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에 다니다 보면 조금씩 늘어나는 것이 생깁니다. 아는 작가와 작품도 늘어나고, 좋아하는 작가와 작품도 늘어나면서 미술에 대한 지식과 이해의 폭도 조금 늘어나죠. 더불어 기독교의 성화와 불교의 불화들, 인도의 세밀화 같은 종교와 연관된 그림들을 통해 종교에 대한 지식도 조금 늘어나더군요. 미술관에서 기독교 성화들을 접하기 전에 제가 알고 있던 기독교 성인은 열두 사도를 제외하고 마리아 막달레나Mary Magdalene와 김대건 안드레아1821~1846가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기독교 성인들을 그린 같은 제목의 여러 작품을 접하다 보니 몇몇 기독교 성인들에 대해서도 자연스럽게 알게 되더군요. 말을 탄 채 긴 창으로 용을 무찌르는 청년은 순교자 성 조지Saint George; 라틴어로 성 게오르기우스Georgius라는 것도 알게 됐고, 기둥에 묶인 채 벌거벗은 몸에 여러 개의 화살이 박혀 있는 청년은 성 세바스챤St. Sebastian이라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러시아의 미술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형제 성인들인 보리스와 글렙Boris and Gleb도 알게 됐죠. 그 덕에 성지 역사박물관에서 열린 「러시아 이콘 전시회」2021에서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동료 선생님에게 기독교 신자도 아닌 제가 ‘자발적으로 고난을 받은 성인들’인 성 보리스와 성 글렙에 대해 설명해주는 재미있는 상황이 벌어졌답니다.
왼쪽 그림 - 『용을 죽이는 성 조지의 기적』, 18세기 초. 나무에 템페라, 46.5 × 65.4 cm. 러시아 이콘 박물관, 모스크바. / 오른쪽 그림 - 『성 보리스와 성 글렙』, 15세기 말. 나무에 템페라. 트레티야코프 미술관, 모스크바.) |
제가 그림을 통해 알게 된 최초의 기독교 성인은 ‘성 제롬St. Jerome’입니다. 이름 한 번 들어본 적이 없었는데 미술관에서 자주 만나다 보니 친해진 친구 같은 성인입니다. 인상적인 첫 만남부터 작은 깨달음을 준 최근의 만남까지 십 년 넘게 우정을 쌓아온 친구라서 같은 제목의 여러 작품들에 대한 예로 『성 제롬』을 선택했습니다.
미술작품을 알아가는 과정은 친구를 사귀는 과정과 비슷합니다. 누군가를 만나 얼굴을 익히고, 이름을 알게 되고, 그 사람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는 것처럼 미술작품도 비슷한 단계를 거쳐 친해지니까요. 학교가 멀어서 방학이면 집 근처 공립도서관에서 공부한 적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처음 앉는 자리에 계속 앉는 경향이 있습니다. 학교에서도 학기 초 첫 강의 때 앉았던 자리에 학기 말까지 계속 앉는 학생이 많습니다. 도서관에서도 마찬가지더군요. 같은 테이블에 앉는 사람들이 거의 정해져 있어서 며칠만 지나면 서로 얼굴을 알게 됩니다. 도서관에 근무하는 사서와 직원들의 얼굴도 익히게 되고요. 얼마 지나지 않아 익숙한 얼굴들과 인사를 나누는 사이가 됩니다. 미술 비디오와 책을 자주 빌려 가는 제게 미술 교사냐고 묻는 직원도 있었고, 오래된 루브르 박물관 도록 파본을 선물로 준 사서도 있었습니다.
미술작품을 알아가는 과정도 비슷한 것 같아요. 미술관에서 처음에는 그저 스쳐 지나가지만, 같은 제목의 비슷한 그림들을 이 미술관, 저 미술관에서 보고, 같은 미술관의 이 전시실, 저 전시실에서 자주 마주치게 되면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면서 낯이 익게 되는 거죠. 그러다가 궁금해져서 작품 캡션을 읽어보며 무슨 내용을 그린 작품인지 알아가게 됩니다. 어떤 미술관에 가더라도 비슷한 모습의 그림이 나타나면 도서관에서 같은 테이블에 앉는 낯익은 얼굴들을 만날 때처럼 반가운 마음이 들죠.
