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독서 동아리를 소개합니다
⑫ 대구 ‘남산북클럽’
토요일 오후 대구 시내의 한 카페. 책을 든 남자들이 하나 둘 모인다. 이들은 2018년 10월에 꾸려진 ‘남산북클럽’의 회원들이다. 대구, 경북 지역에 사는 20∼50대 남자들이 모인 독서동아리의 이름은 첫 번째 모임이 열렸던 제빵소 이름에서 따왔다.
시작할 때는 무척 회의적이었다. 사람들이 모이기는 할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지금은 40명이 넘는 회원이 활동하는 동아리로 성장했다. 매월 정모 공지를 내면, 몇 시간 안에 참가 인원 10명이 금세 넘어간다.
남자들만 모이는 독서동아리이다 보니 밖에서 볼 땐 위계와 서열문화가 강한 모임이라 생각할 터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은 것을 알 수 있다. 나이와 직업에 대해선 비밀을 보장하되, 서로 존대하고 존중하는 수평적인 모임이다.
2018년 첫 모임 이후 우리는 지금까지 다양한 책을 읽었다. 조지 오웰의 『1984』와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와 같은 고전도 읽었고 기시미 이치로와 고가 후미타케의 『미움받을 용기』나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와 같은 베스트셀러를 읽기도 했으며 완독하기 어려운 것으로 소문난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를 읽기도 했다. 독서를 걸음걸이로 표현한다면, 고전을 읽으며 거장의 발자취를 조용히 뒤따르기도 했고, 때로는 시대의 흐름에 맞게 따끈따끈한 책을 읽으며 나란히 걷기도 했다고 할 수 있다.
동아리 운영 초기에는 함께 읽을 책을 정할 때 투표 방식을 택했다. 아마도 많은 독서동아리가 이런 방식으로 책을 정할 것이다. 남산북클럽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남산북클럽은 ‘소믈리에’감별사 형식을 취하게 되었다. 매달 한 사람이 소믈리에가 되어 음식에 맞는 좋은 와인을 고르듯 적절한 책을 정하는 방식이다. 역사, 철학, 심리 등 회원마다 고르는 책은 제각각이다. 하지만 어떤 책을 선택하든 개인의 취향은 존중받는다. 올해 2월에는 미우라 아야코의 『빙점』, 3월에는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 4월에는 김영하의 『여행의 이유』가 정해졌다. 소믈리에 방식은 편향된 독서를 해온 회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소믈리에를 맡은 회원은 다른 회원들에게 ‘욕을 먹지 않기 위해’ 고민을 거듭하며 책임감 있게 모임을 준비한다.
가끔 클래식, 뮤지컬, 오페라, 연극, 영화 등을 관람하는 이벤트를 열기도 한다. 오페라 입문서인 『박종호에게 오페라를 묻다』를 읽고 오페라 갈라 공연과 대구국제오페라축제 개막작인 ‘람메르무어의 루치아’를 관람하기도 했으며, 발레 ‘백조의 호수’나 반 고흐의 인생을 다룬 영화를 보고 감상을 나누기도 했다.
남산북클럽에서는 열성적인 회원을 강성노조에 빗대어 ‘강성회원’으로 칭한다. 이들 회원에게 독서동아리에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이유를 물으면 각기 다른 대답이 돌아온다. 하지만 입을 모아 얘기하는 것은 물질 소비가 아닌 ‘경험 소비’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금전으로 계산할 수 없는, 행복한 경험 말이다. 나이와 직업에 상관없는 수평적인 모임. 가치 있는 시간을 공유하는 모임. 이러한 남산북클럽의 지향점은 사회생활, 학교생활, 가정생활에 지친 대구 남자들로부터 공감과 지지를 얻고 있다.
★ 대표 이동훈·부대표 박웅비