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구름빵』 백희나 작가가 한국 작가 최초로 수상하여 한국에도 널리 알려지게 된 세계적 권위의 아동문학상인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상’이 2024년 수상자로 비영리재단을 택하여 눈길을 모았다. 바로 호주의 ‘원주민문해력재단’ILF-Indigenous Literacy Foundation이다. 원주민문해력재단은 2004년 수지 윌슨Suzy Wilson 프로젝트로 출범하였다. 리버벤드 서점Riverbend Books의 대표이자 전前 교육자였던 그는 외딴 원주민 지역사회Remote Communities에 살며 읽고 쓰는 능력이 낮은 호주 원주민을 지원하는 일이 합당하다고 판단, 이를 위한 기금을 모으는 지역사회 내 프로젝트를 시작하였으며 이는 이후 현재의 원주민문해력재단으로 성장하여 호주 대륙 전역 427개의 원주민 공동체와 일하고 있다.
유럽인이 이주하기 전부터 호주에 살았던 원주민들은 ‘애버리지니Aborigine’라고 부르며, 호주 인구의 약 3.2%를 차지한다. 이들은 건강과 기대수명, 교육 수준, 고용률 등에서 비원주민과 큰 격차를 보인다. 호주 정부는 2008년부터 ‘격차를 없애다Closing the Gap’라는 정책하에 다양한 지원과 정책을 펼쳐왔지만, 목표 달성 시기였던 2018년 기준으로 1차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였다. 이에 호주 연방정부와 각 주/준주 정부는 2020년에 호주 원주민의 4개의 최우선 개혁과 기대수명, 교육 수준, 취업률 등 16가지 목표를 설정하고 2031년까지 이를 달성하겠다는 협정을 맺은 바 있다.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상’의 심사평에 따르면 호주는 여러 방언뿐 아니라 적어도 250개 토착 언어의 본고장으로 오랜 차별의 역사로 인해 원주민 공동체는 사회기반시설 부족, 빈곤, 실업 등의 취약성을 겪고 있다. 가장 가까운 도서관이 11시간 거리에 있어 책과 문학에 접근하기 쉽지 않으며 상당수의 어린이들은 모국어로 된 책을 본 적이 없는 경우도 많다.
이렇듯 호주의 원주민 공동체는 도서관이나 서점과 같은 인프라가 없는 경우가 많아 독서 자료에 대한 접근이 제한되어 있고, 이로써 원주민 어린이들의 성취에 영향을 미쳐 교육의 격차를 벌린다. 이에 따라 원주민문해력재단은 도서 배포, 북버즈Book Buzz, 공동체 출판이라는 세 가지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모국어 도서를 포함한 고품질의 자원에 대한 원주민들의 접근 보장, 공동체 이야기 출판, 공동체 및 가족들의 리더십, 소유권 및 진정성 보장을 위한 일련의 과정 지원에 중점을 두어 지역사회의 장로 및 주민들과 함께 지원 활동을 펼쳐 나가고 있다.
“우리 공동체는 활기차고 강력하며 매우 지적입니다. 우리는 문화, 토지, 공동체를 중심으로 이러한 문해력을 가지고 있지만, 매우 ‘서구적인’ 문해력 개념에 공동체가 참여하는 방식은 다릅니다. 나는 이들이 문해력에 관한 대화에 참여하도록 하여, 그들 스스로 그 공간을 재정의할 수 있도록 하고 싶습니다. 원주민문해력재단에 대한 나의 비전은 우리 조직이 외딴 지역 공동체Remote Communities가 그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읽고 쓰는 능력에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입니다.”
― ILF 최고 경영자 벤 보웬Ben Bowen
원주민문해력재단은 호주 원주민 어린이들이 좋은 문학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여 독서를 장려하고 문해력을 증진한다. 또한 원주민 어린이들이 읽는 책에 그들 자신, 그들의 문화, 그리고 그들의 언어가 반영된 것을 발견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원주민문해력재단의 3가지 주요 프로그램은 다음과 같다.
