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끔 지휘자가 된 꿈을 꿨다. 꿈속에서의 지휘는 마치 운전을 배우지 않은 사람이 경사가 가파른 언덕을 문제없이 운전하며 달리는 것처럼 쉬운 일이었다. 슈베르트도 말러도 베토벤도 차이코프스키도 나를 돕는 것 같았다. 지휘자는 연주자들과 관객을 동시에 바라보는 앞과 뒤에 눈이 달린 존재다. 오케스트라를 앞에 두고 뒤에는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의 박수를 받으며 나는 신나고 멋진 지휘를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아니 하루 종일이라도 끄떡없었다. 어쩌면 한 십 년이 지나도록 쉬지 않고 지휘를 하기도 했다. 그동안 오케스트라 부원들이 교체되기도 했고 객석 중의 관객들은 늙어서 노인이 되기도 했다. 가장 오랜 시간을 객석에 앉아 있는 사람은 말할 것도 없이 첼리스트가 되고 싶었던 악기상 아버지였고, 이상하게도 그 옆에 우리를 버리고 떠난 자식에게 무책임한 천재 과학자 내 어머니가 앉아 있었다. 유난히 큰 소리로 울려오는 그녀의 박수 소리를 나는 알아들었다. 평생을 혐오해 온 내 어머니였다.
나는 늘 너무 다른 아버지와 어머니, 따듯한 포유류의 피와 파충류의 차가운 피가 섞인 유전자의 결합이 나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아버지는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이고, 어머니는 천재 과학자로 태어난 사람이었다. 내가 어머니를 닮지 않은 건 분명했다. 인간의 아이큐는 계속 진화되어 왔다. 자료에 의하면 인간의 평균 아이큐는 백 년 전에 70이었고, 지금은 130이라 한다. 추상적 사고력은 점점 향상되고 있고 세상에 없는 존재들이 매 순간 새로 탄생한다. 말하자면 2024년에 태어난 아이는 인류가 축적한 모든 경험의 유전자를 합한 진화된 인간이며, 그중 가장 우수한 결정체가 인공지능인 거다. 나는 내 어머니가 인공지능을 닮은 인간이며, 모성애 따위는 없는 존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가끔 아무리 문명이 발달해도 비가 오면 우산을 쓰는 건 예전이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게 없다는 게 신기하게 느껴진다. 세월이 아무리 변해도 변하지 않는, 아니 별 뾰족한 수가 없는 지독히 아날로그적인 것들을 생각한다.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콘트라베이스, 하프, 플루트 등등의 클래식 악기 연주, 그림그리기, 수놓기, 음식 만들기, 그중의 가장 꼭대기에 지휘하기가 있다. 인공지능 지휘자가 없으리라는 법은 없지만 세상의 지휘자가 다 죽고 지휘자라는 직업이 없어진 뒤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이 세상을 지휘하는 보이지 않는 힘들, 끊임없이 지구 어디에선가 계속되는 전쟁, 보이지 않는 끈으로 이어진 우연한 만남들, 보이지 않는 지휘봉들이 세상 곳곳에서 튀어나와 우리의 의식과 무의식을 지휘한다. 일광욕 외에 절대 목욕을 하지 않는 퇴역 중령이 옷 속 깊숙이 달고 다니던 훈장들이 가끔 떠올랐다. 훈장은 어쩌면 상처와 같은 개념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손재주가 좋았던 아버지는 뭐든지 뚝딱하고 신기한 물건들을 만들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기찻길 위의 가지가지 색깔의 기차들, 아버지는 뉴욕 맨해튼의 록펠러센터 근처에 있는 엄청나게 큰 대형 장난감 백화점 ‘FAO 슈왈츠’에 가서 아이디어를 얻어 그보다 백배는 더 훌륭한 나만의 장난감을 만들어 주었다. 