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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박진서
소속 동아리 메아리프로젝트
여행 지역 강원 강릉시, 속초시, 양양시
여행지 한 줄 추천 강원도는 대형 체인 서점이 존재하지 않는 지역으로, 그만큼 지역 서점의 영향력이 중요한 도시이기에,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서점 투어를 위해 한 번쯤 방문해 볼 지역임
어느 날 문득 궁금해졌다. 우리는 왜 그토록 독서에 진심인 걸까. 독서 인구가 해마다 줄어들어 누군가는 출판 산업의 위기를 말하고, 책보다 빠른 정보와 강력한 재미를 제공하는 매체가 이 많아지는 이 시대에 말이다. 책 모임은 물론 여러 프로젝트까지 기획해 내는 우리의 열정은 어디에서 시작된 걸까.
우리는 그런 결론을 내렸다. 낯선 세상과 조우하게 만들어 주는 힘이 우리를 매혹시킨 거라고. 일상 속에서는 조우할 수 없는 이들의 이야기와 내가 알고 있던 세계를 완전히 뒤바꿔 줄 지식을 마주하는 순간이 우리를 독서의 세계에 정착하게 만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낯섦에도 한계가 있었다. 우리가 책을 고르는 공간이 한정적인 탓이었다. 지역의 도서관과 인터넷 서점, 오프라인 대형 서점이 대부분이었다. 종종 지역 서점에 들르기는 했지만, 서울에 살다 보니 한정된 공간에 방문할 수밖에 없었다. 어디선가 본 듯한 책을 반복적으로 마주했고, 독서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낯선 즐거움’은 점점 반감되었다. 낯선 변화가 필요했다.
우리는 서울을 벗어나 ‘서점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이번 기회에 지금껏 수고한 스스로에게 새로운 자극을 주고 싶었다. 짧게는 독서 모임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2020년부터, 길게는 함께 중학교 도서부 활동을 시작한 2013년부터 수년간 달려온 스스로에게 주는 포상이기도 했다. 다른 지역으로 떠나는 서점 여행은 지금까지 함께해 온 시간 위에 신선한 영감을 불어넣어 줄 것이라 기대했다.
여행지는 강원도로 결정되었다. 제주와 함께 대형 체인 서점이 입점하지 않은 유이한 지역이라는 점이 흥미를 끌었다. 그만큼 지역 서점들이 각자의 매력을 발산하고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그중에서도 KTX를 타면 서울에서 한 번에 도착할 수 있는 강릉을 우리의 첫 서점 여행 목적지로 선정했다. 그렇게 2022년 4월의 첫 주말, 우리는 강릉으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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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에서 우리가 처음 찾은 곳은 옥천동에 위치한 ‘고래책방’이었다. 지상 4층과 지하 1층의 건물을 전부 서점으로 사용하는, 서울에서는 볼 수 없는 거대한 규모였다. 다양한 문학책과 인문 교양서적들이 있었지만,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은 곳은 지하에 마련된 전시 공간이었다. 강릉과 강원도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창작자들의 이야기를 모아놓은 전시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지하에서 책을 한 권씩 고르고 1층으로 올라와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베이커리를 겸한 서점이라 맛있는 빵과 음료, 그리고 책이 어우러져 제법 여행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두 번째로 찾은 서점은 교동에 위치한 ‘한낮의 바다’. 앞서 방문한 고래책방과 달리 아담한 규모의 매장을 주인장의 색채로 가득 물들인 독립서점이었다. 공간을 가득 채우는 음악이 책을 고르는 즐거움을 더해주었다. 음악 덕분인지는 몰라도 음악과 관련된 책들이 눈에 띄었다. 평소의 나였다면 관심을 두지 않았겠지만, 그런 책과의 낯선 조우가 가능한 것이 서점 여행의 매력이라는 점을 다시금 실감했다. 독립책방의 특색을 가득 담은, 손바느질로 만든 독립출판물을 한 권 구매해 서점을 나섰다.
우리의 여정은 인근에 위치한 ‘참새책방 깨북’으로 이어졌다. “이런 곳에 정말 서점이 있다고?”라는 생각 끝에 찾아간 곳이다. 1층에 있지도 않을뿐더러, 서점보다는 다세대주택에 가까워 보였지만 그곳은 우리를 또 다른 책의 세계로 안내했다. 특히 어린이와 함께 읽을 수 있는 책의 비중이 상당히 높았는데, 단순히 동화책이나 만화책이 아니라, 분야를 가리지 않고 전 세대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책이었다. 어린이와 가족 대상 프로그램을 홍보하는 게시물도 가득 붙어 있어 미래 세대와 함께 책을 읽어나가는 주인장의 열정이 엿보였다. 평창올림픽 봉사단에 참여했던 분들의 에세이집처럼 지역사회 사람들에 대한 책을 만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었다. 바닷가 도시인 강릉을 기억하고 싶다는 마음에, 『어부의 밥상에는 게미가 있다』를 구입해 서점을 나섰다.