이렇게 친구가 된 그림 속 주인공이 바로 성 제롬입니다. 물론 성 제롬은 저를 친구로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그래도 저는 어디서 만나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건, 이 친구를 알아볼 수 있다고 자신합니다. 다음 그림들은 한 점을 제외하고 모두 성 제롬을 그린 겁니다. 성 제롬이 아닌 그림을 한 번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헛갈린다고요? 옷 색깔에 집중해서 답을 골라보세요.
첫 번째 그림은 프란시스코 고야Francisco de Goya, 1746~1828가 그린 『참회하는 성 제롬Saint Jerome in Penitence』1798입니다. 제가 캘리포니아 패서디나Pasadena에 있는 노턴 사이먼 뮤지엄Norton Simon Museum에서 만난 최초의 『성 제롬』입니다. 이 그림을 봤을 때는 그림 속 남자가 누구인지 전혀 몰랐습니다. 한 남자가 풀 한 포기 없는 바위산에서 맨발 상태로 한 손에는 예수가 못 박혀 있는 작은 십자가를 들고, 주먹 쥔 다른 손으로는 바위를 내리치며 상체를 앞으로 기울이고 무릎을 구부려서 살짝 꿇어앉은 자세를 취하고 있었습니다. 백발에 가까운 머리는 빠져서 거의 남아 있지 않았고, 덥수룩한 수염이 머리카락보다 더 풍성해 보였습니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그의 상체는 앙상하게 말라 있었고요. 허리부터 무릎까지 치마처럼 두른 붉은 천은 어두운 하늘과 칙칙한 바위산과 대비되어 선명하게 빛났죠. 그가 앙상한 무릎을 기대고 있는 커다란 바위 위에는 성서처럼 보이는 큰 책이 왼쪽에 펼쳐져 있었습니다. 오른쪽에는 펜과 잉크, 해골 하나, 글을 쓰는 공책 같은 작은 책, 회초리 네 개가 놓여 있더군요. 그가 누구인지는 몰랐지만 외딴 산속에서 홀로 고행하는 수도사라는 것은 알 수 있었습니다. 앙상하게 마른 그의 처참한 몰골과는 대조적으로 붉은 옷 색깔이 너무 화사하죠? 이 그림을 처음 본 순간 저는 바로 고개를 돌렸습니다. 너무 참혹해서 오래 보고 싶지 않았으니까요. ‘종교를 위해 저렇게까지 고행을 해야 하나?’하는 생각을 하면서요.
이 인상적인 첫 만남 이후 여러 미술관에서 그를 만났습니다. 그는 때로는 첫 번째 그림에서처럼 황야에서 고행하는 모습으로, 때로는 두 번째 그림에서처럼 서재에 앉아 책을 읽고, 책을 쓰는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는 때로는 대머리로, 때로는 머리털이 풍성한 모습으로, 때로는 중년의 모습으로, 때로는 노인의 모습으로, 때로는 상체를 다 드러낸 모습으로, 때로는 긴 천으로 한쪽 어깨를 감싸고 상체를 반만 드러낸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그가 입고 있는, 아니 어깨에 걸치고 있다고 하는 것이 오히려 정확한, 옷은 거의 모든 경우에 선명한 붉은 색이었고, 거의 항상 긴 수염을 기르고 있었습니다. 고행 중에 면도는 사치겠죠? 그는 때로 책을 펼쳐 놓고 읽었고, 때로는 공책에 무엇인가를 적고 있었으며, 때로는 책을 들고 있었고, 때로는 책을 옆에 가만히 놓아두기도 했습니다. 그의 곁에는 항상 책이, 성서가 있었습니다. 책과 더불어 그의 곁에는 항상 해골이 있더군요. 해골이 때로는 그의 손에, 때로는 책상 위에, 때로는 그의 발치에 놓여 있었어요.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항상 죽음을 생각하라는 메시지겠죠. 선명한 붉은 색 옷과 드러낸 상체, 깡마른 수염투성이 얼굴, 책과 해골. 빠지지 않는 이 강력한 코드들 때문에 저는 조금씩 달라진 모습으로 다른 장소에 나타나도 어김없이 그를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업적으로 성자가 됐는지 아무것도 알지 못 한 채, 그와의 만남이 몇 년간 지속됐습니다.
