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을 전시하는 방식은 미술관마다 다릅니다. 어느 미술관에는 전시실 사방 벽면에 빼곡하게 작품이 걸려있는 반면, 어느 미술관에는 작품들이 적당한 간격을 두고 눈높이에 맞춰 걸려 있습니다. 둘 중 어느 미술관이 더 편안하게 느껴지나요? 작품 전시 방식이 극명하게 다른 다음 두 미술관 사진을 보시고 어느 방식이 더 좋은지 비교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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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아 팜필리 미술관, 로마. 사진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Palazzo_doria_pamphili,_sala_del_pussino.jpg#/media/File:Palazzo_doria_pamphili,_sala_del_pussino.jpg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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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 구겐하임 미술관, 뉴욕. |
첫 번째 사진은 로마의 도리아 팜필리 미술관The Doria Pamphilj Gallery이고 두 번째 사진은 뉴욕의 구겐하임 미술관The Solomon R. Guggenheim Museum입니다. 두 미술관의 작품 전시 스타일이 완전히 다르죠? 도리아 팜필리 미술관은 바닥부터 천장까지 빽빽하게 작품을 전시한 반면, 구겐하임 미술관은 모든 작품에 충분한 공간이 확보되도록 작품들을 멀찌감치 떨어뜨려서, 다른 작품을 위에 거는 일 없이 관람자의 눈높이에 맞춰 일렬로만 전시하고 있습니다. 구겐하임 미술관은 방 모양의 전시실을 없앤 다음 관람객이 나선형 구조의 경사로를 따라 내려오면서 작품을 관람하도록 설계돼 있습니다. 다른 미술관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독특한 구조라 굉장히 신선했죠. 그런데 도리아 팜필리 미술관에서는 신선한 충격이 아니라 경악에 가까운 충격을 경험했습니다. ‘와, 저 높은 곳에 있는 그림을 어떻게 보라는 거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서 봐야 할 것 같은데 어디 사다리가 없나? 왜 이렇게 그림을 전시하는 걸까?’ 도대체 왜 이렇게 그림을 전시하는 걸까요?
도리아 팜필리 미술관은 원래 교황 인노켄티우스 10세의 궁전Palazzo이었습니다. 이 미술관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은 디에고 벨라스케스Diego Velázquez, 1599~1660가 그린 「인노켄티우스 10세의 초상화Portrait of Innocent X」1650일 겁니다. 원래 이 미술관 집주인의 초상화인 거죠. 이 그림만큼은 위에 있는 사진 속의 그림들과 달리 교황의 조각상과 함께 매우 아담한 전시실을 독차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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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에고 벨라스케스, 「인노켄티우스 10세의 초상화」, 1650. 캔버스에 유화, 141 ×119 cm. 도리아 팜필리 미술관, 로마. http://picasaweb.google.com/EnrikeCdC/VelazquezObraCompleta#5297131513290212530 제공. |
도리아 팜필리 미술관은 궁전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층고가 높습니다. 한 층 높이가 우리나라 아파트 몇 층에 해당할 거예요. 그런 곳에 대리석 바닥부터 까마득한 천장까지 빼곡하게 그림이 걸려 있습니다. 천장 가까이 걸린 그림은 잘 보이지도 않아요. 미켈란젤로가 그린 시스티나 성당의 「최후의 심판」1536~1541처럼 그림 속에 이미지가 너무 빼곡하게 그려져 있을 때, 미술 평론가들은 ‘클로스트로포빅claustrophobic’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더군요. ‘밀실공포증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불편하게 협소하거나 꽉 차 있다’는 말이죠. 도리아 팜필리 미술관에 딱 적합한 표현입니다. 이 미술관에는 작품 캡션이 액자 하단에 붙어 있습니다. 그림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보니 작품 캡션을 붙일 공간이 없었을 거예요. 아니, 많은 소장 작품을 한 번에 다 보여주고 싶은데 공간이 부족하다 보니 화가의 이름과 목록 번호만 있는 가장 간단한 형태의 작품 캡션을 액자 하단에 붙이는 방법을 생각해냈을지 모릅니다.