- 도서 배포
원주민들의 마을에는 도서관이나 서점이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원주민 공동체와 함께 연결된 학교, 공동체, 보건 및 여성센터를 통해 아이들과 가족들에게 4개의 다른 연령대를 위해 만들어진 책꾸러미를 배포하고 있다. 도서 배포용 책의 50% 이상이 원주민 글작가와 그림작가의 작품이며, 이는 아이들이 자신의 모습과 자신의 문화를 이야기 속에서 발견하고 자부심을 가지고 연결함을 느끼게 한다.
- 북버즈Book Buzz
북버즈는 ‘소리 내어 읽기’ 프로그램으로 5세 미만의 아이들이 가족과의 ‘스토리타임책 읽어 주는 시간’을 통해 자연스럽게 책과 친해지고, 책읽기에 참여하여 사전 문해력pre-literacy 능력을 기르기 위해 시작된 프로그램이다. 또한 인기도서를 원주민어로 번역하여 아이들이 집에서 자신의 모어를 들으며 읽기의 여정을 시작할 수 있도록 한다. 북버즈는 놀이그룹을 만드는 것을 지원하며, 이 프로그램에서는 보드북, 그림책, 촉감책과 몇몇 영어책, 원주민 언어의 번역이 포함된 영어책, 이 외 원주민어로 인쇄된 자료를 제공한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취학 전 아이들이 책을 어떻게 탐색하는지, 어떻게 책을 잡는지와 처음부터 끝까지 이야기를 따라가는 법, 다음에 일어날 일에 대해 생각하는 법을 배운다.
원주민문해력재단은 2022년 기준 3,000권 이상의 책이 담긴 책꾸러미를 380개 이상의 지역에 배포하였다.
- 공동체 출판
원주민문해력재단은 호주 전역의 외딴 지역 공동체Remote Communities 아이들과 지역사회 구성원들의 바람을 실현하기 위해 공동체가 만든 책많은 책이 원주민어로 쓰였다을 발행하고, 디지털, 오디오 및 기타 학습 자료 제작과 워크숍 등을 위한 모금을 진행한다. 아이들이 현지 언어와 이야기가 쓰인 이야기를 읽음으로써 원주민 언어와 문화를 보존하며, 정체성, 소속감과 자신감, 웰빙을 강화한다. 현재까지 31개의 토착 언어를 반영한 109권의 책을 출판하였으며, 출판된 책은 공동체에 선물하며, 도서 배포 책에 포함되기도 한다. 이 책들은 공동체 사용용으로만 출판되고 있으며, 서점과 원주민문해력재단의 온라인숍을 통해 판매하기도 한다.
원주민문해력재단이 원주민에 관한 호주 비원주민들의 이해를 높이기 위해 진행하는 프로그램으로는 ‘책으로 문을 여는 도서관Reading Opens Door Library’ 프로그램이 있다. 이는 호주 기업들이 원주민의 언어와 문화에 대해 더 많이 읽고 배우고 영감을 받기 위해 고안된 프로그램이다. 특히 원주민이 근무하고 있는 직장에서 책을 통해 원주민 직원과 그들의 문화에 대해 자연스럽게 다가가고 이야기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준다. 2024년의 도서 목록은 어린이 그림책과 청소년 문학으로 구성한 총 18권으로 이루어져 있고 가격은 500 호주 달러이다배송료 포함, 한화 기준 약 45만 원. 이 조그마한 도서관은 이동식 선반이 함께 제공되어서 사무실 공간에 쉽게 배치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상’ 측은 원주민문해력재단의 혁신적이고 창조적인 작업이 원주민의 독려를 장려할 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와 언어, 경험이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사회적 그룹의 아이들에게 영감을 준다고 말하였다. 심사평은 다음과 같은 말로 끝마친다.
“모든 아이들은 그들의 언어와 이야기에 대한 권리가 있습니다.”
[참고자료]
- 원주민문해력재단 홈페이지
https://www.indigenousliteracyfoundation.org.au/
- 원주민 문해력재단 유튜브 채널
https://www.youtube.com/@IndigenousLiteracy/videos
- 2024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상 심사평
https://alma.se/en/laureates/indigenous-literacy-foundation/
★ 윤진희 책읽는사회문화재단 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