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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김예린 |
몸으로 익히는 언어의 감각
“아이들이 ‘가랑비’ ‘보슬비’ ‘실비’의 차이를 알 수 있을까?”
이 작은 호기심이 수업의 시작이었습니다. 호기심은 2016년 출판된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최종규, 2016에서 비롯됐습니다. 사전은 비슷하지만 미묘하게 다른 우리말 뜻을 친절히 알려주는 책입니다. 말을 배울 때 우리는 부모의 입 모양과 말을 따라 하고, 뜻을 익힙니다. 단순히 글을 쓰고 지우면서 외우는 것이 아니라, 오감을 활용해 말을 익힙니다. 우리가 말을 배우는 과정은 자연스럽고 즐겁게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수업 계획을 세울 때 원칙은 딱 하나였습니다.
‘어린이가 즐거운 수업을 하자.’
수업은 계절과 관련된 우리말 어휘를 그림책과 함께 익히고, 이를 활용해 창의적으로 협동적인 예술 활동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수업을 봄, 여름, 가을로 나누고, 어린이들은 총 10차시 동안 배운 계절별 비슷한말을 바탕으로 일기예보 대본을 완성했습니다. 조별로 일기예보에 필요한 소품을 만들고, 대본을 가지고 일기예보 발표까지 이어갔습니다.
첫 시간에는 아이들 간 친밀감을 형성하는 활동을 진행했습니다. 계절과 관련된 낱말을 떠올리고 각자 마음에 드는 단어로 ‘기상캐스터 이름’을 지었습니다. ‘모기’ ‘여름’ ‘단풍’ 등 수업 시간 내내 아이들은 각자가 정한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그림책을 읽고 ‘나 사용 설명서’를 작성하며 낯선 친구들과 친숙해지고, 자신을 탐구하고 표현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본격적인 수업은 두 번째 시간부터 시작됐습니다. 초성 퀴즈를 통해 계절별 비슷한말의 뜻을 유추하며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어휘력을 키웠습니다. ‘햇발’ ‘햇귀’ 등 낯선 비슷한말을 몸으로 표현하거나, 새로운 비슷한말을 넣어 글을 써보는 활동은 아이들에게 말을 가지고 노는 즐거움을 주었습니다. ‘온몸으로 말해요’ 퀴즈 시간에는 아이들이 무대로 나와 퀴즈를 내려고 경쟁적으로 손을 들었습니다. 아이들은 단어의 미묘한 차이를 이해하고 그 차이를 몸으로 해석하는 능력을 길렀습니다.
수업마다 배운 비슷한말은 음악, 미술, 글쓰기 등 다양한 예술 활동으로 표현됐습니다. 아이들의 창의력이 돋보이는 순간들이 많았습니다. 그림책 『여름이 온다』이수지, 2021는 청각을 시각으로 표현하는 데 완벽한 마중물이 돼 주었습니다. ‘불볕’ ‘땡볕’ ‘후끈후끈하다’ 같은 언어를 아이들이 색채로 표현하고, 감각적으로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됐습니다.
기상청은 바람 세기에 따라 ‘풍력계급표’를 우리말 이름을 붙였습니다. 하지만 이를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바람이 없는 ‘고요’부터 산더미 같은 파도를 일으키는 ‘싹슬바람’에 이르기까지, 바람의 우리말 이름을 단순히 외지 않고 몸으로 바람의 세기를 느끼고 표현했습니다. 아이들은 가만히 서 있거나 팔을 연신 휘젓고, 무대 위를 격하게 뛰어다니며 자신만의 바람을 만들었습니다. 몸으로 익힌 바람의 단어는 일기예보 속에 넣어 자신만의 일기예보로 완성됐습니다. 아이들은 점점 적극적으로 자신만의 일기예보를 만들어 갔습니다.
