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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 후보의 전태일재단 방문
2012년 8월 27일, 그날도 나는 산에 가서 일을 하고 집에 와서 샤워를 하고 있었다. 방에서 뉴스를 보던 아내가 다급한 소리로 “여보, 여보 이리 와봐! 내일 박근혜가 전태일재단에 방문한다는데 어떻게 된 거야?” 나는 깜짝 놀라 뉴스를 봤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가 광폭행보로 내일 전태일재단을 방문한다는 것이다.
나는 상황 판단을 위해 여기저기 전화를 했다. 그쪽청계천, 전태일에 관계되는 일에 뒤돌아보지 않겠다던 다짐이 순간적으로 무너져버린 것이다.(나는 2008년 사단법인 전태일기념사업회 상임이사를 그만둘 때 그쪽에 대해서는 관심도 끊고 쳐다보지도 않겠다고 굳게 다짐한 터였다.)
우선 급한 마음에 조헌정 전태일재단 이사장을 찾았다. 그랬더니 조헌정 이사장은 현재 미국에 머물고 있다고 한다. 조헌정 이사장한테 절대로 박근혜를 전태일재단에 발을 들여놓게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었다.
쌍용자동차를 비롯 장기투쟁 사업장 노동자들이 길거리에서 어렵게 투쟁하고 있는데, 그런 현안 문제는 외면한 채 박근혜가 전태일재단에 와서 악수하고 웃는 모습의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전태일을 두 번 죽이는 것이고, 재단이 여기에 동조하는 것은 함께 전태일을 죽이는 행위다.
나는 유가족의 생각이 어떤지 알아보기 위해 전태삼 씨한테 전화를 걸었다. 가족 입장에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다행히 가족입장에서도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그렇다면 오늘 저녁에 빨리 주변 노동·시민단체 관계자들한테 연락을 해서 내일 아침에 박근혜가 재단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전태삼 씨뿐만 아니라 당시 장기투쟁 사업장 노동자, 노동단체, 시민단체 회원들은 박근혜 후보의 전태일재단 방문은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다음 날 아침 전태일기념관 앞에 모였다. 박근혜 방문을 저지하기 위해서다.
전태일기념관 2층 강당에는 전태일 친구 최종인, 임현재, 이승철, 김영문과 전태일재단 사무총장 박계현 그리고 이수호 씨가 박근혜 후보를 정중히 맞이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박근혜 방문은 이른바 ‘국민노총’ 김준용이 박계현한테 제안을 했다. 박계현은 이것을 받아 하루 전날 이소선 어머니 1주기 추모 토론회를 마치고 전태일 친구 최종인, 임현재, 이승철, 김영문, 그리고 장기표, 이수호와 함께 논의한 결과 박근혜를 맞이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아침 일찍 전태일 기념관 앞으로 달려간 장기투쟁 사업장 노동자, 노동 시민단체 회원들과 전태삼 씨는 박근혜 진입을 막기 위해 골목길을 가로막았다. 그러자 박근혜는 전태일 동상 앞으로 가서 헌화를 시도했다.
나는 이 문제에 대해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기껏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와 정치적 거래를 하라고 그동안 십수 년간 투쟁해 온 것이 아닌데, 이제 와서 전태일 정신을 보수 정치인 박근혜한테 갖다 바치다니…
나는 이 사건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장기표 씨한테 항의를 했다. 수십 차례 전화통화도 하고, 만나서도 거세게 항의를 했다. 그리고 이 문제를 일으킨 사람들은 사과하고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장기표 씨는 나에게 육두문자를 써가며 욕설을 하고는 거부했다. 그는 도리어 언론 인터뷰를 통해 “정중히 맞이하려 했는데 노동자들이 비좁은 골목길을 가로막아 무산되었다”면서 노동자들의 무례함을 꾸짖는 듯한 발언을 했다.
