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 함께 미국으로 미술관 기행을 떠난 동료 선생님에게서 카톡 메시지가 왔습니다. “선생님, 오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쇠라의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를 봤는데 이상해요. 크기도 작고 미술책에 나오는 그림하고 조금 다른 것 같아요. 미술책에 나오는 그 그림이 맞나요? 인터넷을 찾아보니까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는 시카고 미술관에 있는 것으로 나오는데 왜 이 그림이 여기에 있는 거예요?”
“브라보! 모작模作의 세계에 들어오신 걸 환영합니다! 웰컴 투 혼란의 대환장!”
같은 제목의 여러 그림을 다룬 앞글에서 살펴본 것처럼 미술관과 박물관에는 같은 제목을 가진 작품들이 무수히 많습니다. 그런데 미술관에는 똑같은 제목에, 똑같이 생긴 작품들도 무수히 많습니다. 분명 이 미술관에서 봤는데 다른 미술관에 똑같은 그림이 걸려 있는 거죠. 귀신에 홀린 건 아닌가 싶어서 눈을 비빈 다음 그림을 다시 들여다봅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이 그림이 왜 또 여기에 있는 거야? 뭐가 잘못된 거 아냐? 이 그림의 소장처는 분명히 다른 미술관으로 나와 있는데 이 그림이 가짜란 말인가? 미술관에서 이 사실을 알고 있나? 이걸 미술관에 알려 줘야 할까?’ 머릿속이 온갖 황당한 생각으로 어지러워집니다. 처음에만 그럴까요? 아닙니다. 똑같은 그림을 발견할 때마다 거의 같은 세기의 충격이 뇌를 강타합니다. 면역이 안 됩니다. 왜 똑같은 그림들이 있는 걸까요? 똑같은 그림이 있다는 것은 누군가의 원작原作을 베껴 그렸다는 거겠죠? 그렇다면 다른 작품을 이렇게 베껴 그리는 것은 표절 아닌가요? 이렇게 베껴 그려도 괜찮은 걸까요? 다른 작품을 베껴 그리는 것은 모두 표절일까요? 다음 사례들을 통해 답을 찾아보죠.
사례 1.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는 자신의 작품, 『아를의 침실La Chambre à Arles』을 모방해서 『아를의 침실』을 두 점 더 그렸다. 원작1889은 반 고흐 미술관에, 다른 두 모작은 시카고 미술관1889과 오르세 미술관1889에 소장돼 있다.
빈센트 반 고흐, 『아를의 침실』, 1889년. 캔버스에 유화, 72 × 90 cm. 반 고흐 미술관, 암스테르담. |
사례 2. 송나라 휘종徽宗, 1082~1135 때 화가인 조길趙佶은 당나라 시대의 화가 장훤張萱의 원본을 모방해서 『도련도搗練圖』를 그렸다.
조길, 『도련도』 권(卷), 12세기 초. 비단에 채색, 먹, 금, 37.7 × 466 cm. 보스턴 미술관, 보스턴. File:Court Ladies Preparing Newly Woven Silk (cropped).jpg|Court_Ladies_Preparing_Newly_Woven_Silk_(cropped) 제공. |
사례 3. 한 판 메이헤런Han Van Meegeren, 1889~1947은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Johannes Vermeer, 1632~1675 풍으로 『엠마오의 만찬The Supper at Emmaus』1937을 그린 다음 그것을 페르메이르의 작품이라고 속여서 비싼 가격에 판매했다.
한 판 메이헤런, 『엠마오의 만찬』, 1937년. 캔버스에 유화, 118 × 130.5 cm. 보이만스 반 뵈닝겐 미술관, 로테르담.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EmmausgangersVanMeegeren1937.jpg#/media/File:EmmausgangersVanMeegeren1937.jpg 제공. |
다른 작품을 베껴 그린 세 가지 사례 모두 표절에 해당할까요? 아니면 사례 2와 사례 3이 표절일까요? 어떤 답을 고르셨나요?
