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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유형천
소속 동아리 독빠진 사람들
여행 지역 전남 순천시 순천만 습지 일대
여행지 한 줄 추천 『무진기행』을 읽고 감수성 문학의 새 지평을 연 김승옥 작가의 문학 세계를 찾음
『무진기행』의 무진霧津은 실존하는 지명地名이 아니다. 그러나 김승옥의 생애와 작품 내용을 고려하면 이곳 은 작가가 청소년기를 보낸 전남 순천시 순천만 습지 지역을 재구성한 것으로 파악된다. 작가도 이 작품을 창작하는 데 순천만 연안 대대포구浦口 앞바다와 그 갯벌에서의 체험을 창작의 모티브로 삼았다고 밝히고 있다.
우리 동아리 회원들은 작품의 배경과 공간성을 이해하고 작가의 문학성을 파악하기 위해 작가가 학창 시절을 보낸 순천고등학교 내 김승옥 문학비를 견학하고, 이 소설의 배경이자 갯벌의 생태가 잘 보존되어 자연과 사람이 공존하는 순천만 습지 지역으로 갔다.
작품의 주인공이 무진으로 여행을 떠난 시기는 햇볕이 강렬한 6월이었지만 우리 일행이 가는 날은 7월 장마철에 폭우가 쏟아지는 우요일雨曜日이었다. 순천만 매표소에서 조금 걸으니 육지와 갯벌을 연결하는 무진교霧津橋라는 다리가 나왔다. ‘무진’이라는 이름이 작품과 연관이 있는 듯하여 때마침 지나가는 순천만 해설사에게 물으니 이 지역은 예로부터 안개가 많아 ‘안개 무霧’와 ‘나루 진津’이라는 한자를 써서 무진霧津이라 불렀으며, 김승옥의 『무진기행』이 널리 알려지자 순천시가 관광객 마케팅 차원에서 무진교라 정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순천 시내와 순천만 근처에서 무진이란 상호를 간혹 본 것 같았다.
작가는 “무진에 명산물이 없는 게 아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그것은 안개다.”라고 이야기한다. 이는 작가가 안개를 이곳 대대포구浦口와 선착장에 연중 자욱하게 내려앉는 기후氣候가 아닌, 사물事物로써 상징적 의미를 부여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즉 한국 전쟁으로 인한 폐허와 4.19 혁명의 실패 등으로 미래가 보이지 않는 암울한 시대 상황, 속물이 되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민중의 삶을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작품 속에 나타난 공간의 흔적을 최대한 많이 보기 위해 이곳저곳을 분주히 탐방하였다. 하지만 몇 군데를 제외하곤 이미 관광지로 개발되어 1964년의 갯벌과 습지 모습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작품은 “버스가 산모퉁이를 돌아갈 때 나는 ‘무진 Mujin 10Km’라는 이정비를 보았다.”라고 시작한다. 이는 승객을 태운 버스가 포플러 가로수가 즐비한 비포장도로를 덜컹대며 달리는 모습을 연상케 하지만, 관광지로 변모한 현재의 순천만길에서는 포장된 아스팔트 길위로 미끄러지듯 질주하는 승용차들만 볼 수 있다.
다만 작가가 젊은 시절을 보내고 추억이 깃든 순천만의 자연환경이나 지역적 특성이 자연스레 작품에 반영된 장소와 연관성은 여러 곳에서 쉽게 볼 수 있었다. “수심이 얕은 데다가 그런 얕은 바다를 몇백 리나 밖으로 나가야만 비로소 수평선이 보이는 진짜 바다다운 바다가 나오는 곳이니까요.” “나는 물이 가득한 강물이 흐르고 잔디로 덮인 방죽이 십 리 밖의 바닷가까지 뻗어나가 있고 … ” “나는 그 여자와 만나기로 한 읍내에서 좀 떨어진 바다로 갔다.” 이런 문장 속에 나타난 ‘수심이 얕은 바다’, ‘바다로 뻗은 방죽길’, ‘읍내에서 떨어진 바닷가’ 같은 표현은 과거의 순천만 포구 모습과 약간 차이가 있을 뿐 크게 달라 보이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주인공 윤호중이 밤에 개구리 울음소리를 들으며 하선생과 나란히 걷던 방죽길은 사람들이 산책하기 좋게 양잔디가 깔려 있고, 어싱Earthing : 맨발길이 놓여 있었으며, 청년시절 어머니 감시하에 골방에 갇혀 우울하게 보냈을 마을 민가나 음식점 등은 흔적조차 찾기 어려웠다. 다만 당시에는 고기잡이배였을 것으로 짐작되는 조그만 어선은 이제 관광객을 태우고 갯벌을 탐방하는 탐방선으로 변하여 갈대숲 갯벌을 오가고 있었다.