그런데 그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도 알아볼 수 있다고 자신하던 제게 그와 똑같은 모습을 한 또 한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성 제롬처럼 선명한 붉은 색 옷을 입고 해골을 들고 있는데 작품 캡션을 살펴보면 『성 제롬』이 아니라 『성 히에로니무스Saint Hieronymus』라고 적혀 있더군요. 세 번째 그림의 제목이 바로 『황야의 성 히에로니무스Der hl. Hieronymus in felsiger』1515입니다. 도대체 성 제롬과 성 히에로니무스는 어떤 관계일까요? 성 제롬과 쌍둥이처럼 닮은 성 히에로니무스 때문에 성 제롬을 만난 지 몇 년 만에 그가 어떤 성자인지 인터넷을 검색해 보기로 했습니다. 성 제롬을 우리나라에서는 ‘성 예로니모’라고 부르더군요. ‘성 예로니모’라고 불리는 성 제롬영어 이름과 성 히에로니무스라틴어 이름는 동일인이랍니다. 말하자면, 제우스그리스어 이름와 유피테르로마 이름, 헤라와 유노, 아프로디테와 베누스가 같은 신인 것처럼요. 성 제롬342/347~420은 4세기에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기독교 성직자이자 신학자로, 성경의 대부분을 라틴어로 번역했다고 합니다. 가톨릭교회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는 ‘불가타Vulgata’ 성경을 번역한 사람이 바로 성 제롬이랍니다. 그는 흔히 상체를 벗은 은둔 수사로, 펜을 들고 저술에 몰두하거나 돌로 가슴을 치는 모습으로 표현된다고 합니다.
히브리 성서를 라틴어로 번역한 기독교 성인인 성 제롬은 수많은 그림의 주인공이 됨으로써 미술과 연관을 맺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성 제롬과 미술의 연관성을 하나 더 찾아냈습니다. 미켈란젤로1475-1564의 조각 작품, 『모세Moses』1513~1515에 관한 프로이트의 글, 「미켈란젤로의 모세 상Der Moses des Michelangelo」1914을 읽다 보니 성 제롬이 등장하더군요. 미켈란젤로의 모세상에는 머리에 뿔이 두 개 나 있습니다. 시내 산에서 하느님을 만나고 돌아온 모세의 얼굴에서 ‘빛이 났다qalen’는 대목을 성 제롬이 ‘뿔이 났다qulan’로 잘못 옮겼는데 미켈란젤로가 이 번역에 의지해서 모세상을 만들었기 때문이랍니다.
미켈란젤로, 『모세』, 1513~1515년. 대리석, 235 × 210 cm. 산 피에트로 인 빈콜리 성당, 로마.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27Moses%27_by_Michelangelo_JBU140.jpg#/media/File:'Moses'_by_Michelangelo_JBU140.jpg 제공. |
제러미 벤덤Jeremy Bentham, 1748~1832은 『정부소론A fragment on government』1776에서 “금욕주의 원칙을 따른 종교인들은 종종 고통을 자초하는 것을 공덕과 의무로 삼았다. 그들은 쾌락으로 불리는 모든 것을 비난했고 고통과 사랑에 빠지는 것을 칭찬할 만한 일이라고 여겼다”며 금욕주의를 극단적으로 실천하는 종교인들을 맹렬하게 비난합니다. 이 구절을 읽을 때 성 제롬이 떠올랐습니다. 먹지도, 자지도 않고, 앙상한 몸에 스스로 채찍질을 가하고 돌멩이로 가슴을 내리치며 고행을 하는 사람이었으니까요. 미술관에서 성 제롬을 만날 때마다 하느님을 섬기는 방법이 저런 극단적인 고행밖에 없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곤 했죠. 그와의 만남은 되도록 피하고 싶었습니다. 저는 성 제롬에게 ‘고통을 즐기는 마조히스트’라는 별명을 지어 줬습니다.
