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독서 동아리를 소개합니다 ⑱
서울 ‘책바람’
우리 독서동아리의 정식 이름은 ‘책·발·함’이다. ‘책상 위의 철학, 발로 뛰는 철학, 함께 하는 철학’의 줄임말로 ‘발’에는 ‘發’〔피다, 일어나다〕의 의미를 더했다. 책으로부터 시작하여 여럿이 함께한다는 뜻이다. 더 부르기 편하고 친근하게 ‘책바람’이 되었다. 2005년 광진정보도서관 독서회 2반으로 시작하여 2021년 현재 ‘협동조합 공간 책바람’으로 활동하고 있다. 최근에는 『책과 바람나다』독서동아리 책바람 지음, 마다스북스 펴냄, 2020를 출간하게 되었다. 다들 이렇게 활동할 수 있는 비법을 물어본다. 글쎄, 비법이라… 책의 프롤로그에도 이야기했다시피 그저 느끼고 생각이 이끄는 대로 했을 뿐이다.
독서동아리를 한 사람들이라면 알고 있을 것이다. 독서동아리는 결코 혼자의 힘으로 되지 않는다. 각자의 역할을 찾고 서로에 대한 신뢰와 끈끈함, 자부심이 없으면 오랫동안 유지되기 어렵다. 어쩌다 보니 수년간 대표를 맡은 나의 경우 회원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방법을 찾아 충실히 수행했다. 이는 우리 독서동아리가 초기 자리를 잡는 데 중요한 요인이었던 것 같다.
요즘 우리들의 소개는 ‘책과 바람났다’다. 정확히는 ‘철학 책’과 바람이 났다. ‘아니, 책 좀 읽는다고 하면 되지, 무슨 바람까지?’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이런 분들을 위해 얼마 전 수요일 정규 독서동아리 모임 시간을 소개하고자 한다. 근대 철학의 한 부분인 ‘스피노자’ 강연회를 열었던 일이다. 참고로 우리는 함께 책을 읽다가 정말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으면 도움을 주실 선생님을 찾아 강의를 부탁드리고 있다.
“대부분 책에서는 스피노자가 범신론자라 하는데, 범신론에 대한 잘못된 이해였을까?”
“우주와 인간도 목적을 추구하지 않으면 단지 그것들을 해야 할 일을 하는 것뿐이라고 하는데, 그 목적의 의미와 할 일의 차이는 무엇인가?”
이날 강연을 진행한 교수님에게 연이어 질문을 쏟아냈다. 이것으로도 부족했다. 아홉 명이 남아 점심도 건너뛰고 우리끼리 그날에 대한 내용을 가지고 열띠게 토론했다. 이러한 열정을 바람이 아니면 무엇이라 표현하겠는가.
여기까지 읽은 사람은 또 의문이 들 것이다. 도대체 뭐가 좋아서, 무엇을 더 알고 싶어서 철학 책을 읽는 것이냐고. 그러게 말이다. 우리는 왜 철학 책을 읽게 된 것일까. 중년 여성이 철학 텍스트를 읽은 후, 얼마나 이해할 수 있는 걸까. 지적 허영심으로 이러는 것이 아닐까. 나에 대한 질문도 생긴다. 하지만 함께 읽다 보면 알게 된다. 우리가 단지 읽는 것을 목표로 삼는 게 아니라는 걸 말이다. 지루하고 난해하지만 어떻게든 끝까지 책을 읽어오는 것, 텍스트에 대한 진지함과 끝없이 이어지는 토론. 이 모든 건 인간과 사회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한 일이었다.
그래도 이해하기 어려운 철학 책을 읽다 보면 지금의 나와 어떤 연관이 있을까 싶다. 이러한 질문 속에서 책을 읽으며 각자가 이해한 부분과 읽기 어려웠던 내용, 우리 삶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윤리학으로 연결되어 나름의 해답을 주는 지점까지 닿을 때가 있다. 결국은 어떻게 삶을 살아야 하는가로 귀결이 되는 것이다. 예전에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새로운 생각의 길이 보이는 경험을 한다. 이러한 것이 책 읽기를 지속하게 하는 힘이었다.
우리는 근원에 대한 끊임없이 고민한다. 그것도 ‘같이’ 한다. 더 나아가 현재에 안주하지 않으려 한다. 변화하고 실천하는 노력을 ‘같이’ 한다. 도서관에서 정기적으로 봉사를 하고, 현실 사회에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관여도 한다. 사회 문제에 목소리도 내보고 마을 사업에 앞장서서 활동하며 지역 내 평생 교육에도 관여하며 경제활동도 시작했다.
우리가 하고 싶은 것은 우리 스스로 만들어 내자! 동아리도 사회생활도!
이러한 적극성으로 공간 책바람 협동조합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함께 책을 읽고 토론하고 강연을 열어 사회에 보탬이 되자는 꿈을 현실화한 것이고 현재 열심히 운영 중이다.
코로나19로 인해 2020년에 새로 읽기로 한 책들과 독서 모임 시작의 설렘은 반감되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주저앉음은 잠시였다. 언제까지 코로나 탓을 할 것인가. 우리가 모일 수 없다면 우리의 이야기를 모아 글로 써보고 책을 만들자고 했다. 머리털 나고 한 번도 생각해본 적도 없는 일에 도전했다. 우리의 에세이는 교보문고 코너의 한자리를 차지했다. 책이 서점 한구석을 차지한 사진 한 장으로 모두 열광하고 기뻐했다.
이처럼 다양한 방법으로 독서 모임을 유지했다. 다른 방법을 모색하고 시도했다. 서툴지만 화상회의 사용법을 익혀 발췌자 중심의 비대면 모임도 했다. 쌍방향 토론도 해보았다. 이것으로는 부족함을 느껴 학습 주제에 맞는 강좌에 철학 교수님을 모셔 온·오프라인 수업을 병행한 방식의 모임도 진행 중이다. 모두 함께 참여하고 잘 조화를 이루어서 동아리가 활기차고 즐겁게 하고 있다. 2020년에는 온라인을 통해 학습계획을 짜며 2021년을 준비했다. 우리에게는 김장과 같이 아주 중요한 일이다. 각자 꼭 내년에 읽어야 할 책을 정신없이 올리고 이 책을 지금 꼭 읽어야 하는 갖가지 이유와 책 표지와 중요한 구절 등을 활용하여 책의 장점을 쏟아놓는다. 마치 내가 추천한 책이 선정되지 않으면 큰일 날 것처럼. 서로 웃으면서 ‘뭐 이렇게까지 하냐’고 하지만 내가 추천한 책이 한 권도 선정이 되지 않을까 봐 날카롭게 지켜보는 중이다.
본격적으로 시작도 하기 전에 벌써 새로운 회원이 들어왔다. 몇 번 모임에 참여한 뒤에 가입하셔도 된다고 안내했으나 이미 결심했단다. 어찌 그리 들어오는 회원조차 우리 모습과 닮았는지. 우리와 비슷한 이들이 곳곳에 있음을 짐작해 본다. 동아리로, 스스로 만든 공간으로, 지역으로, 더 나아가 대한민국의 새로운 공동체를 꿈꿔본다. 책이 날개를 달고 세상 밖으로 나오는 우리의 로고 속, 우리의 모습 그대로. 2021년에는 또 다른 운영 방법과 학습 방법을 구상해본다. 또 도전이다. 새해에는 어떤 바람을 일으킬지 우리도 예측 불가이다. 그저 현재를 즐길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