세상의 모든 장난감을 다 갖다 놓은 듯한 그곳은 하루 종일 놀아도 다 볼 수가 없을 만큼 컸다. 나는 그 장난감들을 기억 속에 담아와 꿈속으로 가져가 계속 놀곤 했다. 내게 어릴 적 가장 행복했던 장소를 꼽으라면 바로 그곳이다. 아버지는 나를 그곳에 데려다주고 일을 하러 가곤 했다. 아버지가 나를 찾으러 올 때까지 나는 그곳에서 지루한지 모르고 놀았다. 그곳에 놓여있던 엄청나게 큰 대형 피아노가 생각난다. 실제 키보드 모양을 그대로 본떠 만든 흰색과 검은색이 교차하는 디자인 피아노, 내구성이 강한 플라스틱과 센서 기술로 만들어져 사람들이 올라가 걷거나 뛰어도 안전했다. 진짜 피아노가 아닌데도 키에 압력 감지 센서가 내장 되어있어 발로 밟을 때마다 실제 피아노 소리가 났다 여러 사람이 함께 올라가서 협연할 수도 있었다.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도 올라가 가족끼리 젓가락 행진곡 같은 쉬운 곡들, 혹은 즉흥적인 불협화음을 연주하던 그 거대한 피아노는 내게 장난감을 넘어서 희망이란 단어를 생각나게 했다. 아무렇게나 마음대로 밟아도 훌륭한 소리가 나는, 그건 내게 희망이라는 기억의 오브제였다. 어머니가 없어도 아버지와 함께 세상이라는 피아노 위에 올라가 우리만의 음악을 만들 수 있는 곳, 언젠가 톰 크루즈가 주인공이던 「빅」이라는 영화에서 나는 그 피아노를 다시 만났다. 피아노 위에 사람들이 올라가 건반을 밟으며 연주하는 기억 속의 피아노 소리가 되살아나 아버지가 만든 장난감 기차의 기억으로 이어졌다. 꼬마 기차가 달리는 기찻길은 내 기억 속에서 계속 이어져 어딘가와 연결되었다. 때로 그 길은 꿈속이거나 영화 속 장면이거나 걱정이거나 희망이거나 절망이었지만 내 기억 속에 남은 또렷한 단어는 다행스럽게도 늘 희망이었다.
희망이란 위기에 대처하게 해주는 끈기라고 누군가 말했었다. 산다는 건 결코 따라잡을 수 없는 시간과의 숨바꼭질이다. 나는 늘 시간과 숨바꼭질을 하면서 그 실낱같은 희망을 마치 애완견처럼 길렀다. 어느 영화에선가 잃어버린 물건을 찾아주는 직업을 본 적이 있다. 잃어버린 지갑, 잃어버린 핸드폰, 잃어버린 애완견, 잃어버린 희망, 잃어버린 애완 귀신…. 애완 귀신을 택시에 두고 내린 사람도 있었다. 애완 귀신을 기르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하긴 잃어버린 신과 잃어버린 귀신은 어떻게 다를까? 잃어버린 어머니와 잃어버린 우산은 또 어떻게 다를까? 어머니가 아버지와 나를 버린 뒤부터 나는 우산을 잃어버리는 취미가 생겼다. 아버지는 내가 아무리 우산을 어딘가에 두고 와도 나무라지 않으셨다. 일부러 그런다는 걸 알지는 못했을 것이다. 우산을 아무 데나 버리고 온 날이면 나는 어머니에게 복수하는 기분이 들었다. 우산으로 변신한 어머니가 내가 모르는 곳 여기저기에 버려졌다. 영화 속에서 들은 명언들은 너무도 많다. 영화 속 인물, 아니 세상의 낯선 사람들이 남기는 명언들은 내 기억 속에 남아 내 목소리로 증폭된다. 드디어는 내가 한 말인지 누군가 다른 사람이 한 말인 구분이 가지 않기도 한다.
“이 세상에서 물건을 찾는 건 정말 모래 속에서 바늘을 찾는 거나 비슷하다. 하지만 찾지 않으면 일말의 희망도 없다.” 이런 구절이 하루 종일 맴돌았다.
“난 이제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요. 하지만 그게 가능할까요? 이 세상에서 물건을 찾는다는 건 정말 모래 속에서 바늘 찾기예요. 사람을 안다는 것도 그런 거죠.”
- 제목이 기억나지 않는 어떤 영화에서
훅 내 마음속에 들어와 자리를 차지하고 눌러앉은 그녀, 크리스틴 혜경이 모래 속에서 비늘을 찾듯 누군가를 찾고 있었다. 어릴 적 한 집에서 남매의 인연으로 지내던 어린 바이올린 연주자, 존이라는 이름은 너무 많았고, 세상의 모래는 너무도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