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에 가면 원하는 작품을 언제든지 볼 수 있을까요? 그럴 리가요.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아예 들어가지도 못하고 발길을 돌려야 하는 경우도 있고, 보고 싶은 작품이 전시되지 않아서 못 보고 돌아오는 경우도 많습니다.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날까요? 실망과 좌절로 점철된 제 경험담을 토대로 여러 이유를 살펴보겠습니다. 제 흑역사를 거울삼아, 다른 나라까지 가서 보고 싶었던 미술관의 문턱도 넘어보지 못하고 돌아오는 슬픈 일을 절대 겪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래 전, 2박 3일 일정으로 오사카에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첫 날 오후에 오사카에 도착해서, 다음 날 오사카 성이곳은 박물관이기도 합니다, 역사박물관, 국제신미술관国際新美術館, 세 곳을 방문하고, 그 다음 날 아침에 서울로 돌아오는 일정이었죠. 그런데 오사카 성 관람은 무사히 마쳤지만, 오사카 역사박물관과 국제신미술관 관람 일정은 무산됐습니다. 역사박물관과 국제신미술관 모두 문을 닫았기 때문입니다. 왜 이 두 곳은 문을 닫았을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월요일 정기 휴관일이었으니까요. 꼼꼼하게 확인하지 않은 제 불찰이죠. 여행 계획을 짤 때는 가고 싶은 박물관이나 미술관의 휴관일을 반드시 확인해야 합니다. 우리나라 국립중앙박물관은 일 년 중 딱 닷새1월 1일, 설날, 추석, 4월과 11월의 첫째 일요일만 휴관하지만, 대부분의 박물관과 미술관은 월요일에 문을 열지 않습니다. 물론 박물관과 미술관마다 휴관하는 날이 다르기 때문에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꼭 확인을 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매주 수요일에, 루브르 박물관은 매주 화요일에, 런던의 국립미술관은 크리스마스 시즌과 1월 1일에만 휴관합니다. 휴관일을 확인하지 않으면 저처럼 여행 목적을 이루지 못한 채 돈과 시간만 허비하고 맙니다. 국내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면 그나마 좀 낫습니다. 해외여행 중에는 빼곡한 일정 때문에 놓친 미술관에 다시 들르기가 어렵죠. 결국 못 보고 돌아와야 합니다. 관람 시간을 확인하지 않아서 두 번이나 못 보고 돌아온 미술관도 있습니다. 바르셀로나의 호안 미로 미술관Fundació Joan Miró에 처음 갔을 때는 월요일 정기 휴관일이었고, 두 번째 갔을 때는 일요일이라 일찍 문을 닫았더군요. 미술관 안에는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미술관 정원에 설치된 조각 작품만 보고 왔습니다.
관람 예약을 하지 않아서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들어가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조토Giotto di Bondone, 1266/67 혹은 1276~1337의 프레스코화로 유명한 파도바Padova의 스크로베니 예배당Scrovegni Chapel이나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의 『최후의 만찬L’Ultima Cena』1495~1498이 있는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Santa Maria delle Grazie 성당 같은 곳은 예약제로만 관람이 허용되기 때문에 반드시 사전 예약을 해야 합니다. 최근에는 코로나19 때문에 예약제로 운영한 미술관이 많아졌습니다. 그런데도 배짱 좋게 예약 없이 갔다가 국립중앙박물관과 리움 미술관에서 한 번씩 퇴짜를 맞았습니다. 그래도 가끔은 예약 없이도 미술관에 들어가는 행운을 얻기도 합니다. 바르셀로나 근처의 포틀리가트Portlligat에 있는 살바도르 달리 하우스 박물관Salvador Dalí House-Museum에 갔을 때였습니다. 손에 땀이 날 정도로 아찔하게 높은 바닷가 절벽 길을 구불구불 돌고 돌아 찾아갔는데 예약을 하지 않아서 박물관에 입장할 수가 없었죠. 일행 중 한 사람이 직원에게 눈물로 읍소를 했답니다. “이 박물관을 보겠다고 한국에서 여기까지 왔는데 언제 또 다시 올 수 있겠어요? 우리에게는 이번이 마지막 기회예요. 제발 박물관 관람을 하게 해 주세요.” 대도시의 큰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는 어림도 없었겠지만 이곳에서는 이 방법이 통하더군요. 혹시 예약 없이 미술관에 갔다가 입장할 수 없을 때는 직원의 동정심에 호소를 한 번 해보세요. 그렇지만 이 방법은 적어도 미술관 문이 열려 있을 때만 가능합니다.