사례 1은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베껴 그린 경우입니다. 수많은 화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베껴서 모작을 만들었습니다. 작가 자신이 자신의 작품을 모방하는 이유는 다양합니다. 작품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여러 점을 똑같이 그리는 경우도 있고, 실험 차원에서 원작을 조금 변형시켜 가며 비슷한 그림을 그리는 경우도 있겠죠. 때로는 원작과 똑같이 한 점 더 그려달라는 고객의 주문이 있었을 수도 있고요. 어떤 경우든 작품의 원작자가 자신의 작품을 모작하는 경우는 표절이 아니라고 합니다. 어떤 식으로 자기 작품을 변형하건 그건 작가의 자유니까요. 어떤 작가들이 자신의 작품으로 모작을 만들었을까요? 제가 찾아낸 모작들 중 몇 가지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에드바르 뭉크Edvard Munch, 1863~1944는 『절규The Scream』를 네 점 그렸습니다. 원작은 노르웨이 국립 미술관1893에 있고, 세 점의 모작 중 두 점은 뭉크 미술관1893/1910이, 나머지 한 점은 개인이 소장1895하고 있습니다. 프랑수아 부셰François Boucher, 1703-1770의 『누워 있는 소녀Reclining Girl』 원작은 발라프 리하르츠 미술관Wallraf-Richartz Museum1751에, 모작은 알테 피나코테크1752에 있습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는 『암굴의 성모Virgin of the Rocks』를 두 점 그렸습니다. 원작은 루브르 박물관1483~1486에, 모작은 런던의 국립미술관1495~1508에 있습니다. 자크 루이 다비드Jacques Louis David, 1748~1725의 『나폴레옹 대관식Le Sacre de Napoléon』은 루브르 박물관1805~1807에 원작이, 베르사유 궁전1822에 모작이 있습니다. 장 바티스트 시메옹 샤르댕Jean Baptiste Simeon Chardin, 1699~1779의 『어린 여선생The Little Schoolmistress』은 런던의 국립미술관1737에 원작이, 워싱턴의 국립미술관1740에 모작이 있습니다. 폴 들라로슈Paul Delaroche, 1797~1856의 『순교자La Jeune Martyre』 원작은 예르미타시 미술관1883에, 모작은 루브르 박물관1885에 있습니다. 조르주 드 라 투르Georges de La Tour, 1593~1653의 『연기 나는 촛불을 켜고 있는 막달레나Magdalene with the Smoking Flame』는 워싱턴의 국립미술관1635~1640에 원작이 있고, LA 카운티 미술관LACMA 1635~37, 루브르 박물관1640, 메트로폴리탄 미술관1640에서 모작들을 볼 수 있습니다. 네 그림에서는 막달레나의 앉은 위치와 거울 유무가 조금씩 다릅니다. 크리스토파노 알로리Cristofano Allori, 1577~1621의 『유디트Judith with the Head of Holofernes』는 베를린의 게멜데갈러리1610/15, 바티칸의 피나코테카1613, 영국의 로열 컬렉션The Royal Collection, 피렌체의 피티 미술관Palazzo Pitti1620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 네 그림에서는 유디트가 매고 있는 허리띠의 색깔과 문양이 그림마다 다릅니다. 해라르트 테르 보르흐Gerard ter Borch, 1617~1681의 『부모의 훈계Galante Konversation』는 암스테르담의 국립미술관1654과 베를린의 게멜데갈러리1654에 있는데 암스테르담 버전이 조금 더 큽니다. 알렉산드르 카바넬Alexandre Cabanel, 1823~1889의 『비너스의 탄생Naissance de Venus』은 오르세 미술관1863과 뉴욕의 다헤시 미술관Dahesh Museum of Art1864, 메트로폴리탄 미술관1875에 있습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있는 모작의 크기가 조금 더 작습니다.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 1869~1954의 『춤La Danse』 역시 두 가지 버전이 있습니다. 하나는 뉴욕의 현대 미술관1909에 있고, 다른 하나는 예르미타시 미술관1910에 있습니다. 현대 미술관 버전은 원작이라기보다 예르미타시 버전을 그리기 위한 습작이라고 합니다.
