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에 기적의도서관 프로젝트를 시작한 이후 19년이 흘렀습니다. 기적의도서관이 지역에 뿌리내리고 의미 있는 곳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건 ‘사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 달에 한 번, 기적의도서관에서 ‘기적’을 만드는 사람을 만나 봅니다. 네 번째로 구로기적의도서관 팀장으로 있는 강연주 사서를 만났습니다.
안녕하세요. 구로기적의도서관에서 총괄팀장을 맡고 있는 강연주라고 합니다. 공공도서관에서 일한 지는 10년이 넘었고요, 구로기적의도서관에서는 1년 8개월째 일하고 있습니다. 도서관 운영 전반을 담당하고 있고요, 다른 직원들과 함께 좋은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에 힘쓰고 있습니다.
― 왜 사서가 되셨나요?
구태의연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책을 좋아했고 도서관의 분위기를 좋아했어요. 그리고 종이책을 읽으면서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에 매력을 느꼈어요. 이런 점 때문에 사서가 낭만 있는 직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10년이 지나고 보니 낭만과는 거리가 먼 직업인 것 같아요. 끊임없이 자기개발을 해야 하고, 그냥 자격증이 있다고 해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더라고요. 항상 열린 마음이어야 하고, 트렌드에 민감해야 하고, 정보 기술도 갖춰야 하고, 커뮤니케이션 능력도 있어야 하고. 계속 노력해야 하는 직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 이전에 근무했던 공공도서관과 비교할 때 구로기적의도서관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전에 일하던 곳에서는 공모사업이 많았어요. 프로그램도 정말 많았고요. 그런데 구로기적의도서관은 사업을 위한 프로그램보다는 각 직원들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해요.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저희 도서관만의 색이 담긴 프로그램을 운영하다 보니 이용자들도 매력을 느끼고 좋아해 주시는 것 같습니다.
― 공모 사업은 전혀 안 하고 계신가요?
보통 공공도서관은 ‘길 위의 인문학’이나 도서관 주간, 독서의 달, 방학 프로그램 같은 걸로 연중 프로그램이 체계화되어 있기 마련이에요. 그런데 저희 도서관은 기적의도서관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어린이 사서’ ‘청소년 사서’ 같은 프로그램에 중점을 두고 있어요. 또 올해는 우리 도서관만의 특별한 프로그램을 많이 해보자고 해서 ‘낭송 프로젝트’를 시작했어요. 이렇게 우리 도서관만의 색을 찾아가는 데 애쓰고 있습니다.
― 구로기적의도서관에서 가장 자랑할 만한 건 뭔가요?
저희 선생님들직원들이라고 생각해요. 아무래도 일을 하다 보면 매너리즘이 올 수도 있는데, 저희 선생님들은 이용자를 대할 때 항상 진심을 담으려고 해요. 서비스를 기획할 때도 이용자가 어떤 부분에 만족할까를 먼저 생각하려 해요. 컬렉션을 만들 때도 이용자들하고 같이 생각하고 교감하면서 하고 있어요.
제가 이용자 리뷰를 온라인에서 자주 검색해 보곤 하는데, 어떤 분께서 인스타그램에 “구로기적의도서관은 항상 다이내믹한 프로그램과 열정 터지는 사서들이 있어서 언제나 만족감을 주는 도서관”이라고 올리셨더라고요. 그걸 캡쳐해서 다른 선생님과 돌려봤어요. 이런 좋은 피드백이 더 열심히 하는 원동력이 되는 것 같아요. 사실 이용자분들이 작은 서비스나 프로그램에도 고마워하시고 긍정적인 피드백을 많이 해주세요. 그래서 저희는 고맙게 일하고 있습니다.
― 기억에 남는 이용자나 혹은 에피소드가 있나요?
엊그저께 은소홀 작가님을 모시고 어린이 사서들하고 강연회를 했어요. 아이들이 직접 초대할 작가를 선정하고 사회도 봤어요. 강연회 말미에 “나를 가장 가슴 뛰게 하는 것은 ㅇㅇ다.”를 적고 같이 이야기해 보는 시간이 있었는데, 한 친구가 “나를 가장 가슴 뛰게 하는 곳은 도서관이다. 마음이 편안해지기 때문이다.”라고 하더라고요. 프로그램 담당 선생님하고 저하고 정말 깊은 감동을 받았어요. 그 친구는 크게 생각 안 하고 한 말일 수도 있지만, 저한테는 처음 사서가 됐을 때의 마음을 떠올리게 한 일이었어요.
구로구 도서관 통합홈페이지에 칭찬 글을 남겨주신 이용자도 기억에 남아요. 늦깎이 대학생 이용자분이 과제를 하려 도서관에 오셨어요. 자료 찾는 게 너무 힘들어 데스크에 물어봤더니 자세하고 친절하게 알려줘서 고맙다는 글을 올리셨어요. 저희 직원 실명까지 적어서요. 이런 피드백을 받을 때마다 사서가 가치 있고 매력 있는 직업이란 걸 새삼 느낍니다.