박물관이나 미술관 사정으로 임시 휴관을 하는 경우에도 관람을 할 수 없습니다. 내부 수리나 전시회 준비 같은 이유 때문에 상당히 오랜 기간 문을 닫는 미술관들이 있으니까요. 앞에서 오사카의 국제신미술관에 대해 말씀드렸는데 사실 이 미술관은 월요일 정기휴관일과 상관없이 관람이 불가능한 상황이었습니다. 내부 수리 중이었거든요. 헛걸음을 안 하고 싶다면 미술관 방문 전에 임시 휴관 여부도 확인해야 합니다. 꼭 관람하고 싶은 미술관이라면 여행 계획을 미술관 재개관 이후로 미루는 것도 좋습니다. 파리의 귀스타프 모로 미술관Musée national Gustave Moreau은 제갈량의 집도 아니면서 저를 세 번이나 찾아가게 만든 콧대 높은 미술관입니다. 처음에 갔을 때는 내부 수리 중이었습니다. ‘그래, 여름 비수기를 골라 공사를 하나 보다. 다음에는 겨울에 와 보자.’ 겨울에 다시 갔더니 또 내부 수리 중이더군요. ‘나하고는 인연이 없나 보다. 죽기 전에 이 미술관에 들어가 볼 수 있을까?’ 끝내 못 들어갈 줄 알았는데 세 번째 방문 때에야 겨우 미술관 문턱을 넘을 수 있었습니다.
원하는 작품을 보려면 우선 박물관이나 미술관 안에 들어가야겠죠? 지금까지는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아예 들어가지 못하는 여러 이유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그렇다면 일단 미술관에 들어가기만 하면 원하는 작품을 볼 수 있을까요? 물론 아닙니다. 원하는 작품을 볼 수 없는 여러 가지 상황들이 있더군요. 첫 번째는 보고 싶은 작품이 전시되지 않은 경우입니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가 보면 이전에 있던 작품들이 더 이상 보이지 않거나 위치가 바뀌어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제가 리움 미술관에 가는 이유 중 하나는 마크 로스코Mark Rothko, 1903~1970와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 1909~1992의 그림들 때문인데 요즘에는 이 그림들이 전시실에서 사라졌습니다. 이기봉1957~의 『젖은 정신』2008은 몇 년이 지나도 전시실로 돌아오지 않고 있습니다. 2013년에 오르세 미술관에서 봤던 앙리 마티스Henri Émile Benoît Matisse, 1869~1954의 『호사, 평온, 관능Luxe, Calme Et Volupt』1904이 2016년에는 퐁피두센터에 걸려 있더군요. ‘분명히 이 그림은 오르세 미술관에 있었는데 왜 여기 있지?’ 「위키피디아」에도 이 그림은 오르세 미술관 소장으로 나오거든요. 한참 동안 헛갈려 하다가 잠정적인 답을 만들어냈습니다. 루브르 박물관과 오르세 미술관, 퐁피두센터 모두 프랑스의 국립 미술관들입니다. 루브르 박물관은 고대부터 르네상스 시기의 작품을, 오르세 미술관은 근대 작품, 퐁피두센터는 현대 작품을 전시하고 있죠. 아마도 마티스의 작품이 처음에는 근대 작품으로 분류됐다가 나중에 현대 작품으로 분류된 게 아닐까 혼자 추측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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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마티스, 『호사, 평온, 관능』, 1904. 캔버스에 유화, 98.5 × 118.5 cm. 퐁피두센터, 파리. |
예전에 『예술과 낭만의 도시 파리 미술』2010이라는 책을 읽다가 이브 클랭Yves Klein, 1968~1962의 『테네시 윌리엄스에 대한 경의Hommage a Tennessee Williams』1960를 보게 됐습니다. 이 작품은 클랭 자신이 조합해서 만든 인터내셔널 클랭 블루International Klein Blue로만 그려진 파란색 그림입니다. 아트포스터를 사서 만든 액자를 책상 앞에 걸어두고 보다가 퐁피두센터로 직접 작품을 보러 갔죠. 두근두근 설레는 기분으로요. 그런데 전시실을 다 둘러봤는데도 그림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안내 데스크에 가서 물어보니 작품이 지하 수장고에 있다고 하더군요. 다행히 다음 방문 때는 이 그림을 “직관”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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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브 클렝, 『테네시 윌리엄스에 대한 경의』, 1960. 혼합재료, 275 × 407 cm. 퐁피두센터, 파리. |
