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오늘 독서동아리 모임이네.”
“벌써 그렇게 됐나.”
우리 부부는 포항에서 오지마을인 죽장면 상사리에 살고 있다. 2014년에 20년 동안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귀농을 하였다. 처음에는 밭 갈고 씨 뿌려 농사를 짓느라고 책을 읽는다는 것은 엄두도 낼 수가 없었다. 익숙하지 않은 농사일을 몸으로 한다고 날마다 녹초가 되었다. 도시에 살 때는 회사에서 독서동아리 활동을 할 정도로 책과 가까이 있었으니 늘 아쉬움이 남았다. 귀농한 지 5년쯤 지나고 나니 조금은 농사일에 익숙해지고 마음에 여유가 생기기 시작하였다. 이젠 책도 읽고 주위 사람들과 교류도 하고 싶어서 이곳저곳에 알아보다가 독서동아리지원센터라는 곳을 찾게 되었다.
그곳에다가 죽장면에 독서동아리 회원을 모집한다고 등록을 해 놓았지만 1년이 지나도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이렇게 하다가는 세월만 보낼 것 같아서 노심초사하고 있었다. 고민하고 있는데 작은도서관에서 기간제로 근무하게 된 아내가 발 벗고 나섰다. 도서관에 오는 사람들에게 독서동아리를 만들어보자고 제의를 한 것이다. 책을 빌리러 온다는 것은 책 읽기를 좋아한다는 뜻이기에 의향을 쉽게 물어볼 수 있었다. 그 사람들을 통해 알음알음 알아보니 독서모임을 기다리고 있었던 사람들이 의외로 많았다.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열 명의 회원이 모였다.
2021년 5월 15일 오후 6시 30분, 열 명의 회원은 선바위 작은도서관에 모여 첫인사를 나누었다. 안면이 있는 사람도 있었고 처음 보는 사람도 있었다. 우리는 독서동아리의 이름과 성격, 모임 횟수들을 의논하였다. 모임의 이름은 ‘죽장 선바위 독서동아리’로 결정하였다. 선바위는 수천 년을 마을 가운데 우뚝 서서 주민들을 지키고 있는 바위의 이름이다. 면 소재지 동네의 지명이기도 하고 작은도서관의 이름이기도 하다. 우리도 선바위처럼 스스로 우뚝 서는 동아리가 되게 해보자고 ‘죽장 선바위 독서동아리’로 정하였다. 대부분의 회원이 농사를 짓기 때문에 시간이 많지 않아 한 달에 2번의 모임을 하기로 하였다.
죽장 지역은 문화적으로 아주 소외된 지역이기에 회원들은 독서를 통해서 문화적인 갈증을 해소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포항에서도 오지 중의 오지로 알려진 산골짜기 죽장면에서 독서동아리 모임이 이렇게 시작되었다. 두드리면 열리리라. 그 말이 그대로 일어난 셈이었다. 모임은 만들었지만 대부분의 회원들은 독서 모임 경험이 없어서 과연 잘 굴러갈 수 있을까 내심 걱정스러웠다. 처음에는 같은 책을 구입하여 읽는 것이 부담이 되어 각자 읽어온 책을 소개하고 소감을 나누는 형식으로 모임을 가졌다. 그러다가 각자 살아온 환경이 다르고 생각의 차이가 무척 크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어려운 책보다는 쉽게 읽고 친해질 수 있는 책을 선정하여 토론을 해보기로 하였다. 그렇게 해서 고른 책 중의 하나가 생텍쥐페리가 쓴 『어린 왕자』를 경상도 사투리 버전으로 새롭게 각색한 최현애 작가의 『애린 왕자』이팝, 2021였다. 회원이 한 사람씩 몇 페이지를 돌아가면서 소리 내어 읽어보기로 한 것이다. 경상도 중에도 포항의 사투리로 되어 있는 책이어서 포항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무척 익숙하였다. 그렇지만 글로 쓰인 사투리를 소리 내어 읽으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전하께선…… 뭘 다스리는교?”
“마카 다.” 왕은 아주 간단하이 대답하데.
“마카 다요?” 왕은 조심스럽게 지 별하고 다른 모든 항성을 가리키능 기라.
“전신에 다 말인교?” 애린왕자가 이바구했다.
돌아가면서 책을 읽는데 듣고 있던 회원들은 박수를 치며 박장대소를 하였다. 그날 우리 독서동아리 회원들은 힘든 농사일도 모두 잊고 마음껏 웃으며 서로가 한층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었다.
