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에 기적의도서관 프로젝트를 시작한 이후 19년이 흘렀습니다. 기적의도서관이 지역에 뿌리내리고 의미 있는 곳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건 ‘사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 달에 한 번, 기적의도서관에서 ‘기적’을 만드는 사람을 만나 봅니다. 첫 번째로 이용자에서 관장이 된 진해기적의도서관의 주홍진 관장, 19년간 봉사를 해 온 김미라 활동가를 만났습니다.
―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진해기적의도서관 관장 주홍진입니다. 반갑습니다.
― 도서관 이용자에서 자원활동가가 되셨다가 지금은 관장으로 계십니다. 매우 드문 일인데, 그 과정을 말씀해 주시겠어요?
진해기적의도서관이 지어진다는 이야기를 듣고 제 아이를 ‘도서관 아이’, 책 잘 읽는 아이로 키워보자는 생각으로 진해에 이사를 왔어요. 그때 첫째 아이가 세 살이었는데 도서관이 문을 열면서 아이랑 매일 도서관을 방문했어요. 당시에 도서관 자원활동가분들 중 굉장한 분들이 많이 계셨어요. 저한테는 선망의 대상이었어요. 저도 자원활동을 하고 싶었는데 어떻게 재능을 나누어야 할지 몰라서 그냥 이용자로만 있었어요.
둘째 아이가 북스타트 8기로 참여했는데, 자원활동가분들이 열정적으로 수업하시는 모습에 감동을 받았어요. 북스타트 수업을 마친 후에 ‘보늬동무’라는 품앗이 육아에 저도 참여하면서 준자원활동가처럼 활동했고, 그러다 완전히 활동가가 되었죠.
2008년에 진해시가 시립도서관을 이전한 자리에 시민대종을 옮겨오겠다는 계획을 세웠어요. 시민대종은 서울의 보신각 같은 곳이에요. 저희는 대종 이전보다 어린이도서관 건립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진해 서부지역에 제대로 된 어린이도서관이 없다 보니 거리가 먼 기적의도서관까지 와야 했거든요. 어린이도서관이 생기면 젊은 세대의 유입과 지역 활성화에도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어요. 그래서 진해기적의도서관 자원활동가와 북스타트 품앗이팀을 중심으로 도서관 건립 캠페인을 위한 ‘도서관을 사랑하는 엄마 모임’을 결성했어요. 진해시와 청와대에 어린이도서관 건립 민원을 넣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죠. 포기하지 않고 2009년 1월부터 2년간 매주 수요일마다 어린이도서관을 건립해달라는 캠페인을 벌였고 그 결과 아이세상장난감도서관이 들어서게 되었어요.
― 어린이도서관을 요구했는데 왜 장난감도서관이 들어섰나요?
멀지 않은 곳에 진해시립도서관이 있었기 때문에 장난감도서관으로 개관했어요. 진해기적의도서관 관장이셨던 이종화 관장님이 장난감도서관 관장을 맡으시고 장난감도서관의 롤모델을 찾기 위해 공부를 많이 하셨어요. 책도 아이들에게는 장난감이잖아요. 그래서 장난감과 책이 공존하는 공간이 되었어요. 인문학 강좌도 많이 했고, 마을공동체의 중심이 되는 공간이 되었죠. 어린이도서관은 어린이만의 도서관이 아니라 기적의도서관처럼 주민들이 함께 아이들을 돌볼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는 걸 보여준 곳이었어요. 그때 저는 장난감도서관에서 강사 겸 자원활동가로 있으면서 진해기적의도서관에서도 북스타트 팀으로 활동을 했어요. 그러다 저희가 꿈자람 그림책도서관을 개관하고, 사회적 기업을 만들고, 협동조합이 되었다가, 기적의도서관 수탁기관으로 선정되면서 관장으로 왔습니다.
― 쉽지 않은 과정이었을 텐데, 그동안 활동을 계속할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인가요?
저희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이이효재 선생님 덕분입니다. 선생님께서 “도서관 지어달라고 말만 하지 말라. 직접 나가서 시민들과 부딪혀보고 캠페인도 하고 시에 민원도 올려 보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리고 “정치적인 참여가 필요하다. 엄마들이 성장해야 한다. 정치적인 영향력을 키워나가라”고도 하셨죠. 그 말씀대로 엄마들이 공부하고 활동하면서 점점 성장했어요. 여성이 엄마로서의 역할에 그치지 않고 사회적인 엄마로 성장할 수 있게 허브 역할을 하는 곳이 진해기적의도서관입니다.
저희가 캠페인을 하는 동안 마음이 정말 힘들었어요. 온갖 거친 얘기를 들으면서 큰 모멸감을 느꼈는데, 저희를 위로해 주신 분이 이이효재 선생님이에요. 저희와 함께 독서모임을 하시면서 많은 에너지를 주셨거든요. 저희가 기적의도서관 수탁 운영을 하게 됐다는 소식을 알려드렸더니 “이게 진짜 풀뿌리 민주주의 아니냐” 하시면서 기뻐하셨어요. 저희는 노 어르신의 칭찬으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 20년 가까이 기적의도서관과 관계를 맺어 오시면서 다양한 경험들을 많이 하셨을 것 같아요.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경험이 있나요?