사실, 한 줄로만 나란히 그림을 거는 미술관이나 박물관은 거의 없습니다. 대부분의 미술관에서 크기가 작은 그림들은 위, 아래로 적당히 간격을 두고 겁니다. 구겐하임 미술관에서조차 작은 그림들을 겹쳐서 전시하는 구간이 몇 군데 있으니까요. 관람객들은 그림들 사이의 간격을 지나면서 잠시 숨도 고르고, 생각도 고를 시간을 갖게 됩니다. 그런데 도리아 팜필리 미술관에서는 그럴 틈이 없습니다. ‘어, 그림 전시 스타일이 다르네. 여기는 왜 벽 가득 그림을 걸어놓았을까?’ 이런 생각을 맨 처음 했던 미술관은 파리 근교의 샹티이 성le château de Chantilly에 있는 콩데 미술관Le musée Condé이었습니다. 관객의 눈높이에 맞춰 ‘뮤지엄식’으로 작품을 전시한 루브르 박물관과 오르세 미술관 등 파리의 여러 미술관을 거친 후 콩데 미술관에 갔기 때문에 다른 미술관들과의 차이점을 극명하게 느낄 수 있었죠. 피렌체에서도 똑같은 경험을 했습니다. 우피치 미술관이나 아카데미아 미술관Academia Gallery과 달리 피티 미술관Pitti Galleria에도 작품들이 천장까지 다닥다닥 붙어 있더군요. 그러고 보니 도리아 팜필리, 콩데, 피티 미술관 모두 이전에는 궁전으로 사용됐던 곳들이네요. 이 중 가장 ‘클로스트로포빅’했던 곳은 도리아 팜필리 미술관이었던 같아요. 그렇지만 이 미술관들에서는 빼곡하게 전시된 그림들에 충격을 받긴 했지만 분개하지는 않았습니다. 관람객이 적어서 전시실 내부가 한산했으니까요. 액자 하단에 부착된 작품 캡션을 읽어낼 수 있을 만큼 좋은 시력과 (아니면 성능 좋은 망원경이나 스마트폰과) 시간적 여유만 있다면 아무리 높이 걸린 그림이라도 천천히 감상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미술관들을 선호하는 사람도 있답니다. 성 클레멘트 성당St. Clement's Basilica에서 만난 미국인 역사학자, 데이비드 선생님은 피티 미술관과 도리아 팜필리 미술관의 전시 스타일이 다른 대형 박물관이나 미술관의 전시 스타일보다 더 좋다고 하더군요. 지금 생각해 보니 데이비드가 도리아 팜필리 식 전시 방법을 좋아하는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역사와 미술에 대한 깊은 지식과 뛰어난 안목을 지닌 대단한 미술 애호가였기에 저처럼 작품 캡션이 안 보인다고 투덜댈 필요가 없었던 거죠. 작품 캡션을 읽을 필요가 없다고 말한 지인 화가도 데이비드처럼 이런 스타일의 미술관을 좋아할지 모릅니다.
다만 그림들로 가득 찬 전시실에 관람객들까지 넘쳐나면 상황이 달라지지 않을까요? 여러 해 전에 간송미술관의 봄 정기 기획전에 간 적이 있습니다. 당시에는 간송미술관이 상설 전시를 하지 않고 기획전 형식으로 일 년에 두 번만 소장품을 공개하다 보니 천문학적인 수의 관람객이 몰려들었습니다. 뙤약볕에서 다섯 시간 넘게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미술관에 입장했을 때 저는 전시실을 가득 메운 엄청난 수의 작품들과 발 디딜 틈 없이 빽빽하게 들어선 관람객들을 보고 경악하다 못해 분노했습니다. “이건 전시 작품에 대한 모독이고 관람객에 대한 모욕이에요. 무료 개방을 하면서 관람객을 짐짝 취급하지 말고 차라리 입장료를 비싸게 받아요. 아니면 예약제로 바꿔요. 관람객에게도 품위 있게 작품을 관람할 권리가 있다고요!” 미술관 직원에게 퍼부은 항의가 효과가 있었을까요? 설마 그럴 리가요. 어쨌든 2013년부터는 비좁은 간송미술관이 아닌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로 기획전을 옮겨서 개최하더군요. 올해는 기획전을 다시 간송미술관에서 열면서 예약제로 바꿨다고 합니다.