도쿄국립박물관에도 아직 “직관”하지 못한 작품들이 많습니다. 히시가와 모노로부菱川師宣의 『뒤돌아보는 미인도見返り美人図』17세기와 하세가와 도하쿠長谷川等伯, 1539~1610의 12폭 병풍도인 『송림도宋林圖』16세기, 사카이 호이츠酒井抱一, 1761~1828의 『하추초도夏秋草圖』1821 모두 이곳 박물관의 “간판” 소장 작품들입니다. “간판” 소장품들을 일 년 내내 전시하는 다른 대부분의 박물관이나 미술관과 달리 이 박물관에서는 이 간판 소장품들이 보이질 않더군요. ‘설마 다음에 오면 볼 수 있겠지’ 했는데 웬걸요. 다음에 갔을 때도 여전히 ‘미전시 중’이더군요. 혹시 제가 가지 않을 때만 전시 중인 것은 아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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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시가와 모노로부, 『뒤돌아보는 미인도』, 17세기. 비단에 채색, 63 × 31.2 cm. 도쿄국립박물관, 도쿄.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Beauty_looking_back.jpg#/media/File:Beauty_looking_back.jpg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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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세가와 도하쿠, 『송림도』, 16세기. 종이에 수묵, 병풍 각 156.8 × 356 cm. 도쿄국립박물관, 도쿄.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93748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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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카이 호이츠, 『하추초도』, 1821. 은지에 채색, 병풍 각 64.5 × 181.8 cm. 도쿄국립박물관, 도쿄. https://openmuseum.tw/muse/digi_object/fcfc653278b7ebce4ba77a33091a6f7d#108478 제공. |
보고 싶은 작품이 다른 미술관에 대여 중일 때도 직관이 불가능합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박물관이나 미술관의 “간판” 소장품들은 대개 상시 전시되고 다른 미술관에 대여되는 경우도 많지 않습니다. 『모나리자』는 1911년에 일어난 도난사건 이후 1963년에 딱 한 번 미국 순회 전시를 다녀왔다고 합니다. 사실 사람들이 루브르 박물관에 가는 목적 중 하나는 『모나리자』를 보는 것일 수 있습니다. 『모나리자』가 루브르 박물관을 떠나 순회 전시를 한다면, 루브르 박물관에 온 수많은 사람들이 서운해할 겁니다. 미술관에 다니다 보면 순회 전시 때문에 볼 수 없는 작품들이 많이 생깁니다. 테이트 브리튼Tate Britain 미술관에서 존 에버렛 밀레이John Everett Millais, 1829~1896의 『오필리어Ophelia』1851~1852가 보이지 않아 직원에게 물어보니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순회 전시 중이라고 하더군요. 뮌헨의 알테 피나코테크에서도 프랑수아 부셰Francois Boucher, 1703~1770의 『엎드려 있는 소녀Girl Reclining [Louise O’Murphy]』1751를 꼭 보고 싶었는데 순회 전시 중이라 볼 수가 없었습니다. 『오필리어』는 그 후 두 번째 방문 때 볼 수 있었지만 뮌헨에는 아직 다시 가보질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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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에버렛 밀레이, 『오필리어』, 1851~1852. 캔버스에 유화, 76 × 112 cm. 테이트 브리튼, 런던. http://www.tate-images.com/results.asp?image=N01506&wwwflag=3&imagepos=2 제공. |