앙리 마티스, 『춤(I)』, 1909년. 캔버스에 유화, 259.7 × 390.1 cm. 현대미술관, 뉴욕. |
앙리 마티스, 『춤』, 1910년. 캔버스에 유화, 260 × 391 cm. 예르미타시 미술관, 상트페테르부르크. https://en.wikipedia.org/wiki/File:Matissedance.jpg#/media/File:Matissedance.jpg 제공. |
카라바조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 1571~1610는 여러 작품을 여러 버전으로 그린 것으로 유명합니다. 『골리앗의 머리를 들고 있는 다윗David and Goliath』은 프라도 미술관1599, 빈 미술사 박물관1600~1601, 로마 보르게세 미술관Galleria Borghese1609~1610에 있고, 『숫양과 함께 있는 어린 세례자 요한John the Baptist: Youth with a Ram』의 원작은 카피톨리니 박물관Musei Capitolini1602에, 모작은 도리아 팜필리 미술관Galleria Doria Pamphilj1602에 있습니다. 『점쟁이The Fortune Teller』는 카피톨리니 박물관1594에, 모작은 루브르 박물관1595에 있습니다. 『바쿠스Bacchus』는 보르게세 미술관1593과 바르베리니 궁전 국립고전 미술관Galleria Nazionale d’Arte Antica in Palazzo Barberini1593, 우피치 미술관1595에서 볼 수 있는데, 보르게세 미술관과 바르베리니 미술관에 소장된 그림에서 바쿠스는 병든 모습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엠마오의 예수The Supper at Emmaus』는 런던의 국립미술관1601과 밀라노의 브레라 미술관1606에 있습니다.
작가 자신이 자기 작품을 베껴 그린 모작들의 예를 정리해 봤는데 예들이 너무 많은가요? 사실, 이 작품들 외에도 작가 자신이 그린 모작의 예는 무궁무진하게 많습니다. 이 글에 실린 예들은 그동안 제가 미술관을 다니면서 찾아낸 그림들 중 일부고, 앞으로 계속해서 늘어날 겁니다. 모작의 예를 길게 나열한 것은 혹시 똑같은 작품을 이 미술관에서 만나고 저 미술관에서 또 만나거나, 소장처로 알려진 곳이 아닌 미술관에서 어떤 작품을 만나더라도 너무 놀라지 마시길 바라는 마음에서였습니다.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해두면 저나 동료 선생님이 느꼈던 당혹감을 피할 수 있을 테니까요.
아, 동료 선생님의 질문에 대한 답을 알려드리고 넘어가야겠군요. 답은 멀리 갈 필요 없이 가까운 곳에서부터 찾아보면 됩니다. 궁금한 점이 생기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작품 캡션을 읽어보는 겁니다. 미술책에 나오는 조르주 쇠라Georges Seurat, 1859~1891의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Un dimanche après-midi à l'Île de la Grande Jatte』1884~1886 원작은 시카고 미술관the Art Institute of Chicago에 있습니다. 동료 선생님을 당혹스럽게 했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있는 그림은 작품 캡션에 적혀 있듯이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를 위한 습작A Study for A Sunday on La Grande Jatte』입니다. 이 습작은 시카고 미술관의 그림보다 크기도 작고, 등장인물도 더 적을 뿐만 아니라 점들도 더 크고 거칩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는 이 습작보다 훨씬 더 작은 습작1884이 한 점 더 있습니다. 하버드 대학교의 미술관에도 작은 습작1884이 한 점 있더군요. 이 습작에 딸린 작품 캡션에 의하면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를 위한 습작이 60점이나 된다고 합니다. 이 말은 앞으로 제가 57점의 습작을 더 발견할 수 있다는 거겠죠?