― 도서관에서 이용자들이 제일 좋아하는 공간이나 서비스는 무엇인가요?
어린이들은 2층 어린이실 공간을 제일 좋아해요. 독특하게 생겼고 숨을 공간도 많고 벽면에 그림도 있잖아요. 자기만의 독립된 공간에서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아요.
성인 이용자는 컬렉션 코너를 좋아해요. 올 상반기에는 상반된 감정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무탈서가당신의 마음이 오늘도 무탈하기를 꿈꾸는 무탈서가’를 꾸렸고, 하반기는 어른 그림책 코너를 운영하고 있는데, 그곳에서 책도 보시고 또 독후 활동도 많이 하세요.
― 컬렉션이 정말 효과가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떤 방식으로 컬렉션을 구성하세요?
사서들끼리 상·하반기 조를 짰어요. 그리고 상반기에 두 번, 하반기에 두 번 실물 수서收書, 도서 및 문헌을 입수하는 일련의 도서관 업무. ─ 편집자 주를 나가요. 실물 수서 방식은 정형화돼 있지 않아요. 자기가 관심 있는 주제에 대해서 책방이든 전시든 다른 도서관이든 박물관이든 둘러보고 오는 거예요. 다른 기관에서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보면 영감을 얻을 수 있잖아요. 요새는 북 큐레이션에서 좋은 책을 제안하기도 하지만, 큐레이션을 어떤 식으로 전시할 것인가, 혹은 큐레이션 공간에 대한 영감도 중요하거든요. 실물 수서를 다녀온 후 수서 회의 때 다른 직원들하고 공유도 하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요.
저희가 컬렉션을 만들 때 미대출 도서나 숨어있는 책을 발굴해서 컬렉션에 반영하려 해요. 그렇게 컬렉션에 들어간 책들은 대부분 대출이 됩니다. 컬렉션을 구성할 땐 독후 활동을 꼭 같이 준비를 해요.
또 큐레이션 공간을 일정 부분 비워두고 여러 사람이 같이 만들어가려 해요. 사서뿐만 아니라 이용자 북 큐레이터를 모집해서 같이 공간을 채워요. 평생교육사 실습생들을 참여시키기도 했어요. 책뿐만 아니라 다른 매체도 활용해요. 바닷소리나 산소리를 담은 영상을 틀기도 해요. 이용자들이 큐레이션 공간을 조금 더 가볍고 편안하게 즐기길 바랬는데, 이런 마음이 통했는지 이용자분들도 좋아하세요.
― 개관 4년차에 접어든 만큼 지역사회에서 안정적으로 자리 잡은 부분도 있겠고, 한편으로는 여전히 풀어야 할 과제도 있을 것 같습니다.
아직도 저희 도서관이 어린이만 이용하는 도서관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세요. 작년에 노인 대상으로 프로그램 하나 기획했는데, 참여자 모집이 잘 안돼서 결국 운영을 못 했어요. 그래도 계속 고민해 나가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청소년도 마찬가지죠. 도서관에 안 오는 사람들이 계속 올 수 있게 계속 고민하고 시도해야 할 숙제인 것 같아요.
― 앞으로 구로기적의도서관이 어떤 도서관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코로나19 때문에 독서동아리나 자원봉사같이 주민들과 같이 할 수 있는 활동이 주춤했어요. 이런 것들을 좀 더 안정적으로 확장시켜 나가고 싶어요. 이 도서관을 직원들이 주도적으로 이끄는 게 아니라 이용자가 채워가는 공간, 정형화돼 있지 않고 더 생동감 있는 공간, 계속 성장하는 도서관으로 만들고 싶어요. 그리고 지치고 힘든 사람에게 위로와 위안이 되는 도서관, 평생 친구 같은 도서관이 되면 좋겠어요.
그리고 저희 (직원) 선생님들이 다들 일당백으로 일하세요. 솔직히 도서관 일이란 게 안 하려면 얼마든지 안 할 수 있고, 그런다고 크게 문제가 생기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런데 저희 선생님들은 뭘 하나를 하더라도 진심으로 해요. 그러면서 너무 많은 일을 벌이려 해요. 그러다 보니 자기를 돌보는 여유는 좀 부족한 것 같아요. 그래서 자기를 챙기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고, 직원들끼리 유대감이 더 탄탄해지면서 밖을 보는 안목도 넓어진다면 좋은 도서관을 만드는 바탕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 10년쯤 사서로 일을 하셨는데, 개인적인 미래 목표나 계획이 있나요?
어렸을 때 글 쓰는 걸 좋아했어요. 사서의 일이나 도서관에서 겪은 일 같은 걸 글로 써서 책을 내는 게 소망이에요. 아무래도 현장에 있을 때 써야 살아있는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은데, 될지 모르겠네요.
― 앞으로 현장에 한 20년은 더 계셔야 하잖아요. 오래 계시면서 좋은 도서관 만들어 주시고 좋은 책도 써주시면 좋겠습니다. 지금까지 좋은 말씀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 인터뷰 및 글 : 서동민 책읽는사회문화재단 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