박근혜 방문 사건 당사자의 책임은커녕 오히려 그들의 권력은 더욱 공고해졌다. 박계현 사무총장은 흔들리지 않는 위치로 자리 잡고, 이수호 씨는 이사장이 되었다.
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선 평전 집필 방해
2013년 연말에 전태일 문학상 출신 시인한테 전화가 왔다. 그 시인은 출판사 주간도 겸임하고 있었다. 그 시인이 하는 말이 내가 1990년에 낸 『어머니의 길』을 복간할 생각이 없느냐는 것이다. 『어머니의 길』은 당시 이소선 어머니 회갑을 맞이해 급하게 구술을 받아 낸 이소선 어머니 일대기이다. 그런데 그 책은 1979년 박정희 사망시점까지의 이야기로 끝냈다. 그 이후는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에 나머지는 어머니 사후에 쓰기로 이소선 어머니와 약속을 했다.
나는 1990년 어머니 사후에 전 생애를 쓰겠다고 기왕에 약속한 것도 있고, 복간을 하느니 이 기회에 다시 쓰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해 돌베개 출판사에 전화를 해 내 생각을 얘기했다. 돌베개 출판사 한철희 사장은 내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이렇게 해서 『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선 평전』을 2014년 초부터 쓰기 시작했다. 이 글을 오마이뉴스에 2014년 2월부터 연재를 시작했다.
연재 시작 3회 차가 되자 재단 사무총장 박계현이 전화를 걸어왔다. 그동안 한 번도 연락이 없던 박계현이 뜬금없이 전화를 해 이소선 어머니 평전 연재를 중단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네가 뭔데 중단하라 마라 하느냐’고 했다. 그리고 계속 오마이뉴스에 송고를 했다.
이번에는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담당자한테 전화가 왔다. 내용은 전태일 재단에서 공문이 왔는데, 오마이뉴스에 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선 평전을 연재하지 말라는 공문이 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오마이뉴스 입장은 뭐냐고 물었다. 오마이뉴스 입장은 기자들이 보낸 원고에 특별한 하자, 즉 법적 문제나 내부 규정과 일반 관례나 상식적인 문제가 없다면 기사로 채택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말한다.
전태일재단에서 이소선 어머니 전기 발간위원회를 구성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이소선 어머니 전기를 낼 계획이 있으니 나한테 중단하라는 것이다. 나는 이런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소위 발간 위원은 다음과 같다. 위원장 장기표, 위원 이수호, 박계현, 최종인, 임현재, 이승철, 전순옥, 전태삼 등이다. 그런데 정작 전태삼 씨는 이름만 올라있지 아무 내용을 알지 못했다. 전태삼 씨 입장은 내가 그동안 어머니한테 구술을 받아왔고, 함께 노동운동을 오랫동안 해 왔기 때문에 가장 적합하다는 것이었다. 전태삼 씨는 어머니 평전을 누가 쓰면 어떠냐는 생각인데 오마이뉴스에 공문을 보낼 때 가족 일동이라는 명의를 사용한 것이다.
나는 이 문제로 장기표 씨와 또 만났다. 그 자리에서 내가 이소선 어머니 평전을 꼭 써야 한다는 법은 없다. 안 써도 되지만 그래도 내가 그동안 어머니에 대한 기록을 꾸준히 해 왔고 함께 생활도 오래 했기 때문에 비교적 어머니를 잘 아는 사람으로서 어머니 전기를 보다 풍부하게 하기 위해서는 내가 논의구조에 포함되는 것이 맞지 않느냐고 말했다.
이 말에 장기표는 합리적인 이유를 들어 나를 설득하려는 태도가 아니고 윽박질러 주저앉히려는 태도였다. 심지어는 ‘이 새끼 저 새끼’ 하며 욕을 해 대는 것이다. 나는 너무나 실망했다. 그동안 내가 겪었던 ‘장기표 선생’의 모습은 어디로 가고 왜 저렇게 강퍅해졌는지 도리어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이런 억지가 나한테는 통하지 않았다. 나는 계속해서 연재를 이어 나갔다.
