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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가며 알게 된 다양한 연령과 직종의 주민들이 올해 초부터 마을 작은도서관 봉사를 함께 하면서 잡지의 칼럼을 읽는 독서 모임을 시작했다. 연령대가 다양했음에도 함께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은 사랑방 역할을 하는 작은도서관 덕분이었다.
‘슬로우 리딩’은 바쁜 일상을 잠시 멈추고 천천히 책을 읽고 소통하면서 조급했던 마음들이 자연스럽게 치유되기를 바라는 동아리원들의 뜻을 모아 지은 이름이다. 장서 읽기 모임은 부담스러운 팀원들의 지속적인 참여를 위해 깊이가 있는 다양한 잡지를 월 1회 같이 읽고, 그 안에 나오는 다양한 글들을 통해 생각을 나누기로 하였다.
장서를 정해 짧은 기간에 읽는 독서 모임을 했을 때 부담이 커지고 모임이 오래가지 못했던 경험이 있었다. 무엇이든 재미가 있어야 계속하고 싶은 법이다. 그래서 함께 짧은 글을 읽고 잠시라도 삶을 돌아보자는 취지에서 매달 잡지에 나오는 다양한 칼럼에 대한 생각을 나누기 시작했다. 요즘은 깊은 사고를 할 수 있게 해주는 다양한 잡지들이 많아 잡지를 통해 다양한 생각을 접하고 나누고, 여유가 될 때는 연관된 관련 도서를 자유롭게 추가로 읽도록 모임의 방향을 정했다.
코로나19 상황에 따라 온·오프라인을 병행하기로 했는데 온라인보다는 아무래도 오프라인이 더 좋았다. 수업처럼 책을 읽고 발표하는 것은 유튜브로도 찾아볼 수 있기에 책을 통해 내 삶에 대입해보고 자연스레 서로의 직간접적인 경험을 나누며 마음이 치유되기도 하는 것은 오프라인에 비하면 한계가 있었다. 지속적인 모임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 생각하던 어느 날, 팀원 중 한 분이 독서동아리 단체 대화방에 독서동아리 지원사업 소식을 올렸다. ‘이제 갓 만들어진 독서동아리인데 우리도 할 수 있을까?’ 싶기도 했지만, 도전해보자고 의견을 모았다. 특히 잡지와 연관된 도서 구매 비용을 지원받으면 동아리 활동에 탄력이 붙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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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동아리 지원사업에 선정된 이후 기뻐하고 있을 때 독서동아리지원센터에서 글모음집 등 자료와 선물을 잔뜩 보내주셨는데, 그 안에 든 가방에 쓰여있던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사람과 책이 만나다’라는 문구가 인상 깊어 다이어리에 적어두었다. 이번 수기 공모전 포스터에도 같은 문구가 있어 내가 사람과 만나고 책을 만나는 독서동아리 활동과 함께 읽으면서 성장해가는 우리의 모습에 대해 적어보고 싶어졌다.
한번은 잡지에서 독서 토론을 함께하는 대가족의 이야기가 있었는데, 퇴직 후 독서교육을 하시는 분이 멀리 있는 가족들과 온라인 독서 토론을 시작하면서의 이야기를 다룬 책 소개와 소감 인터뷰였다. 내용 중에 가족과 독서 토론을 한다는 것도 신선했지만, 독서 모임 자체에 관한 생각에 공감이 많이 되었다. 친한 사람과도 속마음을 다 나누기는 어려운데, 책이 있으면 나와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들과도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는 것이 가능하다. 우리 모임도 심오한 책은 아니더라도 책을 많이 읽는다. 천천히 자유롭게 읽어가면서 인생이라는 대주제 아래 있는 다양한 소주제로 이야기를 나눈다. 그러다보니 책이라면 어렵고 졸리는 것으로 생각했던 사람도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바뀌게 되는 것 같다. 특히 힘든 일들을 마음에 묵혀두고 지내는 경우가 많은데 당장은 불편한 마음이 바쁜 생활 중에 문제가 안 될 수 있지만, 어려운 일이나 과거의 경험을 상기시키는 사건이 생기면 내 마음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모를 때가 많다. 미처 정리가 되지 않은 복잡한 마음을 갖고 사는 사람들에게 독서 토론은 일부러 말하기에는 어색한 것들도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꺼낼 수 있고, 내 생각과 이야기를 누군가 경청해주는 것만으로도 어느새 상처받은 마음이 힐링 될 수 있다. 특별한 취미가 없는 보통의 사람들에게 독서 모임은 건강한 삶의 돌파구가 아닐까 싶다.
