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겁고 뜨거운 가을이었습니다. ‘희망의집’ 입소 아이들과 함께한 북적북적 문해력 프로그램을 마치고, 아이들보다 제가 더 아이들에게 물들어 갔습니다. 윤동주 시인처럼 아이들 한 명 한 명을 떠올려 봅니다. 은○, 지○, 찬○, 현○, 선○, 태○, 수○, 준○, 가○. 이렇게 아홉 명의 아이들과 ‘북적북적’을 시작했습니다. (너희들 모두 단풍잎보다 사랑스럽고, 꽃보다 더 예뻤단다).
프로그램 주 강사로서 ‘어떻게 하면 아이들과 잘 만나 책을 읽고, 문해력을 조금이나마 향상시킬 수 있을까?’를 고민했습니다. 수업 전에 아이들 이름 옆에 적힌 비고란을 보는 순간, 문해력이라는 목적을 이룰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었지만 그 비고란을 덮고, 아이들 한 명 한 명과 호흡을 맞추리라 결심하며 수업을 시작했습니다.
가장 먼저 마주한 큰 산은 아이들의 집중력이 또래 아이들보다 현저히 낮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래서 수업 전 간단한 손 유희를 통해서 집중력을 최대한 끌어모았습니다. 그리고 구호를 정했습니다. “북적하면 북적북적! 북적북적하면 북적!” 아주 간단한 구호였기에 아이들은 함께 동작하며 마음을 모아주었습니다. 손동작 유희도 처음엔 잘하지 못하던 아이들이 반복하여 했더니 마지막 차시에는 모든 아이들이 틀리지 않고 할 수 있게 되어서 역시 반복은 힘이 세다는 것을 새삼 느꼈습니다.
문해력 증진을 위해 ‘듣기―읽기―말하기―쓰기’의 순으로 활동 계획을 세웠습니다. 지정된 그림책을 박선려 강사님이 재미있고 귀에 쏙쏙 들어오게 읽어주셨습니다. 그림책을 다 읽고 나면 아이들이 한 페이지씩 돌아가면서 소리 내어 읽었습니다. 아직 읽기를 힘들어하는 아이들은 옆에서 한 글자 한 글자 짚어가면서 함께 읽어 주었습니다.
다음으로는 책과 관련한 발문을 통해 말하기 활동을 진행했습니다. 이때부터 아이들의 집중력이 흐트러지면서 서로 먼저 말하려고 옥신각신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아이들이 서로의 말을 통해 성장하고 문해력을 키운다고 믿으며 느긋하게 기다렸습니다.
다음에는 쓰기 활동을 했습니다. 글을 잘 쓰는 아이들도 있었고, 못 쓰는 아이들도 있었기에 시간이 걸리는 활동이었습니다. 글을 잘 쓰는 아이들은 후다닥 쓰고 놀고 싶어 했고, 못 쓰는 아이들은 천천히 옆에서 도와주며 함께 글을 써주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쓰기 활동을 마치고 책과 관련된 활동을 곁들었습니다. 『강아지 똥』을 읽은 후 찰흙으로 강아지 똥을 만들었는데, 아이들이 손으로 조형물을 빚는 솜씨가 뛰어나 깜짝 놀랐습니다.
『숲속 재봉사』를 읽고 희망의집 앞뜰로 나가서 꽃과 풀을 찾아 꾸미기 활동도 했고, 『우리 곧 사라져요』를 읽고 사라져가는 바다 생명을 위한 책 만들기를 하였습니다. 아이들이 진지하게 심혈을 기울여 책을 만드는 모습은 참 기특하고 뭉클했습니다.
아이들 간에 학년이 다르고, 저마다 비고경계성 등가 있어 발달 상태가 달라 편차가 심했습니다. 빨리 후다닥 해버리는 아이들, 기다림을 조금 힘들어하는 아이들, 글은 못 쓰지만 정성껏 꼼꼼하게 활동하는 아이들… 9인 9색의 아이들과 씨름을 하는 기분이었습니다.
공통적으로 아이들이 가장 집중한 시간은 간식 시간이었습니다. 그 시간 동안 저도 한숨 돌릴 수 있었지만, 함께 해주신 보조강사님께서는 여전히 아이들을 돌보느라 물 한 모금도 못 드셨던 것 같아 감사한 마음이 큽니다.
아이들이 좋아했던 또 다른 활동은 진해기적의도서관 방문이었습니다. 도서관을 방문해 책을 읽고 옥상에서 구름도 관찰하고 벌렁 누워도 보았던 것,이이효재 생명숲길을 걸으며 이이효재 선생님에 대해 알아보고 숲체험 활동을 했던 것도 즐거워 했습니다. 아이들에게 이런 경험이 지속적으로 주어질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프로그램 초기에 계획했던 문해력 테스트도 진행했습니다. 국어 시험지 같은 문해력 등급 평가를 치르면서, 과연 아이들이 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지만 격려와 독려로 실시했습니다. 1차 평가 결과는 8명 평균 35점1명 결석이었고, 2차 평가 결과는 50점이었습니다. 10차시 수업으로 15점 상승이라는 큰 성과를 이루지는 못했지만, 9명 중 5명의 점수가 오른 것에 큰 의미를 두었습니다. 특히 아이들 중 한 명은 89점이 나와서 깜짝 놀랐습니다. 1차 평가에서 23점이었던 아이가 70점까지 오른 것은 매우 놀라운 변화였습니다. 점수가 내려간 아이들은 컨디션의 영향을 받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아이들의 가장 큰 변화는 함께 읽고 쓰며 생각을 공유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잠재적 능력을 발견하고, 서로의 다름을 조율하며 성장하는 법을 배웠다는 점입니다. 아이들이 문해력 프로그램을 통해 함께하는 기쁨과 즐거움을 느끼고, 책을 통해 세상을 살아가는 올바른 가치관을 새기며 미래를 꿈꾸고 희망의 씨앗을 품을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는 것이 가장 큰 소득이었습니다.
수업을 진행하며 가끔 아이들이 쓴 글을 보며 울컥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 글 속에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담겨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글을 쓸 수 있었던 것도 문해력 프로그램을 통해서였기에, 아이들이 단풍잎처럼 붉고 뜨거웠던 10차시의 활동 속에서 행복하고 즐거웠기를 바랍니다. 세상의 따뜻함을 품고, 몸도 마음도 함께 올곧게 성장해 나가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