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쓰는 나는 ‘서진TAXI이하 서진택시’의 대표이자 첫 번째 탑승자이다. 책을 좋아하며, ‘서진택시’의 순조로운 운항을 위해 책방지기와 함께 고군분투하고 있다. 캡틴의 길은 힘든 것이다. 어떨 때는 망망대해에 혼자 떠 있는 기분이다. 그래도 배에 탄 선원들을 잘 이끌어서 ‘서진택시’ 종착지를 향해 나아갈 것이다.
‘서진택시’는 우리 독서동아리 이름이다. 독서동아리치고는 이름이 특이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 이유는 잠시 후에 이야기하겠다. ‘서진택시’에 탑승한 우리는 충남 금산군 제원면 제원중학교에 다니는 3학년 학생 다섯 명이다. 택시 기사는 동네책방 ‘책방에書책방에서’의 책방지기다. 우리가 ‘서진택시’에 올라타게 된 건 ‘책방에서’ 덕분이다. ‘책방에서’가 문을 연 지는 2년이 좀 안 되었다. 우리는 새로 생긴 이 책방이 어떤 곳일지 궁금했다. 우리 동네는 매우 작은 시골 마을이다. 이 작은 시골 마을에 북카페가 생긴다니 의아했다. 먹고 살 수는 있을지…….
‘서진택시’를 시작하기 전까지 우리는 제원작은도서관에서 주로 만났다. 고등학생이 되면 각자의 꿈을 안고 뿔뿔이 흩어져야 할지도 모른다는 게 아쉬웠다. 방과 후에 늘 함께였다. 코로나19로 팬데믹 시대가 되면서 작은도서관이 휴관하게 되자 우리의 걸음은 동네책방으로 향했다. 고등학교 진학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 친구들과 좋은 추억을 쌓고 서로의 생각을 나누며 가치관을 공유하면 어떨까? 여기에 책은 좋은 매개체 역할을 해줄 것이었다. 우리는 책방지기 선생님의 권유로 책 이야기, 우리의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우리와 책방지기 선생님의 인연은 자연스럽게 독서 모임으로 이어졌다.
독서동아리를 시작하면서 우리는 이름을 짓기로 했다. 금강산 호랑이, 정승훈 부대찌개, 북적북적, 제원 어벤져스 등등 별의별 의견이 다 나왔다. 결국 ‘서진택시’로 의견을 모았다. 우리의 중학교 2학년 담임선생님의 성함이 서진택이었다. 우리를 책의 세계로 안내해준 고마운 선생님이었다. 그 선생님을 추억하자는 의미에서, 그리고 택시를 타고 세상을 나아가는 것처럼 우리도 책과 함께 세상을 향해 나아가자는 뜻을 담아 지은 이름이었다. 글 서書, 나아갈 진進 TAXI.
본격적인 운행에 앞서 시범 운행을 하기로 했다. 그 책으로 『좀머 씨 이야기』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열린책들 펴냄를 골랐다. 『좀머 씨 이야기』는 관계에 대한 이야기었다. 사람들은 좀머 씨에 대해 자세히 알려고 하지도 않으면서 좀머 씨의 행동을 비판하기 바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는 동네에 뇌병변을 앓고 있는 아저씨와의 관계를 살펴봤다. 아저씨의 별명은 강냉이다. 강냉이 아저씨는 매일 마을 한복판을 종일 돌아다니며 혼잣말을 해서 사람들은 강냉이 아저씨를 피했다. 매일 다른 이야기를 하는데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 수 없다.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아저씨만의 세계가 있는 듯하다. 강냉이 아저씨에 대해 가진 편견과 선입견, 우리 생각들을 나누었다.