대여 중이거나 순회 전시 중인 작품이 있으면 대개는 아무런 공지나 표시 없이 그 자리에 다른 작품이 전시됩니다. 그 작품을 일부러 보러 왔거나 미술관의 소장 작품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관람객들 외에는 전시실에서 작품이 내려졌다는 것을 모르고 지나치는 거죠. 그런데 대여 중인 일부 작품의 경우에는 대여 중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바로 아래 첫 번째 사진처럼 원래 작품이 걸려 있던 자리를 비워 두고 작품 캡션에 “대여 중”이라고 공지를 해주니까요. 친절한 미술관에서는 두 번째 사진처럼 빈자리에 작품의 사진을 걸어두거나 세워놓기도 합니다. ‘원래 이 자리에는 이 그림이 있었습니다’라고 알려주는 거죠. 우리나라의 국립중앙박물관에서도 이렇게 작품 대신 사진이 든 공지문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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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칸 피나코테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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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피치 미술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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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
원래 작품이 있던 자리에 작품의 사진을 걸어두는 미술관 이야기를 하다 보니 보스턴의 이사벨라 스튜어트 가드너 미술관Isabella Stewart Gardner Museum이 떠오르네요. 이 미술관은 1990년에 소장 작품 13점을 도난당한 후 그림만 잘려나가고 남은 빈 액자를 지금까지도 도난당했을 당시 모습 그대로 전시하고 있답니다. 미술관 설립자인 이사벨라 스튜어트 가드너가 미술관의 모든 것을 변경 없이 그대로 유지하라는 유언을 남겼기 때문이랍니다. 작품을 도난당해서 아직 되찾지 못한 경우도 원하는 작품을 볼 수 없는 이유가 될 수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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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벨라 스튜어드 가드너 미술관.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Empty_Frames_at_Isabella_Stewart_Gardner_Museum.jpg#/media/File:Empty_Frames_at_Isabella_Stewart_Gardner_Museum.jpg 제공. |
보고 싶은 작품을 볼 수 없는 네 번째 이유는 박물관이나 미술관이 작품 보호 차원에서 작품 공개를 아예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알타미라 동굴벽화를 직관하겠다는 일념으로 지중해 쪽 바르셀로나에서 출발해서 프랑스 툴루즈를 거쳐 대서양 쪽 칸타브리아까지 자동차 여행을 한 적이 있습니다. 며칠 만에 도착하고 보니 진짜 동굴 벽화는 일반인 관람이 불가능하더군요. 이곳 박물관에서는 2002년부터 동굴 벽화를 보호하기 위해 동굴을 폐쇄하고 모형 박물관을 만들어서 관람객에게 공개하고 있습니다. 프랑스의 라스코 동굴 역시 1963년부터 모형 박물관만 관람객에게 공개하고 있다고 합니다. 실물 영접은 하지 못했지만 진짜 동굴이 바로 옆에 있으니 역사적인 현장에 와 있다는 벅찬 감동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콩데미술관 역시 소장 작품을 공개하지 않는 또 다른 예가 될 수 있습니다. 중세 미술을 공부하다 보니 채색필사본illuminated manuscript 중 랭부르 형제들Limbourg brothers이 그린 성무일과서 혹은 성무일도서聖務日禱書, the Book of Hours에 대해 알게 됐습니다. 성무일과서란 중세 교회에서 절기별로 매일 드리는 기도서를 말합니다. 랭부르 형제들은 베리 공작을 위해 두 권의 기도서를 만들었는데 하나는 『베리 공작의 성무일도서Belles Heures of Jean de France, Duc de Berry』1404~1409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중세관인 클로이스터스The Met Cloisters에 소장돼 있고, 다른 하나는 『베리 공작의 매우 화려한 성무일도서Très Riches Heures du Duc de Berry』1412~1416로 콩데미술관에 있습니다. 