창의력이 꽃 핀 ‘일기예보’ 만들기
초성 퀴즈를 맞히고, 온몸으로 단어 퀴즈를 풀고 난 뒤에는, 단어 뜻을 직접 써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책상 위에 사전을 펼쳐 놓고, 아이들이 연필로 단어 뜻을 써 내려가는 모습이 참 예뻐 보였습니다. 입을 삐죽 내밀며 집중하는 얼굴에는 진지함이 묻어났습니다. 수업 시간뿐 아니라 쉬는 시간에도 아이들은 사전을 펼쳐 친구들과 퀴즈를 내며 단어 놀이를 즐겼습니다. 강의 우리말 ‘가람’, 장마의 옛말 ‘오란비’를 배울 때는 “그런 단어도 있었어요?”라며 놀라기도 했습니다. 수업마다 몰입과 감탄이 이어졌고, 아이들은 단순히 새로운 단어를 배우는 것을 넘어 언어의 다양성을 즐기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자, 이제 뉴스에 나오는 일기예보처럼 만들어 보자.”
‘햇살’ ‘들녘’ ‘남실바람’ ‘꽃망울’ 등 수업 시간 동안 비슷한말은 충분히 익혔습니다. 익힌 비슷한말을 활용할 차례입니다. 수업 시간마다 일기예보를 써보는 시간을 가졌기에 아이들이 일기예보를 쓰는 건 식은 죽 먹기이었습니다. 9, 10회차 수업에서는 배웠던 비슷한말을 복습하고, 직접 일기예보 발표를 준비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아이들에게 종이상자, 골판지, 색칠도구, 색테이프 등 만들기 재료를 주었습니다. 조별로 마이크, 텔레비전, 날씨판 등 개성 넘치는 소품을 만들고, 경상도, 수도권, 강원도 등 지역별 대본을 나눠 썼습니다. 앵커, 기상캐스터 등 역할을 나누고 대본을 작성하고, 무대 장치를 준비했습니다. 처음에는 ‘이걸 왜 이렇게 하는데?’ ‘이건 이렇게 하면 어떨까?’라며 의견을 조율하는 데 어려움을 겪기도 했습니다. 점차 서로의 생각을 존중하고 도우며 하나의 일기예보를 만들어 갔습니다.
아이들은 쑥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이 쓴 대본을 또박또박 읽으며 조별 발표를 끝냈습니다. 발표 후 얼굴에는 친구들과 힘을 합쳐 일기예보를 완성했다는 뿌듯함과 성취감이 묻어났습니다. 물론, 모든 과정이 순탄했던 것은 아닙니다. 활동이 많아 시간이 부족했던 경우도 있었고, 조별 활동에 소극적인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들은 아이들의 성향을 세심히 고려한 역할 분담과 개별 활동 기회를 제공하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 다음에도 이런 수업해요!”
마지막 수업 날, 아이들이 아쉬움을 토로하며 이런 말을 건넬 때 강사의 마음은 뿌듯함과 보람으로 가득 찹니다. 수업에 아이를 참여시켰던 학부모는 “다음 수업은 언제 하냐?”고 질문했습니다. 학부모는 “재미있게 우리말을 배우는 아이의 모습이 예뻐 보였다”며 웃었습니다. 비슷한말로 완성하는 특별한 일기예보는 이렇게 마무리됐습니다. 수업을 듣는 아이들, 수업을 보낸 학부모, 수업의 항해사가 된 강사까지 모두가 기쁘게 수업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책 읽기가 문해력의 단단한 토대가 된다면, 비슷한 우리말을 온몸으로 배우는 일은 토대 위에 벽돌을 한 장씩 쌓아가는 과정과도 같았습니다. 아이들은 몰입한 줄도 모른 채, 우리말을 배우는 기쁨을 경험했습니다. 강사는 벽돌 쌓는 방법만 제시했을 뿐, 아이들 스스로 그 벽돌을 쌓아 올리며 자연스럽게 배움이 이루어졌습니다. 더 많은 아이들이 우리말을 즐겁게 배우길 진심으로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