책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나는 강냉이 아저씨 행동의 변화를 목격한 일이 있었다. 책방지기 선생님은 강냉이 아저씨에게 매일 음료수를 드린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고 한다. 크게 궁금하지 않아 나도 더는 묻지 않았다. 때가 되면 나도 아저씨에게 음료수를 챙겨드렸다. 무료로 드렸기에 아저씨는 밖에서 음료를 드시고 빈 컵만 두고 가셨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아저씨가 천 원을 내기 시작했다. 이 날을 기점으로 아저씨는 책방 안에 있는 자리에 앉아서 음료를 드신다. 강냉이 아저씨가 즐기는 메뉴는 고구마라떼와 바나나주스다. 한 번은 내가 요거트 스무디를 해드린 적이 있었다. “이거 말고, 저어기 저어기 우유, 우유 들어간 거. 저기 있네, 저기 우유 들어간 거.” 하셨다. 고구마라떼를 드렸더니 만족한 표정을 지으며 한참을 떠들다 가셨다.
동아리원들의 관심은 책보다는 사실 다른 데 있었다. 독서동아리를 하면 북카페를 편하게 드나들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 친구들을 책방지기 선생님은 놓지 않았다. “독서동아리가 얼마나 재밌는데!” 하시면서 동아리를 떠나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꼬셨다. 시험이다, 약속이다 하며 독서동아리를 하는 날보다 못하는 날이 많았다. 계속 이렇게 하다가는 흐지부지될 것 같았다. 날을 잡아 하루 모여 독서동아리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들 독서동아리를 계속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다. 마음을 실천으로 옮기는 일이 필요했다. 이를 계기로 ‘독서동아리지원사업’에 신청했다. 청소년들이 책을 읽겠다고 해서였을까. 다행히 우리 독서동아리는 사업에 선정이 되었고 지금까지 독서동아리 활동을 이어올 수 있게 되었다.
청소년들이 모여서 책을 읽는다고 하니 주변 어른들도 우리를 지원해주시기 시작했다. 어느 동아리원의 아버지께서는 책방에 자주 들려 책방지기에게 지원금을 주셨다. 지원금으로 우리는 책 이야기를 나눌 때 맛있는 것을 먹을 수 있었다. 우리들의 추억을 쌓으려고 만든 독서동아리였는데 주변에서 도움을 주시니 기분이 묘했다. 조금 더 책임감을 느끼고 열심히 해야 할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서진택시’의 공통된 관심사는 부모님이었다. 부모님들은 대부분 농사를 짓고 있다. 옆에서 보면 많이 힘이 들어 보인다. 가슴이 뭉클하다. 그래서 독서의 테마를 ‘부모님’으로 잡았다. 첫 책으로 『어른이 된다는 건』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민음사 펴냄을 읽을 예정이다. 이 책을 읽고 우리들의 어린 시절을 돌아보려고 한다. 어른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서로 이야기 나눠볼 것이다. 각자 부모님의 어린 시절에 대해서도 인터뷰할 것이다. 바쁘신 부모님과 이야기하기 쉽지 않을 거 같다. 그래도 부모님과의 대화 속에서 우리의 진로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다음 운행 책은 『나에게 시간을 주기로 했다』오리여인 지음, 수오서재 펴냄이다. 서로의 취미와 부모님의 취미에 대해서도 이야기해보고 싶다. 『B급 며느리』선호빈 지음, 믹스커피 펴냄와 소설 및 영화 『82년생 김지영』조남주 지음, 민음사 펴냄을 보며 여자의 삶, 엄마의 삶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도 가질 것이다. 동아리원 중에 반려동물을 키우고 싶어 하는 친구들이 있다. 『귀여움이 세상을 구한다!』러브둥둥 지음, 스튜디오오드리 펴냄를 읽고 반려동물을 키우는 것에 대해 부모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도 대화할 것이다. 끝으로 『아무것도 모르는데 엄마가 되었습니다』김연희 지음, 걷는사람 펴냄를 읽고 부모님들이 부모가 된 후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부모로 살아가는 건 어떤 의미인지도 이야기 나눠보고 싶다.
‘서진택시’는 삶이라는 첫 여행지를 안전하게 운전하는 기사가 되기 위해서 첫 손님으로 부모님을 모시고자 한다. 그리고 부모님의 세계로 첫 운행을 시작하려고 한다. 『서진택시 운행일지 - 백문백답』이라는 작은 책을 만들 야무진 계획도 가지고 있다. 세상에는 책도 많고, 배우고 경험해야 할 것들이 참 많다. 그때까지 ‘서진택시’의 운행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