조르주 쇠라,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 습작』, 1884년. 캔버스에 유화, 70.5 × 104.1 cm.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뉴욕. |
습작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니 루브르 박물관에서 본 자크 루이 다비드의 『나폴레옹 대관식』 습작1898과 테오도르 제리코Theodore Gerico, 1791~1824의 『메두사호의 뗏목Le Radeau de la Méduse』1818~1819의 습작1818이 떠오릅니다. 『메두사호의 뗏목』은 높이 4.9미터에 폭이 7.2미터인 초대작超大作입니다. 『나폴레옹 대관식』은 이보다 더 커서 높이가 6.2미터이고 폭이 9.8미터에 달합니다. 이 두 작품은 루브르 박물관의 ‘간판’ 작품들로 드농Denon 관에 전시돼 있지만, 쉴리Sully 관에 전시된 습작들은 다른 그림들 속에서 잘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작더군요. 이런 습작들을 보다 보니 ‘습작study’과 ‘모작copy’은 조금 다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작’은 완성된 ‘원작’을 그대로, 혹은 약간의 변형을 가해 베껴 그리는 반면, ‘습작’은 완성작으로 나아가는 과정 중에 이것저것 시도해 보는 연구 조사 작업인 것 같습니다. 물론 학습 차원에서 다른 작가의 작품을 베껴 그리는 모작은 동시에 습작으로 간주될 수 있을 거예요. 그렇지만 작가가 자신의 완성 작품으로 모작을 만드는 경우, 그것을 습작이라고 부르진 않는 것 같아요. 작가 자신의 모작에 관한 이야기가 너무 길어졌죠? 이제는 다른 작가의 원작을 베껴 그리는 사례 2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사례 2는 원작자가 아닌 다른 사람이 원작을 베끼는 경우입니다. 다른 작가의 작품이 너무 마음에 들 때, 혹은 학습 차원에서 다른 작가의 원작을 베껴 그리는 거죠. 루브르 박물관이나 런던의 국립미술관 같은 대형 미술관에서는 그림 도구를 잔뜩 실은 짐수레 옆에 이젤을 세워놓고 그림을 모사하고 있는 화가들을 자주 만날 수 있습니다. 여러분에게도 만화책을 보다 트레이싱페이퍼를 깔고 연필로 베껴 그려본 경험이 있을 거라 믿습니다. 저도 최근에 마크 로스코Mark Rothko, 1903~1970와 박서보1931~의 추상화를 따라 그려봤는데 쉬운 일이 아니더군요.
제가 다른 작가에 의한 모작에 대해 알게 된 것은 폴 게티 미술관The J. Paul Getty Museum에서 『루이 14세의 초상화』를 봤을 때였습니다. 그전에는 모작이 무엇인지도 몰랐습니다. 아침 운동을 하면서 『루이 14세의 초상화』에 대한 동영상을 봤는데 오후에 미술관에 갔더니 그곳에 『루이 14세의 초상화』가 걸려 있더군요. ‘앗,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이 그림은 분명히 루브르 박물관에 있다고 했는데. 이 그림은 뭐지?’ 이때만 해도 저는 작품 캡션을 보는 법도 모르는 완전 ‘생초보’였기 때문에 전시된 초상화가 가짜 그림인 것 같다고 직원에게 살짝 귀띔을 해줬습니다. 무식하면 용감해집니다. 지금이라면 아마 작품 캡션을 보고 이 작품이 이아생트 리고Hyacinthe Rigaud, 1659~1743의 『루이 14세의 초상Portrait of Louis XIV』1701을 베껴 그린 모작이라는 것을 알았을 거예요. 작품 캡션에 ‘After Hyacinthe Rigaud French, 1659~1743’라고 적혀 있으니까요. 여기서 ‘after’란 ‘~식으로 혹은 ~풍으로’를 나타내는 말로 이아생트 리고의 작품을 베껴 그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그 당시에는 ‘after’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Hyacinthe Rigaud’만 본 거죠. 이 작품은 리고의 원작을 리고의 작업실에서 조수 화가들이 베껴 그린 거라고 합니다.