울트라마린ultramarine이 눈부시게 아름다운 이 기도서들에 반해서 “직관”을 목표로 설정했죠. 『베리 공작의 성무일도서』는 뉴욕 여행 중에 직관에 성공했는데 문제는 『베리 공작의 매우 화려한 성무일도서』였습니다. 콩데 미술관을 처음 방문했을 때만 해도 이런 기도서가 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이 기도서를 보지 않고 온 것을 무척 아까워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었더군요. 설사 그 때 알았다 해도 “직관”이 불가능했을 테니까요. 파리 여행을 준비하면서 콩데 미술관 자료를 찾다 보니 이 기도서는 일반인 관람 불가라고 합니다. 미국 대통령쯤 돼야 이 기도서를 직관할 수 있다고 하네요. 미국의 두 대통령이 프랑스 순방 중에 이 기도서를 보고 갔답니다. 저 같은 일반인들에게는 아예 공개되지 않는다는군요. 어차피 가더라도 이 기도서를 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나서 결국에는 콩데 미술관 방문을 포기했습니다. 이 기도서는 끝내 못 보고 죽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혹시 모르죠. 언젠가 『베리 공작의 매우 화려한 성무일도서』를 보게 될 날이 올지도 모릅니다. “인생은 미스터리”라 못 볼 것이라 포기하고 있던 작품을 정말 우연히 보게 되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신선이 되고 싶은 화가 장승업』2002이라는 책을 읽다가 장승업의 『홍백매도』19세기 사진을 보게 됐습니다. ‘와, 이렇게 대담하고 활달한 필치로 매화도를 그릴 수도 있구나!’ 감탄하면서 그날 오후 바로 호암미술관으로 달려갔습니다. 조금 후면 매화도를 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 부풀어서요. 그런데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그림 자체가 전시돼 있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안내 데스크에 물어보니 언제 전시될지 기약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육 개월 단위로 전시 작품이 교체되기 때문에 그때그때 홈페이지를 확인해보라더군요. 죽기 전에 이 작품을 못 볼 수도 있는 거죠. 미술관 정원에서 만난 공작들로 실망감을 달래면서 장승업의 매화도를 볼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접었습니다. 대신 구글에서 얻은 그림 사진을 인화해서 작은 액자에 넣어 책상 앞에 놓아두고 아쉬움을 달랬습니다. 얼마 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미술 속 도시, 도시 속 미술」2016 특별전이 열리는데 조희룡과 장승업의 작품을 포함해서 여러 매화도가 전시된다는 기사가 났더군요. 호암미술관에 있는 『홍백매도』는 아니더라도 장승업의 다른 매화도라도 보게 되면 아쉬움을 덜 수 있을 것 같았죠. 특별전에 전시된 매화도는 병풍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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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속 도시, 도시 속 미술」(2016) 특별전에 전시된 『홍백매도 |
작품 캡션에 소장자가 개인이라고 적혀 있었기 때문에 이 작품이 책에서 본 매화도일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장승업의 매화도는 ‘호암미술관 소장’으로 돼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작품이 낯이 익더군요. 기프트숍에 있는 전시회 도록을 살펴보니 도록에는 병풍이 아니라, 표구 부분을 제외하고 그림 부분만 실려 있었습니다.(펼쳐진 그림을 보고 싶으면 여기를 눌러 주세요.) 그제야 책에서 본 『홍백매도』와 전시회의 매화도가 동일 작품이라는 것을 깨달았죠. 죽기 전에 못 볼 것이라 포기하고 있던 작품을 전혀 예기치 않게 직관하게 된 겁니다. 그러니 여러 사정으로 못 보고 놓친 작품들이 있다고 너무 실망하거나 서운해 하지 마십시오. 꾸준히 미술관에 다니다 보면 언제, 어떻게 그 작품들이 우리 앞에 “짠”하고 모습을 드러낼지 아무도 모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