독서동아리 지원사업에서 저자와의 만남도 지원해 준다는 소식에 우리는 아프리카에 관심이 많은 동아리원의 제안으로 읽었던 『아프리카 좋으니까』의 저자를 초청했다. 마침 아프리카에 살면서 활동하던 저자가 코로나19로 인해 한국에 들어와 있어 먼 걸음이지만 강연을 흔쾌히 수락해주어 감사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전국 방방곡곡 자전거 여행기를 책으로 펴냈던 저자의 남다른 이력과 우리가 알던 아프리카에 대한 편견을 깨주는 책 내용에 인상 깊어 지역 주민들과 학생들도 초청했다. 특히 남원이라는 지방 소도시에서 자란 저자의 패기 넘치는 활동이 우리 독서동아리가 있는 시골에서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동기 부여가 될 수 있겠다 싶었다. 낯선 아프리카를 직접 체험한 이야기는 다양한 영상과 자료, 그리고 저자의 재미있는 입담과 함께 어우러져 어디서도 쉽게 들을 수 없는 살아있는 세계 시민교육이었고, 모든 참가자의 흥미와 공감을 얻었다. 또 꼭 만나보고 싶었던 작가였는데 강연을 들을 수 있어 신기했다며 강연을 마치자 자연스럽게 즉석 사인회로 이어졌다. 시골에서는 볼 수 없었던 신기하고 훈훈한 장면이 연출되어 동아리 회원들이 다시 한번 독서동아리 지원사업에 함께 하게 된 것에 고마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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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은 요양보호사로 활동하는 회원이 방문하는 몇몇 어르신 중에 죽음을 준비하는 분들이 있어 ‘웰 다잉well dying’에 대한 책을 보고 있다고 이야기하셨다. 그동안 우리 문화가 ‘죽음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조차 수용하지 못하는 수준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공감되었다. 각자가 매일 살아가고 있지만 죽음을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지 한 번쯤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하는 주제로 의미 있는 시간을 나눴다. 또한 생각보다 치매 환자가 훨씬 많고 도움이 많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에 나와 내 가족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는 마음이 들어 치매 관련 영상을 함께 보고 치매 파트너 교육을 신청해 자격을 수료하게 되었다. 독서동아리를 통해 내가 미처 관심을 두지 못했던 부분까지 함께 알아가고 사회에 도움을 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동아리원들이 모두 뿌듯해했다.
하루하루 바쁘게 살아가는 생활 속에서 독서동아리를 한다는 것이 처음에는 ‘또 하나의 버거운 일을 벌이는 것은 아닐까?’ 우려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책이라는 매체를 통한 작은 모임은 마음을 차분하게 하고 잠시라도 삶에 대해 사색할 수 있는 시간이 된다. 또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연령대의 모임원들과 함께하다 보니 폭넓은 생각을 할 수 있어 더 좋다. 이렇게 천천히, 그리고 조금이라도 함께 읽는 모임을 통해서 ‘슬로우 리딩’이라는 이름처럼 우리는 천천히 함께 성장하고 치유받고 있는 것 같다.
★2022 독서동아리 수기 공모전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사람과 책이 만나다」에 선정된 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