이아생트 리고 작업실, 『이아생트 리고의 루이 14세의 초상 모작』, 1701년 이후. 캔버스에유화, 289.6 × 159.1 cm. 폴 게티 미술관, LA. https://www.getty.edu/art/collection/object/103RA8 제공. |
이아생트 리고, 『루이 14세의 초상』, 1701년. 캔버스에 유화, 277 × 194 cm. 루브르 박물관, 파리. |
다른 작가에 의한 모작은 원작과 똑같은 경우도 있고, 변형된 경우도 있습니다. 요하네스 페르메이르Johannes Vermeer, 1632~1675의 『성 프락세디스Saint Praxedis』1655는 펠리체 피케렐리Felice Ficherelli, 1605~1660가 그린 『성 프락세디스』1645를 충실하게 베낀 모작입니다. 위에서 말한 게티 미술관의 『루이 14세의 초상화』도 원작과 흡사합니다. 크기만 조금 다를 뿐입니다. 작가 자신의 모작에 대한 예 중 해라르트 테르 보르흐의 『부모의 훈계』가 있었는데요. 작가 자신이 모작을 그리기도 했지만 이 작품은 워낙 인기가 많아서 다른 작가들이 그린 모작이 최소 24점이나 된다고 합니다. 이 작품은 흔히 부모의 훈계를 듣고 있는 딸의 모습을 그린 것으로 해석되지만 사창가에서 벌어지는 흥정 장면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는 장 프랑수아 밀레Jean François Millet, 1814~1875를 비롯해 외젠 들라크루아Eugène Delacroix, 1798~1863, 렘브란트 판 라인Rembrandt van Rijn, 1606~1669, 오노레 도미에Honoré Daumier, 1808~1879의 작품에 자신의 스타일을 가미해서 색다른 느낌의 모작들을 만들어 냈습니다. 이렇게 원작을 재해석해서 그린 모작을 동양화에서는 ‘방작倣作’이라 부르더군요. 강세황1713~1791의 『벽오청서도碧梧淸暑圖』는 명나라 화가 심석전1427~1509의 『벽오청서도』에 대한 방작입니다.
해라르트 테르 보르흐, 『부모의 훈계』, 1654년. 캔버스에 유화, 71 × 73 cm. 국립미술관, 암스테르담. |
해라르트 테르 보르흐, 『부모의 훈계』, 1654년. 캔버스에 유화, 71.4 × 62.1 cm. 게멜데갈러리, 베를린. |
빈센트 반 고흐, 『낮잠(밀레 작품 모사)』, 1890년. 73 × 91 cm, 캔버스에 유화. 오르세 미술관, 파리. |
심석전, 『벽오청서도』, 연도 미정. 종이에 채색 목판. 대영박물관, 런던. https://www.britishmuseum.org/collection/object/A_1928-0301-0-1 제공. |
강세황, 『벽오청소도』, 연도 미정. 종이에 담채, 30.5 × 35.8 ㎝, 리움 미술관, 서울. https://www.datastore.or.kr/ 제공. |
작가 자신의 모작은 표절이 아니라는 것에 대해서는 납득이 되는데 다른 작가에 의한 모작은 어떨까요? 모작이건 방작이건 누구의 작품을 베낀 것인지 분명하게 밝히면 표절이 아니라고 합니다. 작가 자신의 모작뿐만 아니라 다른 작가의 모작들이 미술관에 엄연한 작품으로 당당하게 걸려 있는 것이 그 증거일 겁니다. 앞에서 미술관 복제 화가들에 대해 말씀드렸는데, 이 화가들은 원작보다 더 작은 크기로 그려야 하고, 원작 작가의 서명은 복제하지 않는다 등의 여러 제한조건을 준수해서 모작을 완성한 다음 판매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어떤 모작들은 완성도에 따라 고가에 판매도 된답니다. 그런데 다른 화가의 작품을 그대로 베끼거나 스타일을 흉내 내서 작품을 그린 다음 자신의 창작물인 것처럼 발표한다면 그것은 표절이 되고, 다른 화가의 작품으로 속여서 발표하거나 판매하면 그 작품은 위작僞作이 됩니다. 위작은 가짜, ‘짝퉁’ 작품인 거죠. 모작은 다른 작품을 복제했다 해도 ‘진품’으로 간주되는 반면, 위작은 심각한 사기 범죄입니다. 바로 사례 3이 위작에 해당합니다.