약 2년여간 집필을 마치고 2016년 9월 3일 이소선 어머니 5주기 추도식에 맞춰 『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선 평전』이 돌베개 출판사에서 출판되었다.
책이 나오자 각 신문 방송에 소개되었다. 이때 전태일재단은 또다시 이성을 잃은 행동을 시작했다. 이소선 어머니 평전이 마치 불온한 책인 양 비난을 위한 비난을 했다. 책 내용에는 관심이 없고 무조건 책을 폐간하라는 말만 되풀이하는 것이다.
내가 전태일재단 이수호 이사장한테 전화를 해 왜 합법적으로 출판된 책을 가지고 비이성적으로 폄훼하느냐고 항의했더니 이수호 이사장은 전순옥이 돌베개 출판사에 폐간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폐간이라 함은 기존 책을 폐기하고 더 이상 제작을 하지 말라는 뜻인지 모르겠으나 가족이라고 함부로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은 민주시민으로서 맞지 않는 행동이다.
전태일재단의 이성을 잃은 이소선 어머니 평전에 대한 방해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이 책이 출판되자 전국에서 북 콘서트 행사를 기획하고 저자인 나를 초청했다. 이 사실을 인지한 전태일재단은 이 행사를 주최하는 단체에 전화를 해 행사를 하지 못하도록 험담을 했다.
실제로 대구의 전태일이 살았던 집을 복원하는 운동을 하는 단체에서 이소선 어머니 영화 상영과 이소선 어머니 평전 북 콘서트가 예정되었다. 그 자리에 내가 초청되어 이소선 어머니의 생애를 이야기하기로 했다. 그런데 행사 시간 불과 몇 시간 전에 행사가 취소되었으니 오지 말라는 것이다. 내가 무슨 이유로 그러느냐고 물어도 주최 측은 미안하다는 말만 하지 그 이유를 말하지 않았다. 나는 누구의 소행인지 알고 물었다. 전태일재단 관계자가 전화를 해서 취소하라고 한 것이다.
이렇게 대구의 행사를 취소시킨 것에 재미를 붙인 전태일재단은 이번에는 원주에서 평전 북 콘서트를 한다는 것을 알고 원주시민연대에 전화를 해 또 험담을 하고는 행사를 취소하도록 압력을 넣었다.
원주에서는 대구와 달리 이런 부당한 요구를 하는 전태일재단에 도리어 “너희들이 뭔데 남의 행사를 하라마라 하느냐”면서 전화를 한 상대방이 누구냐고 따져 물었다.
나는 전태일재단의 이런 횡포에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서 전태일재단을 대표하는 이수호 이사장의 사과를 SNS 등을 통해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이에 대해 이수호 이사장은 그 일은 자기가 하지 않고 사무국에서 했다며 사과를 하지 않았다.
이수호 이사장의 사과를 요구하는 과정에서 이수호 이사장이 2012년 8월 박근혜의 전태일재단 방문 결정 회의에 참석했고, 다음날 재단에서 박근혜를 정중하게 맞이하려고 기다렸던 사실을 공개했다. 그동안 이수호 이사장은 이 사실을 숨기고 있었다.
이 문제로 내가 이수호 이사장과 다투고 있을 때 민주노총 대외협력위원장으로 있던 한석호가 나서서 이수호 이사장을 대신해서 나를 공격했다.
나는 왜 뜬금없이 한석호가 나서서 나를 공격하는가 생각해 봤다. 당시 민주노총 선거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한석호가 미는 후보는 당선 가능성이 거의 없었다. 나는 민주노총 선거가 끝나고 자기 일자리를 전태일재단으로 옮기려면 이사장한테 잘 보이기 위해서 한석호가 남의 일에 끼어드는 것이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