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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이 책을 읽고 성북천을 걸으며 플로깅plogging도 할 예정이에요.”
조깅jogging 하면서 쓰레기를 줍는 플로깅도 한다니 이를 어쩐다.
작년에 『아무튼, 비건』을 읽을 때 고기 없이는 못 사는 ‘육식파’와 지구 환경과 건강을 위해서 비건을 고려하고 있는 ‘채식파’와의 갈등 속에서도 괜찮았다. 하지만 문학, 인문, 철학, 과학 어떤 분야도 다 좋은데, 환경 도서는 유난히 싫었다. 이번 책 『지구를 닦는 황대리』 만큼은 피하고 싶었다. 한 달에 두 번 하는 독서 모임에 한 번쯤 빠져도 문제 될 거는 없겠지? ‘북돋음’에서 회의 내용을 기록하는 역할이 있지만 다른 회원에게 맡기고 ‘이번 모임은 아프다고 빠져볼까?’ 하는 꼼수를 생각하고 있을 때,
“이번 책은 환경 책이니만큼 토론 후에 도서관에 바로 기증하기로 한 거 기억하지요? 기증 이벤트도 함께 진행할 예정이니 되도록 빠지지 마시고, 참석해주세요.”
회장님의 카톡 당부에 나는 ‘망했다’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책은 생각보다 쉬었다. 딱딱한 환경 도서가 아니라 플로깅을 통해 환경을 전하는 황대리의 수기였다. 작가가 나와 같은 환린이환경 어린이에서 지구를 살리는 활동가로 거듭나면서 알게 된 환경에 관한 팁도 잘 담겨 있었다. 이러다 결국 큰코다치는 것은 지구가 아니라 내 자신과 가족일 텐데 나는 왜 이렇게 환경 관련 책이 싫은지 내 자신조차도 이해가 안 갈 정도이다. 마음은 괴로웠지만, 책은 술술 읽히는 덕에 완독하고 독서 모임에 참석했다. 물론 플로깅은 빠질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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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별점부터 매겨볼까요? 5점 만점에 몇 점이죠?”
“전 3.5점이요.”
평소에 4점 이상 높은 평점을 주기로 유명했던 터라 쉽고 재미있는 책에 낮은 점수를 준 것에 다들 의아해했다. 평점의 이유를 묻는 질문에 “책은 재미있었는데요. 저는 그냥 환경 책이 싫어요. 담배꽁초 줍는다고 뭐가 달라지나? 이런 마음도 들고, 달리면서 쓰레기를 줍는다는 플로깅도 왠지 SNS에 인증샷 올리기 유행 같고, 내가 바뀐다고 세상이 바뀌나? 기업들이 정신 차려야지, 탄소 중립을 통해 이득 보는 나라는 결국 선진국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나는 불평불만을 쏟아냈다. 하지만 나의 불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다들 토론에 진지하다.
‘페트병을 재활용한 섬유 의류 광고는 그린 워시green wash일까요? 아닐까요?’라는 논제로 한창 열띤 토론을 진행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구 환경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실천방안을 한 가지씩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다들 사뭇 결의에 찬 듯한 느낌으로 이야기하는데 나는 그때 알았다. 내가 왜 환경 도서를 싫어하는지. 나는 실천하기 싫었던 거다. 여러 가지 거창한 이유를 들었지만 내 삶을 바꿔야 하는 것이 귀찮았다. 이것을 인정하자니 부끄러운 나머지 “솔직히 황대리가 특이한 사람이지. 이렇게 사는 사람이 진짜 있어요?” 아주 자신 있게 확신에 찬 목소리로 물었다. 그랬더니, 이게 웬일인가? “이거 선물로 주려고 가지고 왔어요.” 이미 집에서 쓰고 있다면서 한 회원이 주섬주섬 탁자 위에 선물을 꺼내 놓자, 여기저기서 “저도요” 하면서 꺼낸 선물이 어느새 탁자 위에 한가득이다. 플라스틱 칫솔대용 대나무 칫솔, 재활용이 안 되는 용기에 담긴 치약이 아닌 고체 치약, 일회용 물티슈를 쓰지 않기 위한 소창 수건, 비닐봉지 대신 면포 주머니, 쓰고 버리는 수세미가 아닌 천연수세미. ‘이렇게 많은 물품을 쓰고 있었다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평소에 전혀 티도 나지 않았는데 놀랍기도 하고, ‘누가 이런 거 해요?’ 라고 소리치던 내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무엇보다 친환경을 실천하는 이유도 그리 거창하지 않았다.
“그냥 ‘북돋음’에서 이런저런 책을 읽고 함께 토론하다 보니 나와 내 가족, 더 나아가 남에게도 이로운 삶을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이로운 삶에 친환경은 자연스러운 수순처럼 느껴졌다는 것이다. 귀찮은 마음을 들킨 것 같아 부끄러운 나머지 우물쭈물하고 있을 때 한 회원이 면포 주머니에 친환경 선물을 가득 담아주며 내 마음을 아는듯 “플로깅 나올 거죠?” 라고 묻는다. 손에 선물을 잔뜩 받고 나니 꼭 나가야만 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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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성북구보건소에서 진행하고 있는 정릉천~북한산 둘레길 걷기를 하면서 플로깅 할 예정입니다. 둘레길도 걷고 플로깅도 함께 하니 편안한 복장으로 오세요. 7월 15일에 봬요”
후에 나는 받은 선물(?)이 있어 플로깅에 나갔다. 함께 하다 보니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지구를 닦는 황대리』에서 플로깅을 하다 보면 담배꽁초를 가장 많이 줍게 된다더니 그 말이 딱 맞았다. 담배꽁초가 봉투 한가득이다. 구석구석 어찌나 쓰레기들이 많던지 그냥 걸을 때는 몰랐는데 함께 하는 회원들도 놀란다. 열심히 쓰레기를 줍고 북한산 둘레길까지 완주. 인증사진을 찍어서 성북구 보건소에 보내고 다 같이 약속이라도 한 듯이 정릉천에서 바지를 걷어 올리고 물속으로 풍덩~ 했다. 그 순간만큼은 어린아이 같았고, 진짜 동네 친구들 같았다. 얼마나 즐거웠던지 다음에도 플로깅 하자는 말에 그만 “네~” 하고 말았다.
며칠 후 걷기 이벤트에 참여해 주셔서 감사하다며 성북구 보건소에서 문자가 왔다. 무려 5천 원짜리 아이스크림 쿠폰이다, ‘북돋음’ 회원들도 아이스크림 쿠폰 받았다며 카톡방에 불이 났다. 나도 이렇게 당첨돼서 쿠폰을 받기는 처음이다.
“우리 모여서 아이스크림 사 먹으면서 또 플로깅해요.”
“네! 당연하죠!”
독서동아리가 책만 읽고 토론하는 지루한 곳이라고 생각했다면 틀렸다. 똑똑해지는 것은 당연, 우리 동네도 살리고, 친환경 물품도 나누고, 아이스크림도 받고, 함께 걸으니 건강해지고. 맞다! 우리 ‘북돋음’은 남는 장사이다.
★2022 독서동아리 수기 공모전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사람과 책이 만나다」에 선정된 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