아이들이 성장하는 걸 보는 게 제일 행복한 경험이에요. 말 잘 듣고 똑똑한 아이들은 학교에서 충분히 사랑받지만 ‘지각대장 존’이나 ‘말썽꾸러기 데이빗’ 같은 아이들은 그렇지 못하잖아요. 그런 아이들이 사랑받고 성장하는 곳이 도서관이에요. 관장실에 사탕을 놔두고 있는데 아이들이 책 한 권 읽고 와서 “무슨 책 읽었어요” 얘기를 하고 사탕을 받아가거든요. 그러니까 아이들에게 기관의 장과 ‘맞장’을 뜰 수 있는 담력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저희 도서관에서 자란 아이들은 필요한 것이 있으면 어른한테 당당하게 요구해요.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동심이 없으신 분이에요!”라고 얘기하기도 하고요. 이런 게 도서관 아이들의 당당한 모습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합니다. 도서관에 오는 아이들끼리 멘토-멘티가 되기도 하고 서로 연결된 큰 가족이 되더라고요. 도서관에서 자란 아이들은 “도서관에서 정말 행복하게 컸고, 도서관에 대한 추억이 특별하다”라는 얘기를 많이 해요. 저한테는 그런 이야기들이 자산입니다.
― 어려서부터 책을 가까이하면 책을 읽는 어른이 되고 평생 독자로 성장한다고 하는데, 그건 도서관이라는 공간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어려서부터 도서관을 이용한 아이들은 책이 있는 공간, 그리고 공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간에 대한 인식 자체가 남다른 것 같아요.
책 읽는 아이가 책 읽는 어른으로 성장한다. 그게 저희 꿈자람사회적협동조합의 모토예요.
― 도서관에서 이용자분들이 가장 좋아하시는 공간은 어디인가요?
저희는 밖을 추천해 드립니다. 진해기적의도서관은 대지 750평에 250평이 건평이고 500평은 비어 있는 공간이잖아요. 정기용 선생님 말씀 중에서 “아이들은 하루 일과에서 30%는 책을 보고 70%는 놀아야 한다. 밖에서 자연체험을 하라. 흙도 책이다” 하셨던 부분이 가장 와 닿거든요. 그래서 밖에서 노는 그 공간을 저도 좋아해요. 물론 저는 모든 공간이 다 좋아요. 그런데 공간보다 중요한 게 사람이지 않을까 싶어요. 도서관에 또 오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데는 결국 저희가 얼마나 한 사람 한 사람을 환대하는지, 그리고 얼마나 소중한 서비스를 드리는지가 더 중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 진해기적의도서관은 지금도 어린이도서관의 정체성을 지키고 계신 건가요?
여전히 어린이가 중심이에요. 연간 자료구입비가 이천만 원밖에 안 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어린이책 위주로 구입하고 있기도 하고요. 공간도 좁기 때문에 어린이서비스에 집중하고 있어요. 성인 이용자분들한테는 상호대차를 안내해 드려요.
한편으로는 소외된 계층을 위한 프로그램들을 확대하려고 해요. 장애인분들이 다른 공공도서관을 이용하기 어렵다고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장애인분들이 도서관에 올 수 있게 그림책으로 독서모임을 운영하고 있어요. 그림책으로는 어느 세대와도 연결될 수 있잖아요. 장애아동을 키우는 가족과 비장애 가족을 연결하는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어요. 편견 없는 연결고리를 만들어가고 싶어요. 작년에는 아동복지센터에 책을 빌려드리고 직접 찾아가는 프로그램을 하기도 했어요. 자가용이 있는 분들은 알아서 여기저기서 좋은 프로그램을 이용하시지만 그럴 수 없는 분들도 계시잖아요. 혜택을 받을 수 없는 분들한테 조금 더 다가가는 도서관, 모든 아이들의 배울 수 있는 권리를 존중하는 도서관을 만드는 게 목표입니다.
― 내년이면 진해기적의도서관 개관 20주년입니다. 세상이 워낙 빠르게 변하고 있기 때문에 미래를 상상하는 게 어렵긴 합니다만, 개관 40주년이 되었을 때 진해기적의도서관이 어떤 모습이 되길 바라세요?
다양한 세대가 그림책으로 연결되는 도서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어린이와 노인이 함께 이용할 수 있는 도서관이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저는 고향이 진해이기 때문에 여길 떠나지 않을 것 같아요. 20년 후에도 여전히 저는 진해기적의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있거나 봉사를 하고 있을 것 같습니다.
(2022.06.10.)
★ 인터뷰 및 글 : 서동민 책읽는사회문화재단 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