그런데 마드리드의 티센 보르네미사Museo Thyssen-Bornemisza 미술관에서 지금까지 제가 알던 성 제롬과는 완전히 다른 성 제롬을 만났습니다. 네 번째 그림에서는 성 제롬이 앞의 세 그림과 달리 많이 편안해 보이지 않나요? 그로스크마인의 거장The Master of Grossgmain이 그린 『추기경 복장의 성 히에로니무스Saint Jerome As a Cardinal』1498에서 성 제롬은 트레이드마크인 긴 수염을 싹 밀어버린 채 말쑥한 추기경 복장으로 단정하게 앉아 있습니다. ─ 성 제롬은 시리아의 사막에서 사, 오 년 정도, 나중에는 베들레헴 근처에서 34년 동안 금욕생활을 했고, 나중에 교황의 비서로 일했지만 추기경에 오르진 않았다고 합니다. 성 제롬 생존 당시에는 추기경이라는 직위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성 제롬을 추기경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 성 제롬은 추기경 복장의 색깔인 빨간색 옷을 입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 항상 그의 곁에 있던 해골도 보이지 않고요. 무엇보다 혼자가 아닙니다. 사자 한 마리가, 그것도 강아지처럼 귀엽게 웃고 있는 사자 한 마리가 그의 무릎에 두 앞발을 올리고 머리를 기댄 채 앉아 있죠? 성 제롬은 그런 사자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습니다. 평화롭고 여유로운 둘의 모습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나중에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성 제롬이 사자의 발에서 가시를 뽑아준 다음부터는 사자가 항상 그의 곁을 떠나지 않고 지켜 줬다고 합니다. 때로는 성 제롬이 사자에게 설교도 해줬다고 하네요. 앞으로 미술관에서 귀여운 사자와 함께 있는 수도사를 보면 성 제롬을 떠올리시면 됩니다. 사자와 숲속 동물들을 모아놓고 설교하는 성 제롬에 대해 말씀드리다 보니 동물에게 설교한 다른 성인이 생각나네요. 바로 여섯 번째 그림 속 주인공인 성 프란체스코San Francisco입니다. 성 프란체스코는 동물들과 대화를 나눌 줄 아는 동물들의 수호성인으로, 그림에서 동물들, 특히 새들에게 설교하는 모습으로 자주 등장합니다. 성 제롬 곁에는 사자가, 성 프란체스코 곁에는 새들이 함께 하는 거죠.
그런데 『새들에게 설교하는 성 프란체스코』에서 특별한 점을 발견하지 않으셨어요? 네 번째 그림까지 성 제롬은 항상 빨간색 옷을 입고 있는데 성 프란체스코가 입고 있는 옷 색깔은 짙은 갈색이죠? 여섯 번째 그림을 봐주세요. 황야에서 성서를 펼쳐 놓고, 해골을 앞에 둔 채 수행 중이지만 이 수도사는 성 제롬이 아닙니다. 배경이 『성 제롬』과 똑같지만 입고 있는 옷 색깔이 다릅니다. 이렇게 짙은 갈색 옷을 입은 수도사는 성 프란체스코입니다. 성 프란체스코가 세운 프란체스코회 수도사들의 공식적인 수도복 색깔이 짙은 갈색이거든요. 앞으로 미술관에서 짙은 갈색 옷을 입은 수도사를 보면 성 프란체스코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제 질문에 대한 답이 나온 거죠? 성 제롬이 아닌 그림은 여섯 번째 그림입니다.
사자와 함께 있는 성 제롬의 그림을 보고 나서 그의 삶이 외로움과 고통으로만 가득한 삶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자 안심이 됐습니다. 고단한 고행의 삶에 사자가 위안이 돼 줬을 테니까요. 사자와 함께 있는 성 제롬을 보고 온 날은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았습니다.