우리는 작품 속에 등장하는 수심이 얕은 바다 사이에 나 있는 방죽길을 걷고, 갯벌과 갈대숲 사이에 설치된 데크길을 걸었다. 갯벌에는 수많은 짱뚱어와 게가 숨바꼭질하며 옮겨 다니고 있었고, 서로 잘났다고 우쭐대는 듯한 소리로 우리를 맞이한 갈대와 이야기하면서, 또 데크길 사이사이에 놓인 시화 詩畫 작품을 읽으며 산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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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출발하면서부터 우리를 따라다닌 비와 바람을 딱히 거부하진 않았으나, 그칠 줄 모르고 계속되니 슬슬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특히 우산을 써도 비에 젖는 옷과 사진 촬영은 우리를 많이 불편하게 했다. 그러나 아무리 불편해도 꼭 가봐야 할 곳은 ‘순천문학관’이다. 무진교 다리에서 문학관까지 대략 20분 정도 걸어야 하는 거리이다.
마침 셔틀버스가 다니길래 탈 수 있냐고 물으니 우리처럼 순천만 습지에서 입장한 관광객은 이 버스를 이용할 수 없다고 했다. 이 버스는 순천국제정원박람회장에서 매표하여 무진교까지 이용하는 관광객에게만 제공되는 교통수단이기 때문이란다. 정원박람회장에서 순천문학관까지는 스카이 큐브가 있고, 문학관에서 무진교까지는 셔틀버스로 이동할 수 있다고.
순천문학관으로 가는 방죽길은 작품 속 주인공 윤희중이 친구이자 세무서장인 조의 집에서 밤늦게까지 술 마시며 놀다가, 늦은 밤 귀갓길에 여주인공 하 선생과 풀벌레 소리를 듣고 별을 보며 두 손을 잡고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걸었던 길이다. 하 선생의 목소리가 들린 듯하다. “선생님 저를 서울로 데려가 주실 수 있죠?” “서울 가시면 무얼 하시게요.”
순천문학관에는 김승옥 문학관과 정채봉 문학관이 같이 있다. 동화 작가 정채봉 선생님이 순천시 해룡면 출신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먼저 김승옥 문학관으로 들어갔다. 순천시는 1960년대 한국 소설을 이끌었던 소설가, 지식인, 영화인으로서 김승옥 작가의 정신세계를 높이 추앙하기 위해 2010년 순천만 습지 자연생태 공원 내에 ‘김승옥 문학관’을 건립했다. 초가집 형태로 규모가 크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작가의 생애와 활동 내용이 여러 사진과 언론 보도 및 책자들과 함께 잘 갖춰져 있었다.
김승옥 작가는 2003년 뇌졸중으로 쓰러져 펜 대신 붓그림으로 활동하는 중에도 서울에서 이곳까지 내려와 독자들과 필담으로 소통하며 지내셨는데,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지난해부터 건강이 많이 안 좋아지셨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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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독讀빠진 사람들’은 문학관에 전시된 여러 자료를 살피고 별도의 공간에서 『무진기행』 의 내용에 대해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가장 진지하게 오고 간 내용은 무진의 ‘안개’였다. 당시 시대의 암울함과 보이지 않는 미래 상황을 비유한 것으로 의견을 모았고, 작가의 여러 작품에서 찾을 수 있는 익명성문학소년 박, 세무서장 조과 서울로 따라가고 싶어 하는 하인숙의 속마음을 알고 육체적 사랑까지 거래한 주인공이 끝내 그녀에게 남기려고 한 편지마저 찢어버리고 약속을 지키지 않은 내용을 바탕으로 인간의 이중심리에 대해 재미있게 이야기했다.
★2023 독서동아리 수기 공모전 「독서동아리를 담다」에 선정된 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