2021년에는 코로나19 때문에 한 달에 한 번 모임도 겨우 할 정도로 활동이 어려웠다. 모두 마스크를 끼고 있어서 몇 번의 모임이 있었는데도 회원의 얼굴을 잘 모르는 경우가 있었다. 그래도 그때그때의 상황에 맞게 활동을 이어갔다. 상황이 조금씩 나아지면서 가끔은 농촌에서는 쉽게 먹을 수 없는 돈가스로 저녁 식사를 하며 살아가는 이야기와 모임에 대한 의견을 나누었다. 모두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렇게 모아진 의견으로 책 선정은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소설 쪽으로 방향을 정하였다. 처음 읽은 책은 가상화폐를 소재로 하여 직장인들의 애환을 담고 있는 장류진 작가의 『달까지 가자』창비, 2021라는 장편소설이다. 회원의 딸이 추천하여 읽게 되었는데 우리 자식들 세대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책이어서 두런두런 나눌 수 있는 이야깃거리들이 참 많았다. 젊은 세대의 고충도 어느 정도 이해가 가지만 돈을 쉽게 벌려고 하는 마음을 가지지 않을까 걱정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남의 일이 아니라 내 자식의 문제이기도 하여서 더욱 빠져들어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실 처음에 각자 읽어온 책을 소개하자고 했을 때는 바쁜 일상 때문인지 책을 읽지 않고 나오는 회원들이 있었다. 그런 회원들은 아무래도 서먹서먹해하고 어색해하는 것 같았다. 아무리 독서로 뭉친 동아리라 할지라도 사람 사는 향기가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런 회원들은 한 달간 있었던 일 중에 사소한 것이라도 한 가지씩 이야기해 보자고 하였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만남이 이어지다 보니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재미도 생기게 되었다. 그다음부터는 회원 각자가 추천한 책 중에서 많이들 원하는 책을 구매하여 읽고 토론 하였다. 한 사람이 책을 읽은 감상을 말하기 시작하면 옆에 앉은 사람이 자신의 경험을 이어 이야기하며 토론은 자연스럽게 흥미진진해져 갔다. 할 말은 많은데 시간이 금방 흘러 아쉬움을 남기기 일쑤였다. 취향이 다 다르니까 함께 읽은 책으로 서로 공감할 수 있을지도 걱정이었는데 기우였다. 여럿이 모여서 같이 읽은 책을 이야기하니 이것이 독서 토론이구나 싶은 생각을 새삼 하게 되었다. 책을 읽고 나서 자기 생각을 이야기할 수 있고 상대방 생각도 들어보면서 인간적 성숙함도 쌓여가는 느낌이 들었다.
2022년에는 좀 더 발전된 동아리 모임을 하기 위해 책읽는사회문화재단에서 실시하는 독서동아리 지원사업에 응모하였는데 선정되는 행운이 찾아왔다. 지난해에도 신청하였지만, 선정이 되지 못하여 회원들의 아쉬움이 아주 많았었다. ‘죽장 선바위 독서동아리’ 회원 대부분은 농사를 지으면서 모임을 하기에 책을 구입하는 비용이 항상 부담이었다. 회원들이 회비를 내고 있지만 늘 부족하여 읽고 싶은 책을 쉽게 선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올해는 지원사업에 선정되어 1년간은 마음 놓고 책을 읽게 되었다. 우선 올해는 우리가 선정한 도서 10권을 사서 읽고 독서 토론을 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10월에는 『기린산방』북인, 2010의 저자인 시인 조혜전 시인과의 대화 시간도 계획하고 있다. 우리 지역에 살고 있는 시인이라서 무엇을 보고 어떤 마음으로 시를 쓰는지 들어볼 생각에 더욱 기다려지는 시간이다.
2021년 5월에 모임을 시작하여 벌써 1년이 훌쩍 지났다. 그동안 일상 속에서 책을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어서 행복하였다. 혼자라면 바쁘다는 핑계로 책 읽기를 미루고 있을 텐데 정기적으로 모임을 하게 되니 책을 읽어 가야 한다는 의무감도 생겼다. 그래서 책을 더 읽게 된 것 같다. 또 작은 시골 마을에서 선한 마음으로 사는 회원들이어서인지 서로 선입견이나 편견을 버리고 토론을 하다 보니 좀 더 편안하게 생각을 나눌 수 있는 것 같다. 회원들은 자신이 선호하는 책만 보다가 다양한 책을 접할 수 있어 더 좋다는 이야기를 한다. 다른 사람의 관점과 생각을 통해 삶의 다양성과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이 되어 서로가 만족스러워한다. 책을 통해 생각을 알게 되고 서로의 다름도 인정하게 되는 시간이 되어서 어떤 모임보다 알차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시골이지만 책 좀 읽어보자고 시작한 독서동아리가 이렇게 잘 운영되고 있어 즐겁고 소중하다. 이 모임이 크게는 오지마을인 죽장면에 문화의 씨앗 하나를 뿌리는 것이 되고, 작게는 회원 개인의 삶을 위로하는 공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앞으로도 ‘죽장 선바위 독서동아리’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사람과 책이 만나는 시간을 함께 쭉 이어갈 것이다. 그리고 회원들은 오늘도 열심히 책을 읽는다.
★2022 독서동아리 수기 공모전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사람과 책이 만나다」에 선정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