티센 보르네미사 미술관을 다녀오고 나서 며칠 후 뮌헨의 알테 피나코테크Alte Pinakothek에서 다섯 번째 그림 속의 성 제롬을 다시 만났습니다. 그곳에서 그를 다시 만난 후 저는 그에 대한 걱정과 불편함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났습니다. 한 볼로냐Bologna 화파 화가의 그림 속에서 그는 책상 위에 성서를 펼쳐 세워놓고 펜을 들고 앉아 미소를 짓고 있습니다. 사자를 쓰다듬고 있을 때도 엄격함을 잃지 않았던 그가 책상 위쪽을 올려다보며 누군가를 향해 살며시 미소를 머금고 있죠. 누군가를 바라보는 그의 눈길이 그렇게 지긋할 수가 없었습니다. 천사를 바라보고 있더군요. 펼쳐 세워놓은 커다란 성서 위에 아름다운 소년 천사가 두 팔을 올려놓고 상체를 기울이며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성 제롬은 천국을 경험하고 있었습니다. 고행하며 성서를 번역하는 힘든 생활 속에서 날마다 천국을 누리고 있었던 거죠. 날마다 천국을 만나는 그를 누가 걱정하고 동정할 수 있겠어요? 누가 그의 금욕주의를 마조히즘이라고 비난할 수 있겠어요? 행복한 성 제롬은 제게 다른 사람의 삶을 섣불리 예단하는 것이 얼마나 경솔한지 조용히 일깨워 줬습니다. 티센 보르네미사 미술관과 알테 피타코테크에서 행복한 성 제롬을 만난 후, 워싱턴 DC의 국립미술관에서도 천사와 함께 있는 행복한 성 제롬을 만났습니다.
시몽 부에, 『성 제롬과 천사』, 1625년. 144.8 × 179.8 cm, 캔버스에 유화. 국립미술관, 워싱턴. |
이후로도 계속해서 유럽과 미국의 미술관과 박물관에서, 도쿄의 서양 근대 미술관에서, 때로는 한 명의 성 제롬만, 때로는 한 미술관에서 여러 명의 성 제롬을 만나고 있습니다. 베를린의 게멜데갈러리에는 일곱 명의 성 제롬이 있더군요. 그러나 이제는 고행하고 있는 성 제롬을 만나도 편안한 마음으로,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넵니다. 고행으로 몸은 힘들어도 정신적으로 행복을 만끽하고 있다는 것을 아니까요. 혹시 미술관에서 성 제롬을 만나면 저 대신 안부를 전해 주시기 바랍니다.
* 위 여섯 점의 작품 정보
1. 첫 줄 왼쪽 그림 - 프랜시스 고야, 『참회하는 성 제롬』, 1798년. 캔버스에 유화, 190.8 × 114.3 cm. 노턴 사이먼 미술관, 패서디나.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St._Jerome_in_Penitence_by_Francisco_Goya_y_Lucientes.jpg#/media/File:St._Jerome_in_Penitence_by_Francisco_Goya_y_Lucientes.jpg 제공.
2. 첫 줄 오른쪽 그림 - 주스 판 클레브, 1485/90~1540/41년, 『서재에 있는 성 제롬』, 1521. 패널에 유화. 하버드 미술관, 보스턴.
3. 둘째 줄 왼쪽 그림 - 루카스 크라나흐, 1472~1553년, 『황야의 성 예로니모』, 1515. 게멜데갈러리, 베를린.
4. 둘째 줄 오른쪽 그림 - 그로스메인의 대가, 『성 제롬』, 1498년. 패널에 유화. 티센 보르네미사 미술관, 마드리드.
5. 셋째 줄 왼쪽 그림 - 볼로냐의 대가, 『성 예로니모』. 알테 피나코테크, 뮌헨.
6. 셋째 줄 오른쪽 그림 - 치골리,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 1597~1599년. 198 × 147 cm, 캔버스에 유화. 예르미타시 미술관, 상트페테르부르크.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Cigoli,_san_francesco.jpg#/media/File:Cigoli,_san_francesco.jpg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