한 판 메이헤런은 1936년 『엠마오의 만찬The Supper at Emmaus』을 시작으로 페르메이르, 프란스 할스Frans Hals, 1580~1666, 피테르 드 호흐Pieter de Hooch, 1629~1684의 화풍을 흉내 낸 위작 여덟 점을 제작해서 공개했다고 합니다. 2차 세계 대전 후 이 위작 중 한 점이 나치 공군 총사령관인 헤르만 괴링Hermann Göring에게 판매된 것으로 드러나자 전범에 협력한 반역자로 네덜란드 국법에 따라 사형당할 상황에 처한 한 판 메이헤런이 위작 사실을 실토했답니다.
예전에 온라인으로 「마크 로스코처럼 그림 그리기」 같은 그림 수업 동영상을 보고 있을 때 옆에 「포저의 마스터클래스The Forger’s Masterclass」라는 동영상이 눈에 띄더군요. 처음 제목을 봤을 때만 해도 저는 ‘포저’가 선생님의 이름인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수업 제목이 ‘포저 선생님의 마스터클래스’인 걸로 이해했죠. 그런데 동영상 도입부에서 ‘포저 선생님’이 이렇게 자신을 소개하더군요. “저는 화가이자 교사이고 미술 위조범입니다. 200점 이상의 미술 작품을 위조한 죄로 수감됐고, 미술계를 뒤흔들어 놓은 것에 대한 대가를 치렀습니다. 지금은 대가들의 화풍으로 그림을 그려서 합법적으로 ‘정직한 가짜’ 작품들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또한 화가 지망생들에게 제가 하는 일의 비법들을 전수도 하고 있습니다.” ‘포저forger’가 이름이 아니라 단어의 원래 의미인 ‘위조범’이었던 겁니다. 강의 제목이 ‘위조범의 마스터클래스’였던 거죠. 나중에 자료를 찾아보니 ‘포저 선생님’이 “20세기 최대의 미술사기”를 벌인 유명한 위조범, 존 마이어트John Myatt더군요. 마이어트는 인상파, 입체파, 초현실주의풍으로 200점 이상의 작품을 그린 다음 증명서 위조 전문범인 존 드루John Drewe와 공모해서 이 그림들을 진작인 것처럼 유통했다고 합니다. 마이어트의 위조를 통해 벌어들인 수익은 380억 이상이었답니다. 1999년에 마이어트는 사기 공모죄로 4개월, 드루는 2년 동안 수감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모작의 세 가지 사례를 살펴봤습니다. 작가 자신의 모작이나, 다른 작가의 작품을 베낀 모작임을 공개적으로 밝히는 “정직한 모작”은 표절이나 저작권 침해 사례가 아니라고 합니다. 그러니 혹시 미술관에서 똑같은 그림들을 만난다 해도 너무 놀라지 마십시오. 미술관에는 화가 자신이 그린 모작들뿐만 아니라 다른 화가들이 그린 모작들이 무수히 많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