그렇게 1년이 지났다. 강릉에서의 기억은 바쁜 일상 속에서도 우리의 삶을 지속하게 해주었다. 그리고 2023년 4월이 되니 다시 떠나고 싶어졌다. 마스크 착용 의무도 해제된 이 좋은 계절을 그냥 떠나보낼 수는 없다는 생각이었다.
이번 목적지는 속초였다. 강릉과 인접한 도시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2022년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참여한 속초 ‘동아서점’ 사장님의 대담을 들은 뒤 속초에 가고 싶다는 마음이 부풀기 시작했다. 모두가 문화의 중심으로 서울을 이야기할 때, 속초라는 지방 도시에서 대를 이어 서점을 꾸려가는 모습에 존경심이 들어 꼭 그곳에서 새로운 영감을 받고 싶어졌다. 그렇게 2023년 4월 중순에 떠나는 서점 여행 목적지는 속초로 정해졌다.
첫 일정은 당연히 여행의 가장 큰 동기가 되어 준 교동의 동아서점에서 시작했다. 정부로부터 ‘백년가게’로 인증받을 만큼 전통을 자랑하는 서점이다. 이곳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동네 책방이나 독립서점의 범주에서 벗어나, 지역민의 도서 수요를 책임지는 상당한 규모의 서점이다. 사장님이 직접 집필한 책들이 인상 깊었고, 각 지역 도시를 시리즈로 다룬 만화책도 흥미를 끌었다. 그중에서도 나의 선택은 신작 시집 『온다는 믿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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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찾은 곳은 인근에 위치한 ‘문우당서림’이었다. 동아서점처럼 오랜 기간 운영해오며 ‘백년가게’ 인증을 받은 곳이다. 대를 이은 서점이 흔치 않은 우리나라에서 ‘백년가게’가 된 서점이 두 곳이나, 그것도 나란히 있다는 점이 매우 흥미로웠다. 짙은 갈색 외관에 2층으로 이루어진 이곳은 동아서점처럼 지역의 중심이 되는 서점이었지만 분위기는 전혀 달랐다. 동아서점에 대한 인상이 ‘단정함’이었다면, 문우당서림은 아늑함을 느끼게 했다. 특히 2층에 마련된 단테의 『신곡』 아트북 전시와 ‘김영하의 방’이라는 공간이 기억에 남는다.
문우당서림에서 운영하는 편지지 전문 브랜드 지테토도 찾았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책은 물론 여러 종이와 엽서, 포스터 등의 인쇄물에도 흥미를 느끼기 마련인데, 우리 또한 그랬다. 다양한 종이의 질감을 느끼며 감탄했고, 앞으로 다가올 어버이날을 위해 편지지 세트를 구입했다.
속초를 떠나기 전 마지막 여정은 시외버스터미널 인근에 위치한 ‘완벽한 날들’이었다. 환경 문제와 동물권, 채식과 성평등 같이 사회적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서점이었다. 특히 이러한 사회적 이슈를 사회과학 서적뿐만 아니라 문학이나 만화책, 어린이책에서도 엿볼 수 있는 점이 매우 흥미로웠다. 사회적 이슈를 바탕으로 한 독서 프로젝트를 경험해 본 적이 있는 만큼, 이러한 목소리들을 더 다양한 독자층에게 전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영감을 불어넣는 공간이었다. 위층에는 북스테이를 위한 숙소도 마련되어 있어, 다음에 속초에 방문한다면 그곳에서 묵어보고 싶다는 결심을 했다.
강릉과 속초에서의 여행은 수개월이 지났지만, 지금도 여전히 그때 서점에서 마주했던 낯선 즐거움은 우리와 함께하고 있다. 특히 ‘서점에서 가급적 한 권 이상의 책을 사자’는 다짐 덕에 서점에서의 영감은 그곳에서 구입한 책의 형태로 우리들의 서가 한켠에 자리한다. 단순한 감상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나의 서가에 흔적을 남길 수 있는 여행이라는 점에서, 책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서점 여행을 떠나라고 권하고 싶다.
어쩌다 보니 2년에 걸친 2번의 서점 여행이 모두 4월이었고, 우리 사이에 ‘매년 4월엔 서점 여행을 떠나자’라는 암묵적인 합의가 이루어졌다. 지금까지의 여행은 강원도라는 지역에 한정되었지만, 앞으로는 더 다양한 공간을 탐험하며 다채로운 ‘낯섦’을 마주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앞으로 맞이할 우리의 봄날은 서점으로 기억되지 않을까. 벌써 4월이 기다려진다. 낯선 곳에서 책을 통해 연결될 따뜻한 봄날이, 우리가 책과 함께 맞이할 수많은 봄들이.
★2023 독서동아리 수기 공모전 「독서동아리를 담다」에 선정된 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