 거였어요. 누가 너에게 이런 생각을 하도록 했냐고 물으니 그냥 자기 자신이래요.
알라가 우리보고 죽으라고 명령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거라던, 뉴스 속에서 본 소년 대원이 문득 오버랩되더군요. 죽은 뒤에 원하는 게 뭐냐는 물음에 알라를 만나고 싶다고, 알라가 잘했다고 말해주길 바란다고 하던 소년 자살폭탄 테러범의 무섭고 슬픈 꿈이 온 병원의 벽마다 더덕더덕 붙어있는 것 같아 가끔은 소름이 끼쳐요. 의사가 된다는 건 어떤 상처에도 무감각해진다는 거지요. 맨 처음 시신 해부실습을 했던 날을 가끔 떠올려요. 실습대 위에 천으로 덮인 시신들이 있었고, 쿵쿵 하고 심장 뛰는 소리가 들렸어요. 절대 시신에서 들릴 리 없는 나 자신의 심장 뛰는 소리였어요. 개구리나 흰 쥐를 해부해 본 적은 있어도 사람은 처음이었어요. 두렵고 경건하고 떨리는 기분, 그 처음의 두려움과 경건함이 수많은 죽음들이 매일매일 실려 나가는 이곳에서 아예 잊힌 것은 아닐지 생각합니다. 맨 처음 시신 해부 실습을 한 날, 헤어진 전처에게 처음으로 데이트 신청을 했어요. 망설이던 모든 일들이 아주 사소한 일들로 생각되더군요. 사소한 일들, 그것처럼 내가 사랑하는 게 있을까?
삶과 죽음의 갈래 길 같은 무거운 길이 아니라 당신처럼 사소한 그림을 그리며 사소한 일들로 기쁘고 슬퍼하며 그렇게 살고 싶었는데. 너무 멀리 왔네요. 의사가 된 걸 후회하지는 않아요. 언젠가 이라크 전쟁 발발 직전 바그다드에 사는 고등학생들이 적십자사를 통해 미국의 학생들에게 보낸 편지가 생각나네요. “의사가 되고 싶어요. 전쟁이 터지면 더 이상 일기를 쓸 수 없을 거예요. 내 일기를 읽는 사람 모두가 나를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이라크에 꿈 많은 한 소녀가 있었는데 전쟁 때문에 그 소녀가 꿈을 이룰 수 없었다는 걸 사람들이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난 미래에 내 꿈이 이루어지길 바랄 뿐이어요. 의사가 되어서 죽어가는 사람들을 돕고 싶어요.” 벌써 옛이야기가 되어버린 절절한 편지이지요. 그 아이는 의사가 되어 죽어가는 사람들을 돕고 있을까? 아니 전쟁통에 살아남기라도 했을까?
언젠가도 말했듯 나는 의사가 아니라 화가가 되고 싶었어요. 지금부터라도 늦을 건 없겠죠. 아니 그림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는 게 훨씬 좋네요. 어쩌면 뭔가가 되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것도 같아요. 어쩌면 의사가 된 건 의사가 되고 싶어서가 아니라 누군가를 돕고 싶어서였을 거예요. 세상에는 누군가를 돕고 싶은 사람과 무언가를 남기고 싶은 사람이 있기 마련이지요. 이 지긋지긋한 전쟁의 한가운데 뛰어든 것도 따지고 보면 누군가를 돕고 싶어서라고, 아니죠. 그냥 외로워서예요. 순교자가 되고 싶다는 이슬람의 후예들도 다 외로워서죠.
1200년 전 세계의 중심은 고대문명의 발상지인 바그다드였어요. 철학과 과학, 문학과 예술의 중심지였던 바그다드는 1492년 콜럼버스의 대서양 횡단 이후 세계사의 무게중심이 서유럽으로 옮겨진 역사 왜곡 탓에 저평가되기 시작한 거라 하네요. 세계의 중심이었던 바그다드, 우리가 따로 또 같이 본 영화 미국 서부 모하비 사막 한가운데가 설정인 『바그다드 카페』, 시리아에서 이라크로 가는 길목 사막 한가운데에 있던 진짜 바그다드 카페, 그곳에서 당신의 그림이 걸려있는 걸 보았던 신비한 공간 ‘바그다드’, 당신과 내가 소식을 주고받는 내밀한 사이버 공간 ‘바그다드 카페’, 언제 우리 둘이 함께 진짜 바그다드를 가볼 수 있을까? 더 이상 어디서도 폭탄이 터지지 않는, 근사한 고대 유적들이 황혼 속에 빛을 발하는 바그다드에 당신과 함께 가보고 싶네요. 알베르 카뮈는 이렇게 말했어요. “문명이 스스로를 망가뜨리지 않도록 막는 게 작가의 임무다.” 이 전쟁의 한 가운데서 나는 가끔 문제적 인물 히틀러를 떠올려요. “나는 잘못되었지만 세상은 더욱 잘못되어있다. 국민을 다스리는 데는 빵과 서커스면 된다. 쓸모 있는 인간이란 사람을 때릴 수 있는 인간뿐이다. 불멸의 업적과 나의 이름이 역사에 길이 남을 것임을 알고 나는 기쁘게 죽는다.” 그는 채식주의자에다 금연 금주의 제창자였으며 동물과 어린이를 좋아한 사람으로도 유명하죠. 자살 직전에 중얼거린 한마디는 “음악이 끝나면 불을 꺼 주게.”였대요. 히틀러가 미술학교에 합격했다면 역사는 달라졌을까? 우리가 맨해튼의 어둑한 소호 거리에서 우연히 다시 만났다면 우리의 삶은 달라졌을까?
“죽기 전에 단 한 사람이라도 믿어보고 죽고 싶다. 당신이 그런 사람이 돼줄 수 있습니까?”
─ 일본 작가 나쓰메 소세끼의 소설 『마음』중에서
정말 당신은 그런 사람이 되어줄 수 있나요?
─ 바그람에서, 당신의 친구 앨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