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그해에는 태백도서관에 ‘함박꽃독서회’의 가입 안내 게시판이 있었다. ‘나도 책을 좋아하는데. 가입하고 싶다.’ 그러나 바람뿐. 나를 진정시키고 체념하게 하는 것은 학력 미달이었다. 스스로 판단하기에도 부족해 보였다. 그 품격 있는 모임에 나는 아니라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독서를 좋아하는데도.
당시, 나는 숲해설가로 이듬해에는 유아숲 지도사로 활동했다. 첫 출근하고 사흘 만이었나. 동료 선배가 학력을 물어왔고 위에 보고해야 한다고 하였다. 의아하기도 하고 난감하여 툭! 하고 새어 나오는 말. “학력이 관계가 있나요? 아닌 걸로 알고 있는데요! 저는… 지금 상처받네요. 초등학교 졸업입니다.” 그 순간 사무실은 고요해졌다. 그날의 수치심과 놀라움은 나를 번쩍 깨이게 했다. 차근차근 검정고시를 준비하게 되었다. 그리고 도서관에 다니면서 게시판을 발견하게 되고 바라보게 된 것이다. 아릿한 마음으로 바라본 것이 나를 변화시켰다. 지금도 나는 놀라워한다. 어쨌든 나는 계속해서 성장했고 검정고시 중등 과정을 합격, 8개월 후 고등과정마저도 성공하며 사이버대학까지 입학하게 되었다. 다음으로 내가 도전한 것은 ‘함박꽃독서회’에 가입을 신청하는 것이었다. 그때가 2019년 9월이었던가? 아마도 그럴 것이다. 그로부터 이삼 개월 후에 27회 문집 발간이 있었으니까.
그때의 정명옥 회장님. 참 다정스러웠다. “책을 좋아하는데 누가 마다하겠어요?” 이렇게 나의 갈망은 햇수로 4년 만에 이루어졌다. 나는 ‘함박꽃독서회’ 회원이면서 강원랜드중독관리센터에서 일하고 있었다. 나의 인생에서 그보다 더 벅차오르는 세월은 없었으리라. 그 와중에 중독 관련 공부도 하고 자격증 취득까지 했으니 그 정도의 인생 역전은 당연한 보상이 아니었을까. 나는 열심히 살았다. 성장할수록 나의 자리에 변동이 왔다. 신기한 보상이었다.
나는 이제 나이가 들었다. 68세. 모든 욕망에서 벗어나는 시점.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나는 독서를 하기로 했다. 그리고 독서하는 사람들과 함께 가기로 했다. 현명한 선택이 아닐까. 『죽는 게 뭐라고』마음산책, 2015의 사노 요코는 “죽음과 돈을 아끼지 말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마지막까지 글을 썼다. 죽음 앞에서도 초연했던 숱한 작가들의 마무리에는 늘 글이 있지 않은가. 나는 이렇게 알고 있다. ‘소중한 것은 없다. 다만 읽고 쓰고 공유하는 것만 있을 뿐이다.’
이틀 전 허정숙 꽃님을 만났다. 우리는 회원들끼리 꽃님이라는 호칭을 붙인다. 그녀와의 대화에서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의 정체를 발견하였다. 평범한 수다 같기도 했지만 내게는 깨달음이 있었기에 여기에 적어본다. 그때 메모해 두었더라면 더욱더 좋았을 것을. “언니, 독서 모임에 처음 들어오면 단계가 있어요. 어떤 단계까지만 지나가면 서로가 친해지면서 소통이 되잖아요. 그때가 좋아요. 우선 대단하잖아요. 한 달 동안 같은 책을 읽고 느낌을 공유하고 토론하지요? 이처럼 좋은 모임이 어디 있나요? 하나가 되는 거예요. 남들은 모르지만 우리는 알아요. 우리는 같은 것을 읽었잖아요.” 우정이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나에게도 갈등의 침체기는 있었다. 잠시, 슬럼프에 빠졌던 1년 동안을 되짚어 보는 시간을 가져본다. 지난해 2월에 집안에 좋지 않은 일로 충격을 받아 우울증이 찾아왔다. 모두가 다르겠지만 나의 우울증은 우선, 하기 싫은 일이 많아졌다. 먹기 싫고 만나기 싫고 준비하기 싫고 심지어 ‘옷 갈아입기 싫은 병’이라고 칭하기도 했었다. 모든 것이 싫었다. 그렇게 나는 책을 멀리하게 되었고 모임에서 탈퇴까지 하게 되었다. 한 페이지도 읽어낼 수 없었던 그때는 지옥이었다. 오로지 침대와 붙었다. 체중이 15kg 빠지면서 환자의 몰골이 되고야 말았고 ‘이러다가 죽는 거구나.’ 싶었다. 살고 싶었다. 그 이유가 비록 타인을 위한 것일지라도. 더 자세히는 엄마보다 먼저 갈 수 없다는 책임감으로 살고자 하였다. 병원을 찾아 약물치료와 심리상담 치료를 병행하였다. 8월이 시작이었다.
그후 4개월이 지난 작년 12월. 독서 모임의 김영희 회장님과 통화를 했다. 재작년에 쓴 나의 독후감이 상을 받았다고 한다. 너무 놀랐다. “회장님, 무슨? 내가 무슨 상을요?” “언니, 만나서 얘기해요. 그것도 우수상이에요. 언제 시간 있어요?” 우리는 약속을 했고 상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함박꽃 28집」에 수록된 독후감 ― 최은영의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의 독후감이다. ― 이 우수상 수상을 한 것이었다. ‘제41회 국민독서경진 강원도 대회’ 우수상이라니. 춤추고 싶었다. 글을 쓰며 상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독서에 대한 애정으로 눈물마저 어리었다. 치유의 계기가 되었다. 감동이었다.
모임에 나가고 싶은 간절함은 나를 다시 이끌었다. 회장님은 4개월쯤 있다가 재가입을 하라고 했고 나는 응했다. 왜 시간을 주었을까? 깊은 의도가 있었겠지만 나는 지금까지 묻지 않았다. 아직도 나는 모른다.
다시 한 달에 한 권씩 책을 읽고 독후감을 작성하고 토론하는 생활로 돌아왔다. 회원들은 따뜻하게 반겨주었다. 재가입 후 가장 먼저 접한 책은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올가 토가르추크의 『방랑자들』민음사, 2019이었다. 멋진 작품이었고 그동안 이런 책들을 멀리하고 좌절하고 살았다는 것이 부끄럽기만 하였다. 열심히 읽고 독후감을 준비하면서 희열을 느꼈다. ‘이런 것이 삶이지.’ 노후를 이렇게 아름답게 보내기 위해, 노력하며 굳건하고 바르게 살아왔나 보다.
‘함박꽃독서회’는 역사가 깊다. 회원들의 삼십 년 노고와 스토리가 함축된 역사이리라. 문집을 발간할 때면 너도나도 도와서 한 권의 책을 만들어내는데 그 모습은 뜨겁다. 우리의 문집 한 권이 나올 때까지 회원들의 열정은 모든 것들에서 구별된다. 나는 그들의 일원이라는 자긍심으로 어깨가 양껏 올라간다. 나의 병은 하루하루 달라져 이제 일상생활이 가능하게 되었다.
상념에 빠져 내가 살아왔던 모습을 추적해 보기도 하고 현재의 모습을 그려보기도 하면 최상의 장면은 역시 독서하고 쓰고 토론하는 모습이었다. 독서는 심장을 기쁘게 한다. 그 이상 무엇을 바랄 것인가.
★2022 독서동아리 수기 공모전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사람과 책이 만나다」에 선정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