이런 방식의 전시관에 저 같은 초보 미술 감상자만 분개했던 건 아니었나 봅니다. 1850년대에 화가들이 이런 식으로 작품을 전시하는 것이 자신들의 작품에 대한 모독이라며 들고 일어서서, 결국에는 새로운 전시 방식이 도입됐다고 합니다. 어떤 식으로 바뀌었을까요? 바로 처음에 보여드린 구겐하임 미술관과 같은 전시 형태가 등장하게 됐다고 합니다. 구겐하임 미술관에서는 관람객들이 벽을 따라 죽 걸으면서 볼 수 있도록 작품이 전시돼 있습니다. 최근에 ‘플리츠 AP 미술사Fleet’s AP Art History’라는 온라인 비디오 강의 시리즈를 보다 보니, 도리아 팜필리 미술관식 작품 전시를 ‘살롱 스타일salon-style’, 구겐하임 미술관식 작품 전시를 ‘갤러리 스타일’혹은 회랑식, 복도식, 뮤지엄식이라고 부르더군요.
‘살롱 스타일’의 역사는 프랑스의 살롱전에서 시작됐다고 합니다. 프랑스 미술협회가 1674년부터 전시회를 개최했는데, 1725년에는 루브르궁의 살롱에서 전시회가 열렸답니다. 그래서 이때부터 프랑스 미술협회의 전시회는 ‘살롱전’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됐다는군요. 프랑수아 조셉 하임François-Joseph Heim의 「1824년 살롱전 폐막식에서 화가들에게 상을 수여하는 샤를 4세Charles V Distributing Awards to the Artists at the Close of the Salon of 1824」1827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살롱전에서는 전시회장의 모든 공간이 그림으로 채워졌다고 합니다.
이 살롱전에 비하면 도리아 팜필리 미술관의 관람 환경은 쾌적해 보이죠? 저는 이런 전시방법이 단지 공간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궁여지책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살롱식 전시방법에 대해 조사하다 보니 이 전시방법에도 나름대로 여러 장점이 있더군요. 무엇보다도 주어진 공간에 더 많은 작품을 전시할 수 있고, 작품이 눈높이보다 더 높은 곳에 걸려 있으면 전시실이 관람객들로 붐비더라도 모두에게 잘 보일 수 있답니다. 또한 전시기획자들이 일렬식 혹은 갤러리식으로 작품을 전시할 때보다 작품들 사이, 혹은 시대별, 작가별, 양식들 사이의 연관성이나 대비를 더 잘 강조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런 장점들에도 불구하고 당시 화가들은 살롱전의 전시방법뿐만 아니라 미술협회의 보수적이고 형식적인 심사 방식에 반발했고, 그 결과 인상파가 대두하고 갤러리식 전시 방법이 대안으로 등장하게 됐다는군요.
살롱식 작품 전시의 대안으로 떠오른 갤러리식 전시 방법에도 한계는 있습니다. 소장품 수에 맞는 넉넉한 전시 공간이 있는 미술관이라면 갤러리식으로 작품을 전시하는 것이 작가에게도, 관람객에게도 좋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미술관이 몇 군데나 될까요? 소장품 수는 많은데 전시 공간이 부족한 경우 어떤 일이 발생할까요? 지하 수장고로 들어가는 작품 수가 많아질 겁니다. 보고 싶은 작품이 생겨서, 혹은 또 보고 싶은 작품이 있어서 미술관을 찾아왔는데 그 작품이 전시돼 있지 않아서 못 보는 일이 생기는 거죠. 그럴 때면 ‘잘 안 보이더라도, 다닥다닥 붙여놓아도 괜찮으니까 그냥 전시 좀 해 주지’ 하는 마음이 저절로 듭니다. “이제는 양면을 다 볼 수 있게 됐다Both sides now”는 노래 가사처럼 살롱 스타일과 갤러리 스타일 전시 방법의 “양면”을 모두 알게 됐습니다.
살롱 스타일을 고수하는 콩데 미술관과 도리아 팜필리 미술관, 피티 미술관에 갔을 때 느꼈던 궁금증을 푸는 데 십 년 넘게 걸린 것 같습니다. 살롱 스타일의 역사적인 맥락과 장점에 대해 알았으니 언젠가 이 미술관들에 다시 가게 되면 이제는 단점보다는 장점에 집중하면서 덜 투덜댈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